
한국은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대항해시대가 되묻는 한국 조선업의 자리
2026.09.13 · 바다
필라델피아의 도크, 부산의 도크
2025년 8월,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를 찾았다. 그가 방명록에 서명하는 동안 곁에 서 있던 것은 미국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대기업 부회장이었다.1
이 장면 하나만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선소가 2024년 12월 한화오션·한화시스템이 1억 달러에 사들인, 원래는 미국 소유였던 시설이라는 사실을 겹쳐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2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핵심 방위산업 시설을, 그것도 자국 기업이 소유한 곳에서 방문한다는 것은 흔한 그림이 아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바다의 지배자가 산업 생산력의 속도로 다시 가려지고 있는 지금의 장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이 시리즈와 나란히 걸어온 외항선원 시리즈는 500년 전 유럽과 조선이 바다 앞에서 정반대의 선택을 했던 순간을 짚으며 끝을 맺었다. 두 시리즈가 지금 이 지점에서 만난다. 질문은 하나다 — 한국은 그 바다 위 어디에 서 있는가.
두 번 놓친 신호, 그리고 지금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조선(朝鮮)이 바다 앞에서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야 한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조선을 덮쳤다. 반세기 앞선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이 다네가시마에 표착하며 전래된 조총 기술을 일본이 빠르게 흡수한 결과였다.3 조선은 그 격차를 전장에서 몸으로 겪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전장에서조차 조선은 판옥선과 거북선이라는 당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연안 함선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전란이 끝나자 방어용 유산으로 봉인되었을 뿐, 지속 가능한 조선(造船) 산업이나 원양 항해 전략으로는 확장되지 못했다.
두 번째 신호는 더 뒤늦게 왔다. 1653년 8월,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제주 해안에 좌초하며 헨드릭 하멜 일행이 조선 땅을 밟았다. 조선은 이들을 억류했을 뿐, 그 지식을 국가의 자산으로 체계화하지 못했다. 이 억류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효종 조정은 북벌론이라는 명분 아래, 하멜보다 앞서 표착했던 박연(벨테브레) 등 서양인의 기술을 화포 제작을 위한 군사적 통제 대상으로만 국한해 소비했을 뿐이다.4 항해술과 조선술이 산업이나 체계로 전환될 여지는 애초에 이 틀 안에 없었다. 두 번의 기회 앞에서 조선은 같은 반응을 반복했다 — 기술은 얻었으나, 그것을 가둔 것은 명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 번째 장면은 이전 두 번과 다른 결을 갖고 있다. 조선(造船)이 조선(朝鮮)을 대신해 그 자리에 서 있다. 한국은 더 이상 표류해 온 지식을 구경하는 쪽이 아니라, 세계 최대 해군을 유지·보수·건조하는 능력 그 자체를 쥔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5 다만 이 흐름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미국은 자국 연안 화물운송에 자국 건조 선박만 쓰도록 강제하는 존스법(1920년 제정)을 한 세기 넘게 유지해 왔고, 현지 조선 노동조합과의 이해관계 조정도 남은 과제다. 역설적으로 이 규제와 산업적 공백 자체가, 미국이 스스로 풀지 못한 ‘허(虛)’를 외부 생산기반이 메울 여지를 열어둔 구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조선소의 건조 능력을 연간 1~2척 수준에서 최대 20척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은 이미 발표되어 진행 중이다.6 과거 두 번의 신호와는 명백히 다른 위치에서 이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물의 형태와 이성의 간지
손자는 전쟁의 형세를 이렇게 썼다.7
夫兵形象水,水之形,避高而趨下;兵之形,避實而擊虛。
(부병형상수, 수지형, 피고이추하; 병지형, 피실이격허)
“무릇 군대의 형태는 물을 닮는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르듯, 군대도 견고한 곳을 피해 빈 곳을 친다.”
지금 한화필리조선소가 서 있는 자리도 이 문장과 닮아 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갖고 있지만, 그 해군을 유지할 조선 생산기반 자체는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 연간 건조 능력이 1~2척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그 ‘허(虛)’를 보여준다. 한국의 조선업은 미국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실(實)’의 자리가 아니라, 미국 스스로도 채우지 못한 그 빈틈을 향해 흘러 들어간 구도로 해석될 수 있다.
서양에서는 19세기 초 헤겔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비슷한 통찰에 이른다. 그는 『역사철학강의』에서 나폴레옹 같은 인물을 예로 들었다. 나폴레옹 본인은 그저 자신의 야심과 이익을 좇아 움직였을 뿐, 원대한 역사적 사명감을 품고 유럽을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개인들의 이런 사사로운 욕망과 충돌이 쌓이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적 국가 체제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누구도 그것을 설계하지 않았는데, 역사는 결국 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헤겔은 이렇게 개인과 국가가 자기 욕망에 따라 움직일 뿐인데도 그 움직임들이 모여 역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는 현상을, 마치 이성이 뒤에서 사람들을 부리는 것 같다고 해서 ‘이성의 간지(List der Vernunft)’라 불렀다.8
손자가 ‘빈틈을 찾아 흐르는 자가 이긴다’고 했다면, 헤겔은 ‘대부분의 행위자는 자신이 그 흐름 안에서 무엇을 실현하는지조차 모른 채 역사를 만든다’고 진단했다. 빈틈을 찾아 흐르는 것과, 자신이 그 흐름의 도구로만 소비되는 것은 한 끗 차이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결국 스스로 다음 지도를 그리려는 자각적 의지 — 흘러든 자리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규칙을 세우려는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패턴은 반복되지 않았다, 갱신되었다
이 시리즈 14편이 확인해 온 것은 하나다. 패권은 함대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함대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자에게 넘어간다.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 다섯 번의 이양 모두 이 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은 과거 이 원리 밖에 있었다. 1592년과 1653년, 조선은 이 흐름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흐름에 휩쓸리는 쪽이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 조선은 신호를 구조로 전환할 생산기반 자체를 갖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은 처음으로, 패권을 이양시키는 그 생산기반의 일부를 실제로 쥐고 있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이미 가동 중인 조선소와 이미 서명된 투자 계획이 보여주는 사실이다. 표준화된 생산기반을 쥔 자가 바다를 지배한다는 원리는, 사실 이 시리즈보다 앞선 시대 — 베니스의 아르세날레가 지중해를 움직이던 시절부터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물론 생산기반을 쥐었다는 것과, 그 기반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의 협력이 한국을 패권 이동의 능동적 변수로 세울지, 혹은 다시 한번 강대국들의 필요에 복무하는 정교한 하청 구조로 귀결될지는 이 시점에서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하나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 이번에는 대한민국이 그 답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 과거 두 번의 신호 앞에서는 없었던 선택지다.
파수하는 곳에 선다는 것
이 블로그의 이름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다. 그러나 바라본다는 것은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파수꾼은 신호가 울릴 때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채는 자, 그리고 그 신호가 무엇을 뜻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자다. 관조가 아니라 독법(讀法)이 이 이름의 본뜻이다.
외항선원 시리즈는 바다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물었고,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바다를 지배해 온 나라들의 자리를 물었다. 두 시리즈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제 질문은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향한다.
임진왜란의 신호와 하멜의 신호, 한국은 그 두 번을 놓쳤다 — 기술은 얻었으나 그것을 가둔 것은 명분이었다. 세 번째 신호는 지금 필라델피아의 도크 위에서, 그리고 거제와 울산의 도크 위에서 동시에 울리고 있다. 이 신호를 구조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 지나가는 장면으로 흘려보낼 것인가 — 이 질문의 답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다만 이번만큼은, 답을 쓸 펜을 쥔 손이 처음으로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다음 이야기 — 영토 없이 바다를 지배한 도시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돌기 전, 지중해에는 이미 바다로 국가를 경영한 도시가 있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가 ‘패권이 어떻게 다섯 번 이동했는가’를 물었다면, 다음 시리즈는 그 이동이 시작되기 전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베니스는 어떻게 영토 없이 500년을 지배했는가.
두칼레 궁전의 도제(Doge) 선출 제도, 유럽 최초의 국영 표준화 조선소 아르세날레, 그리고 오스만이 육로 향신료 무역을 장악하자 포르투갈이 바닷길을 찾아 나서게 만든 바로 그 베니스의 독점 구조까지 — 대항해시대 자체가 베니스라는 도시국가를 우회하려는 시도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앞선 15편의 숨은 서장에 가깝다.
바다를 지배한 것은 늘 가장 큰 나라가 아니었다. 때로는 영토 없는 도시 하나였다. 그 도시가 무너진 이유는, 다음 시리즈에서 다시 묻는다.
* 참고할 말씀: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리라’ — 하박국 2:1
▶ 대항해시대 시리즈 전체 보기 (전 15편)
- 항로를 발명한 나라
- 향신료 한 줌이 세계를 바꿨다
- 지도를 그린 자가 세계를 가졌다
- 틀린 방향으로 간 자가 이겼다
- 신대륙의 금은 누구의 것인가
- 무적함대는 왜 침몰했는가
- 국가 없이 바다를 지배하다
- 자본이 총보다 강하다
- 작은 나라는 왜 결국 지는가
- 해군이 아니라 법이 바다를 지배했다
- 증기기관이 범선을 죽였다
- 제국의 식탁은 누가 차렸는가
- 패권은 왜 항상 이동하는가
- 미국의 바다, 중국의 속도
- 한국은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현재 편)
각주
1. 이재명 대통령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 방문, 2025년 8월 26일
2. 한화오션·한화시스템 필리조선소 인수, 2024년 12월, 약 1억 달러 규모 (지분 한화시스템 60% · 한화오션 40%)
3. 조총 전래, 1543년 (다네가시마 표착)
4. 하멜 일행 제주 표착, 1653년 8월 (스페르베르호) / 박연(벨테브레) 화포 제작 관련 및 북벌론 맥락 종합
5. 한국 조선업계의 미 해군 함정 MRO·건조 협력 확대 관련 보도 종합
6. 필리조선소 건조 능력 확대 계획(추가 투자 발표), 2025년 8월 한미 정상회담 계기
7. 손자, 『손자병법』 허실편(虛實篇)
8. 헤겔, 『역사철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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