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가 범선을 이겼다

19세기 대서양을 항해하며 검은 연기를 뿜는 초기 증기선과 뒤처진 돛을 편 범선의 모습을 담은 역사 판화
19세기 대서양 위, 바람의 범선 시대에서 석탄과 증기선 시대로 넘어가는 해운 패러다임의 전환기 모습.

증기가 범선을 이겼다

산업혁명과 해운 패러다임의 전환

2026.09.03 · 바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유엔 산하 기구로, 전 세계 배들이 지켜야 할 공통 규칙을 정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배들은 값싼 벙커유를 마음껏 태워도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그런데 2025년 4월, IMO는 이 관행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 배가 내뿜는 온실가스에 상한선을 두고, 그 상한을 넘기면 비용을 물리는 — 업종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의 탄소 가격 제도였다. 그런데 그해 10월 런던의 임시총회에서, 이 틀을 최종 확정하려던 표결 자체가 57표 대 49표로 1년 미뤄졌다.10 그 유예된 1년이 이제 거의 다 지났다. 재논의는 2026년 10월, 이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한 달여 뒤로 예정되어 있다.

바람에서 석탄으로, 이번에는 석탄에서 다시 무엇으로. 바다를 움직이는 연료가 또 한 번 바뀌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전환 앞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뒤처지는지는, 사실 이미 한 번 벌어진 일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잉글랜드가 함대가 아니라 항해법이라는 규칙으로 네덜란드의 해상 패권을 무너뜨린 과정을 살펴보았다(《법이 함대를 이겼다》, 항해법과 영국 해운 패권). 규칙을 먼저 바꾼 쪽이 다음 시대를 가져간다는 것. 그런데 잉글랜드, 이후 영국은 그 규칙의 승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 세기 반 뒤, 이번에는 바다를 움직이는 힘 그 자체를 바꿔버렸다.

1838년 4월, 바람 없이 바다를 건넌 두 척의 배

1838년 4월, 영국의 두 증기선이 대서양을 건너는 경쟁을 벌였다.1 그때까지 증기선은 강이나 짧은 연안 항로에서만 쓰였을 뿐, 대서양을 순수하게 증기 힘만으로 완주한 배는 아직 없었다. 이 경쟁에 뛰어든 두 척이 그레이트 웨스턴호와 시리우스호였다. 그레이트 웨스턴호는 훗날 철도왕으로도 이름을 남기는 기술자 브루넬이 설계한 배로, 잉글랜드 남서부 브리스틀 항에서 출항했다. 시리우스호는 원래 대서양 횡단용으로 만들어진 배가 아니라, 경쟁사가 자사의 배가 완공되기 전에 승부를 서두르려고 급히 빌려 온 소형 연안 여객선이었다. 출항지도 브리스틀이 아닌 아일랜드 코크였다.

시리우스호는 나흘 먼저 바다에 올랐다. 그러나 원래 장거리용으로 설계되지 않은 배였던 탓에, 항해 막바지에는 실어 온 석탄이 바닥나 갑판의 의자와 목재 집기까지 뜯어 보일러에 던져 넣어야 했다. 그렇게 겨우 4월 22일 뉴욕에 닿았다. 반면 처음부터 대서양 완주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그레이트 웨스턴호는 석탄을 넉넉히 싣고도 그보다 하루 늦은 4월 23일 도착했을 뿐이었다. 승부만 보면 시리우스호가 이겼지만, 배의 실력을 보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 항해로 사람들은 두 가지를 함께 확인했다. 순수하게 증기의 힘만으로 대서양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항해를 감당하려면 배 자체가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증명과 지배는 다른 문제였다. 초기 증기선은 석탄과 물을 실을 공간이 화물칸을 잠식했다. 항해 거리가 길어질수록 석탄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만큼 실을 수 있는 화물은 줄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장거리 항로에서는 여전히 범선이, 특히 희망봉을 돌아가는 쾌속 범선(클리퍼)이 우위를 지켰다.

이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은 두 가지 사건의 결합이었다. 1865년 리버풀의 선주 알프레드 홀트가 복합기관(compound engine)을 상선에 실용화하며 석탄 소비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고,3 1869년 11월 17일에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었다.2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빠른 쾌속 범선으로 꼽히는 커티 삭호가 진수된 해 역시 바로 그해였다. 범선의 기술이 정점에 오른 순간, 바람이 필요 없는 지름길과 그 길을 달릴 기관이 동시에 완성된 셈이다. 홍해와 지중해의 불안정한 바람 조건 탓에 범선은 이 새 항로를 사실상 쓸 수 없었던 반면, 연료 효율이 개선된 증기선에게는 희망봉을 도는 것보다 수천 킬로미터 짧은 지름길이었다. 1880년대에 이르러 세계 상선 톤수는 마침내 증기선이 범선을 앞질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환에서 영국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커졌다는 점이다. 항해법으로 규칙을 쥐었던 나라가, 이번에는 석탄과 제철과 기계공업이라는 산업혁명의 본산이기도 했다. 규칙이 바뀔 때마다 유리한 쪽에 서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나라가 이미 다음 규칙을 만들 재료를 쥐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같은 기술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곳도 있다. 그 대비는 세 나라를 거치며 완성된다.

1853년 7월 8일,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증기선 2척을 포함한 4척의 함대를 이끌고 일본 우라가 앞바다에 나타났다.6 검은 연기를 뿜으며 바람 없이도 움직이는 철제 함선 앞에서 에도 막부는 결국 이듬해 가나가와 조약을 맺고 200년 넘은 쇄국을 풀었다. 기술이 처음 증명된 자리였다.

그로부터 22년 뒤,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밟은 일본은 스스로 증기 포함을 몰고 조선의 강화도와 영종도를 습격했다. 1875년 9월의 운요호 사건이다.9 이 배는 원래 1868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건조된 배였다. 영국이 낳은 기술을 일본이 흡수해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이듬해 1876년 2월 27일, 조선은 강화도 조약에 서명했다.

일본이 이 힘을 흡수하는 동안, 조선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1866년 8월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일어났고, 그해 9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했다(병인양요).7 1871년 6월에는 미군 함대가 다시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랐다(신미양요).8 그 충격 앞에서 조선은 문을 여는 대신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을 더 강화했다. 영국이 만들고 일본이 흡수한 기술을, 조선은 끝까지 거부로 맞았다.

주역과 마키아벨리, 변화 앞의 두 처방

窮則變,變則通,通則久。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주역』 계사전에 실린 이 구절은 변화를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다한 것이 스스로를 갱신하는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본다.4 범선의 시대가 기술적으로 다다른 지점에서 증기라는 변화가 나타났고, 변화를 받아들인 쪽만이 다음 시대로 통했다.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가 다른 결로 같은 문제를 다뤘다. 그는 『군주론』에서 인간사의 절반은 포르투나(운, 시대의 흐름)가 결정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인간의 비르투(역량)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5 주역이 변화를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읽는다면, 마키아벨리는 그 순환을 알아채고 먼저 올라타는 인위적 결단을 강조한 셈이다. 시대가 강물처럼 흐름을 바꿀 때, 둑을 미리 쌓아둔 자만이 그 물살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이 항해법 이후 증기기관까지 연달아 거머쥔 것은 운이 두 번 겹친 결과라기보다, 다음 흐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읽힐 수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는 조심스럽게 말할 이유가 없다. 패권은 전투에서 결정되기 전에, 이미 다음 규칙과 다음 동력을 먼저 손에 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항해법이 그것을 증명했고, 증기기관이 그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문을 연 자와 문을 닫은 자

이 이야기 안에는 세 종류의 나라가 있었다. 규칙과 동력을 스스로 만든 나라, 강제로 당하고 나서 그 힘을 배워 다음 상대에게 되돌려준 나라, 그리고 문을 걸어 잠근 채 그대로 있던 나라다. 영국은 첫 번째였고, 일본은 두 번째였고, 조선은 세 번째였다. 세 나라가 마주한 것은 같은 증기기관이었지만, 그 앞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이후 백 년의 운명을 갈랐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IMO 넷제로 프레임워크 공방도 같은 구조로 읽을 수 있다. 세계 상선 톤수의 97퍼센트를 대표하는 회원국 다수가 이미 새로운 연료 기준과 가격 체계(저탄소 연료로 갈아타지 않으면 비용을 더 무는 구조)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10 반대편에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 선단에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들이 있다. 200년 전 범선업자들이 석탄과 증기 앞에서 느꼈을 감정과, 지금 저탄소 연료 규제 앞에서 일부 해운 강국이 느끼는 감정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다만 한 달여 뒤인 2026년 10월 표결의 실제 결과와, 그것이 어느 나라의 조선업·해운업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직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수준일 뿐 확정된 결론은 아니다. 1838년의 두 증기선도, 통과 직후에는 그것이 시대를 가를 사건인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다음 파도는 누구의 것인가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었다. 그러나 석탄을 태우는 법을 먼저 익힌 나라와, 문을 걸어 잠근 나라의 운명은 같지 않았다. 지금 바다는 다시 연료를 바꾸는 중이다. 이번에는 누가 그 물살에 먼저 올라탈 것인가 — 그리고 누가 문을 닫은 채로 다음 백 년을 맞이할 것인가. 한국 조선업이 이 질문 앞에서 백 년 가까이 무엇을 쥐어왔고 무엇을 놓쳐왔는지는, 이미 한국 조선해양 시리즈가 11편에 걸쳐 답해두었다(《바다로 읽는 한국》, 조선해양 100년의 패턴과 다음 항로).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답을 아직 알지 못한 채, 다만 묻는 자리에 서 있다.


* 참고할 말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 전도서 3:1


각주

  1. SS 그레이트 웨스턴호와 SS 시리우스호, 1838년 4월 대서양 완전 증기 횡단 경쟁. 시리우스호 4월 22일, 그레이트 웨스턴호 4월 23일 뉴욕 도착
  2. 수에즈 운하, 1869년 11월 17일 개통
  3. 알프레드 홀트, 복합기관(compound engine) 상선 실용화, 1865년(아가멤논호 등)
  4.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 下) —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5.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1532) 제25장 —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ù)
  6. 매튜 페리 제독, 흑선 내항, 1853년 7월 8일 우라가 도착 / 미일화친조약(가나가와 조약), 1854년 체결
  7. 제너럴셔먼호 사건, 1866년 8월 대동강 / 병인양요, 1866년 9월 프랑스 함대 강화도 침범
  8. 신미양요, 1871년 6월 미군 함대 강화해협 침공
  9. 운요호 사건, 1875년 9월 강화도·영종도 습격. 운요호는 1868년 스코틀랜드 애버딘 건조 / 강화도 조약, 1876년 2월 27일 체결
  10. IMO 넷제로 프레임워크(Net-Zero Framework),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3차 회의 2025년 4월 원칙 승인. 2025년 10월 임시총회(MEPC/ES.2)에서 최종 채택 표결이 57 대 49(21 기권)로 1년 연기. 재논의는 2026년 10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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