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틀린 방향으로 간 자가 대륙을 얻었다

대서양을 항해하는 대항해시대 스페인 범선과 노을빛 바다
1492년, 스페인 왕실의 승인을 받고 대서양으로 향했던 대항해시대의 범선.

[스페인] 틀린 방향으로 간 자가 대륙을 얻었다

콜럼버스의 계산 착오와 스페인 제국의 탄생

바다 · 대항해시대 시리즈 4편


실패가 발명이 된 순간들

포스트잇은 실패한 접착제에서 나왔다. 비아그라는 협심증 치료제 임상에서 실패한 부작용으로 발견됐다. 페니실린은 배양 접시를 씻지 않고 며칠 방치한 실수에서 시작됐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하나의 클리셰가 됐다 — “위대한 발명은 실수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클리셰가 감추는 것이 하나 있다. 실수가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그 실수를 밀어붙일 만한 권력과 자본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수 자체는 흔하다. 실수를 제국으로 바꾼 사례는 흔하지 않다.

1492년, 한 이탈리아 뱃사람이 스페인 왕실의 돈으로 대서양을 건넜다. 그는 인도로 가는 지름길을 찾았다고 믿었다. 그는 틀렸다. 그런데 그 틀림이 한 제국을 만들었다.

콜럼버스, 인도를 찾다 아메리카를 얻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계산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그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잡았고, 아시아 대륙이 실제보다 훨씬 동쪽까지 뻗어 있다고 믿었다. 두 개의 오류가 겹치자 결론은 하나였다 — 유럽에서 서쪽으로 배를 몰면 며칠 안에 일본과 중국에 닿을 수 있다는 것.

이 계산을 처음 들고 간 곳은 포르투갈이었다. 1484년경, 포르투갈 왕 주앙 2세의 항해 전문가 위원회는 콜럼버스의 제안을 검토한 뒤 거절했다(앞선 편에서 다룬 항로 개척의 나라, 그 전문성이 여기서 되돌아온다). 이유는 단순했다 — 그들의 계산이 콜럼버스의 것보다 정확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이미 실제 지구 둘레에 가까운 값을 알고 있었고, 그 값대로라면 서쪽 항로는 배가 버틸 수 없을 만큼 멀었다.

거절당한 콜럼버스는 스페인으로 갔다. 그런데 스페인 왕실이 그를 받아들인 데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절박함이 있었다. 1492년 1월, 그라나다가 함락되며 약 780년에 걸친 레콩키스타(이슬람 세력에게 넘어갔던 이베리아반도를 기독교 왕국들이 되찾아온 재정복 전쟁)가 끝났지만, 왕실 재정은 오랜 전쟁으로 이미 바닥나 있었다. 게다가 포르투갈은 이미 아프리카 서안 항로와 향신료 무역로를 선점한 상태였다. 앞선 글에서 다룬 엔히크 왕자바스쿠 다 가마의 성과가, 스페인에게는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와 있었던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포르투갈을 우회할 새로운 항로가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라나다 함락 직후인 1492년 4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산타페 협약에 서명하며 콜럼버스의 항해를 승인했다. 틀린 계산이라도 밀어붙일 이유가, 스페인 왕실에게는 이미 있었던 것이다. 1492년 8월 3일, 세 척의 배가 팔로스 항을 떠났다. 그리고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는 육지를 발견했다.

그는 그곳을 인도라고 불렀다. 원주민을 “인디오”라 불렀다. 그는 죽는 날까지 —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 자신이 아시아의 변두리에 닿았다고 믿었다. 그가 실제로 발견한 것은 유럽인 누구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대륙이었다.

포르투갈의 계산은 옳았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틀린 계산이 우연히 다다른 자리에, 유럽인이 전혀 모르던 대륙이 놓여 있었다. 정확함이 항해를 막았고, 오류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젖혔다.

계산이 아니라 운이 만든 자리

콜럼버스의 오류는 그 자체로 재앙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그가 계산한 거리대로만 항해했다면, 육지가 없는 대양 한가운데서 선원들과 함께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배제하기 어렵다. 그가 살아남고 심지어 성공한 것은, 그의 계산이 예측하지 못한 자리에 아메리카 대륙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禍兮福之所倚,福兮禍之所伏。(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화는 복이 기대어 있는 자리요, 복은 화가 숨어 있는 자리다.”
— 노자, 『도덕경』 58장

노자는 화와 복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안에 이미 숨어 있다고 보았다. 화가 될 뻔한 오류가,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복으로 뒤바뀐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종류의 우연을 포르투나(fortuna)라고 불렀다. 그는 『군주론』에서, 인간의 행위 가운데 절반은 포르투나가 지배하고 나머지 절반만이 인간의 역량, 즉 비르투(virtù)에 달려 있다고 썼다. 콜럼버스에게 포르투나는 대륙의 자리였지만, 비르투는 따로 있었다 — 포르투갈에서 거절당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스페인 왕실을 설득해낸 그 고집과 정치적 수완이다. 포르투나가 문을 열어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이 열렸을 때 배를 띄울 자본과 왕실의 승인을 이미 갖추고 있던 자만이, 그 문을 실제로 통과할 수 있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류가 제도를 만나는 자리

포르투갈의 계산이 정확했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기억되는 것은 콜럼버스의 틀린 계산과 그 결과뿐이다. 역사는 옳았던 계산이 아니라, 뒷받침을 받은 오류를 더 오래 기록하는 쪽으로 읽힐 수 있다.

이 패턴은 대항해시대에만 갇혀 있지 않다. 오늘날에도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가장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자본과 제도의 뒷받침을 받은 예측인 경우가 많다. 정확했지만 자금을 구하지 못한 계획은 역사에 남지 않는다. 틀렸더라도 왕실의 도장을 받은 계획은, 대륙 하나를 자기 이름으로 남길 수 있다.

콜럼버스와 포르투갈 위원회 사이에 있었던 것은 지식의 격차가 아니었다. 승인의 격차였다. 포르투갈의 전문가들은 옳은 계산을 가지고도 거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스페인 왕실은 틀린 계산을 가지고도 승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계산은 각자 달랐지만, 결정은 계산이 아니라 필요에서 나왔다.

헤겔이라면 이 장면을 “이성의 간계”라 불렀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좁은 목적 — 인도로 가는 지름길, 그리고 그로 인한 부와 명예 — 만을 좇았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대륙을 열고 있다는 것도, 그 대륙이 이후 수 세기 동안 세계 질서를 뒤흔들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죽었다. 그의 좁은 의도 너머에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조용히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오류를 여전히 밀어붙이고 있는가

콜럼버스의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성실함이나 정확함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 틀린 사람이 뒷받침을 받아 밀어붙였고, 옳은 사람은 뒷받침을 받지 못해 멈췄다.

이 불편함을 그대로 안고 가는 편이 낫다. 성공한 오류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유혹, 혹은 실패한 정확함을 냉소하려는 유혹 모두를 피해야 한다. 콜럼버스가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밀어붙일 수 있는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에서 대륙 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콜럼버스가 돌아온 뒤 교황이 세계를 둘로 나눈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살펴보았다. 그 조약의 출발점에는 이 오류, 이 우연, 이 승인이 있었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 오늘 우리가 정확하다고 믿는 계산과, 오늘 누군가가 밀어붙이고 있는 오류 가운데, 어느 쪽이 다음 세기의 지도를 그리게 될 것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이 지점에서 다시 묻는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패턴이 되어 다시 온다.

* 참고할 말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 잠언 16:9


1. 콜럼버스는 지구 둘레를 실제보다 약 25% 작게 계산했고,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 실제보다 훨씬 더 동쪽까지 뻗어 있다고 보았다. 이 이중 오류가 “서쪽 항로가 짧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2. 포르투갈 주앙 2세의 항해 전문가 위원회는 1484년경 콜럼버스의 제안을 검토했으나, 자체적으로 산출한 지구 둘레 값이 더 정확하다는 판단하에 거절했다.
3. 산타페 협약은 1492년 4월 17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콜럼버스와 체결한 문서로, 항해 승인과 함께 신대륙에 대한 총독직·수익 배분을 사전 약정했다.
4. 콜럼버스 함대는 1492년 8월 3일 스페인 팔로스 항을 출항했고, 같은 해 10월 12일 현재의 바하마 제도로 추정되는 곳에 도달했다.
5. 마키아벨리는 『군주론』(1532년 출간) 제25장에서 포르투나(운, 우연)와 비르투(역량, 의지)의 관계를 다루며, 인간사의 절반가량은 운에 좌우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인간의 대비와 결단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6. 노자, 『도덕경』 58장. 화와 복이 서로의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상보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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