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신대륙의 금은 누구의 것인가

멕시코시티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아스텍 제국의 거대 신전 '템플로 마요르' 유적지의 새벽 전경. 뒤편으로 현대적인 도시 스카이라인과 화산이 보입니다.
멕시코시티 역사 지구 중심부에 보존된 아스텍 제국의 성지,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 유적지. 고대 피라미드 기단과 현대 도시 스카이라인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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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신대륙의 금은 누구의 것인가

아스텍 멸망과 수탈의 구조

2026.08.20 · 바다 · 대항해시대 시리즈 5편


금맥이 있는 땅은 누구의 것인가

최근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국경이 맞닿은 지역은 “리튬 삼각지대”라 불린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이 이 지역 지하에 매장돼 있고, 그 결과 강대국들의 자본과 외교력이 이 메마른 소금 사막으로 몰려들고 있다.

정작 그 땅에 오래 살아온 원주민 공동체는 채굴 이익 배분에서 종종 소외된다는 지적(국제 원주민 권리 보고서가 반복해서 제기하는 문제)이 뒤따른다.

땅 밑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가, 그 땅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구도가 처음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500년 전, 지금의 멕시코 중부였다.

테노치티틀란이 무너진 여름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카리브해에 첫발을 디딘 지 27년이 지난 뒤였다. 그 사이 스페인은 대륙 안쪽으로 곧장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카리브해의 섬들을 하나씩 장악하며 거점을 넓혀갔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511년 쿠바를 정복해 총독이 됐고, 1513년 9월에는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가 파나마 지협을 건너 유럽인 최초로 태평양을 목격했다.1 코르테스의 원정 역시 이 벨라스케스 총독의 승인 아래 쿠바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1519년 2월, 에르난 코르테스는 쿠바에서 약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지금의 멕시코 해안에 상륙했다. 그가 마주한 것은 유럽인이 그때까지 본 어떤 도시보다 크고 정교한 문명이었다 — 아스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인구 20만 명 이상이 거주하며, 수로와 인공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2

코르테스는 1519년 11월, 아스텍 황제 몬테수마 2세의 초대를 받아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했다. 그런데 그는 초대받은 손님으로 남지 않았다. 몬테수마를 인질로 잡고 도시를 사실상 장악하려 했다.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1520년 6월 30일, 스페인군에 대한 원주민의 봉기가 일어났고 — 스페인 측이 “슬픈 밤(라 노체 트리스테)”이라 부르는 이 밤에 코르테스의 병력 상당수가 도시를 탈출하다 목숨을 잃었다.3 몬테수마 역시 이 혼란 속에서 사망했다.

코르테스는 후퇴한 것이 아니라 재정비했다. 1521년 5월, 그는 아스텍의 지배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온 틀락스칼라 등 인근 부족들을 동맹으로 규합해 테노치티틀란을 포위했다.

여기에 군사적 포위망보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의 대유행이었다. 원주민에게 면역이 전무했던 이 질병은 포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아스텍 인구를 크게 무너뜨려 놓은 상태였다. 1521년 8월 13일, 마지막 황제 콰우테목이 항복하며 아스텍 제국은 무너졌다.4

그리고 곧바로 새로운 질서가 들어섰다. 스페인은 “엔코미엔다” 제도를 통해 원주민의 노동력과 토지를 정복자에게 위탁했으며, 채굴된 금과 은은 왕실 몫으로 본국에 송출되기 시작했다. 정복은 전투로 끝나지 않았다. 정복은 채굴로 완성됐다.

힘이 곧 권리가 되는 순간

스페인이 이 정복을 정당화한 방식은 흥미롭다. 신대륙 원정대는 원주민 마을에 도착하면 “레케리미엔토”라는 문서를 스페인어로 낭독했다 — 교황이 세계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나눠주었으니 항복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라는 내용이었다. 원주민이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낭독이라는 형식 그 자체가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작동했을 뿐이다.

力多則人朝己,力寡則朝於人。 (역다즉인조기, 역과즉조어인.)

“힘이 많으면 남이 나에게 와서 신하로 섬기고, 힘이 적으면 내가 남을 섬기게 된다.”

— 韓非子, 「顯學」5

한비자에게 예(禮)와 명분은 힘의 결과이지, 힘의 원인이 아니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1651년)에서 국가 이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그리며 이렇게 썼다.

“Force, and Fraud, are in war the two cardinal virtues.”

“힘과 기만이야말로 전쟁 상태에서의 두 가지 핵심 덕목이다.”

— 홉스, 『리바이어던』 13장6

다만 두 사상가가 전제한 조건은 달랐다. 한비자는 이미 성립된 국가 내부에서 군주가 힘을 어떻게 관료화하는지를 다뤘고, 홉스는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 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무법 상태를 다뤘다. 레케리미엔토는 이 두 조건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태어난 장치로 읽힐 수 있다 — 국가 간에는 홉스적 무법 상태가 작용하는 한편, 그 군사력은 스페인 왕실 내부의 한비자적 관료 형식(문서, 낭독, 승인 절차)을 거쳐 합법적 소유권의 탈을 쓰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복은 왜 늘 문서로 정당화되는가

엔코미엔다 제도의 핵심은 단순했다. 스페인 왕실은 정복자들에게 원주민 마을을 “위탁”했고, 정복자는 그 대가로 원주민을 기독교화할 의무를 진다는 형식을 취했다. 실제로 오간 것은 개종이 아니라 노동력과 광물이었다. 은광과 금광에 원주민이 강제로 동원됐고, 채굴량은 왕실 몫인 “킨토 레알”(수확의 5분의 1)로 본국에 송출됐다.

레케리미엔토도, 엔코미엔다도 형식은 법이었다. 그러나 그 법이 보호한 것은 원주민의 권리가 아니라 정복자의 소유권이었다. 법이 힘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자가 법의 형식을 통해 자신의 소유를 확정한다. 오늘날 자원 매장지를 둘러싼 국제 계약이나 채굴권 협상, 현지 정부와의 이익 배분 조항 역시 이 오랜 패턴에서 온전히 자유롭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름을 붙이는 자와 이름이 붙여지는 자

아스텍은 스스로를 “메시카”라 불렀다. “아스텍”이라는 이름조차 후대 유럽 학자들이 붙인 것이다. 정복은 땅과 금만을 빼앗지 않았다 — 그것을 부르는 이름까지 정복자의 언어로 다시 쓰였다.

테노치티틀란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멕시코시티가 서 있다. 그 도시의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는 지금도 아스텍 신전의 유적이 발견된다. 땅은 이름을 바꿔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도시는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콜럼버스가 틀린 계산으로 대륙을 얻은 순간을 살펴보았다. 그 우연한 발견이 30년도 지나지 않아 한 문명 전체의 소멸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연과 정복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 리튬 삼각지대의 계약서에 서명하는 손은, 레케리미엔토를 낭독하던 손과 얼마나 다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승자의 이름으로 쓰인 역사 뒤편에서, 이름을 빼앗긴 자들의 자리를 계속 되짚는다.


참고할 말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디모데전서 6:10


1.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는 1513년 9월 파나마 지협을 건너 유럽인 최초로 태평양(당시 “남쪽 바다”)을 목격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511년 쿠바 정복을 완료하고 초대 총독이 됐다.

2. 코르테스 원정과 테노치티틀란 함락의 세부 경과는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 『뉴스페인 정복사』(16세기 저술, 현대 번역판 다수 유통)에 기반한다.

3. 라 노체 트리스테(슬픈 밤)는 1520년 6월 30일 스페인군이 테노치티틀란에서 원주민 봉기를 피해 탈출을 시도한 사건을 가리킨다.

4. 테노치티틀란은 1521년 8월 13일 콰우테목의 항복으로 함락됐으며, 이는 아스텍 제국의 공식적 종말로 기록된다.

5. 韓非子, 「顯學」편. 힘(勢)과 예(禮)의 관계를 다룬 법가 사상의 핵심 구절 중 하나다.

6. 홉스, 『리바이어던』(1651년) 13장.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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