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헨조다로, 침묵이 진짜 주인공이었다

인더스 문명의 대형 공동 목욕 시설(Great Bath) 앞에 홀로 선 인디고 옷의 인물과 황혼녘 모헨조다로 도시 전경
황혼이 내리는 모헨조다로의 대형 공동 목욕 시설(Great Bath). 침묵 속에 잠긴 도시의 격자형 도로망과 거대한 벽돌 구조가 기원전 인더스 문명의 정교함을 증언한다.

모헨조다로, 침묵이 진짜 주인공이었다

세계사-시네마 ②

2026.09.13 · 세계사 · 사회·문화


자막 한 줄이 먼저 자백하는 영화

아슈토시 고와리케르의 《모헨조다로》(2016)는 본편이 시작되기 전, 화면에 이런 문장을 띄운다 — 이것은 창작된 재구성이라고. 흔치 않은 이 자기 고백은 안전장치라기보다, 역사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공백을 서사가 대신 떠맡았다는 무의식적 시인에 가깝다.

실제로 모헨조다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이 영화가 채워 넣은 이야기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악당 정치인도, 사제의 딸도, 인디고 농부 사르만의 영웅담도 — 이 도시의 폐허 어디에도 이름으로 남아 있지 않다. 3천 년 넘게 침묵하던 도시에, 할리우드가 아니라 발리우드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입혔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트로이 전쟁의 표면적 명분 뒤에 숨은 해협의 실리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반대로, 아무 실리도 명분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침묵해버린 문명을 마주한다.

궁전 없는 도시, 왕이 없는 유적

모헨조다로는 기원전 2600년경 인더스 문명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조성된 계획도시다.1 같은 시기, 나일강 유역에서는 파라오 쿠푸의 명으로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있었다 — 그 통치자의 이름과 치세 연대는 오늘날까지 정확히 전해진다.2 격자형 도로망, 정교한 배수 시설, 대형 공동 목욕 시설(Great Bath)이 놀라운 수준의 도시 계획을 증언한다. 하지만 정작 고고학자들이 오랫동안 곤혹스러워한 대목은 따로 있다 — 이만한 규모의 도시에서 왕궁으로 단정할 만한 건축물도, 대형 신전도, 군사 지배자의 흔적도 뚜렷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 빈자리에 폭압적인 사제-정치 권력 구조와 악당을 세워 넣었지만, 실제 유적은 오히려 그 반대의 가능성, 즉 상대적으로 분산된 통치 구조였을 가능성으로 더 자주 논의된다.

이 문명을 더 근본적으로 낯설게 만드는 것은 문자다. 인더스 문자는 인장과 토기 등에 수천 점 남아 있지만, 100년 넘는 연구에도 오늘날까지 해독되지 않았다.3 문명은 분명 기록을 남겼다 — 다만 그 기록이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 뿐이다.

쇠퇴의 경로 역시 단정하기 어렵다. 기원전 1900년경부터 가가르-학라(옛 사라스와티강으로 추정되는) 강줄기가 마르기 시작했고, 계절풍 약화에 따른 기후 변화가 겹치며 도시들은 기원전 1800년경을 전후해 서서히 버려진 것으로 읽힌다.4 외적의 침입으로 하루아침에 멸망했다는 20세기 초의 가설은, 이후 발견된 유골들이 전쟁이 아니라 뒤늦은 매장의 흔적이라는 재해석 앞에서 힘을 잃었다. 급작스러운 파국이 아니라 물이 마르듯 서서히 흩어진 문명 — 영화 속 화려한 최후의 전투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다.

이름 없는 것과 기록 없는 것 사이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냉정한 선을 하나 그었다. 문자와 국가 기록을 갖추지 못한 민족은 “역사 이전”에 머무르며, 역사는 오직 기록된 것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자는 존재하나 그 문자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모헨조다로가 온전한 역사인지, 아니면 역사 이전의 침묵인지 —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노자는 이 침묵을 정반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를 도라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참된 도가 아니요, 이름을 이름 지을 수 있으면 그것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 《도덕경》 1장

헤겔에게 이름 없음은 역사 밖으로의 추방이지만, 노자에게 이름 붙지 않은 것은 오히려 만물의 근원에 더 가깝다. 하나는 침묵을 결핍으로 읽고, 다른 하나는 침묵을 근원으로 읽는다 — 그리고 대중의 서사는 언제나 그 사이, 침묵을 견디지 못한 채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되곤 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감독의 위치도 함께 짚어야 한다. 인도 국적의 고와리케르는 3년간 고고학자들과 함께 자료를 조사했다고 밝혔지만, 완성된 결과물은 결국 사랑 이야기와 영웅 서사라는 발리우드의 익숙한 문법으로 수렴했다.5 문명의 실체가 텅 비어 있던 자리에, 그는 자신이 속한 대중영화 산업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채워 넣은 것이다. 감독 개인이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를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침묵하는 유적에 어떤 이야기를 얹을지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서 있는 현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빈 페이지는 누구의 손으로 채워지는가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역사가 되지 못하고, 오직 발명된 것만이 이야기가 된다 — 이것이 모헨조다로라는 스크린이 의도치 않게 증명하는 패턴이다. 이 문명은 왕의 이름도, 종교의 교리도, 전쟁의 연대기도 남기지 않았다. 그 백지 위에 영화는 악당과 로맨스와 봉기를 그려 넣었다. 비어 있는 기록은 결코 비어 있는 채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자리를 채우고, 그 채움에는 언제나 채우는 사람의 시대가 묻어 들어간다.

이것은 모헨조다로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후대는 읽을 수 없는 사료나 확정되지 않은 과거를 마주할 때마다, 그 공백을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쓴다. 그리고 그렇게 쓰인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마치 원래 그러했던 사실처럼 굳어버린다. 헤겔의 기준에서 역사 밖에 놓였던 이 도시는, 그렇게 21세기 스크린 위에서 뒤늦게 ‘역사’를 갖게 되었다 — 다만 그것은 모헨조다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필요로 했던 시대의 역사였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목욕 시설 계단에 남은 마모의 흔적, 배수구 속에 굳은 침전물 — 그것들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철저한 침묵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무엇이 다르게 보일까. 아마도 영웅의 사랑이나 악당의 몰락이 아니라, 스크린이 그토록 쉽게 채워 넣은 그 빈자리, 실제로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그 침묵의 크기일 것이다.

우리는 기록되지 않은 공백을 마주할 때마다, 그 침묵을 있는 그대로 견디는 대신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의 욕망과 서사를 대신 채워 넣고 있는가.


* 참고할 말씀: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 잠언 25:2


1) 모헨조다로는 기원전 2600년경 인더스 문명 절정기에 조성된 계획도시로, 격자형 도로와 대형 공동 목욕 시설(Great Bath) 등 정교한 도시 계획이 확인됨
2)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560년경 파라오 쿠푸의 명으로 건설되었으며, 통치자의 이름과 치세 연대가 오늘날까지 명확히 전해지는 동시대 문명의 대조 사례
3) 인더스 문자는 인장·토기 등에 다수 남아 있으나 100년 넘는 연구에도 학계의 폭넓은 동의를 얻는 해독안이 없음
4) 기원전 1900년경부터 가가르-학라(옛 사라스와티강 추정) 강줄기 건천화와 계절풍 약화 등 기후 변화가 진행되었고, 기원전 1800년경을 전후해 주요 도시들이 점진적으로 방기된 것으로 추정됨. 20세기 초 제기된 외적 침입설은 이후 유골 재해석을 통해 설득력을 잃음
5) 영화 《모헨조다로》(2016, 아슈토시 고와리케르 감독)는 3년간의 고고학 자문을 거쳤으나 완성된 서사는 창작된 인물(농부 사르만, 사제의 딸, 정치인 악당)로 구성되었으며, 영화 도입부에 “창작적 재구성”이라는 취지의 디스클레이머를 명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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