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가라앉는 도시, 천 년의 질문이 돌아왔다
베니스 공화국 소시리즈 ⑨ 최종회 · 역사는 같은 도시에서 어떤 질문을 반복하는가
2026년 10월 6일 · 바다 · Watchman
78개의 문이 일어서는 날
2020년 10월 3일, 베니스 석호 입구에서 바다 밑에 누워 있던 거대한 철제 방벽들이 처음으로 실전 가동되었다. 모세(MOSE) 방벽이다. 석호의 세 입구, 리도·말라모코·키오자에 나뉘어 설치된 78개의 가동식 수문이 압축 공기로 몸을 일으켜 아드리아해의 밀물을 막아선다. 이 도시는 1,500년 가까이 물과 싸운 끝에, 마침내 바다에 문을 달았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낯선 구석이 있다. 베니스는 한때 바다를 지배한 도시였다. 지중해 항로를 쥐고, 하루에 군함 한 척을 찍어 내던 나라였다. 그 나라의 후손은 이제 바다를 이기려 하지 않고, 바다가 들어오는 날짜를 계산한다.
2019년 11월 12일에는 조위가 187센티미터까지 올랐다. 1966년 11월 4일의 194센티미터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성 마르코 대성당의 지하 납골당까지 물이 들어찼다. 도시는 이 물을 아쿠아 알타(acqua alta, 높은 물)라고 부른다.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그 물이 이미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늪에서 시작했다. 이제 같은 늪에서 끝낼 차례다.
제방을 쌓던 공화국, 제방을 잃은 도시
앞선 글에서 우리는 1797년 마지막 도제 루도비코 마닌이 총 한 발 없이 천 년 공화국을 내려놓는 장면을 살펴보았다. 그 뒤 베니스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이탈리아 왕국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이 도시를 진짜로 지켜 온 것은 어느 왕도, 어느 군대도 아니었다. 석호라는 지형 자체와, 그 지형을 관리하던 제도였다.
공화국은 일찍부터 물이 곧 국가의 생존 문제임을 알았다.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브렌타, 피아베, 실레 같은 강은 흙과 모래를 실어 나른다. 이 퇴적물이 석호를 메우면 늪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된 늪은 요새이기를 멈춘다. 그래서 공화국은 14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강줄기를 석호 밖으로 돌렸고, 1501년에는 물을 전담하는 관청(사비 알레 아쿠에, Savi alle Acque)을 세웠다. 해군 못지않게 수로 관리 기구를 국가의 핵심 기관으로 두었다는 점이 이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이 구조에는 균형이 있었다. 도시는 물 위에 있었지만 물을 거스르지 않았다. 갈대숲과 개펄, 조수의 드나듦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손을 보았다. 베니스의 건물들이 점토층에 박은 수십만 개의 나무 말뚝 위에 서 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산소가 닿지 않는 물속의 나무는 썩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졌다. 약해 보이는 땅과 물의 성질을 이용한 건축이었다.
20세기에 이 균형이 어긋났다. 본토 마르게라 산업단지 일대에서 지하수를 퍼 올리면서 지반이 내려앉았고, 같은 시기 해수면은 올랐다. 한 세기 동안 도시가 잃은 상대 고도는 약 23센티미터다. 지반 침하가 약 12센티미터(자연 침하 3센티미터, 지하수 개발에 따른 침하 9센티미터)였고, 해수면 상승이 약 11센티미터였다.³ 1966년의 대홍수, 베니스인들이 ‘아쿠아 그란다(Acqua Granda, 큰 물)’라고 부르는 사건은 그 누적이 한꺼번에 청구된 순간이었다.
그 뒤 모세 방벽이 구상되었고, 착공은 2003년이었다. 완공까지 17년이 걸렸고 공사비는 60억 유로 안팎으로 불어났다.⁴ 2014년 6월 4일, 방벽 공사를 둘러싼 뇌물 혐의로 시장 조르조 오르소니를 포함한 35명이 체포되었다.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6월 13일, 이탈리아 정부는 석호의 물을 관할해 온 물관리청(마지스트라토 알레 아쿠에, Magistrato alle Acque)의 폐지를 결정했다.⁵ 이 기관은 공화국이 1501년 수로 전담 관청을 세운 발상을 20세기에 되살려 1907년 다시 세운 곳이었고, 전직 수장 두 명도 뇌물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이 시기의 정치적 책임 공방은 이 글이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다만 물 앞에서 결정이 늦어지고 비용이 불어나는 방식이 천 년 전의 속도와 얼마나 달랐는지는 짚어 둘 만하다. 방벽이 일어서기 전에, 방벽을 감독하던 제도가 먼저 주저앉았다.
물의 이치와 사람의 의지
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強者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이공견강자막지능승。)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으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 데에는 물을 이길 것이 없다.” 『도덕경』 78장¹
노자가 말한 물은 힘으로 이기지 않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막히면 돌아가고, 틈이 있으면 스민다. 시리즈의 첫 편에서 베니스는 이 물의 성질을 닮은 도시로 등장했다. 아무도 원치 않던 늪이 가장 안전한 요새가 된 것은 약함이 강함이 되는 역설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편에서 상황이 뒤집혔다. 물을 닮아 강해졌던 도시가 이제는 물에게 시험당하는 쪽에 서 있다. 노자의 물은 자연의 이치다. 이치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이 도시를 지킬 수 없었다. 이치 위에 사람의 의지가 얹혀야 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25장에서 말한 것이 바로 그 의지다.² 그는 운명(포르투나)을 범람하는 강에 비유했다. 강이 잔잔할 때 사람들은 제방과 둑을 쌓아 두지 않고 방심하다가, 일단 불어나면 속수무책이 된다. 그의 결론은 운명이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대비하지 않은 쪽이 진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베니스와 동시대인이었고, 베니스는 그가 지켜본 가장 정교한 국가 중 하나였다. 역설적이게도 베니스가 쌓은 것은 석호의 제방이었는데, 무너진 것은 제도의 제방이었다.
물의 이치를 닮은 도시가 사람의 의지로 쌓은 제방을 놓쳤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이 도시는 그 질문을 천 년 간격으로 두 번 받은 셈이다.
고치는 속도가 수명이다
이제 시리즈 전체를 다시 읽어 보자. 아홉 편에 걸쳐 베니스는 같은 질문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던졌다.
늪의 약함은 강함이 되었다. 아르세날레의 규격화는 제국을 만들었다. 이익은 신앙을 눌렀다. 완전한 승리는 재기로 이어지지 못했다. 항로 하나가 지리적 축복을 감옥으로 바꾸었다. 배제의 구역은 도시에 ‘게토’라는 이름을 남겼고, 가장 성공한 시스템은 가장 늦게 바뀌었다. 그리고 천 년의 체제는 총 한 발 없이 끝났다.
이 아홉 편을 관통하는 문장은 하나다.
시스템은 환경이 바뀌는 속도보다 느리게 고칠 때 죽는다.
바다를 지배하던 시절의 베니스는 환경이 바뀌면 바꿨다. 아르세날레는 매번 새 배를 만들었고, 공화국의 수로 관청은 매번 강줄기를 돌렸다. 그러나 환경이 바뀐 뒤에도 제도가 그대로일 때, 바다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안쪽 문이 먼저 닫힌다. 대회의 귀족 카르텔이 그랬고, 20세기의 지하수 개발이 그랬고, 17년이 걸린 방벽 공사가 그랬다. 세 경우 모두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았다. 천천히 차올랐고, 그래서 누구도 오늘 고쳐야 할 이유를 갖지 못했다.
모세 방벽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또 하나의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방벽은 일시적으로 물을 막지만, 해수면이 계속 오르면 문을 닫는 횟수가 늘고 석호의 물은 순환하지 못한 채 고일 수 있다. 방벽이 도시를 지키는지, 도시가 방벽에 의존하는 구조가 되는지는 아직 아무도 확답하지 못한다. 이 불확실성이 이 글의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베니스는 가라앉고 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천 년이 넘도록 가라앉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 늪에서 시작한 도시가 늪의 질문으로 돌아오는 것은 쇠퇴의 증거라기보다,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시스템에 대한 질문처럼 읽힌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바다는 있다. 보이는 바다가 아니라, 천천히 차오르는 것들이다. 인구 구조, 산업 구조, 오래된 합의들. 우리는 그 물이 발목에 닿기 전에 제방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발목에 닿은 뒤에야 방벽을 구상하고 있는가.
베니스는 답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질문을 남겼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질문을 받아 적을 뿐이다.
베니스 공화국 소시리즈, 전 9편
늪에서 태어나 늪의 질문으로 돌아오기까지, 아홉 편의 기록이다.
- 늪에서 태어난 도시
- 아르세날레, 하루에 군함 한 척
- 성전을 팔아넘긴 상인들
- 이긴 전쟁, 저무는 제국
- 항로 하나가 지운 부(富)
- 격리된 구역이 만든 말, 게토
- 담합의 도시, 스스로 낡다
- 천년 공화국, 마지막 도제
- 지금도 가라앉는 도시 (이번 편 · 최종회)
* 참고할 말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 마태복음 7:25
¹ 『도덕경』 78장.
²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25장.
³ 침하량: L. Tosi 외, “Evidence of the present relative land stability of Venice, Italy, from land, sea, and space observations”,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2002). 20세기 상대 고도 손실 약 23cm(지반 침하 약 12cm, 해수면 상승 약 11cm).
⁴ 공사비: 보도와 기관에 따라 55억~70억 유로로 집계가 갈린다. 본문의 “60억 유로 안팎”은 Webuild 및 Environment & Society Portal 자료를 따랐다.
⁵ 체포와 폐지 결정: La Nuova Venezia(2014.6.4, 2014.6.14), AGI(2019.11.14). 폐지는 2014년 6월 13일 각료회의에서 결정되었고, 2014년 6월 24일 법률 제90호 제18조로 입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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