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늪에서 태어난 도시
베니스 공화국 시리즈①, 아무도 원치 않던 땅의 첫 선택
2026.09.15 · 바다
강한 함대가 못 들어가는 자리
영토도, 함대도, 자원도 없던 이들이 어떻게 결국 바다의 주인이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정복이 아니라 도망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2026년 여름, 러시아는 자국과 동유럽을 잇는 내해 아조프해에서 스스로 선박 운항을 중단했다.1 세계 2위 해군력을 가진 나라가 자기 앞마당 바다에서 물러난 것이다. 원인은 우크라이나의 무인 수상정, 마구라(MAGURA)였다. 다만 이 드론들의 진짜 무기는 폭탄이 아니다. 이들이 파고드는 것은 대형 함정이 부담스러워하는 얕은 연안, 좁은 수로, 강자의 크기와 화력을 무력화하는 비대칭적 지형이다. 큰 것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
1,500년 전, 유럽 한구석에도 그런 물이 있었다. 그 물 위에 도시 하나가 태어났다. 베니스다. 이 이야기는 앞선 대항해시대 시리즈 마지막 편이 남긴 질문, 즉 베니스는 어떻게 영토 없이 500년을 지배했는가에서 이어진다. 그 답을 찾는 첫걸음은 지배가 아니라 도망이다.
도망친 자들의 도시
452년 7월, 훈족의 아틸라가 이탈리아 북부를 휩쓸었다.2 그의 군대는 아퀼레이아를 석 달간 포위한 끝에 함락시키고, 이어 알티눔을 파괴했다. 로마의 부유한 도시들이 무너지는 사이, 살아남은 사람들은 유일하게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갈대와 진흙, 밀물과 썰물만 반복되는 석호(潟湖)의 작은 섬들이었다. 이때는 대부분 임시 피난이었다. 위기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본토로 돌아갔다.
두 번째 파도는 성격이 달랐다. 568년 5월, 롬바르드족이 왕 알보인의 지휘 아래 이탈리아를 침공했다.3 훈족이 말을 탄 전사들만으로 빠르게 휩쓸고 지나가는 약탈 세력이었다면, 롬바르드족은 처음부터 결이 달랐다. 이들은 가족과 가축, 살림살이까지 통째로 끌고 내려온 이주 집단이었다. 애초에 잠깐 노략질을 하고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돌아갈 본토 자체가 새로운 지배자의 손에 넘어간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이번엔 섬에 눌러앉았다. 도망이 거주로, 임시 피난처가 삶의 터전으로 바뀐 순간이다.
세 번째 사건은 공격이 아니라 실패의 기록이다. 810년, 프랑크 왕국의 피핀이 함대를 이끌고 석호로 들어왔다.4 남쪽 관문 키오자와 당시 수도 말라모코까지는 손쉽게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리알토 앞바다에서 멈췄다. 석호에는 두 가지 물길이 있다. 표시된 깊은 항로, 카날레(canale)와, 밀물 때만 겨우 잠기는 얕은 갯골, 게보(ghebo)다. 프랑크의 큰 배들은 카날레만 보고 들어왔지만 게보는 지도에 없었다. 현지인들은 그 게보를 손바닥처럼 알았고, 프랑크 함선들은 얕은 바닥에 걸려 고립되기 시작했다. 여섯 달에 걸친 공방 끝에 피핀의 군대는 물러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이 사건 이후 도시의 중심은 더 방어하기 쉬운 리알토로 옮겨간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베니스의 시작이다.
세 사건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하나다. 아무도 원하지 않던 땅이, 가장 강력한 군대들이 끝내 넘지 못한 벽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強者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막지능승)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에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5
물은 형태가 없기에 부서지지 않고, 진흙은 깊이를 숨기기에 대군의 발을 묶는다. 베니스를 지킨 것은 성벽이 아니라 바로 그런 물이었다. 아틸라도, 알보인도, 피핀도 각자 시대 최강의 군사력을 가졌지만 그 물 앞에서는 힘을 그대로 쓸 수 없었다. 강한 것이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을, 노자는 2,400년 전에 이미 원리로 정리해 두었다.
서양에서는 홉스가 이 대목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한다.6 그는 공통의 권력이 사라진 자연 상태를, 인간이 서로를 두려워하며 끝없이 싸우는 조건으로 보았다. 그가 내린 처방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이 스스로 계약을 맺고 하나의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석호의 정착민들은 정확히 그 자연 상태에 던져진 사람들이었다. 다만 이들이 택한 길은 조금 달랐다. 위에서 내려오는 절대 권력에 복종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맺는 자치적 결속을 택했다. 훗날 이들이 호민관을 세우고 다시 도제(Doge)를 선출하는 자치 구조로 나아간 것은, 홉스가 말한 바로 그 공포, 즉 무질서 속에서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출발한 계약이었다. 다만 그 계약의 끝에 선 것은 한 명의 군주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한 이웃들이었다.
약함이 스스로 방벽이 될 때
베니스의 역설은 이것이다. 아틸라와 알보인은 애초에 진흙 섬을 쫓아갈 필요를 못 느꼈다. 그들의 목표는 로마의 부유한 도시들이었지, 물고기와 소금밖에 없는 습지가 아니었다. 반면 피핀은 그 땅의 전략적 가치를 뒤늦게 알아보고 정복을 시도했지만, 이번엔 지형 자체가 발목을 잡았다.
정복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곳과, 정복하기 불가능한 곳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베니스는 처음엔 전자였고, 나중엔 후자가 되었다. 그 사이에 있었던 것은 위대한 전략이 아니라, 그저 그 물 위에서 계속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이었다.
비슷한 원리는 한반도에서도 되풀이된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은 애초에 중원의 거대 제국들 틈바구니에서 커 온 약소국에 가까웠다. 그 가운데 고구려가 이 원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순간은 612년 7월, 살수(오늘날의 청천강)에서였다.7 수 양제는 113만 대군을 동원해 침공했고, 그 가운데 평양을 직공하려던 별동대만 30만 5천 명에 달했다. 을지문덕은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거짓 항복과 후퇴를 거듭해 적을 지치게 했고, 별동대가 강을 건너는 순간을 노려 반격했다. 강을 반쯤 건넌 대군은 물 앞에서 대오가 무너졌고, 요동성까지 살아 돌아간 자는 2,700명에 불과했다. 대륙에서 가장 거대했던 군대가, 강 하나를 넘는 그 순간 가장 무력해진 것이다.
지금 흑해에서 마구라가 파고드는 얕은 연안도 같은 원리 위에 있다. 그 물이 특별히 강해서도, 드론이 특별히 강한 무기라서도 아니다. 대형 함대가 물리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지형 그 자체가 무기가 된다. 강자가 크기 때문에 오히려 접근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약자는 가장 오래 버틸 자리를 찾는다.
우리는 늪을 피하는가, 늪에 서는가
이 기록의 이름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다. 가까이서 보면 베니스는 그저 살기 나쁜 습지였다. 멀리서,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그 습지는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였다. 아무도 쓸모를 두지 않았던 진흙이, 훗날 가장 단단한 초석이 된 셈이다.
우리는 대부분 강한 땅, 좋은 자리, 남들이 탐내는 위치를 찾아 움직인다. 그러나 베니스의 첫 세대에게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남은 것은 아무도 원치 않는 자리뿐이었고, 그 자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이 구도는 오늘의 외교 지형에도 낯설지 않게 겹쳐볼 수 있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 낀 변방, 그 자체로는 누구의 핵심 이익도 아니었던 완충지대로 다뤄져 온 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가 지금은 반도체 공급망과 안보 균형이 동시에 걸리는 지점으로 읽히고 있다. 이 자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인지, 강대국들의 필요가 우연히 겹친 결과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 아무도 값을 매기지 않았던 자리가 시간이 지나 판 전체를 흔드는 자리로 뒤바뀐 사례는, 베니스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 참고할 말씀: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 시편 118:22
각주
1. 러시아 아조프해 선박 운항 중단, 우크라이나 무인 수상정 공격 관련 보도 (2026.07)
2. 아퀼레이아 함락, 452년 7월 18일 (훈족 아틸라)
3. 롬바르드족 이탈리아 침공, 568년 5월 (왕 알보인)
4. 피핀의 베네치아 석호 공략 실패 및 도제청 리알토 이전, 810년
5. 노자, 『도덕경』 78장
6. 홉스, 『리바이어던』
7. 살수대첩, 612년(영양왕 23) 7월 (을지문덕, 청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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