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이긴 전쟁 뒤에 저물다

1571년 레판토 해전 직후 노을을 배경으로 베니스 갈레아스 선상에 서 있는 지휘관과 파괴된 함대들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 직후, 황혼이 깃드는 지중해를 바라보는 베니스 지휘관.

바다 시리즈 ④ · 역사·철학

베니스, 이긴 전쟁 뒤에 저물다

완전한 승리가 재기로 이어지지 못한 1571년

열렸다고 말하는 바다, 지나가지 못하는 배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며 전쟁이 시작된 뒤, 호르무즈 해협은 대부분의 상선에 닫힌 바다가 되었다.1 미 해군은 4월 13일부터 5월 29일까지 이란 항구를 봉쇄했고, 6월 17일에는 종전과 봉쇄 해제를 담은 양해각서가 서명되었다. 그러나 사흘 뒤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해협을 다시 닫았다고 밝혔다. 5월 20일 한국 유조선 한 척이 전쟁 이후 처음으로 해협을 빠져나왔을 때, 페르시아만 안에는 우리 선박 25척이 남아 있었다.2

9월 하순인 지금, 미국은 해협이 완전히 열려 있다고 말한다. 선박 추적 자료는 다른 숫자를 가리킨다. 로이터가 인용한 집계로 9월 9일 하루 통과 선박은 7척이었다. 전쟁 전에는 하루 125척 안팎이 지나던 길이다.3 추적 장치를 끈 채 지난 배는 이 숫자에서 빠졌을 수 있다.

이 글은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를 가리는 글이 아니다. 다만 구도 하나는 분명하다. 전장에서 이기는 일과 바다를 열어 두는 일은 서로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그 차이는 450여 년 전 지중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승 뒤에 이미 한 번 드러난 적이 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1204년, 성전(聖戰)의 이름으로 출항한 베니스의 함대가 성전(聖殿)을 팔고 돌아온 장면을 살펴보았다. 그로부터 367년 뒤, 같은 도시는 이번에 잃는 쪽이 되어 동맹을 구한다. 그리고 동맹에도 저마다의 장부가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1571년 10월 7일, 그리고 그 뒤 열일곱 달

발단은 키프로스였다. 1570년 오스만은 베니스령 키프로스를 침공해 9월에 니코시아를 함락시켰고, 마지막 거점 파마구스타는 그해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포위된 채 버텼다.4 1571년 8월 1일 항복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오스만 사령관은 약속을 깼고, 수비대장 마르칸토니오 브라가딘은 그달 17일 참혹하게 처형되었다고 전해진다. 교황 피우스 5세가 주선한 신성동맹은 그해 5월에 이미 결성되어 있었지만, 동맹 함대가 시칠리아에서 집결하던 8월에 구하려던 요새는 함락된 뒤였다.

1571년 10월 7일, 신성동맹 함대는 그리스 서안 파트라스 만 어귀에서 오스만 함대와 맞붙었다. 동맹 측은 갤리 206척과 갈레아스 6척, 모두 212척이었고 그 절반 이상을 베니스가 댔다.5 갈레아스는 베니스가 발전시킨 대포 탑재형 대형 갤리였다. 전열 앞에 배치된 여섯 척은 오스만 갤리들이 대형을 갖추기도 전에 포격으로 먼저 대열을 흩뜨렸고, 근접전으로 넘어가기 전 벌어진 이 포격전이 이후 승패의 상당 부분을 이미 갈라 놓았다.5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오스만 함선 170척에서 200척가량이 침몰하거나 파괴되거나 나포되었고, 사령관 알리 파샤가 전사했다. 노예로 잡혀 있던 기독교도 1만 5천 명가량이 풀려났으며, 오스만 좌익의 울루치 알리만이 갤리 30~40척을 이끌고 빠져나갔다. 동맹 측도 8천 명 안팎의 전사자를 냈다. 노 젓는 배들이 정면으로 맞붙은 마지막 대해전이자, 오스만 함대를 상대로 한 기독교 세계의 첫 대승이었다.5

유럽은 열광했다. 이탈리아에서만 1571년부터 1573년 사이 이 승리를 기리는 소네트와 마드리갈, 시가 233종 인쇄되었다고 한다.6

그러나 승리의 뒤는 조용히 어긋났다. 이듬해 5월 1일 피우스 5세가 세상을 떠났고,7 오스만은 1572년 무렵 200척 안팎의 새 함대를 다시 바다에 띄웠다. 정확한 척수는 사료마다 엇갈리지만, 불과 몇 달 만에 함대를 되채웠다는 점은 여러 연구가 공유한다.8 대재상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는 베니스 사절 마르칸토니오 바르바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키프로스를 빼앗은 것은 당신들의 팔을 자른 격이고, 우리 함대를 깨뜨린 것은 수염을 깎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잘린 팔은 다시 자라지 않지만, 깎인 수염은 면도날이 지난 뒤 더 잘 자란다.9

오스만에게 레판토의 패배는 몇 달이면 다시 채울 수 있는 소모품의 손실이었지만, 베니스에게 키프로스의 상실은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손상이었다.

1572년 동맹 함대가 다시 나섰을 때 스페인 분견대 55척이 합류하며 양측 전력은 비슷해졌고, 결정타를 노릴 기회도 열렸다. 그러나 지휘부의 마찰과 돈 후안의 주저 속에서 나바리노 공략은 실패로 끝났다.10 이듬해 돈 후안이 향한 곳은 동지중해가 아니라 튀니스였다. 그는 튀니스를 점령했고, 오스만은 1574년 그 도시를 되찾았다.

1573년 3월, 베니스는 홀로 오스만과 강화했다. 키프로스는 공식적으로 오스만에 넘어갔고, 베니스는 배상금 30만 두카트를 물기로 했으며, 달마티아 배후의 비옥한 땅 일부도 내주었다.11 레판토의 승자가 패자의 조건으로 전쟁을 끝낸 것이다. 승리로부터 열일곱 달 뒤였다.

공을 닦지 못한 승리, 저마다의 장부를 든 동맹

손자는 「화공」편에서 이렇게 썼다.

夫戰勝攻取而不修其功者凶,命曰費留。(부전승공취이불수기공자흉, 명왈비류。)
“싸워 이기고 빼앗고도 그 공을 닦지 못하는 것은 흉하니, 이를 비류(費留)라 한다.”

비류는 단순히 재물을 허비한다는 뜻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공을 세우고도 후속 성과로 잇지 못하면 국가의 역량 자체를 소모하게 된다는, 국가 경영 차원의 경고다. 이겼다는 사실과 이긴 것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르다. 이어지는 구절은 그 몫을 누구에게 지우는지 밝힌다. 明主慮之,良將修之。(명주려지, 양장수지。) “현명한 군주는 이를 염려하고, 훌륭한 장수는 이를 닦는다.”12

서양에서는 투키디데스가 전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같은 문제를 겨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에는 모두를 묶는 단일한 회의체가 없고, 각 도시는 자기 이익을 먼저 돌보며, 누구도 자신의 지체가 공동의 일을 해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진단이었다.13 2,400여 년 전 아테네의 적을 향한 이 관찰은 1572년 이오니아 해에 모인 신성동맹에 그대로 얹힌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레판토의 동맹에는 비류의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이긴 것을 굳혀야 할 주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고, 여럿은 저마다 다른 장부를 들고 있었다. 신성동맹에게 레판토는 공동의 이익이 만든 사건이 아니라 공동의 적이 만든 사건이었다.

함대는 부서졌고, 체계는 남았다

레판토에서 부서진 것은 오스만의 배였고, 배를 만드는 체계는 그대로였다. 이스탄불의 조선소는 몇 달 만에 함대를 되채웠다. 앞선 글에서 살핀 아르세날레가 베니스에 준 힘이 이기는 쪽의 힘이었다면, 같은 논리는 진 쪽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함대를 격파하는 일과 함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꺾는 일은 서로 다른 전쟁이다.

동맹의 문제도 겹쳐 있었다. 베니스가 지키려던 것은 동지중해의 섬과 교역로였고, 스페인이 아끼려던 것은 자국의 갤리선과 서지중해였다. 스페인은 애초에 자국 갤리를 베니스의 이익을 위해 쓰기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 온존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승리가 공통의 적을 지워 주자 동맹을 묶던 유일한 접착제도 함께 옅어졌다. 동맹은 위기의 언어로 맺어지고, 이익의 언어로 해체된다.

가장 깊은 사정은 베니스 안에 있었다. 베니스에게 오스만은 적이면서 동방 교역의 관문이었다. 이 도시는 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이기에는 상대와 너무 깊이 얽혀 있었다. 1479년에도 베니스는 영토를 내주고 해마다 1만 두카트를 물며 교역권을 되샀다.14 94년 뒤 같은 계산이 되풀이되었다. 1204년 베니스가 성전보다 장부를 택했다면, 1573년에는 승전보다 장부를 택했다. 이 평화를 배신으로 읽을지 생존의 계산으로 읽을지는 해석이 갈린다. 다만 1645년 크레타 전쟁이 터지기까지 70여 년 동안 베니스가 오스만과 큰 전쟁 없이 지냈다는 사실은 그 계산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고 승리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세계는 오스만 함대가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확인된 것은 심리였고, 지도는 그대로였다. 헤겔은 『법철학 강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15

축시 233종이 인쇄되던 해에 그 승리가 정점인지 황혼의 시작인지 가려 볼 눈은 없었다. 저묾이 이 승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승리가 저묾을 막아 주지 못했다는 것은 확인된다. 이해는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한다.

지금 호르무즈에서 벌어지는 일이 같은 길을 걸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함선을 격파하는 능력과 항로를 열어 두는 능력이 별개라는 점, 승리를 선언하는 일과 통행량이라는 숫자 사이에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이번에도 확인해 볼 만하다. 정부와 군은 바다가 열렸다고 선언하지만, 그 선언대로 배를 띄울지는 결국 선사와 보험사의 계산이 정한다. 1573년 베니스가 승전의 함성보다 자국의 장부를 따랐던 것처럼, 지금 그 숫자를 움직이는 것도 성명이 아니라 계산이다.

이긴 다음 날 아침, 우리 손에 남은 것

1573년 3월, 승자의 도시는 패자의 조건에 서명했다. 그 서명이 사려 깊은 후퇴였는지 뼈아픈 굴복이었는지는 지금도 판정이 갈린다. 분명한 것은 서명하는 손이 축시 233종이 쓰인 그 손과 같았다는 사실이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늘 조금 늦게 도착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황혼이 깃든 뒤에야 날개를 펴는 새처럼,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은 대개 한참 지난 뒤에야 보인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승리라고 부르는 장면들 앞에서 묻는다. 그 가운데 다음 날 아침에도 열려 있을 바다는 몇이나 될까.


* 참고할 말씀: ‘싸우는 날을 위하여 말은 예비하여도 이기는 것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 잠언 21:31


각주

1. 2026년 호르무즈 해협 위기 경과(2026.2.28 개전, 2026.4.13–5.29 미 해군의 이란 항구 봉쇄, 2026.6.17 양해각서 서명, 2026.6.20 이란의 재폐쇄 발표): 로이터·알자지라·The Hindu 등 보도 종합

2. MBC 뉴스투데이, 2026.5.20 (HMM 운영 유니버설 위너호 통과, 잔여 선박 25척)

3. 로이터 선박 추적 집계, 2026.9.9 (RFE/RL 재인용); 알자지라 2026.9.3 및 합동해양정보센터(JMIC) 2026.9.1 권고문

4. 니코시아 함락 1570년 9월 9일, 파마구스타 포위 1570년 9월~1571년 8월 (Setton, The Papacy and the Levant, vol. IV, 1984)

5. 레판토 해전(1571.10.7) 병력·전과: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Lepanto」; 병력 구성은 신성동맹(1571) 관련 통설

6. 레판토 직후 이탈리아에서 인쇄된 소네트·마드리갈·시 233종(1571–1573)

7. 교황 피우스 5세 사망, 1572년 5월 1일

8. 「Shipbuilding and early forms of modern management. Six months to rebuild the Ottoman fleet after the defeat at Lepanto」, Business History 66(6), 2022 — 논문 자체가 오스만 사료상 척수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함

9.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가 베니스 바일로 마르칸토니오 바르바로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발언. 전거에 따라 문구가 다름

10. 나바리노 공략(1572), Setton (1984)

11. 베니스·오스만 강화(1573년 3월; 3월 3일로 적은 문헌도 있음): 키프로스 양도, 배상금 30만 두카트, 달마티아 국경 조정

12. 손자, 『손자병법』 「화공」편

13.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권 141장 (페리클레스 연설)

14. 콘스탄티노플 조약, 1479년 1월 25일 (교역 특권 회복, 연 1만 두카트)

15. 헤겔, 『법철학 강요』 서문, 1820년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