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성전을 팔다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 당시 비잔티움 대성당 제단의 황금 십자가 앞에서 주저하는 베네치아 선장의 시네마틱 이미지
1204년 4월 콘스탄티노플 함락 현장. 성지 탈환이라는 명분으로 떠난 항해의 끝에서 장부의 셈법과 마주한 베네치아 선장의 고뇌.

베니스, 성전을 팔다

바다 시리즈 ③ · 역사·철학

신앙이 이익 앞에 멈춘 1204년

항로를 바꾼 것은 창이 아니라 장부였다

2026년 7월,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연계된 선박을 대상으로 홍해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보험사들의 대응은 빨랐다. 신규 보험 판매를 중단하고 기존 계약마저 취소하기 시작했다.1 두 달 뒤 아시아-유럽 항로의 해상 운임은 최대 230%까지 뛰었다.2 흥미로운 것은 후티가 꺼내 든 다음 카드였다. 통항하는 상선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3 봉쇄의 명분은 팔레스타인 연대였지만, 그 봉쇄가 다다른 곳은 결국 통행세 장부였다.

바다의 역사에서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배가 어디로 향할지를 정하는 것은 결국 깃발이 아니라 장부일 때가 많다. 800여 년 전, 베니스라는 도시국가가 십자군의 뱃길을 바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204년 4월, 예루살렘 대신 콘스탄티노플

1198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새로운 십자군을 소집했다. 목표는 이집트를 거쳐 예루살렘을 되찾는 것이었다. 문제는 뱃삯이었다. 십자군은 베니스에 대규모 함대 건조를 의뢰했지만, 약속했던 인원의 3분의 1도 모이지 않았다. 계약금 8만 5천 마르크 중 상당액이 비었다. 베니스는 이미 도시의 자산과 인력을 총동원해 함대를 완성해 둔 상태였고, 대금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국가 재정 자체가 흔들릴 처지였다.

베니스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는 빚 대신 다른 것을 요구했다. 헝가리 왕에게 충성을 바꾼 자라(Zara) 항구를 되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자라는 가톨릭 도시였다. 1202년 11월, 십자군은 같은 가톨릭 신자들이 사는 도시를 함락시켰다. 교황은 격노했고 파문으로 응수했다.

그다음이 진짜 갈림길이었다. 1195년 4월, 비잔티움 황제 이사키오스 2세는 친형 알렉시오스 3세에게 제위를 빼앗기고, 눈까지 멀게 된 채 궁에 유폐되어 있었다. 폐위된 황제의 아들, 즉 이사키오스의 아들 알렉시오스는 서유럽으로 몸을 피해 도움을 구하던 중이었다. 이 젊은 황자가 십자군 함대에 접근했다. 아버지를 다시 황제 자리에 앉혀주면 막대한 금액과 병력, 나아가 동서 교회의 통합까지 약속하겠다는 제안이었다. 1203년 여름, 함대는 결국 예루살렘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로 방향을 틀었다. 복위는 이루어졌지만, 약속했던 돈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비잔티움 내부에서 또다시 정변이 일어나 새 황제가 들어서면서, 애초의 협상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1204년 4월, 십자군은 결국 콘스탄티노플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기독교 세계 최대의 도시가 다름 아닌 기독교 군대의 손에 함락되어 약탈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성 소피아 대성당의 제단마저 훼손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제4차 십자군, 1204년). 앞이 보이지 않던 노년의 도제 단돌로는 이 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전리품 중 상당 부분은 베니스로 향했다. 콘스탄티노플 영토의 8분의 3, 에게해의 항구들, 이후 수백 년을 지탱할 무역 특권까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 배는 결국 베니스의 창고를 채우고 돌아왔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베네치아 아르세날레가 하루에 갤리선 한 척을 찍어내던 생산력을 살펴본 적이 있다(하루에 배 한 척, 아르세날레의 속도). 그 생산력이 이번에는 성지가 아니라, 같은 신앙을 공유한 도시를 향해 움직였다.

명분이라는 돛, 이익이라는 나침반

한비자는 이렇게 썼다.

醫善吮人之傷,含人之血,非骨肉之親也,利之所加也。
(의선연인지상, 함인지혈, 비골육지친야, 이지소가야)

“의원이 환자의 상처를 빨고 그 피를 머금는 것은 혈육의 정 때문이 아니라,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4

돌봄처럼 보이는 행동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해관계가 먼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비슷한 결을 짚는다.

군주가 신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는 누구나 안다. 그러나 신의를 가볍게 여긴 군주들이 오히려 더 큰 일을 이루어 낸 사례가 많다.

그는 군주에게 사자의 힘만큼이나 여우의 눈치가 필요하다고 썼다(마키아벨리, 《군주론》 18장). 그가 말한 것은 명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진실, 이른바 ‘실효적 진실’이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단돌로에게 성지 탈환이라는 명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명분이 항로를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었다. 한비자가 말한 이익과 마키아벨리가 말한 실효적 진실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언어로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십자가와 장부, 같은 배에 실려 있었다

자라를 공격한 것도, 콘스탄티노플로 항로를 튼 것도, 십자군의 원래 서약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매번 그럴듯한 이유가 준비되어 있었다. 빚을 갚기 위해서, 정통성 있는 황제를 복위시키기 위해서. 명분은 매번 갱신되었지만, 그 명분이 향하는 방향은 이상하리만치 한 곳으로 수렴했다. 베니스의 금고였다.

이것은 베니스만의 이야기로 읽고 끝낼 수 없다. 신앙 공동체든 기업이든 국가든, 설립 당시의 사명과 그것을 지탱하는 자금의 흐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벌어진다. 오늘날 기업들이 내세우는 ESG나 지속가능성 선언, 국가가 내세우는 안보라는 명분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문구를 걷어내면 결국 손익계산서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간극이 벌어지는 순간마다 조직은 꼭 그럴듯한 설명을 준비해 왔다. 홍해를 피해 가는 선사들의 항로 변경 발표문도, 800년 전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뱃머리를 돌린 십자군의 결정문도 구조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선언된 목적지와 실제로 도착하는 항구가 다를 때,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은 언제나 이익이라는 나침반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단돌로의 함대는 성전(聖戰)을 위해 출항했지만, 결국 성전(聖殿)을 팔아 항구로 돌아왔다. 두 단어가 같은 소리로 읽힌다는 사실은 우연이겠지만, 그 우연이 남긴 질문은 우연이 아니다. 무언가를 지키겠다고 나선 항해가, 정작 그것을 팔아치우는 항해로 바뀌는 지점은 어디였을까.

공교롭게도 이 글이 발행되기 이틀 전인 9월 18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언급했다.5 파병의 명분은 언제나 동맹과 안보다. 그러나 호르무즈는 세계 원유의 상당량이 지나는 좁은 물길이기도 하다. 명분과 실리가 겹쳐지는 그 지점에서, 배가 향하는 곳은 8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매번 던지는 질문도 결국 이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우리가 향하고 있는 항구는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는가.


* 참고할 말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24


1. 후티, 홍해 통항 선박 보험 판매 중단… 기존 계약도 취소 — 네이트뉴스, 2026.7.25

2. 후티 반군, 홍해 봉쇄… 아시아-유럽 해상 운임 최대 230% 폭등 — 네이트뉴스, 2026.9.11

3. 후티, 홍해 통항 상선에 ‘통행료’ 부과 검토 — 네이트뉴스, 2026.7.29

4. 한비자 인용 — 《한비자》 외저설 좌상(外儲說 左上) 편

5. 대통령 기자회견, 202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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