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 한 알의 값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무역선과 말루쿠 제도의 화산 섬을 배경으로 클로브 묘목을 든 calloused 손의 초근접 시네마틱 스틸 컷
00년 전, ‘기독교도와 향신료’라는 답을 안고 닿았던 캘리컷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말루쿠 제도의 무역선과 정향 묘목.

후추 한 알의 값 — 바다를 사유화한 제국들

세계사-물자-③ | 15~17세기 향신료와 대항해시대

2026.09.30 · 세계사


1498년 5월, 후추를 찾아온 사람들

1498년 5월 20일, 리스본을 떠난 지 열 달 남짓 지난 바스쿠 다 가마의 함대가 인도 서남안 캘리컷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 상륙한 포르투갈 선원들에게 튀니지 출신의 한 무슬림 상인이 말을 걸어 왔다고 전해진다. 이 먼 곳까지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는 물음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기독교도와 향신료.

신앙과 이윤이 한 배에 실려 있던 시대의 자화상 같은 답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더 오래 들여다볼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왜 하필 후추였는가. 검은 열매 몇 알이 어떻게 한 왕국의 함대를 지구 반대편까지 밀어 보냈는가.

앞선 글에서 우리는 비단의 비밀이 누에알 한 줌에 담겨 있었음을 살펴보았다.(직전 편: 비단길·누에 독점) 대항해시대 시리즈가 바다를 지배한 나라들의 자리를 물었다면(향신료 한 줌이 세계를 바꿨다), 이번에는 그 바다가 실어 나른 물건 쪽에서 묻는다. 값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그 값을 쥔 자는 무엇을 하는가.

408년, 서고트의 왕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하고 몸값을 요구했다. 그 목록에는 금과 은, 비단과 함께 후추 3,000파운드가 들어 있었다고 전해진다.1 후추는 그때 이미 재화이자 화폐였고, 중세 유럽에서는 지대와 지참금을 후추로 셈하는 관행까지 생겼다. 흔히 향신료가 썩어 가는 고기의 냄새를 감추려고 쓰였다고들 하지만, 역사가들은 대체로 이 통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선한 고기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이 후추를 살 수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후추는 맛의 재료가 아니라, 희소성이 신분으로 바뀌는 통로였다.

바다에 세워진 울타리

문제는 후추가 나는 곳이 유럽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후추는 인도 서남안의 말라바르 해안에서, 정향은 인도네시아 동쪽 몰루카(말루쿠)의 몇 개 작은 섬에서, 육두구는 그보다 더 작은 반다 제도에서만 났다. 지도 위의 점 몇 개가 유럽 식탁의 사치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는 사슬이 있었다. 인도양의 상인, 홍해와 알렉산드리아를 쥔 맘루크 술탄, 알렉산드리아에서 물건을 받아 유럽에 되파는 베네치아가 차례로 몫을 떼었다. 손을 거칠 때마다 값은 뛰었다. 유럽의 왕들이 원한 것은 향신료 자체보다 이 사슬의 끊김이었다.

흔히 1453년 5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이 향신료 길을 막아 대항해시대를 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스만 치하에서도 동서 교역은 이어졌다. 이 설명은 사건의 무게를 과장한 것으로 읽는 편이 사료에 가깝다. 대항해를 밀어 올린 힘은 길이 막혔다는 결핍이 아니라, 중간의 마진을 통째로 삼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포르투갈은 이 계산을 가장 먼저 실행했다. 1494년 6월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교황의 중재 아래 대서양 바깥의 세계를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에 나누어 준 이야기는 앞선 글에서 살폈으니, 여기서는 그 종이 한 장이 실제 바다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본다.

포르투갈은 인도양이라는 광활한 바다 전체를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지도를 펼쳐 놓고, 물자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좁은 길목 몇 곳만 골라 짚었다. 1510년 인도 서해안의 고아, 1511년 8월 말레이반도의 말라카, 1515년 페르시아만 입구의 호르무즈다. 세 곳 모두 넓은 영토가 아니라 배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해협이나 항구였다. 포르투갈은 이 지점들에 요새를 짓고 상관(商館, 교역용 거점)을 세웠을 뿐, 그 안쪽 땅을 다스리려 하지 않았다. 군대를 촘촘히 배치할 필요 없이, 길목 몇 개만 쥐면 그 뒤로 오가는 모든 물자에 통행세를 매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의 무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말라카였다. 말라카는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잇는 해협에 자리해, 동남아시아의 향신료가 인도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병목이었다. 당대의 관찰자 토메 피르스는 이 도시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말라카의 주인은 베네치아의 목에 손을 얹는다.2 말라카 하나만 쥐면, 그 물건을 훗날 유럽에 되파는 베네치아의 숨통을 언제든 조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도 위에서는 작은 점 하나였지만, 그 점을 쥔 손은 유럽 반대편 도시의 목까지 닿아 있었다.

그 그물에는 통행증 제도가 걸려 있었다. 포르투갈이 발급하는 카르타스(cartaz) 없이 다니는 배는 나포해도 좋았다. 바다가 길이 아니라 통행료를 받는 문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물은 촘촘하지 못했다. 16세기 중반 이후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옛 경로가 되살아나 후추가 다시 베네치아로 흘러들었다는 것이 통설에 가깝다. 독점은 전성기에도 이미 새고 있었다.

1519년 9월 마젤란이 서쪽으로 출항한 것도 같은 논리의 연장이었다. 카스티야의 몫으로 향신료 제도에 닿으려는 항해였다. 마젤란은 1521년 4월 필리핀의 막탄에서 죽었고, 1522년 9월 살아 돌아온 것은 다섯 척 가운데 빅토리아호 한 척, 열여덟 명이었다. 배 안에는 정향이 가득했고, 그 한 배로 원정 전체의 비용을 메웠다고 전해진다. 세계 일주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향을 실어 온 항해였다.

그 뒤를 네덜란드가 이었다. 1602년 3월 설립된 동인도회사(VOC)는 왕이 아닌 주주가 바다를 경영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국가 없이 바다를 지배하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령 아시아를 노린 데는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1580년부터 1640년까지 포르투갈은 스페인 왕 아래 합쳐져 있었고, 스페인과 싸우던 네덜란드에게 포르투갈의 향신료 항로는 곧 적의 재원이었다.

여기서 이 이야기의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 나온다. 1603년 2월, VOC 함대 선장이 말라카 해협에서 포르투갈 상선 산타카타리나호를 나포하며 법적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VOC는 스물을 갓 넘긴 법학자 후고 그로티우스에게 그 정당성을 입증할 변론을 의뢰했다. 이 변론서의 한 장이 1609년 《자유해론(Mare Liberum)》으로 따로 발표되었다. 바다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모든 나라가 항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명문은 출발부터 고용된 변호였다. 포르투갈의 울타리를 부수는 데 이보다 좋은 논리는 없었다.

그러나 같은 네덜란드가 1621년 5월 반다 제도에서 한 일은 이 논리와 정반대였다. 총독 얀 피터르스존 쿤은 육두구 독점을 확정하겠다며 섬을 정복했고, 원주민 다수가 학살되거나 노예로 끌려가거나 추방되었다.3 정향은 암본 한 곳에서만 재배를 허용하고 다른 섬의 정향나무는 원정대를 보내 베어 냈다. 1667년 7월 브레다 조약에서는 육두구가 나는 작은 섬 런(Run)과 훗날 뉴욕이 될 맨해튼의 교환이 회자된다. 지금 보면 우스운 거래지만 그때 그 계산은 진지했다.

자유의 언어는 약할 때 쓰이고, 독점의 언어는 강할 때 쓰인다. 이 문장은 네덜란드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이 쥔 바다를 향해서는 자유를 외치고, 자기가 쥔 반다 앞에서는 울타리를 세운 것이 같은 나라였다.

쌓아 둔 자는 잃고, 가둔 자는 무너진다

동아시아의 오래된 문장 하나가 이 장면과 겹친다.

甚愛必大費,多藏必厚亡。
(심애필대비,다장필후망。)
“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쓰게 되고, 많이 쌓아 두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 《도덕경》 44장

노자의 문장은 원래 개인의 집착을 다룬다. 그러나 이를 독점의 구조에 옮겨 읽을 수 있다. 희소성을 쥐려는 욕망은 그것을 지키는 비용을 낳고, 그 비용이 다시 더 많은 지킴을 요구한다. 요새가 함대를, 함대가 원정을, 원정이 학살을 부르는 사슬이다. 독점은 이익이기 이전에 스스로 불어나는 경비였다.

이 경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맹자》 첫 장이 미리 적어 두었다.

苟為後義而先利,不奪不饜。
(구위후의이선리,불탈불염。)
“진실로 의를 뒤로하고 이익을 앞세우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 《맹자》 양혜왕 상

앞장에서 맹자는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했다.(上下交征利而國危矣) 이익이 명분보다 앞서면 그 다툼은 장부 안에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번진다. 바깥은 힘없는 쪽이다. 반다 제도의 사람들이 치른 값은 그 번짐의 결과였다.

그로티우스의 이중성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논리의 구조에 가깝다. 자유와 소유는 서로 다른 이념이 아니라, 같은 이익이 처지에 따라 바꿔 입는 옷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향 한 그루가 무너뜨린 제국

이 독점은 어떻게 끝났는가. 해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1770년, 프랑스령 모리셔스의 행정관 피에르 푸아브르는 몰루카에서 정향과 육두구 묘목을 몰래 빼내 오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는 그 독점의 바깥에 있던 나라였고, 바깥에 있는 자만이 독점을 깰 동기를 가진다. 이후 정향은 인도양의 다른 섬들로 퍼졌고, 19세기에는 아프리카 동안의 잔지바르가 세계 정향 생산의 중심이 되었다. 1799년 12월 31일 VOC는 부채 속에 해산되었다.

VOC의 쇠퇴에는 영국과의 전쟁과 내부의 부패도 겹쳤다. 그러나 독점이라는 울타리에 난 균열만 놓고 보면 시작은 분명하다. 독점의 균열은 함대가 아니라 묘목 한 줌에서 시작되었다. 비잔티움의 수도사들이 누에알을 지팡이 속에 숨겨 들여왔다는 프로코피우스의 이야기와 구조가 같다. 독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쟁 함대가 아니라, 희소성을 지탱하던 지식과 씨앗이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몰루카의 정향이 희소했던 것은 자연이 그렇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누구도 심는 법을 밖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그 막이 찢어지자 값은 흘러내렸다.

정향은 희소해서 값진 것이 아니라, 희소하다는 사실이 지켜지는 동안만 값졌다. 그 사실을 지키는 비용은 독점자의 몫이었고, 그 비용이 이익을 넘어서는 순간 독점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는 정향을 쥔 자인가, 옮겨 심는 자인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의 어디에 서 있는가.

관세청이 9월 21일 발표한 잠정치에 따르면 9월 1~20일 한국의 수출은 714억 달러로 같은 기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그중 반도체가 341억 달러, 47.8%를 차지했다.4 수출의 거의 절반을 한 품목이 떠받치는 9월이다. 몰루카의 작은 섬들이 세계의 식탁을 쥐고 있던 구조와, 지도 위 크기의 차이를 빼면 낯설지 않다.

한편 미중은 무역 휴전 시한을 2027년 1월로 미루면서 핵심 광물과 첨단 반도체 규제를 맞바꾸는 구도를 굳혀 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5 국회에서는 대미 전략투자 1호 사업의 상업성이 따져지고 있다. 관세와 투자, 수출통제의 문서들은 결국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후예다. 무엇을 누가 만들 수 있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 구도에는 한 겹이 더 있다. 반도체에서 한국은 몰루카의 자리에 서 있다. 희소한 것을 쥔 쪽이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살핀 조선업에서는 자리가 다르다. 필리조선소를 통해 한국의 건조 노하우가 미국의 도크로 옮겨 심어지는 흐름은, 푸아브르가 묘목을 모리셔스로 옮긴 구조와 닮아 있다. 한국은 한쪽에서는 정향을 쥔 섬이고, 다른 쪽에서는 묘목을 옮겨 심는 손이다. 이 두 자리는 서로 다른 결말을 예고한다. 이 이야기에서 쥔 자의 독점은 옮겨 심는 손에 의해 끝났다. 그러나 옮겨 심는 손이 값을 정하는 자리까지 가져갔는지는 사례마다 다르게 답했다.

몰루카 사람들은 희소한 것을 가졌지만 그 희소성의 값을 정할 권리는 갖지 못했다. 값을 정한 것은 그것을 실어 나를 배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한국에게 위로도 경고도 아닌 질문 하나를 남긴다. 우리는 쥔 자로 머물 것인가, 옮겨 심는 자가 될 것인가. 그리고 심은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500여 년 전 캘리컷 앞바다에서 돌아온 대답이 ‘기독교도와 향신료’였다면, 오늘 같은 질문에 돌아올 대답 역시 ‘안보와 반도체’라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명분과 물자가 한 배에 실려 있는 구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에는 보이지 않다가 독점이 저물고 나서야 드러나는 그 구조를 적어 두는 일, 그것이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맡은 몫이다.


* 참고할 말씀: ‘네가 어찌 헛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로 날아가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 잠언 23:5


각주
1. 조시모스, 《신사(新史)》 5권. 408년 알라리크의 로마 포위 당시 몸값 목록에 대한 전승.
2. 토메 피르스, 《동방 제국지(Suma Oriental)》 (1512~1515년경).
3. 자크 터너, 《향신료의 역사(Spice: The History of a Temptation)》 (2004); 자일스 밀턴, 《Nathaniel’s Nutmeg》 (1999). 반다 제도 피해 규모는 추정치가 다양하다.
4. 관세청, 「2026년 9월 1~20일 수출입 현황(잠정치)」 (2026.9.21).
5. 배런스 보도 인용, 글로벌이코노믹 (2026.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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