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현대-소리③】 위에서 내려온 확성기, 아래에서 올라온 노래
새벽의 새마을노래에서 광장의 아침이슬까지, 거리의 목소리는 어떻게 하나가 되었나
한국현대-소리-③ · 1960~90년대 · 2026. 11. 03. · 역사 · 한국현대사 · Watchman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부를 때
2002년 6월 22일, 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이 열린 날 전국 314곳의 길거리 응원장에 500만여 명이 모였다.¹ 서울에서는 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에만 160만여 명이 몰렸고, 이들은 이름도 모르는 옆 사람과 함께 같은 구호를 목청껏 외치고 아리랑을 불렀다.¹ 수많은 사람이 같은 소리를 내는 순간, 그 구호와 노래는 응원단의 것을 넘어 광장의 노래가 되었다. 2026년 6월 월드컵에서도 광화문은 같은 구호가 울리는 거리응원의 자리로 마련되었다.¹
이 장면을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 놓으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그보다 15년 전인 1987년 6월 서울 도심에서 폭넓게 함께 부를 수 있었던 노래로는 애국가와 ‘아침이슬’이 자주 거론된다.² 거리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그만큼 한정되어 있었다. 그 거리가 어떻게 한목소리를 갖게 되었고, 그 한목소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요구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이번 글의 일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소음 속에서 입 모양으로 말하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 글이 일터의 굉음 속에서 개인이 건네던 사적인 목소리를 따라갔다면, 이번에는 일터를 벗어나 거리에서 형성된 집단의 목소리를 살펴본다. 확성기를 쥔 손과 노래를 쥔 입이 맞서 온 1960~90년대의 소리다.
확성기를 쥔 손은 누구였는가
1970년대 한국의 여러 마을에서는 이른 아침 확성기로 새마을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삽과 빗자루를 들고 나와 마당과 골목을 쓸었다.³ 노랫말과 곡을 쓴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⁴ 대통령이 직접 만든 노래가 마을의 아침을 깨웠다는 사실에는, 가난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주지 않겠다는 지도자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빈곤을 벗어나는 일을 국가의 구호에 머물게 하지 않고, 집 앞의 길과 마을의 생활환경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 가려 했던 것이다.
소리는 위에서 내려왔지만, 삽을 들고 땅을 고르고 빗자루로 골목을 쓴 것은 주민들이었다. 지도자의 의지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쳐 생활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새마을노래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함께 나누는 소리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른 아침의 확성기는 마을의 일과를 알리는 장치이면서,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힘을 모으자는 국가적 의지를 일상으로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두 체제의 역사적 성격은 다르지만, 소리를 널리 전달하는 기술을 권력이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비교할 여지가 있다. 1946년 8월 뉘른베르크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의 독재가 라디오와 확성기 같은 기술 장치를 통해 8천만 국민에게서 독립적인 사고를 빼앗았다고 말했다.⁵ 이는 가해 체제 핵심 인사의 진술이지, 국민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을 입증하는 자료는 아니다. 다만 나치 정권이 1933년경 괴벨스의 요청으로 값싼 보급형 라디오 ‘국민수신기(Volksempfänger)’를 만들어 보급했다는 사실은 권력이 소리의 통로를 어디에 두려 했는지를 보여 준다.⁶ 같은 확성기가 복종의 도구도, 연대의 도구도 되었다. 갈림길은 기술이 아니라 누가 쥐고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에 있었다.
그 힘을 아래에서 쓴 사례가 1963년 8월 28일의 워싱턴이다. 약 25만 명이 모인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서 조직가 베이야드 러스틴은 군중 전체가 연설을 들을 수 있는 음향 설비를 중시했다.⁷ 그런데 행사 전날 밤 장비가 파손되었고, 육군의 지원으로 복구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⁷ 파손의 주체는 기록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 일화는 연설하는 입만큼이나 그 입에 닿는 통로가 중요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민권운동의 노래는 확성기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We Shall Overcome’은 1945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담배 공장 파업에서 피켓 라인의 노래로 불렸고, 참가자 다수는 흑인 여성이었다.⁸ 20세기 초 흑인 교회의 찬송에서 자란 이 노래는 하이랜더 포크 스쿨의 질피아 호턴이 배워 퍼뜨렸다. 이후 피트 시거와 가이 캐러원을 거쳐 1960년 4월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 창립대회에서 모두의 노래가 되었다.⁸
그 노래가 확성기 없이 사람을 묶은 곳이 1961~62년의 조지아주 올버니다. 교회 집회에서는 독창자가 아니라 선창자가 노래를 이끌었고 회중이 따라 불렀다.⁹ 운동가 버니스 존슨 리건(Bernice Johnson Reagon)은 훗날 올버니를 “노래하는 운동”이었다고 회고했다.¹⁰ 일부 집회에서는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모임을 마쳤고, 사람들은 오른팔을 왼팔 위에 교차해 옆 사람의 손을 잡았다.¹¹
확성기의 소리는 마을에서 학교 운동장으로 이어졌다. 조회가 있는 아침이면 학생들은 줄을 맞춰 섰고, 스피커에서는 반주가 흘러나왔다. 교실에서는 제각기 말하던 아이들도 애국가와 교가를 부를 때면 같은 마디에서 숨을 쉬었다. 운동장에 그어진 흰 선이 몸의 자리를 정했다면, 노래는 그 자리에 선 사람들이 함께 움직일 시간을 정했다. 누군가에게는 소속감을 배운 기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주위에 맞추던 기억이었을 것이다. 같은 노래가 모두에게 같은 경험으로 남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산업 현장에서도 소리는 시간을 나눴다. 작업의 시작과 휴식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면, 서로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비슷한 시각에 손을 움직이거나 멈췄다. 기계가 돌아가는 공간에서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말로 전하기 어려운 지시도 소리 하나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 신호는 생산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면서,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데 필요한 약속이기도 했다. 소리의 의미는 그것을 내보낸 사람의 의도만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무엇을 경험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야구장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타석에 선 선수가 방망이를 고쳐 쥐는 동안 관중석 한쪽에서 응원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몇 줄에서만 들리던 소리가 옆자리로 번지고, 잠시 뒤에는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후렴을 부른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끝 음절만 따라 하며, 누군가는 조용히 경기를 본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참여하지 않아도 관중석의 리듬은 이어진다.
그 순간 노래는 설명을 대신한다. 옆 사람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지금 어느 편을 응원하는지는 알 수 있다. 함께 부르는 소리가 낯선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잠시 좁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같은 편끼리 가까워지는 힘은 상대편과의 경계를 선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속을 만드는 소리에는 언제나 그 바깥이 생길 수 있다.
경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출구로 흩어진다. 조금 전까지 같은 박자로 노래하던 이들이 서로 다른 버스에 오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함께 불렀다는 사실이 서로의 생각까지 같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잠시 한목소리가 되었던 사람들이 다시 제 목소리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균형을 생각하게 된다.
마을의 아침 방송과 학교의 교가, 일터의 신호와 관중석의 응원은 목적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소리가 사람들의 시간과 움직임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박자를 맞추며, 그 박자에서 잠시 벗어난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자리를 남겨 두는가.
소리는 사람 속으로 깊이, 빠르게 들어온다
마을의 아침 방송에서 관중석의 응원까지, 소리가 사람들의 박자를 맞추는 장면은 음악의 결속력을 논한 오래된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순자는 『순자』 「악론」에서 음악이 사람에게 깊이 스며들고 빠르게 변화시킨다고 보았다.
夫聲樂之入人也深,其化人也速。(부성악지입인야심,기화인야속。) “소리와 음악이 사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깊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빠르다.” — 『荀子』 「樂論」
『예기(禮記)』 「악기(樂記)」는 이 힘의 양면을 한 쌍의 문장으로 적었다. 음악은 사람을 어우러지게 하고 예는 구별을 세우되, 어느 한쪽이 지나치면 조화를 잃는다고 경계한 것이다.
樂者為同,禮者為異。同則相親,異則相敬。樂勝則流,禮勝則離。(악자위동,예자위이。동즉상친,이즉상경。악승즉류,예승즉리。) “음악은 같게 하고 예는 다르게 한다. 같으면 서로 친해지고 다르면 서로 존중한다. 음악이 앞서면 절도를 잃고 흘러가며, 예가 앞서면 사이가 벌어진다.” — 『禮記』 「樂記」
『예기』의 ‘다름’에는 신분과 역할의 구별이라는 맥락이 들어 있으므로, 이 구절을 현대의 다원주의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결속과 구별 가운데 어느 하나만 앞세울 때 생기는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새벽 확성기와 광장의 떼창을 같은 저울에 올려 보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플라톤이 『국가』 424c에서 다몬(Damon)의 말을 전하며 음악의 변화가 정치 질서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의 관심은 시민의 자유로운 표현보다 기존 질서의 유지에 가까웠다.
“음악의 방식은 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사회적 관습이 흔들리지 않고서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다몬이 그렇게 말하고, 나도 그렇게 믿는다.” — 플라톤, 『국가』 4권 424c (Shorey 영역 기준 번역)
근대의 사회과학은 이 힘에 이름을 붙였다. 에밀 뒤르켐은 1912년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리듬에 들어갈 때 일어나는 고양을 ‘집합적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 불렀다.¹² 역사가 윌리엄 맥닐은 1995년 『시간 속에서 함께 있기(Keeping Together in Time)』에서 춤과 군대 훈련처럼 몸을 같은 박자로 움직이는 일이 집단을 묶는다고 보고 이를 ‘근육적 결속(muscular bonding)’이라 했으며, 이 결속이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억눌린 집단이 연대를 얻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고 보았다.¹² 이 개념들만으로 각 운동의 성패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함께 노래하고 움직이는 일이 낯선 사람들을 연결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힘, 부르지 않을 자유
이제 패턴을 짚을 수 있다. 같은 노래를 같은 박자로 부르는 일은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신호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저항의 현장에서 연대의 표지였던 노래는 공식 기념식에 들어온 뒤, 국가가 무엇을 기억하고 인정할 것인가의 쟁점이 되었다.
5·18 기념식의 기록이 그 증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8년까지 정부 기념식에서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제창으로 불렸다.¹³ 2009년부터는 제창 대신 식전 행사나 합창 형식으로 바뀌었고, 5·18 단체들은 제창을 요구했다.¹³ 2013년에는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¹³ 2016년 5월에는 보훈처가 합창 때 참석자의 자율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¹³ 제창이 복원된 것은 2017년이고, 2022년에는 보수 정부의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창했으며, 2026년 기념식에서도 제창으로 마무리되었다.¹³ 2009년부터 2016년까지 8년 동안 같은 노래의 위치와 부르는 방식이 기념식의 쟁점이었다. 쟁점은 선율뿐 아니라, 국가가 이 노래를 어떤 위치에 놓고 참석자들이 어떻게 참여하도록 할 것인가에 있었다. 공식 제창을 요구하는 일과 개인에게 노래를 강제하는 일은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그 갈림길은 제창과 합창이라는 음악 형식에 있지 않다. 제창도 자발적이면 연대가 되고, 여러 성부의 합창도 지휘봉 아래에서는 통제가 될 수 있다. 가르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참여의 자발성이다. 함께 부르는 힘이 민주주의의 자산이 되려면, 부르지 않는 사람의 자리가 같은 광장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여러 성부가 서로 다른 선율을 맡으면서도 한 곡을 이루는 합창에서 우리는 차이를 지우지 않는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다만 그것은 비유이지 제도의 설계도는 아니다.
마을의 새벽 확성기, 파손된 워싱턴의 음향 장비, 학교 운동장의 스피커는 하나의 사실을 가리킨다. 소리의 통로를 쥔 쪽이 광장의 박자를 정한다. 통로가 독점되면 다른 목소리가 밀려날 위험이 커진다. 통로가 열려 있어도 누가 말하고 누가 배제되는지는 계속 살펴야 한다.
함께 부를 자유, 부르지 않을 자유
거리의 제창은 한국 민주주의가 자신을 드러낸 중요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였다. 민주화 이후에도 거리의 노래가 이어지는 지금, 한국 사회가 갈 방향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함께 부를 자유와 부르지 않을 자유를 함께 지켜야 한다. 순자가 짚은 소리의 힘은 어느 쪽 확성기에서도 작동한다. 다수가 부르는 노래라는 이유로 동참을 요구해서도, 권력이 불편해하는 노래라는 이유로 입을 막아서도 안 된다. 공동체의 성숙은 한목소리의 크기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 소리 곁에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의 자유까지 지켜지는지 살펴야 한다.
둘째, 시민의 요구가 제도 안에서 응답을 얻도록 해야 한다. 국회와 언론과 지방의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드러내고, 근거를 따져 공적 결정으로 연결할 책임이 있다. 목소리의 크기가 주장의 타당성을 대신할 수 없듯,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만으로 결정의 정당성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제도는 시민의 요구를 검토하고 그 판단을 설명해야 하며, 광장 역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질문과 검증을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소리의 통로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 끝까지 물어야 한다. 오늘날 방송 플랫폼과 추천 알고리즘은 무엇을 널리 들려주고 무엇을 시야 밖으로 밀어낼지에 관여한다. 통로가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 목소리의 다양성이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가 노출의 기준을 정하고, 어떤 목소리가 반복해서 선택되며, 배제된 사람에게는 이의를 제기할 길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확성기를 쥔 손이 보이지 않을수록, 그 권한과 책임은 더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을 둘러싼 논의는 이 원칙을 가장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사안이다.¹⁴ 동맹의 운용과 군 지휘체계, 장교 양성의 틀을 바꾸는 결정은 정권의 임기를 넘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속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명분이 군사적 준비를 대신할 수 없고, 개혁이라는 이름만으로 효과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전작권 전환은 위기 때 한국군이 어떤 능력으로 작전을 주도하고 한미 연합방위체제가 어떻게 작동할지를 검증해야 한다. 사관학교 통합은 합동성 강화라는 목표와 함께 각 군의 전문성을 어떻게 보존할지, 교육의 공백과 전환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설명해야 한다. 외교와 국방의 결정에는 기대한 성과뿐 아니라 판단이 빗나갔을 때의 대가까지 포함돼야 한다. 낙관적인 전망만으로 그 위험이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과정에서 군사 전문가의 우려를 기득권의 저항으로 밀어내거나, 시민의 질문을 진영의 언어로 재단한다면 검증은 설 자리를 잃는다. 정부는 추진할 책임과 함께 입증할 책임을 지며, 국회는 찬반의 구호를 넘어 준비와 대안을 따져야 한다. 국민의 안위가 걸린 결정일수록 충분히 묻고,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확인된 조건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정치의 시간표에 안보의 준비를 억지로 맞춰서는 안 된다.
확성기를 쥐었다는 사실이 판단의 옳음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진로를 바꾸려는 권력이라면 박수보다 질문을 먼저 견뎌야 한다. 정책이 실패했을 때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연단 위의 정치인만이 아니다. 경계에 선 장병과 일터에 있는 시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다. 그들의 안전을 담보로 서둘러 완성해야 할 정치적 구호는 없다.
* 참고할 말씀: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 사도행전 16:25
¹ 서울신문, 2002.06.23. 월드컵 스페인전 거리응원 보도 ; 경향신문, 2026.06.09. 이번 월드컵도 광화문서 ‘대~한민국’.
² 연합뉴스 보도(세계일보 게재), 2024.07.22.
³ 국가기록원, 새마을운동.
⁴ 경향신문, 2001.11.25. 보도.
⁵ Robert H. Jackson Center, Speer’s Final Statement (1946.8.31.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최후 진술).
⁶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소장품 ‘Volksempfänger’ 항목.
⁷ Afro, The 1963 March on Washington Got Off to a Rocky Start ; National Constitution Center, 10 fascinating facts about the I Have a Dream speech ; The New Yorker, Dream Songs: The Music of the March on Washington.
⁸ Highlander Research and Education Center ; American Heritage, We Shall Overcome.
⁹ SNCC Digital Gateway, 올버니 운동 항목.
¹⁰ NPR 방송 기록(1988), 버니스 존슨 리건 회고.
¹¹ Saporta Report, Desegregating an Entire Community: Albany Movement Takes Flight (Part 4).
¹² Émile Durkheim, 『Les formes élé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1912) ; William H. McNeill, 『Keeping Together in Time』(Harvard University Press, 1995).
¹³ 뉴스토마토, 2022 ; 서울신문, 2016 ; 노컷뉴스, 2026 ; 뉴데일리, 2016.05.16. 보훈처 ‘합창 시 참석자 자율의사 존중’.
¹⁴ 머니투데이, 2026.08.05. 국방부 ‘올해 전작권 전환 목표연도 설정…강력한 연합방위체계 작동’ ; 다음 뉴스, 2026.07.01. 안규백 ‘사관학교 통합 등 국방 개혁 반드시 완수’…전군지휘관회의(종합) ; 다음 뉴스, 2026.07.15. 국방부, 대전 자운대에 통합사관학교 건립 유력…‘4년제’ 목표(종합).
철학 인용 출처: 『荀子』 「樂論」 ; 『禮記』 「樂記」 ; Plato, Republic 4.424c, trans. Paul Shorey (Loeb Classical Library) — Perseids 영역 본문. 국문 번역은 Watchman의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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