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속의 입 모양

19세기 영국 랭커셔 면직물 공장에서 직기 사이에 서서 입 모양을 읽으며 대화하는 두 여성 노동자
직기의 굉음 속에서 서로의 입술을 읽던 랭커셔의 여성 직공들. 소음에 묻힌 대화를 입 모양과 몸짓으로 이어 가던 모습을 재현한 이미지.

소음 속의 입 모양

랭커셔의 직기에서 구로공단의 미싱까지, 노동자의 말은 어디에 닿았는가

2026.10.31 · 역사 · 한국현대사 · Watchman


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자란 언어

19세기 영국 랭커셔의 방직 공장에는 목소리가 필요 없는 언어가 있었다. 동력 직기 수백 대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작업장에서는 바로 옆 사람에게 외쳐도 소리가 닿지 않았다. 직공들은 과장된 입 모양과 손짓을 섞어 말하는 방식을 만들어 냈고, 이를 ‘미마우(mee-maw)’라 불렀다.¹ 공장마다 그곳만의 방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 전직 직공은 처음 사흘 동안은 굉음밖에 들리지 않다가, 그 뒤로는 보통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² 소음이 목소리를 가로막자, 사람들은 서로의 입술과 손짓에서 말을 찾았다.

소음에 둘러싸인 노동이라는 조건은 한국에도 있었다. 1970년대 구로공단의 봉제 공장에는 십대 후반에서 스무 살 안팎의 여성들이 미싱 앞에 앉아 있었다. 복원된 쪽방의 해설에 따르면, 그들은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방에 예닐곱 명이 교대로 몸을 눕혔다.³

앞선 글에서 우리는 통금 사이렌이 한국인의 밤을 조율한 방식을 런던 대공습의 사이렌과 나란히 놓고 살펴보았다. 사이렌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소리였다면, 이번에 따라갈 소리는 일터 한복판에서 솟아 몸속까지 들어앉은 소리다. 소리가 노동을 지배할 때 사람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끝내 지켜내는가.

공장과 기숙사에는 세 종류의 소리가 있었다. 기계가 내는 소리,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다. 소음은 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말의 모양을 바꾼다. 그 모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따라가 본다.

기계가 소리를 정하고, 권력이 음악을 틀었다

1850년경 랭커셔의 직기는 75만 대를 넘었고, 직공은 하루 최대 열두 시간, 주 6일을 일했다.⁴ 난청이 흔해서 직공의 귀먹음을 가리키는 ‘천 귀(cloth ears)’라는 표현까지 생겼다.⁵ 이 문제를 연구한 한 영국 연구자는 정부와 고용주가 20세기 후반이 되도록 직공의 청력 보호에 거의 손을 쓰지 않았다고 정리한다. 그가 인터뷰한 직공 가운데 귀 보호구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⁶

20세기에 들어 국가가 소음을 다루는 방식은 달라진다.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위에 얹는 방식이었다. 1940년 6월 23일, 2차 대전의 한복판에서 BBC는 공장 노동자를 위한 방송 「일하는 동안의 음악(Music While You Work)」을 시작했다. 군수품 생산을 끌어올리려는 정부의 구상에서 나온 프로그램으로, 하루 두 차례 경쾌한 음악을 공장에 내보냈다. 일부 공장은 방송 뒤 한 시간가량 생산량이 12.5~15% 늘었다고 보고했다.⁷ 그 수치가 음악의 효과인지는 오늘의 연구로도 분명하지 않다. 방송은 1967년까지 이어졌다. 음악은 소음을 없애지 않았다. 소음 위에 박자를 얹었다.

한국의 공단에서는 같은 구조가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구로의 한국수출산업공단은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조성되어 1970년대 수출의 10%가량을 맡았다. 1966년 12월 공단에 입주한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에 수출된 물건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TV 수상기였다.⁸ 공단은 소리를 내는 기계를 만들어 팔았고, 그 도시의 노동자들은 가장 큰 소리 곁에서 가장 작은 소리를 찾아야 했다.

소음의 값은 몸이 치렀다. 1976년 국내 학술대회에 보고된 조사에서, 103~105dB(A)의 기계 소음에 노출된 18~25세 여성 직공 184명 가운데 39.7%가 소음성 난청을 보였다. 그 증가는 입사 1~2년 사이에 가팔랐다.⁹ 5년 앞선 1971년에는 서울의 한 직물 공장 종업원 2,235명을 조사한 의학 논문이, 국내 산업 현장에 소음 방호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¹⁰

라디오가 이 소음 속에서 어떤 몫을 했는지 보여 주는 노동자의 직접 증언은 이 글이 확보하지 못했다. 확인되는 것은 두 가지다. 1969년 3월 MBC 「별이 빛나는 밤에」가 시작되며 청취자의 엽서가 전파를 타는 심야 방송 문화가 자리 잡았다.¹¹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의 ‘문화방’에는 라디오와 카세트가 놓여 있고, 낮에는 공장 밤에는 야학이라는 일과가 재현되어 있다.¹² 이 둘로 라디오의 영향을 재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연 방송이 작동하는 구조는 따져 볼 수 있다.

사연 코너의 구조는 단순하다. 엽서를 쓴 사람의 이름과 사정이 누군가의 목소리로 불린다. 기계 앞에서는 생산량으로 셈해지던 사람이 그 몇 분 동안은 이름으로 불린다. 소음이 사람을 신호로 줄여 놓는 곳에서, 사연은 사람을 다시 문장으로 되돌린다.

사연을 읽는 방송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자리가 잠시 뒤바뀐다. 진행자는 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하루를 대신 전한다. 청취자는 자신의 방에 앉아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듣는다. 엽서 한 장에 작업장의 소음을 줄일 힘은 없지만, 그 소음 속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할 자리는 있다. 낮 동안 무엇을 얼마나 만들었는지로 기록되던 삶에, 그날 무엇이 서러웠고 누구를 그리워했는지를 말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랭커셔의 직공들이 서로의 입 모양을 읽던 장면도 여기서 다시 떠오른다. 한 사람은 상대가 알아볼 수 있도록 입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은 그 입술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라디오 사연을 읽는 일과 입술을 읽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두 장면 모두 듣는 사람의 수고를 필요로 한다. 소음 속에서 대화가 이어지려면 말하는 방식만 달라져서는 부족하다. 누군가는 하던 일을 잠시 늦추고,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주의를 내어 주어야 한다. 기계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지만, 사람은 서로를 기다려 줄 수 있다.

기계가 내는 소리, 위에서 틀어 주는 소리,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 공장의 하루에는 이 세 층이 겹쳐 있었다. 기계의 속도와 방송의 시간표 사이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주고받을 틈을 찾아야 했다. 그 작은 틈에서 노동자는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청취자는 낯선 사람의 하루를 들었다.

소리가 넘칠 때, 듣는다는 것

노자는 이천 년도 더 전에 소리의 과잉이 귀에 하는 일을 한 줄로 적었다.

五音令人耳聾。(오음영인이롱。) “다섯 가지 소리는 사람의 귀를 멀게 한다.” (『도덕경』 12장)¹³

오음은 궁·상·각·치·우, 곧 아름다운 소리를 이루는 다섯 음이다. 귀를 멀게 하는 것이 소음만이 아니라 과잉 자체라는 뜻이다. 방직 공장의 굉음과 그 위에 얹힌 경쾌한 음악이 한 문장 안에 함께 들어오는 이유다.

캐나다의 작곡가 머리 셰이퍼(R. Murray Schafer)는 1977년 『세계의 조율』에서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개념을 널리 알렸다. 개별 소리가 또렷이 구별되는 환경을 하이파이, 과밀한 소음 속에 개별 신호가 묻히는 환경을 로파이라 불렀고, 산업혁명 이후 로파이 환경이 넓어졌다고 보았다.¹⁴ 이 틀로 보면 방직 공장은 로파이의 극단이다. 랭커셔의 직공들이 입 모양이라는 가장 작은 신호로 물러난 것은 자연스러운 적응이었다.

시몬 베유는 1934년부터 이듬해까지 철학 교사의 자리를 잠시 떠나 파리 근교의 공장에서 직접 일했다. 그가 남긴 문장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주의에 관한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관대함의 가장 드물고 순수한 형태이다.”¹⁵

듣는다는 것은 소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소리의 주인에게 주의를 건네는 일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음량을 쥔 자, 그리고 들어주는 자

세 소리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패턴이 드러난다. 기계음은 사람의 말을 짧게 만든다. 소음 속의 말은 길게 이어 갈 수 없어서 입 모양과 손짓이라는 짧은 신호로 줄어든다.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는 그렇게 짧아진 사람들에게 박자를 준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 곧 사연과 노래와 구호는 누군가 들어줄 때에만 소리가 된다.

여기서 두 가지가 구조로 남는다. 첫째, 음량을 쥔 쪽이 의제를 쥔다. 직기의 속도와 방송의 편성표를 정한 쪽이 공장의 소리 지형을 정했다. 둘째, 말이 성립하는 조건은 발화가 아니라 청취다. 읽어 줄 사람이 없는 엽서는 종이에 그친다. 들어줄 통로가 열려 있어야 아래의 소리는 사연이 되고, 닫혀 있으면 소음으로 분류된다.

이 패턴은 2026년 10월의 국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의 고성과 막말을 담은 짧은 영상이 SNS에서 퍼지며 ‘쇼츠 국감’이라는 말이 나왔고, 공방이 길어진 만큼 피감기관을 감사할 시간이 줄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¹⁶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지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랭커셔의 직공은 소음 때문에 입 모양으로 말했고, 오늘 우리는 소음이 만든 입 모양만 잘라 돌려 본다. 소리가 커질수록 말은 짧아지고, 말이 짧아질수록 들을 이유는 줄어든다.

기계 앞에서 잃은 귀, 제도 앞에서 기다리는 말

랭커셔의 직공들에게 귀 보호가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은 과거의 무지로만 남지 않는다. 공장은 생산량을 날마다 셌지만, 직공의 귀에 쌓인 손실은 훨씬 늦게야 공장의 책임으로 다루어졌다. 직기가 멈추면 비용은 곧바로 계산되었고, 귀에 남은 손실은 오랫동안 개인의 몸에 맡겨졌다.

2026년 한국에서도 노동자가 자신의 청력 손상과 일의 관계를 인정받는 과정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확정된 소음성 난청 산재 소송 174건 가운데 공단이 패소한 사건은 62건, 35.6%였다.¹⁷ 전체 불승인 사건이 아니라 소송으로 다투어져 확정된 사건의 결과이고, 법원의 패소 확정판결만 센 수치라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에서 판단이 이만큼 뒤집힌다면 불복 절차를 안내하는 데서 행정의 책임이 끝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단 자체 분석에서도 패소 원인은 법령 해석의 차이(50.2%)와 증거 판단의 차이(49.8%)로 거의 반반이었다. 어떤 기준과 증거 판단이 반복해서 어긋나는지 살피고, 다음 신청자가 같은 다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고쳐야 한다.

소음성 난청 산재 신청은 2023년 1만 7,182건에서 2025년 2만 8,652건으로 늘었다. 그런데 청력검사 특별진찰에만 평균 234일, 결정까지는 지난해 기준 평균 374일이 걸렸다.¹⁸ 공단은 올해 7월부터 전국 83개 병·의원을 청력검사 특진의료기관으로 지정해 검사 접근성을 높였다. 필요한 변화다. 이제 확인할 것은 기관의 수 다음에 오는 결과다. 검사 대기가 실제로 줄었는지, 보상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졌는지, 법원과의 판단 차이를 줄일 기준이 마련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신청을 받았다는 사실과 신청자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 사이에는 행정이 끝까지 책임져야 할 과정이 있다.

국정감사의 질문도 그 과정에 닿아야 한다. 기관장이 개선을 약속했다면 무엇을 언제 바꾸겠다는 것인지 기록하고, 다음 감사에서 이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질의 장면은 짧은 영상으로 남길 수 있지만, 그 약속의 이행은 여러 달에 걸쳐 추적해야 드러난다. 보상을 기다리는 사람의 생활은 영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듣는 제도인지는 접수한 목소리의 수와 함께, 그 목소리에 답하기까지 걸린 시간으로 드러난다.

랭커셔의 직공들은 기계 소리에 묻힌 말을 입 모양으로 건넸다. 오늘의 노동자는 자신이 일한 공장과 작업 기간, 검사 결과를 서류에 담아 건넨다. 두 시대의 조건은 다르지만, 상대가 시간을 들여 살피지 않으면 뜻이 닿지 않는다는 점은 같다. 청력을 다친 사람이 같은 노동 이력을 거듭 설명하고 끝내 법정에서 그 관계를 다투어야 한다면, 제도는 그에게 또 하나의 부담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방향은 소리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접수된 말이 기준과 기간의 개선으로 돌아오는 경로를 만드는 데 있다.

공장은 노동자의 시간을 모아 생산량으로 기록했다. 이제 노동자가 그 시간 동안 몸에 남은 손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 말을 받아 든 사회는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답하고 있는가. 기계가 멈춘 시간에는 곧바로 비용을 매기면서, 사람이 보상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까지 개인의 사정으로 남겨 둘 것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이 기다림의 길이를 적어 두는 이유다.


* 참고할 말씀: ‘이 가난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 시편 34:6


¹ Mee-mawing(R. Freethy, Memories of the Lancashire Cotton Mills, 2008 인용); Science Museum Group, Lancashire Loom.

² phrases.org.uk, “Cloth ears” (전직 직공 회고 인용).

³ 서울시 미디어허브,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금천 순이의 집) 기사.

⁴ Science Museum Group, Lancashire Loom.

⁵ phrases.org.uk, “Cloth ears”.

⁶ Gill Crawshaw, 영국 장애사 달(UK Disability History Month) 연구 노트(방직공 구술).

⁷ BBC 보도(1940.6.23 방송 개시, 12.5~15% 보고 인용); University of Huddersfield Press 자료.

⁸ 국가기록원 주제전 「구로공단」.

⁹ 대한기관식도과학회 학술대회논문집(1976), 「소음성난청에 대한 청각학적 고찰」.

¹⁰ 이희용, 「소음성난청의 임상청각학적 고찰」, 연세대학교 의학과 석사논문(1971).

¹¹ MBC 「별이 빛나는 밤에」(1969.3.17 첫 방송).

¹² 서울시 미디어허브,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기사.

¹³ 『도덕경』 12장.

¹⁴ R. Murray Schafer, The Tuning of the World(1977).

¹⁵ Simone Weil, 조 부스케에게 보낸 1942년 편지.

¹⁶ 연합뉴스 2026.10 국정감사 관련 보도(‘쇼츠 국감’ 등).

¹⁷ 매일노동뉴스 2026.9.11 「난청 산재 불승인 36% 법원에서 뒤집혔다」; 더퍼블릭, 경인매일 동일 자료 보도.

¹⁸ 근로복지공단 보도자료 2026.6.28(정책브리핑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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