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없는 자리에서도 주께서 움직이신다

창세기 12–13장 아브람의 여정 지도. 우르에서 하란과 가나안을 거쳐 네게브로 이동한 경로와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벧엘로 돌아온 경로를 색상별로 표시했다.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람은 네게브를 거쳐 벧엘과 아이 사이의 제단으로 돌아온다. 초록색은 이번 본문의 왕복 여정을 나타내며, 이동 경로와 지점은 이해를 돕기 위한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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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10–20 — 기록 없는 자리에서도 주께서 움직이신다

내려감과 올라옴 사이에 놓인 ‘누이’라는 한마디

제16편 · 2026.11.03 · Watchman


약속받은 땅에 기근이 들 때, 아브람은 어디로 내려가는가

12:9절은 아브람이 남쪽으로 계속 나아가는 모습으로 끝났다. 12:10절은 그 걸음 앞에 기근을 놓는다. 앞서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는 말씀(12:7절)을 들은 사람이 바로 그 땅에서 굶주림을 만난다. 약속받은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아브람은 어디로 가고,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가지고 돌아오는가. 이번 글은 12:10–20절을 따라 이 물음을 살핀다.

12:10절의 ‘내려감’(야라드, יָרַד)은 본문 바로 다음인 13:1절의 ‘올라옴’(알라, עָלָה)과 짝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 사이에서 장면의 중심이 세 번 바뀐다. 아래 표는 이를 정리한 것이다.

절장면움직이는 쪽
12:10–13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가며 사래에게 말한다아브람
12:14–16이집트 사람들이 보고 파라오의 집이 사래를 데려간다이집트 사람들, 파라오
12:17–20주께서 재앙을 내리시고 파라오가 아브람을 불러 꾸짖고 보낸다주, 파라오

흠정역은 12:10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1

10 그 땅에 기근이 있었으므로 아브람이 이집트로 내려가 거기 체류하려 하였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더라.

10 And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and Abram went down into Egypt to sojourn there; for the famine was grievous in the land.

— 창세기 12:1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서술자가 이 절에서 밝히는 이집트행의 이유는 심한 기근이다. 이 절에는 주의 말씀도 아브람의 부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에서 ‘기근’(라아브, רָעָב)이라는 명사와 ‘거류하다’(구르)라는 동사 어근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12:10절이다.2 기근이 ‘무겁다’(카베드, כָבֵד)는 표현은 뒤에서도 되풀이된다.

주의 이름은 여덟 절을 건너 12:17절에서야 다시 나온다

12:11절은 창세기에서 아브람의 직접 발화가 처음 기록되는 대목이다. 앞선 12:1절과 12:7절에서는 주께서 말씀하셨다.3 흠정역은 그 말을 12:11–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옮긴다.

11 그가 이집트에 가까이 가서 거기로 들어가려 할 때 자기 아내 사래에게 이르되, 이제 보라, 당신은 보기에 아름다운 여인임을 내가 아노라.

11 And it came to pass, when he was come near to enter into Egypt, that he said unto Sarai his wife, Behold now, I know that thou art a fair woman to look upon:

— 창세기 12: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2 그러므로 이집트 사람들은 당신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 여인은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되 당신은 살려 두리니

12 Therefore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at they sha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but they will save thee alive.

— 창세기 12:1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3 원하건대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으로 인해 내 일이 잘되고 당신으로 인해 내 혼이 살리라, 하니라.

13 Say, I pray thee, thou art my sister: that it may be well with me for thy sake; and my soul shall live because of thee.

— 창세기 12: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아브람의 말은 사래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12:11절),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예상하고(12:12절), 사래에게 부탁하는 순서로 이어진다(12:13절). 아브람이 밝힌 목적은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고 목숨을 보전하는 데 있다(יִיטַב לִי, וְחָיְתָה נַפְשִׁי). 두 표현 모두 자신이 얻을 이익을 앞세우며, 그 수단으로 사래의 말을 요청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범위에서 사래의 말은 한마디도 기록되지 않으며, 창세기에서 사래가 직접 말하는 첫 기록은 16:2절이다.3 다만 발언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사래가 동의했는지 거부했는지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집트 안의 장면은 12:14절부터 열린다. 흠정역은 12:14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4 아브람이 이집트로 들어갔을 때 이집트 사람들이 그 여인을 보되 그녀가 심히 아름다운 것을 보았으며

14 And it came to pass, that, when Abram was come into Egypt, the Egyptians beheld the woman that she was very fair.

— 창세기 12:1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보다’(라아, רָאָה)는 이 범위에서 세 번 나온다. 12:12절의 예고에 한 번, 이루어진 일로 12:14절과 12:15절에 두 번이다. 보는 일은 예고대로 일어나지만, 죽이는 일(하라그, הָרַג)은 12:12절의 예고에만 있고 이 범위 어디에도 일어났다고 적히지 않는다.3 본문에는 아브람을 죽이려는 행동이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그가 아내라는 관계를 밝혔을 경우에도 안전했으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흠정역은 12:15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5 파라오의 통치자들도 그녀를 보고 파라오 앞에서 그녀를 칭찬하였더라. 사람들이 그 여인을 파라오의 집으로 데려가매

15 The princes also of Pharaoh saw her, and commended her before Pharaoh: and the woman was taken into Pharaoh’s house.

— 창세기 12:15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칭찬하였다’(와예하렐루, וַיְהַלְלוּ)는 창세기에서 이 절에만 나오고 ‘파라오’도 이 절이 처음이다. 히브리어 문장은 사래를 데려간 행위자를 직접 밝히지 않는다. 마지막 동사 ‘와투카흐’(וַתֻּקַּח, 데려가졌다)는 ‘취하다’(라카흐, לָקַח)의 수동형이며, 이 문법만으로 사래의 의사나 강제의 방식까지 추론할 수는 없다.4

흠정역은 12:16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6 파라오가 그녀로 인해 아브람을 선대하므로 그가 양들과 소들과 수나귀들과 남종들과 여종들과 암나귀들과 낙타들을 얻었더라.

16 And he entreated Abram well for her sake: and he had sheep, and oxen, and he asses, and menservants, and maidservants, and she asses, and camels.

— 창세기 12: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2:16절은 아브람이 얻은 가축과 종들을 일곱 항목으로 열거하며, 이 가운데 소·나귀·여종·암나귀·낙타를 가리키는 다섯 낱말은 창세기에서 이 절이 첫 용례이다.5 이 목록에는 가축뿐 아니라 남종과 여종도 포함된다. 고대의 소유 목록을 기록한 서술과 그 제도에 대한 윤리적 승인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12:13절에서 아브람이 바란 말도 이 절에서 되풀이된다. ‘잘되다’(이타브)는 ‘선대하다’(헤이티브, הֵיטִיב)로, ‘당신으로 인해’는 ‘그녀로 인해’(바아부라, בַּעֲבוּרָהּ)로 이어지며, 두 절은 같은 어근과 같은 전치사를 쓴다.

12:10–20절에서 주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17절이다. 흠정역은 12:17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7 주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로 인해 파라오와 그의 집에 큰 재앙들을 내리시매

17 And the LORD plagued Pharaoh and his house with great plagues because of Sarai Abram’s wife.

— 창세기 12: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주의 이름은 12:8절을 끝으로 12:9–16절의 여덟 절에서 나오지 않다가 12:17절에서 다시 나온다. 이 범위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낱말은 이 ‘주’(יְהוָה) 하나뿐이며, 하나님의 말씀도 제단도 주를 부르는 장면도 없다. ‘부르다’(카라, קָרָא)는 12:18절에서 파라오가 아브람을 부를 때 한 번 나올 뿐이다.6

그런데도 12:17절은 주를 행위자로 세운다. ‘치셨다’(와이나가, וַיְנַגַּע)는 창세기에서 이 어근의 강조형으로는 이 절뿐이고, 재앙의 까닭은 ‘아브람의 아내 사래 때문’(알 데바르 사라이 에셰트 아브람, עַל דְּבַר שָׂרַי אֵשֶׁת אַבְרָם)으로 적힌다. 20:18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오며, 본문은 파라오가 이 까닭을 어떻게 알았는지 적지 않는다.6

흠정역은 12:18–19절의 파라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8 파라오가 아브람을 불러 이르되, 네가 내게 행한 이 일이 무엇이냐? 어찌하여 그녀가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8 And Pharaoh called Abram, and said, What is this that thou hast done unto me? why didst thou not tell me that she was thy wife?

— 창세기 12:1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9 네가 어찌하여, 그녀는 내 누이라, 하고 말하여 내가 그녀를 내게 데려가 아내로 삼을 뻔하였느냐? 그러므로 이제 네 아내를 보고 그녀를 데리고서 네 길로 가라, 하며

19 Why saidst thou, She is my sister? so I might have taken her to me to wife: now therefore behold thy wife, take her, and go thy way.

— 창세기 12:1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파라오의 말에는 세 물음과 하나의 명령이 있고, 아브람의 대답은 기록되지 않는다. ‘취하다’는 이 장면에서 12:15절의 ‘데려가졌다’, 12:19절의 ‘내가 데려왔다’(와에카흐, וָאֶקַּח), 같은 절 끝의 ‘데려가라’(카흐, קַח)로 형태가 바뀌고, 바로 뒤에 ‘가라’(와레크, וָלֵךְ)가 붙는다.4

흠정역은 12:20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20 파라오가 그에 관하여 자기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니 그들이 그와 그의 아내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보내었더라.

20 And Pharaoh commanded his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and his wife, and all that he had.

— 창세기 12:2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2:20절에서 파라오는 ‘사람들’(아나쉼, אֲנָשִׁים)에게 명령하고, 그들이 아브람과 그의 아내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보낸다’(와예샬레후, וַיְשַׁלְּחוּ). 12:15–20절의 서술에서는 아브람이 직접 행동하는 모습이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아브람이 스스로 움직이는 동사는 13:1절의 ‘올라오다’(와야알, וַיַּעַל)에서 다시 나온다.

기근과 내려감은 요셉 이야기에서, ‘누이’라는 말은 20장과 26장에서 되울린다

12:10절의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וַיְהִי רָעָב בָּאָרֶץ)라는 문장은 26:1절에 같은 꼴로 나오고, 26:1절은 그 기근이 아브라함 때의 기근과는 별개의 사건임을 밝힌다. 26:2절에서 주께서 이삭에게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시지만, 12:10–20절에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지 않다. 46:3–4절에서 주께서 야곱에게 함께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게 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에는 ‘내려가다’(אֵרֵד)와 ‘올라오다’(אַעַלְךָ)가 짝으로 나온다. ‘기근이 무겁다’는 말은 43:1절, 47:4절, 47:13절에도 있고, ‘거류하려고’(라구르, לָגוּר)는 요셉의 형들이 파라오에게 한 말(47:4절)에도 나온다.7

‘누이’라는 말을 둘러싼 일화는 20:1–18절과 26:1–11절에도 있다. 세 일화를 견주면 아래 표와 같다.8

항목12:10–2020:1–1826:1–11
부부아브람과 사래아브라함과 사라이삭과 리브가
왕이집트의 파라오그랄의 아비멜렉그랄의 아비멜렉
두려움이 적힌 방식아브람의 말에서 드러남(12:12절)아브라함이 나중에 설명함(20:11절)서술자가 ‘두려워하였다’고 적음(26:7절)
여인이 왕의 집으로 옮겨짐옮겨짐(12:15절)옮겨짐(20:2절)기록되지 않음(26:8–10절)
왕이 알게 된 경로적히지 않음하나님이 꿈에서 말씀하심(20:3절)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봄(26:8절)
왕의 꾸짖음마 조트 아시타 리(12:18절)마 아시타 라누(20:9절)마 조트 아시타 라누(26:10절)
주의 개입재앙(12:17절)태를 닫으셨다가 아브라함의 기도로 고치심(20:17–18절)재앙 서술은 없고 이삭에게 복을 주심(26:12절)
뒤에 얻은 것가축과 종(12:16절)가축과 종(20:14절)농사와 가축과 종(26:12–14절)

세 일화에는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는 행동과 왕의 추궁이 공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인이 왕의 집으로 옮겨지는지, 위험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는 서로 다르다. 20:12–13절에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아버지만 같은 누이임을 밝히고 가는 곳마다 그렇게 말하도록 일러 두었다고 설명하는데, 12:11–13절에는 이런 설명이 없다. ‘이것이 무슨 일이냐’(מַה זֹּאת עָשִׂיתָ) 꼴의 물음은 창세기에서 3:13절, 12:18절, 26:10절, 29:25절 네 곳에 나온다.

12:10–20절의 줄거리는 출애굽 이야기와 낱말 수준에서도 겹친다. 재앙을 뜻하는 낱말 ‘네가’(נֶגַע)는 출애굽기 전체에서 11:1절에 한 번 나오며 거기서도 ‘파라오’와 함께 쓰이고, 주께서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보내리라’고 하신다. 창세기 12:19절의 ‘카흐 와레크’는 출애굽기 12:32절에서 복수 명령 ‘케후 … 와레쿠’(קְחוּ … וָלֵכוּ)로 되울리고, 그 절은 창세기 12:16절처럼 양 떼와 소 떼를 함께 말한다. 창세기 13:2절의 ‘가축에 매우 풍부하다’(כָּבֵד מְאֹד בַּמִּקְנֶה)와 출애굽기 12:38절의 ‘가축이 매우 많았다’(מִקְנֶה כָּבֵד מְאֹד)는 같은 세 낱말로 이루어져 있고, 출애굽기 12:35절에는 은 그릇과 금 그릇이 나온다.9 이 겹침은 낱말과 줄거리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며, 12:10–20절 자체가 출애굽을 가리킨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12:20절의 보냄은 13:1절의 올라옴으로 이어진다. 13:1절은 아브람이 아내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과 롯과 더불어 이집트에서 올라왔다고 적는다. 흠정역은 13:2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2 아브람에게는 가축과 은과 금이 심히 풍부하였더라.

2 And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in silver, and in gold.

— 창세기 13: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풍부하였더라’로 옮긴 낱말은 히브리어 형용사 ‘카베드’이다. 창세기 12:10절과 13:2절은 같은 형용사를 서로 다른 문맥에서 사용하여, 기근에는 심각함을, 아브람의 재산에는 풍부함을 나타낸다. 그 대비가 의도된 문학적 장치인지는 본문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10 13:3–4절은 아브람이 처음 장막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고 적는다. 흠정역은 13:4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4 즉 제단이 있던 곳에 다다랐는데 그 제단은 그가 거기서 처음에 만든 것이었다. 아브람이 거기서 주의 이름을 불렀더라.

4 Unto the place of the altar, which he had made there at the first: and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 창세기 13: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와이크라 샴 아브람 베솀 아도나이’(וַיִּקְרָא שָׁם אַבְרָם בְּשֵׁם יְהוָה)는 12:8절의 ‘주의 이름을 불렀다’에 ‘거기서’와 아브람의 이름이 끼어든 꼴이다.10 제단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12:10–20절에 나타나지 않다가 13:4절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는 서술의 공백이며 실제 신앙생활의 중단을 뜻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검토한 신약 인용 목록에서는 창세기 12:10–20절의 명시적 직접 인용을 확인하지 못했다.11 다만 한 목록에 항목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암시와 주제적 연결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창세기 12장에서 신약이 인용하는 곳으로 알려진 것은 12:1절(사도행전 7:3절)과 12:3절(갈라디아서 3:8절)이며, 갈라디아서 3:16절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주어진 약속을 그리스도와 연결한다. 낱말 수준의 접점은 하나 있다. 칠십인역은 12:10절의 ‘거류하다’를 ‘파로이케사이’(παροικῆσαι)로 옮겼고, 히브리서 11:9절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파로이케센’(παρῴκησεν, 나그네로 살았다)고 적는다. 두 구절은 거류를 나타내는 같은 동사를 사용하지만 장소와 서술 목적이 다르므로 직접적인 인용 관계를 입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히브리서 11:8–19절의 아브라함 소개에는 이집트 일화가 들어 있지 않다. 마태복음 2:13–15절의 예수님의 이집트 피신과 귀환을 함께 떠올릴 수는 있으나, 마태복음이 명시적으로 인용하는 본문은 호세아 11:1절이다. 아브람의 이집트행을 예수님의 사건에 대한 직접 예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브람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지, 12:19절을 어떻게 옮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첫째 쟁점은 이집트행과 ‘누이’라는 말을 잘못으로 볼 것인가이다. 12:10–20절에는 서술자가 아브람의 행동을 악하다거나 옳다고 평가하는 낱말이 없고, ‘두려워하다’도 나오지 않아 두려움은 12:12절의 말에서 짐작될 뿐이다.3

중세 유대 주석가 라므반은 아브람이 뜻하지 않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았다. 아내를 죄와 위험에 노출되게 한 것과 기근 때 약속의 땅을 떠난 것이 라므반이 꼽은 두 잘못이며, 그는 후손의 이집트 체류를 이 사건의 결과로 설명한다. 이는 라므반의 해석이며 본문 자체의 선언은 아니다.12 반면 이를 소개한 2차 자료에 따르면, 란은 큰 죄였다면 아브라함이 20장에서, 이삭이 26장에서 되풀이했겠느냐고 설명한다. 조나단 색스의 견해로 소개되는 바로는, 토라가 인물의 약점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이 오히려 그들의 위상을 높인다.

이 쟁점은 12:10–20절 안에서 닫히지 않는다. 이삭에게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시는 26:2절과, 가는 곳마다 누이라고 말하도록 일러 두었다는 20:13절을 얼마나 무겁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둘째 쟁점은 12:19절의 ‘와에카흐’(וָאֶקַּח)이다. 흠정역과 KJV는 ‘삼을 뻔하였느냐’(so I might have taken her)로 옮겨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적고, NIV는 ‘내가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so that I took her to be my wife)로 옮긴다. 히브리어 본문이 적은 것은 내가 그녀를 내게 아내로 데려왔다는 서술까지이다. 12:15절은 사래가 파라오의 집으로 데려가졌다고 적고 12:17절은 재앙을 적지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지 않는다. 20:4절은 아비멜렉이 사라에게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적는데, 12장에는 그런 서술이 없다.13 번역 차이에는 동사의 문맥적 해석과 사건 진행에 대한 판단이 함께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아내로 데려오는 일과 성적 관계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마태 헨리는 이 일을 시험받은 믿음의 넘어짐으로 풀고 출애굽과 견주었다

후대에 제시된 해석을 하나 덧붙인다. 영국의 비국교도 목사 마태 헨리(1662–1714)는 《구약·신약 주해》에서 12:10–13절을 다루며 이집트행과 ‘누이’ 발언을 나누어 평가했다. 그는 기근을 아브람의 믿음을 시험하는 일로 보고, 이집트에 양식이 있었던 것은 섭리로, 아브람이 고향 쪽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칭찬할 일로 풀었다. 반면 ‘누이’라는 말은 반쪽 진실이며 그 밑에 두려움과 불신이 있었다고 비판했고, 하나님이 두 번 나타나신 사람도 이렇게 넘어지는데 다른 사람은 어찌 되겠느냐는 탄식을 덧붙였다. 12:14–20절에서는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나오는 장면을 기근으로 내려가 재앙으로 풀려 부유하게 나온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견주었다.14 이는 후대의 독자가 본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여 주는 사례이며, 본문 자체의 설명과는 구분된다. 앞서 살핀 해석이나 아래 정리를 입증하는 근거로 삼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 사람의 판단이 드러나고 주의 개입이 뒤따른다고 풀어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본문에서 직접 확인되는 사항을 ‘관찰’, 그 배열에서 이끌어 낸 해석을 ‘추론’, 본문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가능성을 ‘사변’으로 구분한다.

어휘·구절·주제내용판단 구분
주의 이름12:8절 뒤 12:9–16절에는 없고 12:17절에 한 번 나옴. 이 범위에 하나님의 말씀, 제단, 주를 부르는 장면은 없음관찰
아브람과 사래의 말12:11–13절이 아브람이 말하는 창세기 첫 기록이며 이 범위의 유일한 말. 사래의 말은 기록되지 않음관찰
‘보다’와 ‘죽이다’보는 일은 12:12절의 예고대로 12:14–15절에서 일어나고, 죽이는 일은 12:12절의 예고에만 있음관찰
‘이타브’와 ‘헤이티브’12:13절의 바람과 12:16절의 결과가 같은 어근과 같은 전치사로 적힘관찰
‘취하다’(라카흐)12:15절 수동, 12:19절의 ‘내가 데려왔다’와 ‘데려가라’관찰
재앙‘치다’의 강조형과 ‘재앙들’은 창세기에서 12:17절뿐, 까닭 표현은 20:18절에도 있음관찰
아브람의 모습12:15–20절의 서술에서 아브람이 직접 행동하는 모습은 전면에 나오지 않고 13:1절의 ‘올라오다’에서 다시 움직임관찰
‘카베드’12:10절의 기근, 13:2절의 아브람, 43:1; 47:4; 47:13절의 기근관찰
기근과 내려감12:10절, 26:1–2절, 46:3–4절의 같은 틀관찰
출애굽 서사와 겹치는 낱말네가(출 11:1), 보내다, 카흐 와레크(출 12:32), 가축과 은·금(출 12:35, 12:38)관찰
12:10–20절의 짜임이집트행에 대한 별도의 지시와 부르짖음이 기록되지 않은 자리에서 주께서 먼저 움직이시는 구조로 볼 여지추론
12:17절과 12:3절아브람의 아내를 데려간 쪽에 재앙이 내리는 장면으로 12:3절의 틀과 닮음추론
출애굽 서사와의 겹침이후 이스라엘의 이집트 체류와 나옴을 비추는 틀로 헤아려 볼 수 있음추론
복 낱말의 부재12:10–20절에 ‘바라크’가 없는 것이 12:2–3절과의 대비를 드러내려는 의도일 가능성사변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12:10–16절에는 말씀과 제단이 없고 12:17절에서야 주의 이름이 나오며 곧바로 재앙이 서술된다. 이를 근거로 이 범위는 이집트행에 대한 별도의 지시나 주를 부르는 장면이 기록되지 않은 자리에서 주께서 먼저 움직이시는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이러한 서술 구조만으로 아브람의 행동 전체를 정당화하거나 정죄하기는 어렵다.

둘째, 12:17절의 재앙은 12:3절의 ‘아라르’(저주하다)가 아니라 ‘나가’(치다) 계열로 적히고, 파라오는 재앙에 앞서 아브람을 선대하였다. 서로 다른 동사를 쓴다는 사실만으로 약속과 사건의 관련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다만 본문이 이를 저주 약속의 성취라고 명시하지는 않으므로 연결의 강도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아브람의 아내를 데려간 쪽에 주께서 재앙을 내리신다는 점에서 12:3절의 틀과 닮은 장면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셋째, 기근과 내려감, 파라오와 재앙, 보냄, ‘카흐 와레크’, 가축과 은·금이 출애굽 이야기와 겹친다. 이를 근거로 12:10–20절을 이후 이스라엘의 이집트 체류와 나옴을 비추는 틀로 헤아려 볼 수 있다. 본문이 그 뜻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으며, 낱말과 줄거리의 겹침에 근거한 추론이다.

사변으로 남기는 것은 하나이다. 12:10–20절에 복 낱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이 12:2–3절의 약속과 대비를 드러내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낱말의 부재는 확인되지만 본문은 그 뜻을 밝히지 않는다.

12:10–20절에 한 번도 나오지 않던 롯은 13:1절에서 어떻게 다시 나타나는가

12:4–5절에서 아브람과 함께 하란을 떠난 롯은 12:10–20절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13:1절에 이르러서야 롯이 아브람과 더불어 이집트에서 올라온다고 적힌다. 13:2절에서 풍부해진 가축은 13:5–7절에서 땅이 그들의 재산을 함께 감당하지 못하는 일로 이어진다. 제단으로 돌아와 다시 주의 이름을 부른 아브람은 롯과 그 땅을 어떻게 나누는가.

아브람은 목숨과 재산을 지켰지만, 그 과정에서 사래가 감당해야 했던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의 개입을 사람의 판단 전체에 대한 승인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는 이 본문이 끝내 말하지 않는 물음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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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흠정역은 편집자가 제공한 인쇄본에서 옮겼다. KJV는 bibliaparalela.com의 KJV 창세기 12장로 12:10–20절 전체를 대조했다. 13:2절과 13:4절은 christianity.com의 KJV 13:1–4절와 worthy.bible의 KJV 13:1절로 대조했다. ↩

2. 계수 기준은 Open Scriptures Hebrew Bible(WLC 4.20 기반)의 창세기와 출애굽기 본문이다. 어휘 표지와 형태 표지로 확인했다. 창세기에서 ‘라아브’와 ‘구르’는 12:10절이 첫 용례이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

3. 같은 방법으로 확인했다. 11:10–12:10절에서 ‘말하다’의 와우 연속 3인칭 남성 단수는 12:1절과 12:7절(모두 주)뿐이고 12:11절이 아브람의 첫 용례이다. 11:10절 이후 3인칭 여성 단수 ‘와토메르’로 사래가 말하는 첫 용례는 16:2절이다. ‘보다’는 12:10–20절에서 12:12; 14; 15절 세 번이고, ‘하라그’는 12:12절뿐이다. 12:10–20절에는 ‘바라크’, ‘야레’, ‘라’, ‘하타’, ‘야샤르’, ‘엘로힘’, ‘롯’이 없다. ↩

4. 12:15절의 ‘와투카흐’는 칼 수동 와우 연속(VQw3fs)이다. 같은 어근이 12:5절에는 ‘와이카흐’(Vqw3ms), 12:19절에는 ‘와에카흐’(Vqw1cs)와 명령형 ‘카흐’(Vqv2ms)로 나온다. ‘할랄’ 강조형은 창세기에서 12:15절뿐이고, ‘파르오’는 12:15절이 첫 용례이다. 흠정역은 12:15절에서 ‘사람들이’를 보충해 능동으로 옮겼다. 12:15–20절의 서술 문장에 아브람이 주어인 정동사는 없고, 아브람은 12:18–19절의 파라오의 말 속 2인칭 동사(‘아시타’, ‘히깃타’, ‘아마르타’)의 주어로만 나온다. ↩

5. ‘바카르’(소), ‘하모르’(나귀), ‘쉬프하’(여종), ‘아톤’(암나귀), ‘가말’(낙타)은 창세기에서 12:16절이 첫 용례이다. ‘초온’(양)은 4:2절, ‘에베드’(종)는 9:25절에 먼저 나와 제외했다. 16:1절의 이집트 여종 하갈이 12:16절의 여종 가운데 있었을 수 있다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16:1절은 하갈의 출신만 적고 아브람의 집에 들어온 경위는 적지 않는다. ‘이타브’(12:13절, Vqi3ms)와 ‘헤이티브’(12:16절, Vhp3ms)는 같은 어근이고, ‘바아부르’는 두 절 모두에 있다. ↩

6. 12:17절의 ‘와이나가’는 강조형(Vpw3ms)이다. 같은 어근의 강조형은 창세기에서 12:17절뿐이다. 명사 ‘네가’는 창세기에서 12:17절 한 번이다. ‘알 데바르’는 20:18절에도 나온다. ‘야훼’는 12:8절 다음 용례가 12:17절이고 그다음이 13:4절이다. ‘카라’는 12:10–20절에서 12:18절뿐이다. ↩

7. 12:10절과 26:1절은 ‘와예히 라아브 바아레츠’로 시작한다. 26:1절의 ‘밀바드 하라아브 하리숀 아셰르 하야 비메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때에 있던 첫 기근 외에’의 뜻이다. 26:2절의 ‘알 테레드 미츠라이마’와 46:3–4절의 ‘메라다 미츠라이마’, ‘아노키 에레드 임메카 미츠라이마 웨아노키 아알레카’는 OSHB 본문으로 확인했다. ‘카베드’와 ‘라아브’가 한 절에 함께 나오는 곳은 12:10; 43:1; 47:4; 47:13절이다. 이 구절들은 인용하지 않고 요약했다. ↩

8. 20:2–3; 20:9; 20:11–14; 20:17–18; 26:1–14절은 OSHB 본문으로 확인했다. 20:12절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버지의 딸이지만 어머니의 딸은 아니라고, 20:13절은 가는 곳마다 ‘그는 내 오라비라’ 말하라고 일러 두었다고 담는다. ‘마 조트 아시타’(מה זאת עשית)는 3:13절(주 하나님이 여자에게, ‘아시트’), 12:18절(파라오가 아브람에게, ‘리’), 26:10절(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라누’), 29:25절(야곱이 라반에게, ‘리’)에 나온다. 20:9절은 ‘마 아시타 라누’이다. 20장과 26장의 구절은 인용하지 않고 요약했다. ↩

9. 출애굽기는 OSHB 출애굽기 본문으로 확인했다. 명사 ‘네가’는 출애굽기에서 11:1절 한 번이다. 12:32절은 ‘감 초네켐 감 베카르켐 케후 카아셰르 디바르템 와레쿠’, 12:35절은 ‘켈레 케세프 우켈레 자하브’, 12:38절은 ‘미크네 카베드 메오드’를 담는다. 이 구절들은 인용하지 않았다. ↩

10. 13:2절의 ‘카베드’와 12:10절의 ‘카베드’는 철자(כבד)가 같다. 12:8절의 ‘와이크라 베솀 아도나이’와 13:4절의 ‘와이크라 샴 아브람 베솀 아도나이’는 낱말이 끼어 있어 같은 꼴로 세지 않았다. ↩

11. 신약 인용 목록은 Precept Austin의 구약 구절의 신약 인용 표로 확인했다. 창세기 12장 항목은 12:1절(행 7:3), 12:3절(갈 3:8; 계 1:7), 12:7절(갈 3:16)이며 12:10–20절 항목은 없었다. 다른 색인과는 대조하지 못했다. 칠십인역 12:10절은 ellopos.net의 칠십인역 창세기 12장(Brenton 영역 병기)에서, 히브리서 11:9절 헬라어는 greekbible.com에서 확인했고, 히브리서 11:8–19절에 이집트·파라오·기근이 나오지 않음은 sacred-texts.com의 히브리서 11장로 확인했다. 마태복음 2:15절과 호세아 11:1절의 대응은 esv.org의 호세아 11:1; 마태복음 2:15 병기에서 확인했다. 갈라디아서 3:16절은 ‘씨’에 관한 약속이 놓인 문맥이므로 12:7절만의 단독 인용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신약 본문은 인용하지 않고 요약했다. ↩

12. 라므반의 설명은 2차 자료로 확인했다. etzion.org.il의 글, thinkingtorah.com의 정리, YU 자료(Questioning the Morality of the Avot)를 열람했으며 라므반의 원문은 열람하지 못했다. 란의 견해는 thinkingtorah.com의 정리를, 색스의 견해는 YU 자료의 소개를 통해 확인했고 원문은 열람하지 못했다. ↩

13. NIV 12:19절은 christianity.com의 NIV 창세기 12:19으로 확인했다. KJV는 각주 1과 같다. ‘와에카흐’는 와우 연속 1인칭 단수(Vqw1cs)이다. 20:4절(‘로 카라브 엘레하’)과 20:6절은 OSHB 본문으로 확인했다. ↩

14. Matthew Henry, 《구약·신약 주해》(An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창세기 12:10–13절과 12:14–20절. BibleGateway 수록 본문(12:10–13절, 12:14–20절)을 열람해 요약했다. 한국어 풀이는 필자의 요약이며 원문 문장은 옮기지 않았다. 생몰년은 monergism.com의 표제에서 확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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