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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7:1–24노아가 들어가고, 문은 주께서 닫으셨다
‘명하신 대로’에서 ‘닫으시니라’까지
제8편 · 2026.10.30 · Watchman
노아의 말이 한마디도 기록되지 않은 장에서, 문을 닫는 이는 누구인가
7장에는 노아의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직접 인용된 말씀은 7:1–4절에서 주께서 하신 말씀뿐이며,¹ 그 뒤로는 서술이 이어진다. 노아가 들어가고, 짐승들이 오고, 물이 오르고, 모든 것이 죽는다. 그 한가운데서 문이 닫히는데, 본문은 문을 닫으신 분을 주(여호와)로 밝힌다.
이번에 살필 범위는 7:1–24절이다. 6:22절은 노아가 명령대로 행했다고 기록하며 끝난다. 이어지는 7:1절은 주께서 다시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7:24절은 물이 땅 위에 백오십 일 동안 넘쳤다는 서술로 끝나며, 8: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장면으로 흐름이 바뀐다. 본문은 셋으로 나뉜다. 7:1–10절은 명령과 방주 입장, 7:11–16절은 홍수의 시작과 방주 문이 닫히는 장면, 7:17–24절은 불어나는 물과 모든 생물의 죽음이다. 앞선 글이 남긴 두 질문을 먼저 확인한다. 6:9절의 ‘자기 세대’에 해당하는 표현이 7:1절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핀다. 이어 ‘여호와’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 대목을 확인한다.
‘들어가다’는 일곱 번 되풀이되고, ‘닫다’는 한 번만 나온다
7:1절은 주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오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흠정역은 이를 다음과 같이 옮긴다.
1 주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오라. 네가 이 세대 가운데서 내 앞에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노라.
1 And the LORD said unto Noah, Come thou and all thy house into the ark; for thee have I seen righteous before me in this generation.
— 창세기 7: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절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께서 노아의 의로움을 직접 말씀하신다는 점이다. 6:9절에서는 서술자가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복수)라고 적었지만, 7:1절에서는 주께서 ‘이 세대 가운데서’(바도르 하제, 단수) ‘내 앞에’(리파나이)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다’(라이티)고 말씀하신다.² 같은 ‘보다’ 동사가 6:12절에서는 땅의 부패를 보시는 데 쓰였다. 다만 6:9절의 ‘당대에’를 칭찬으로 이해해야 할지, 다른 이들과 견준 평가로 이해해야 할지는 복수형과 단수형의 차이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의 쓰임도 달라진다. 6:9–22절에는 ‘여호와’가 없고 ‘엘로힘’만 다섯 번 나왔다. 7장에서는 ‘여호와’가 7:1, 5, 16절에 세 번, ‘엘로힘’이 7:9, 16절에 두 번 나온다.³ 한 절 안에서 이름이 바뀌는 곳은 7:16절이며,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다룬다.
노아의 응답은 말이 아니라 행함이다. 7:5절은 노아가 주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에 따라 행하였다고 적는다. 6:22절과 문장 구조는 비슷하지만 끝맺는 표현은 다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6:22절은 ‘그대로 행하였더라’(켄 아사)로 끝나고, 7:5절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으로 끝나므로, 7:5절에서는 명령하신 분의 이름이 문장의 맨 끝에 놓인다.⁴
이어서 방주에 들어가는 장면이 서술된다. ‘들어가다’(보)는 7:1, 7, 9, 13, 15절과 7:16절(두 번)에 모두 일곱 번 나오고, 7:17절 이후로는 나오지 않는다.⁵ 본문은 사람들의 입장과 짐승들의 입장을 번갈아 서술하며, 이 순서를 두 차례 반복한다. 7:7절은 노아와 그의 가족, 7:8–9절은 짐승, 7:13절은 같은 날의 노아와 가족, 7:14–15절은 다시 짐승이다. 방주에 들어가는 장면이 되풀이되는 이 짜임은 뒤에서 해석의 갈림길로 다룬다.
홍수가 시작될 때와 비가 내릴 기간은 7:4절에서 미리 제시된다.
4 이제 이레 뒤에 내가 밤낮으로 사십 일 동안 땅에 비가 오게 하여 내가 만든 모든 생명체를 지면에서 끊어 멸하리라 하시니라.
4 For yet seven days, and I will cause it to rain upon the earth forty days and forty nights; and every living substance that I have made will I destroy from off the face of the earth.
— 창세기 7: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선고에서 예고된 때와 기간은 뒤이은 서술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레 뒤’는 7:10절에서 물이 땅에 이르는 때로 이어지고, ‘사십 일’은 7:12절의 비와 7:17절의 홍수에서 되풀이된다. ‘일곱’을 뜻하는 어근은 7:2, 3, 4, 10, 11절에 모두 일곱 번 나오고, ‘사십’은 7:4, 12, 17절에 다섯 번 나온다.⁶ 1:1–2:3절에서 ‘일곱’을 중심으로 한 구성과 같은 수가 쓰였지만, 본문이 두 대목의 ‘일곱’을 직접 연결하지는 않는다.
문이 닫히는 장면은 7:16절에 나온다.
16 들어간 것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모든 육체의 수컷과 암컷이 들어갔고, 그것들이 들어가매 주께서 그를 그 안에 넣고 닫으시니라.
16 And they that went in, went in male and female of all flesh, as God had commanded him: and the LORD shut him in.
— 창세기 7: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7:16절의 앞부분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들어갔다고 하고, 뒷부분은 주께서 닫으셨다고 한다. 문을 닫는 동사(스가르)는 7장에서 이 한 번뿐이다. 본문은 노아가 문에 손을 댔다고 적지 않는다. 7:16절을 경계로 ‘들어가다’가 사라지고, 7:17절부터는 물이 불어나고 넘치는 모습이 서술된다. 이때 쓰인 동사는 ‘라바’(불어나다)와 ‘가바르’(넘치다)이며, 가바르는 7:18, 19, 20, 24절에 네 번 나온다.⁷
큰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열리는 장면은 창조의 물과 숨을 어떻게 떠올리게 하는가
홍수가 시작된 날은 7:11절에 날짜로 기록된다.
11 노아의 삶에서 육백 번째 해 둘째 달 그달 십칠일 바로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리며,
11 In the six hundredth year of Noah’s life, in the second month, the seventeenth day of the month, the same day were 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broken up, and the windows of heaven were opened.
— 창세기 7: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노아의 나이는 7:6절에 이어 7:11절에서 다시 적히고, 날짜는 ‘둘째 달 열이렛날’로 특정된다. 이날 ‘큰 깊음’(테홈 랍바)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린다. ‘테홈’은 1:2절에서 어둠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할 때 쓰인 낱말이고,⁸ 1:6–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궁창을 두어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셨다. 7:11절은 아래의 샘과 위의 창을 함께 열어 위아래 두 곳에서 물이 나오게 한다. 이 장면은 창조 첫 주간에 이루어진 물의 구분이 허물어지는 모습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다만 7:11절이 1장의 특정 구절을 직접 가리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같은 낱말이 쓰였다는 사실에서 더 나아간 부분은 추론이다.
죽음을 서술하는 7:22절에도 창조의 어휘가 보인다. 7:22절은 ‘콧구멍에 생명의 숨이 있는’ 모든 것이 죽었다고 한다. 7:22절은 ‘니쉬마트 루아흐 하임’과 ‘그의 코에’를 뜻하는 ‘베아파이브’를 사용해 죽음에 이른 생명들을 가리킨다. 2:7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니쉬마트 하임’을 불어넣으셨다고 서술하며, 7:22절에는 여기에 ‘루아흐’가 더해져 있다.⁹ 두 절이 ‘코에’와 ‘숨’의 어휘를 공유하므로, 7:22절의 표현은 2:7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숨을 떠올리게 한다. 생명을 시작할 때 쓰인 말로 죽음의 범위를 적는 셈이며, 이를 생명 부여의 반대편 장면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리고 7:4절의 선고는 7:23절에서 이루어진다.
23 지면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들과 하늘의 날짐승이 멸망되고 그들이 땅에서 끊어 멸망하였으되,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살아남았더라.
23 And every living substance was destroyed which was upon the face of the ground, both man, and cattle, and the creeping things, and the fowl of the heaven; and they were destroyed from the earth: and Noah only remained alive, and they that were with him in the ark.
— 창세기 7:2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7:4절의 ‘끊어 멸하리라’(우마히티)와 7:23절의 ‘멸망하였다’(와이마)는 같은 어근(마하)의 동사이고, 목적어도 같은 ‘모든 생물’(콜 하야쿰)이다.¹⁰ ‘지면 위’(알 프네 하아다마)라는 장소 표현도 두 절에 함께 있다. 선고에 쓰인 동사와 목적어가 그 선고의 실행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다시 나타난다. 7:23절은 ‘오직 노아와 방주 안의 자들만 남았다’는 말로 맺어진다.
짐승의 수와 두 이름은 한 이야기의 균열인가, 설계인가
7장을 읽는 이들이 자주 부딪히는 지점은 두 곳이다. 하나는 짐승의 수이다. 7:2–3절은 정결한 짐승과 공중의 새를 일곱씩(쉬브아 쉬브아), 정결하지 않은 짐승을 둘씩 취하라고 한다. 7:9절과 7:15절은 ‘둘씩’(쉬나임 쉬나임)이 노아에게 왔다고만 말한다.¹¹
첫째 입장은 두 규정이 서로 맞물린다고 본다. 7:9절과 7:15절은 들어간 짐승을 두 마리 단위로 요약하고, 7:2절의 정결·부정결 구분은 정결한 짐승을 더 취하라는 추가 규정으로 본다. 이 입장은 정결한 짐승의 여분을,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하는 8:20절과 이어서 생각한다. 둘째 입장은 두 서술을 서로 다른 전승의 흔적으로 본다.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짐승의 수에 관한 표현이 다르고, 이름이 7:1, 5절의 ‘여호와’와 7:9절의 ‘엘로힘’으로 갈리며, 방주에 들어가는 장면이 되풀이되는 점(7:7과 7:13, 7:9와 7:15)을 근거로 든다. 셋째 입장은 이 반복과 교차를 의도된 문학 구조로 본다. 방주에 들어가는 장면을 거듭 강조해 닫힘의 무게를 높인다는 풀이이다.
둘째 문제는 7:16절의 두 이름이다. 앞부분은 ‘엘로힘’이 명령하셨다고 하고, 뒷부분은 ‘여호와’가 닫으셨다고 한다. 전승 구분을 택하는 입장은 이를 두 서술이 접합된 자리로 본다. 문학적 설계를 택하는 입장은 명령하시는 대목에는 창조주를 가리키는 이름을, 문을 닫으시는 대목에는 노아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해석한다. 본문은 이름이 바뀐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으며, 짐승의 수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도 7:2–3절과 7:9절 사이에서 풀어 주지 않는다. 이 글은 어느 한쪽을 확정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방주를 교회의 상징으로 풀면서도 홍수를 실제 사건으로 보았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4–5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신국론』 15권 26–27장에서 방주를 다룬다. 그는 방주의 길이·너비·높이의 비례를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인간의 몸에 견주고, 방주를 이 세상을 나그네로 지나가는 하나님의 도성, 곧 교회의 상징으로 풀었다. 한편 27장에서는 홍수와 방주의 이야기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면서 동시에 교회를 가리키는 예언적 의미도 지닌다고 옹호한다. 짐승들이 방주에 든 것은 노아가 잡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노아에게 온 것이라고 보았다.¹² 이 소개는 후대의 한 읽기를 보인 것이며, 위의 해석을 입증하는 근거로 쓰지 않았다.
7장의 짜임은 ‘명령, 들어감, 닫힘, 멸함, 남음’의 순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아래 표에서 상태는 본문의 사실이면 관찰, 거기서 이끌어 낸 읽기이면 추론, 근거가 약한 추측이면 사변이라고 적는다.
| 어휘·구절·주제 | 내용 | 상태 |
|---|---|---|
| ‘들어가다’(보) | 7:1–16절에 일곱 번, 7:17절 이후에는 없음 | 관찰 |
| ‘명령하다’(차와) | 7:5, 9, 16절에 한 번씩 | 관찰 |
| ‘닫다’(스가르) | 7:16절에 한 번 | 관찰 |
| ‘넘치다’(가바르) | 7:18, 19, 20, 24절 | 관찰 |
| ‘지우다’(마하)와 ‘모든 생물’(콜 하야쿰) | 7:4절 선고와 7:23절 집행에 같은 어근과 같은 목적어 | 관찰 |
| 6:22절의 순종과 7:16절의 닫음 | 사람의 행함과 주의 행함이 짝을 이룸 | 추론 |
| 샘과 창, 생명의 숨 | 1:2, 1:6–7, 2:7의 어휘를 거꾸로 쓰는 홍수 서술 | 추론 |
| 닫힘의 두 면 | 노아에게는 보호, 바깥에 있던 이들에게는 경계 | 사변 |
먼저 관찰된 것을 정리한다. 명령(7:1–4절)과 순종(7:5절)이 먼저 나오고, 방주에 들어가는 장면이 일곱 번 되풀이된 뒤 문이 닫힌다(7:16절). 이어서 물이 불어나고(7:17–20절) 모든 생물이 멸망하고(7:21–23절) 노아와 방주 안의 사람들이 남는다. 7:4절의 선고와 7:23절의 집행은 같은 어근의 동사와 같은 목적어로 묶여 있다.
이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둘이다. 첫째, 6:22절에서는 노아가 명령대로 행하고 7:16절에서는 주께서 문을 닫으시므로, 사람의 행함과 주의 행함이 앞뒤로 짝을 이루는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둘째, 샘과 창(7:11절)과 생명의 숨(7:22절)이 창조 첫 주간의 어휘와 겹치므로, 홍수 서술이 창조의 어휘를 거꾸로 쓰는 구조로 풀어 볼 수 있다. 다만 둘째는 어휘의 겹침에 근거한 추론이며, 본문이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근거가 약한 추측도 하나 적어 둔다. 닫힘이 노아에게는 보호였고 바깥에 있던 이들에게는 경계였을 수 있다. 그러나 7장은 문 바깥에 있던 이들의 구체적인 상황이나 반응을 서술하지 않으므로 이는 사변이다.
닫힌 문 안에서 백오십 일을 보낸 노아에게 무엇이 일어나는가
7:24절은 물이 땅 위에 백오십 일 동안 넘쳤다고 끝난다. 그 기간 동안 방주 안의 노아가 무엇을 하는지는 7장에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다음 본문인 8:1절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방주 안의 모든 생물을 기억하시는 데서 시작한다. 문을 닫으신 분이 기억하시는 분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노아의 말이 한마디도 기록되지 않은 채 흐른 방주 안의 시간은 이후 어떻게 서술되는가. 이어지는 본문에서 이 두 질문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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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음). 원어 표기는 마소라 본문(WLC)을 따른 필자의 풀이이다. 영문 인용은 킹제임스 성경(KJV, 1769)이다.
1. 7:1–24절 전체를 WLC(https://www.bibliaonline.com.br/wlc/gn/7)로 읽어 확인했다. 직접 인용된 말씀은 7:1–4절의 여호와의 말씀뿐이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2. 7:1의 ‘바도르 하제’(בדור הזה), ‘리파나이’(לפני), ‘라이티’(ראיתי)는 WLC로 확인했다. 6:9의 ‘바도로타브’와 6:12의 ‘와야르’는 앞선 제7편(창세기 6:9–22)에서 확인한 내용을 따랐다.
3.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의 등장 횟수는 WLC 7:1–24절을 직접 센 것이다. 여호와(יהוה)는 7:1, 5, 16절, 엘로힘(אלהים)은 7:9, 16절이다. 6:9–22절의 횟수는 제7편 각주 3을 따랐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4. 7:5(ויעש נח ככל אשר צוהו יהוה)와 6:22(ויעש נח ככל אשר צוה אתו אלהים כן עשה)의 비교는 WLC로 했다.
5. 계수 기준: WLC 7:1–24절의 자음 문자열을 단어 단위로 나누고 접두사가 붙은 형태를 포함해 센다(마켑으로 이어진 낱말은 각각 센다). ‘보’(בוא)는 7:1(בא), 7:7(ויבא), 7:9(באו), 7:13(בא), 7:15(ויבאו), 7:16(והבאים, באו)의 일곱 형태이다. 같은 방법으로 다시 세면 같은 결과를 얻는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6. ‘일곱’(שבע) 어근은 7:2(두 번), 7:3(두 번), 7:4, 7:10(לשבעת), 7:11(שבעה־עשר, 날짜 ‘열이레’의 일부)이다. ‘사십’(ארבעים)은 7:4절 두 번, 7:12절 두 번, 7:17절 한 번이다. 계수 기준은 각주 5와 같다.
7. ‘닫다’(סגר)는 7:16절 한 번, ‘넘치다’(גבר)는 7:18, 19, 20, 24절, ‘불어나다’(רבה)는 7:17, 18절이다. 계수 기준은 각주 5와 같다.
8. 7:11의 ‘테홈’(תהום), 1:2의 ‘테홈’, 1:6–7의 ‘라키아’(רקיע)로 물을 나누신 서술은 WLC와 KJV 본문(https://www.bibliaonline.com.br/wlc+kjv/gn/1)으로 확인했다. 1:2와 1:6–7은 흠정역 인쇄본이 제출되지 않아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9. 7:22의 ‘니쉬마트 루아흐 하임’(נשמת־רוח חיים)과 ‘베아파이브’(באפיו), 2:7의 ‘베아파이브’(באפיו)와 ‘니쉬마트 하임’(נשמת חיים)은 WLC로 확인했다(2:7은 https://www.bibliaonline.com.br/wlc+kjv/gn/2). 흠정역 7:22의 ‘콧구멍에 생명의 숨이 있는’은 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은 것이다. 2:7은 인쇄본이 제출되지 않아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10. 7:4의 ‘우마히티’(ומחיתי)와 7:23의 ‘와이마’(וימח), 목적어 ‘콜 하야쿰’(כל־היקום), ‘알 프네 하아다마’(על־פני האדמה)는 WLC로 확인했다.
11. 7:2, 3, 8, 9, 15절은 WLC로 확인했다. 8:20절은 KJV 본문(https://www.bibliaonline.com.br/wlc+kjv/gn/8)으로 확인했으며, 노아가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한다는 서술이 있다. 이 연결은 한 입장의 근거로만 소개했다.
12.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5권 26–27장(27장 페이지에 번역자 Marcus Dods로 표기). 26장은 https://biblehub.com/library/augustine/city_of_god/chapter_26_that_the_ark_which.htm, 27장은 https://logoslibrary.org/augustine/city/1527.html에서 해당 장의 내용을 확인했다. 한국어 풀이는 필자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하지 않았다. 성경 본문의 후대 해석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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