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명하신 대로 행한다

황금빛 석양 아래 나무망치를 든 노아가 역청을 바른 거대한 건조 중인 방주를 바라보는 모습
말씀을 따라 방주를 짓는 노아. 창세기 6:9–22의 동행과 순종을 표현한 장면.

구약 › 모세오경

창세기 6:9–22 — 노아는 명하신 대로 행한다

‘보시니, 보라’에서 ‘그대로 행하였더라’까지

제7편 · 2026.10.29 · Watchman


은혜를 입은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선 땅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6:8절에서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다. 6:8절 자체는 노아가 은혜를 입은 까닭을 설명하지 않는다. 곧바로 노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적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땅을 보시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 글은 그 순서를 따라간다. 본문은 노아를 어떻게 소개하고, 그가 살아가는 땅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노아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번에 살필 본문은 6:9–22절이다. 6:9절의 ‘이것이 노아의 족보’(엘레 톨돗 노아)는 새 단위를 여는 표제이며,¹ 6:22절은 노아가 행한 일로 이 단위를 마친다. 7:1절은 주께서 노아에게 다시 이르시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본문은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6:9–10절은 노아의 소개와 세 아들, 6:11–13절은 땅의 상태와 하나님의 말씀, 6:14–16절은 방주의 설계, 6:17–21절은 홍수의 예고와 언약, 6:22절은 노아가 명령대로 행함이다. 앞선 글에서 미뤄 둔 ‘하나님과 동행하다’라는 표현부터 살펴본다.

노아는 ‘걸었다’고 소개되고, 땅은 ‘부패했다’고 서술되며, 방주는 일곱 번 불린다

6:9절은 노아를 세 가지로 소개한다. 흠정역은 이를 다음과 같이 옮긴다.

9 노아는 자기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의인이며 완전하였고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으며

9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Noah: Noah was a just man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and Noah walked with God.

— 창세기 6: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의인’(찻디크)과 ‘완전한’(타밈)은 구약에서 처음 나오는 용례이다.² ‘함께 걸었다’(히트할렉 에트 하엘로힘)는 5:22절과 5:24절에서 에녹을 서술할 때와 마찬가지로, 히트파엘 어간의 동사에 ‘하나님과 함께’라는 표현이 결합한 말이다. 흠정역은 5:22절을 “하나님과 함께 걸었으며”로, 5:24절을 “하나님과 함께 걸었는데”로 옮겼다. 여기서 눈에 띄는 차이는 어순이다. 에녹에게는 ‘와이트할렉 하노크 에트 하엘로힘’처럼 동사가 앞에 오지만, 노아에게는 ‘에트 하엘로힘 히트할렉 노아’처럼 ‘하나님과’가 동사 앞에 놓인다.

이 단락에서 직접 발언이 기록된 이는 하나님뿐이다. 6:13–21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지만, 노아의 응답은 기록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명칭도 앞 단락과 달라진다. 6:1–8절에서 ‘여호와’가 다섯 번 나왔다면, 6:9–22절에는 ‘여호와’가 나오지 않고 ‘엘로힘’이 다섯 번 나온다(6:9, 11, 12, 13, 22절).³ 다만 이 단락은 명칭이 달라진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땅은 6:11–13절에서 이렇게 서술된다. 흠정역은 6:11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1 땅도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여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찼으므로

11 The earth also was corrupt before God, and the earth was filled with violence.

— 창세기 6: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핵심 낱말은 ‘부패하다’(샤하트)와 ‘폭력’(하마스)이다. 6:11–17절에는 ‘땅’(에레츠)이 여덟 번 나오고, ‘샤하트’ 어근이 다섯 번 쓰인다.⁴ 6:11절에서 땅이 ‘부패하였고’(와티샤헤트), 6:12절에서 땅이 ‘부패하였으며’(니슈하타) 모든 육체가 자기 길을 ‘부패시켰다’(히쉬히트). 6:13절의 ‘멸하리라’(마쉬히탐)와 6:17절의 ‘멸하리니’(레샤헤트)도 같은 어근이다. 흠정역은 앞의 셋을 ‘부패’로, 뒤의 둘을 ‘멸하다’로 옮겼고 KJV도 앞은 ‘corrupt’, 뒤는 ‘destroy’로 옮겼지만, 히브리어에서는 한 어근이 다섯 번 되풀이된다. 본문은 땅과 모든 육체의 부패를 서술한 뒤, 같은 어근으로 하나님의 멸하심을 예고한다. 이 반복은 부패와 심판의 관계를 부각하는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다만 같은 어근이 쓰였다는 사실만으로 ‘부패하다’와 ‘멸하다’를 같은 뜻으로 볼 수는 없다. 6:12절의 ‘부패시켰다’와 6:13절의 ‘멸하다’는 둘 다 사역 어간(히필)이다. 또 땅은 ‘하나님 앞에서’(리프네 하엘로힘) 부패하였고(6:11절), 모든 육체의 끝(케츠)은 ‘내 앞에’(레파나이) 다가왔다(6:13절). 두 표현은 모두 ‘얼굴’을 뜻하는 명사(파님)에 기초한 ‘앞에’라는 공간적 표현이다. 다만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하나는 ‘내 앞에’로 나타난다.

방주의 설계는 6:14–16절에 있다. 흠정역은 6:14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4 너는 고페나무로 너를 위해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 방들을 만들며 역청으로 그것의 안팎을 칠할지니라

14 Make thee an ark of gopher wood; rooms shalt thou make in the ark, and shalt pitch it within and without with pitch.

— 창세기 6:1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방주’(테바)는 6:9–22절에 일곱 번 나오며, 모두 6:14–19절 안에 있다.⁵ ‘칠하다’(카파르)와 ‘역청’(코페르)은 6:14절에서 같은 어근으로 짝을 이룬다. ‘카파르’는 다른 본문에서 ‘속죄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⁶ 그러나 그 용례를 근거로 이 구절의 역청 칠하기에 속죄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방주의 치수는 길이 삼백 큐빗, 너비 오십 큐빗, 높이 삼십 큐빗으로 제시된다(6:15절).

창세기 6:14–16에 적힌 치수와 구조에 따라 그린 노아의 방주 입체 개념도. 길이 300큐빗, 너비 50큐빗, 높이 30큐빗, 세 층, 옆면의 문, 안팎에 칠한 역청을 표시했다.
그림. 창세기 6:14–16에 적힌 치수와 구조(세 층, 옆면의 문, 안팎의 역청)에 따라 그린 입체 개념도. 환산은 1큐빗을 45cm로 본 추정치이며, 고대 큐빗의 길이는 학설마다 다르다. 지붕 모양, 골조, 칸의 배치, 문의 크기는 본문에 없어 시각화를 위해 가정한 것이다.

6:17절은 땅 위에 물의 홍수를 일으키겠다고 하고, 이어 6:18절은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말씀한다. 홍수를 예고하신 말씀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언약’(베리트)은 구약에서 처음 나오는 용례이다.⁷ 6:18절에서 ‘너와 함께’(잇타크)는 두 번 나오며, 방주에 들어갈 노아의 가족이 이어서 거명된다. 이어 하나님은 생명을 보존하도록 짐승들을 방주에 들이고, 사람과 짐승이 먹을 양식을 마련하라고 명하신다(6:19–21절).

마지막은 6:22절이다. 흠정역은 6:22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22 노아가 이같이 행하되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에 따라 그대로 행하였더라

22 Thus did Noah; according to all that God commanded him, so did he.

— 창세기 6:2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아사’(만들다·행하다)는 6:14–22절에 일곱 번 나온다. 다섯 번은 하나님의 설계 말씀 안(6:14–16절)에 있고, 두 번은 단락을 맺는 이 구절(6:22절)에 있다.⁸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동사로 노아가 명령대로 행함이 서술된다. 6:9절에서 서술된 노아의 걸음은 이렇게 명령에 따른 행함으로 이어진다.

‘보시니, 보라’의 틀이 창조의 끝과 성막의 끝에도 나온다

6:12절은 “하나님께서 땅을 보시니, 보라, 그것이 부패하였더라”라고 서술한다. 6편에서 따라온 ‘보다’의 흐름이 여기서 이어진다. 6:5절에서 주께서 사람의 악을 보셨고, 6:12절에서 하나님께서 땅을 보신다. 세 구절(1:31절, 6:12절, 출애굽기 39:43절)에는 누군가 대상을 보고, 이어 ‘보라’라는 말로 그 상태나 행위를 제시하는 공통된 문장 구조가 나타난다.⁹ 1:31절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하고 매우 좋았다고 서술한다. 출애굽기 39:43절은 흠정역으로 다음과 같다.

43 모세가 그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그들이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 일을 행하되 그대로 행하였으므로 모세가 그들을 축복하였더라

43 And Moses did look upon all the work, and, behold, they had done it as the LORD had commanded, even so had they done it: and Moses blessed them.

— 출애굽기 39:4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원어 관찰

1:31 וַיַּרְא אֱלֹהִים אֶת־כָּל־אֲשֶׁר עָשָׂה וְהִנֵּה־טוֹב מְאֹד (와야르 엘로힘 에트 콜 아셰르 아사 베힌네 토브 메오드) — 풀이 “하나님이 보시니 · 그가 지으신 모든 것 · 보라 · 심히 좋았다”

6:12 וַיַּרְא אֱלֹהִים אֶת־הָאָרֶץ וְהִנֵּה נִשְׁחָתָה (와야르 엘로힘 에트 하아레츠 베힌네 니슈하타) — 풀이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 보라 · 부패하였더라”

출 39:43 וַיַּרְא מֹשֶׁה אֶת־כָּל־הַמְּלָאכָה וְהִנֵּה עָשׂוּ אֹתָהּ (와야르 모셰 에트 콜 함믈라카 베힌네 아수 오타) — 풀이 “모세가 그 모든 일을 보니 · 보라 · 그들이 그것을 행하였더라”

아래 표에서 상태는 본문의 사실이면 관찰, 거기서 이끌어 낸 읽기이면 추론이라고 적는다.

반복 구절내용상태
‘와야르 … 베힌네’(1:31, 6:12, 출 39:43)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신다 / 하나님이 땅을 보신다 / 모세가 모든 일을 본다관찰
‘보라’ 뒤에 오는 내용심히 좋음 / 부패 / 그들이 행함관찰
세 장면을 함께 읽기창조의 좋음, 땅의 부패, 명령에 따른 행함이라는 차이가 드러난다추론
‘명하신 대로’ 마감(6:22, 출 39:32, 40:16)노아 / 이스라엘 자손 / 모세관찰
노아와 모세의 행함을 맺는 문장을 함께 읽기두 문장의 짜임이 같다추론

세 장면을 함께 읽으면 창조의 좋음, 땅의 부패, 명령에 따른 행함이라는 차이가 드러난다. 다만 이 비교만으로 세 본문이 하나의 연속된 구조를 이루도록 의도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6:22절의 문장은 출애굽기 40:16절과 단어의 짜임이 거의 같다. 6:22절의 히브리어는 ‘와야아스 노아 케콜 아셰르 치바 오토 엘로힘 켄 아사’이고, 출애굽기 40:16절은 ‘와야아스 모셰 케콜 아셰르 치바 여호와 오토 켄 아사’이다.¹⁰ 두 문장은 주어와 하나님의 명칭, ‘그에게’를 뜻하는 ‘오토’의 위치를 제외하면 어휘와 배열이 거의 일치한다. 흠정역으로 40:16절은 다음과 같다.

16 이같이 모세가 행하되 곧 주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에 따라 그대로 행하였더라

16 Thus did Moses: according to all that the LORD commanded him, so did he.

— 출애굽기 40: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출애굽기에는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카아셰르 치바 여호와 엣 모셰)라는 마감 문구도 39장에 일곱 번(39:1, 5, 7, 21, 26, 29, 31절), 40장에 일곱 번(40:19, 21, 23, 25, 27, 29, 32절) 나온다. 이 유사성은 노아와 모세의 행함을 맺는 문장을 함께 놓고 읽을 근거가 된다. 다만 이 문장상의 유사성만으로 방주와 성막의 기능까지 같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걸었다’의 표현도 정경 안에서 이어진다. 에녹(5:22, 24절)과 노아(6:9절)에 이어, 17: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기 앞에서 걸으라고, 그리고 완전하라고 명하신다(히트할레크 레파나이 베흐예 타밈).¹¹ 같은 동사 어간(히트파엘)과 ‘완전한’(타밈)이 함께 나오지만 쓰임은 다르다. 노아에게는 ‘완전하였다’와 ‘걸었다’가 서술로 주어지고, 아브람에게는 둘 다 명령으로 주어진다. 전치사도 다르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에트 하엘로힘), 아브람은 ‘내 앞에서’(레파나이)이다. 세 표현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걷는 삶을 말한다는 점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전치사와 문맥이 다르므로 의미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기 세대 가운데서’의 의로움은 칭찬인가, 비교인가

6:9절의 ‘바도로타브’(그의 세대들 가운데서)를 두고 읽기가 갈린다. 흠정역은 이를 “자기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로 옮겼다. 본문에는 노아가 의인이며 완전하였다는 서술에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라는 표현이 덧붙는다. 이 표현이 평가를 제한하는지, 그 시대의 상황을 강조하는지는 해석이 갈린다.

첫째 읽기는 칭찬으로 본다. 6:11–12절은 땅이 부패하고 모든 육체가 자기 길을 부패시킨 세대를 서술한다. 이런 세대 한가운데서도 노아가 의인이며 완전하였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다. 이 읽기의 근거는 6:9–10절 뒤에 곧 6:11–12절의 서술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둘째 읽기는 비교로 본다.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라는 표현을, 노아의 의로움이 그 세대와 견준 평가라는 표지로 본다. 에녹을 서술하는 5:22절과 5:24절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다만 이 사실만으로 비교 해석을 확정할 수는 없다. 한편 복수형인 ‘세대들’을 노아가 살아간 여러 시기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다.¹²

‘타밈’은 17:1절에서 아브람에게 명령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노아를 서술한 같은 낱말의 의미를 결정할 수는 없다. 이 낱말을 이미 이룬 온전함의 선언으로 읽을지, 걸음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읽을지도 본문은 6:9절에서 풀지 않는다.

라시는 ‘당대에’를 칭찬과 비교의 두 가지로 전하고, 노아의 걸음을 아브라함과 견주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중세 프랑스의 유대교 주석가 라시(1040–1105)는 짧은 뜻풀이와 앞선 랍비들의 견해를 함께 싣는 『창세기 주석』으로 널리 읽힌다. 그는 6:9절에서 ‘당대에’(베도로타브)를 풀이한 랍비들의 견해 두 가지를 나란히 적는다.¹³ 한 견해는 칭찬으로 풀어, 악한 세대에서도 의로웠으니 의로운 세대에 살았다면 더욱 의로웠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견해는 비난으로 풀어, 자기 세대에 견주어 의인으로 여겨졌을 뿐 아브라함의 세대였다면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라시는 이 주석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한다고 밝히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도 아브라함과 견주어 풀었다. 라시는 노아에게 하나님의 붙드심이 필요했던 반면, 아브라함은 스스로 힘을 내어 하나님 앞에서 걸었다고 해석한다. 이 평가는 성경 본문이 직접 내린 인물 비교가 아니라 라시의 해석이다. 이 소개는 후대의 한 읽기를 보인 것이며, 위의 해석을 입증하는 근거로 쓰지 않았다.

6:9–22절을 ‘보심에서 행함으로, 같은 어근의 부패와 멸함, 걸음에서 행함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보심에서 행함으로. 1:31절, 6:12절, 출애굽기 39:43절에는 ‘보시니, 보라’의 틀이 있다. 6편의 ‘보다’ 흐름은 이 틀로 이어지며, ‘보라’ 뒤에 오는 내용은 좋음, 부패, 행함으로 달라진다. 이를 창조에서 홍수, 성막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읽는 것은 필자의 정리이다.

같은 어근의 부패와 멸함. 6:11–17절에서 ‘샤하트’ 어근은 땅과 육체의 부패에서 하나님의 멸하심으로 되풀이된다. 본문은 부패를 서술한 뒤 같은 어근으로 멸하심을 예고한다. 다만 본문이 두 낱말의 관계를 풀어 말하지는 않는다.

걸음에서 행함으로. 6:9절에서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걸은 사람으로 소개되고, 6:22절에서는 명하신 모든 것에 따라 행한 사람으로 맺어진다. 이 단락에서 노아의 말은 기록되지 않는다. 걸음과 행함이 한 사람의 서술을 앞뒤에서 둘러싸는 구조로 헤아려 볼 수 있다. 다만 발언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침묵 자체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방주를 지은 노아는 어떤 말씀을 다시 듣는가

6:22절은 노아가 명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행하였다고 마친다. 7:1절에서는 주께서 다시 노아에게 이르신다. 거기서 주께서는 노아와 온 집에게 방주로 들어오라고 하시며, 이 세대 가운데서 노아가 자기 앞에 의로운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6:8절에서 ‘주의 눈에’ 은혜를 입은 노아가 7:1절에서는 ‘내 앞에’ 의로운 자로 보인 사람으로 불린다. 6:9절에서 읽기가 갈린 ‘당대에’는 7:1절의 ‘이 세대 가운데서’에서 어떻게 읽히는가. 그리고 두 단락 사이에서 사라졌던 ‘여호와’라는 이름이 7:1절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은 앞뒤 문맥과 어떻게 이어 볼 수 있을까. 이어지는 본문에서 이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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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음). 원어 표기는 마소라 본문(WLC)을 따른 필자의 풀이이다. 영문 인용은 킹제임스 성경(KJV)이다.

1. 6:9의 히브리어 ‘엘레 톨돗 노아’와 6:22 끝의 구획 표지(ס), 7:1의 시작은 WLC 본문으로 확인했으며 BHS 본문과는 대조하지 못했다. 7:1은 직접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https://openbible.com/text/genesis/6-9.htm

2. ‘찻디크’와 ‘타밈’의 첫 용례는 OpenBible의 Englishman’s Concordance 용례 목록에서 각각 첫 항목으로 확인했다. 5:22와 5:24의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표현은 WLC 본문에서, KJV는 비교 본문에서 확인했다.

3. ‘엘로힘’ 다섯 번(6:9, 11, 12, 13, 22절)과 ‘여호와’ 0번은 6:9–22절 WLC 본문에서 센 것이다. 6:1–8절의 수는 6편 각주 4를 따른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4. 계수 기준: WLC 자음 문자열에서 접두사를 포함해 단어 단위로 세었다. ‘땅’(ארץ)은 6:11절에 두 번, 6:12절에 두 번, 6:13절에 두 번, 6:17절에 두 번 나와 모두 여덟 번이며, ‘샤하트’(שחת) 어근은 6:11절, 6:12절(두 번), 6:13절, 6:17절의 다섯 번이다. KJV는 앞의 셋을 corrupt 계열로, 뒤의 둘을 destroy로 옮겼다.

5. ‘테바’(תבה)는 6:14절에 두 번, 6:15절에 한 번, 6:16절에 두 번, 6:18절과 6:19절에 한 번씩, 모두 일곱 번 나온다. 계수 기준은 각주 4와 같다.

6. ‘카파르’(כפר)의 뜻의 범위는 BDB(Brown–Driver–Briggs)의 해당 어근 항목을 따랐다. 같은 자음 형태와 어원적 관계는 구별된다.

7. ‘베리트’의 첫 용례는 OpenBible Englishman’s Concordance의 용례 목록에서 첫 항목이 6:18임을 확인했다.

8. ‘아사’(עשה)는 6:14절에 두 번, 6:15절에 한 번, 6:16절에 두 번, 6:22절에 두 번 나온다. 6:14–16절은 다섯 번이다. 계수 기준은 각주 4와 같다.

9. 1:31과 출애굽기 39:43의 히브리어는 WLC 본문으로 확인했다. 출애굽기 39:43의 흠정역 인용은 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은 것이다.

10. 6:22와 출애굽기 40:16의 대조는 WLC 본문으로 했다.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문구의 일곱 번씩(39장, 40장) 계수는 WLC 본문을 직접 훑어 센 것이다. 출애굽기 40:16의 흠정역 인용은 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은 것이다.

11. 17:1의 히브리어는 WLC 본문으로 확인했다. 직접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12. ‘세대들’의 복수형을 ‘in his ages’로 푸는 대목은 존 길(John Gill)의 주석에서 확인했다. 성경 본문의 후대 해석 자료이며, 이번 글에서는 온라인 판본을 참조했고 원전과 직접 대조하지는 못했다.

13. 라시, 『창세기 주석』 6:9. 히브리어와 영역(JPS 1917 본문과 라시 영역)을 함께 싣는 판본을 히브리어와 대조해 확인했다(번역자 미표기). 성경 본문의 후대 해석 자료이며 한국어 풀이는 필자의 요약이다. https://www.widetorah.com/genesis/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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