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사람의 기록은 ‘죽었더라’로 끝나지 않는다

창세기 5장의 에녹을 상징하는 인물이 여덟 돌무덤이 늘어선 골짜기를 뒤로하고 새벽빛을 향해 능선을 걷는 장면
‘그가 죽었더라’라는 후렴 사이에서, 에녹의 기록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말로 남는다. 창세기 5장을 모티프로 한 상징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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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1–32 — 일곱째 사람의 기록은 ‘죽으니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의 후렴, 에녹의 걸음, 라멕의 위로

제5편 · 2026.10.28 · Watchman


죽음의 후렴을 기다리는 귀는 일곱째 사람의 기록에서 멈춘다

창세기 5장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귀가 같은 문장을 기다리게 된다. 한 사람이 아들을 낳고, 아들딸들을 더 낳고, 그가 죽으니라. 이 후렴은 여러 번 되풀이되다가 일곱째 사람의 기록에서 멈춘다. 그 자리에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말이 놓인다.

4편에서는 라멕의 노래와 에노스의 때를 살핀 뒤, 5:1–3절에서 ‘형상’이 셋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하겠다고 예고했다. 5장은 가인과 아벨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고 아담에게서 셋으로 곧장 이어진다. 이 물음은 아래에서 다시 살핀다.

이번에 살필 본문은 5:1–32절이다. ‘아담의 세대들에 대한 책’이라는 표제로 시작해¹ 노아의 세 아들로 끝난다. 이어지는 6:1절에서는 사람이 지면에서 번성하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5:1–2절은 창조를 돌아보는 표제이고, 5:3–31절은 아담에서 라멕까지 아홉 세대이며, 5:32절은 노아의 세 아들이다.

아홉 세대에 비슷한 형식이 이어지지만 에녹의 기록은 다르다

각 세대의 기록은 몇 세에 아들을 낳았는지, 그 뒤 몇 년을 더 살며 아들딸들을 낳았는지, 모두 몇 년을 살았는지를 적은 뒤 ‘그가 죽으니라’로 끝맺는다. 흠정역 5장에서 ‘아들딸들을 낳았더라’는 아홉 번(5:4, 7, 10, 13, 16, 19, 22, 26, 30), ‘그가 죽으니라’는 여덟 번(5:5, 8, 11, 14, 17, 20, 27, 31) 나온다.² 아래 표는 흠정역 5장의 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세대이름아들을 낳은 나이그 뒤 산 햇수전체 수명절
1아담1308009305:3–5
2셋1058079125:6–8
3에노스908159055:9–11
4게난708409105:12–14
5마할랄렐658308955:15–17
6야렛1628009625:18–20
7에녹65300365 (데려가심)5:21–24
8므두셀라1877829695:25–27
9라멕1825957775:28–31

노아는 500세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5:32). 이 행은 세 아들을 함께 적었으므로 표 밖에 둔다.

에녹의 기록에서는 아들을 낳은 뒤의 삶을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라고 서술한다. 끝에도 ‘그가 죽으니라’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5:22–24). ‘함께 걸었다’는 5:22절과 5:24절에 두 번 나오며, 같은 표현이 6:9절의 노아에게 다시 붙는다.³

아담의 창조를 기준으로 각 세대의 출생 연대를 계산하고 에녹의 수명을 더하면,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신 때는 아담이 창조된 지 987년이 지난 때에 해당한다. 아담은 930년에 죽었으므로 그로부터 57년 뒤이고, 노아가 태어나는 1056년보다 69년 앞선다.⁴ 에녹의 365년은 다른 이들의 수명보다 짧다. 365라는 수를 태양년의 날수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다. 다만 본문이 이를 설명하지 않으므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⁵

가장 오래 산 이는 969세의 므두셀라이다. 같은 계산에 따르면 그는 687년에 태어나 1656년에 죽으며, 이 해는 노아가 육백 세에 홍수를 맞은 해와 같다.⁶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같은 계산으로 1651년에 죽는다.

‘형상’은 아담에게서 셋으로 이어지고 ‘수고’는 3장으로 돌아간다

4편이 남긴 물음부터 본다. 5:1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고 되짚고, 5:3절은 아담이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고 적는다. 1:26–27절의 두 낱말인 ‘모양’(데무트)과 ‘형상’(첼렘)이 5:1–3절에서 다시 쓰인다. 이때 두 낱말의 순서는 뒤바뀐다.

원어 관찰

1:26 בְּצַלְמֵנוּ כִּדְמוּתֵנוּ (베찰메누 키드무테누) — 풀이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처럼”

5:3 בִּדְמוּתוֹ כְּצַלְמוֹ (비드무토 케찰모) — 풀이 “그의 모양으로, 그의 형상처럼”

위 풀이는 낱말 앞에 붙는 작은 전치사 ‘베’(…으로)와 ‘케’(…처럼)의 형태를 드러낸 필자의 풀이이다. 1:26절은 ‘형상’이 앞에, ‘모양’이 뒤에 오고, 5:3절은 ‘모양’이 앞에, ‘형상’이 뒤에 온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1:26절을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흠정역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로 5:3절을 ‘in his own likeness, after his image’(흠정역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로 옮겨 같은 뒤바뀜을 보인다.⁷ 창세기에서 ‘첼렘’은 1:26, 1:27(두 번), 5:3, 9:6, 모두 다섯 번 나오며, 5:3절은 그 가운데 ‘낳음’과 함께 나오는 유일한 자리이다. 9:6절이 홍수 뒤에도 사람을 해치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하나님의 형상에서 찾는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면, 5장의 출생 기록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세대를 이어 간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5:29절에서는 5장의 유일한 직접 발언이 나온다. 라멕은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 짓고, 주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겪는 ‘우리 손의 수고’를 이 아들이 위로하리라고 말한다(5:29). ‘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잇차본’(עִצָּבוֹן)은 구약 전체에서 3:16, 3:17, 5:29 세 곳에만 나온다.⁸ 3:17절은 땅이 저주를 받아 사람이 수고하며 먹게 된다는 선고이다. 5:29절은 그때의 선고가 여러 세대를 지난 뒤 한 아버지의 말에서 다시 들려오는 대목이다. 또 5장에서 ‘주’(여호와)는 5:29절 한 번뿐이고 ‘하나님’은 다섯 번(5:1절 두 번, 5:22절, 5:24절 두 번)이다.⁹

‘위로하리라’의 동사 ‘나함’(יְנַחֲמֵנוּ)과 같은 어근이 6:6–7절에서 주께서 사람을 지으신 일로 슬퍼하셨다는 서술(וַיִּנָּחֶם, נִחַמְתִּי)에 쓰인다. 킹제임스 성경은 6:6절을 ‘it repented the LORD that he had made man’(흠정역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고”)으로 옮겼다. 영어 ‘repented’(뉘우치다)와 한글 ‘슬퍼하시고’는 같은 히브리어 ‘나함’을 옮긴 말이지만 결이 다르다. 이 글은 흠정역을 따라 ‘슬퍼하다’로 쓴다.¹⁰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에 담은 위로의 기대와 주께서 슬퍼하신 일이 같은 어근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두 대목을 연결해 읽을 여지는 있지만, 의미까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에녹의 사라짐, 긴 수명, 겹치는 이름을 두고 읽기가 갈린다

첫째는 5:24절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으므로 그가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데려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카흐’(לָקַח)는 아내를 맞다, 가져가다처럼 폭넓게 쓰이는 동사이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칠십인역은 이 동사를 ‘옮겼다’는 뜻의 ‘메테테켄’으로 옮겼고, 히브리서 11:5절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도록 옮겨졌다고 말하며 같은 동사를 쓴다. 『솔로몬의 지혜서』 4:10절과 타르굼 위요나단도 이 방향이다. 한편 일부 유대교 전승에서는 에녹이 의로웠으나 흔들리기 쉬워 하나님이 일찍 거두셨다고 풀이한다. 타르굼 온켈로스는 ‘여호와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로 옮긴 것으로 소개되지만, 같은 구절을 ‘죽게 하지 않으셨다’로 옮긴 것으로 소개하는 해설도 있다.¹¹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5:24절이 ‘죽었다’고 적지 않고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고 적으며,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으므로’로 말한다는 점이다. 죽음을 보지 않았다는 풀이는 5:24절 밖의 말씀에서 온다.

둘째는 연수이다. 마소라 본문, 사마리아 오경, 칠십인역은 5장의 수를 서로 다르게 전한다. 칠십인역에는 여러 세대에서 아들을 낳은 나이가 100년씩 많고, 사마리아 오경은 야렛(62세에 에녹을 낳고 847세에 죽음)과 므두셀라와 라멕의 수가 달라 그 수치로 계산하면 이들의 사망 시점이 홍수를 넘기지 않는다. 사마리아 수치에 어떤 계산 틀에 맞춘 조정의 흔적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 있고, 칠십인역의 연대가 원형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칠십인역 계산에서는 므두셀라가 홍수 뒤에도 살게 되어 히에로니무스가 교회들 사이에 널리 오간 물음이라고 적었다.¹² 고대 근동에는 수메르 왕명록처럼 홍수 이전 여덟 왕이 241,200년을 다스렸다고 하고, 베로소스는 열 왕이 432,000년을 다스렸다고 전하는 목록이 있다. 창세기의 열 세대와 수명은 이에 비하면 작으며, 두 전승이 이어져 있는지는 가능성으로 제기될 뿐 확정되지 않았다.¹³ 이 연수를 실제 수명으로 이해할지, 문학적 형식이나 상징적 의미도 함께 고려할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본문은 그 판단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셋째는 두 계보이다. 4:17–18절의 가인 계보와 5장의 셋 계보는 이름이 겹친다. 에녹과 라멕은 두 쪽에 똑같이 나오고, 이랏은 야렛과, 므후야엘은 마할랄렐과, 므두사엘은 므두셀라와 소리가 비슷하며 순서는 같지 않다. 이를 하나의 전승이 두 갈래로 전해진 흔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고, 닮은 이름 때문에 오히려 성품의 대조가 드러난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비슷하게 들리는 이름에도 형태상의 차이가 있으므로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¹⁴ 본문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담에게서 일곱째 자리에 가인 계보는 라멕(4:23–24)을, 셋 계보는 에녹(5:24)을 둔다는 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치가 달라도 긴 수명은 같다고 읽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하나님의 도성』 15권에서 5장의 연수를 다룬다.¹⁵ 그는 아담이 셋을 낳은 나이가 자신이 쓰던 사본에서는 230세이고 히브리 사본에서는 130세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 뒤에 산 햇수를 더하면 전체 수명은 같다고 설명하며, 사본 사이의 수치 차이는 자신이 까닭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에녹이 데려가지기까지 365년이라는 수도 두 사본이 같다고 쓴다. 이어서 옛 사람의 한 해가 오늘날 한 해 길이의 10분의 1이었다는 견해를 물리친다. 그 셈으로 히브리 사본의 수를 줄이면 아담이 너무 이른 나이에 아들을 낳았다는 계산이 되며, 홍수 기록의 달과 날짜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단락은 후대의 한 읽기를 소개한 것이며, 위의 해석에서 근거로 쓰지 않았다.

5장의 패턴은 ‘죽음의 후렴, 어긋난 기록, 이름에 걸린 위로’로 나타난다

죽음의 후렴. 아홉 세대는 ‘아들딸들을 낳았더라’로 이어지고(5:4–30), 에녹을 뺀 여덟 세대는 ‘그가 죽으니라’로 닫힌다(5:5–31). 5:3절의 형상이 낳음을 통해 이어지는 동안 죽음의 후렴도 함께 되풀이된다.

어긋난 기록. 에녹의 기록에서는 ‘함께 걸으며’가 두 번 나오고 ‘그가 죽으니라’가 없다(5:22–24). 본문은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말과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말을 나란히 전한다. 두 진술의 관계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름에 걸린 위로. 4:23절의 라멕이 노래로 말했다면, 5:29절의 라멕은 아들의 이름으로 말한다. 두 라멕은 서로 다른 계보의 인물이다. 5:29절의 낱말 ‘수고’는 3:16–17절에서 오고, 위로의 어근은 6:6–7절에서 주께서 슬퍼하심으로 다시 나온다.

‘위로하리라’는 말은 어디서 대답을 받는가

5장 끝부분에는 노아에게 건 아버지의 기대가 놓인다. 이어지는 6:6–7절에서는 위로를 뜻했던 어근이 주께서 슬퍼하셨다는 서술에 쓰이고, 6:9절에서는 에녹에게 쓰였던 동행의 표현이 노아에게 이어진다. 노아의 이름에 담긴 기대는 이후 이야기에서 어떤 응답을 얻게 될까.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이 어근과 동행의 표현을 따라 그 가능성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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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음). 원어 박스의 풀이와 본문 속 짧은 풀이는 마소라 본문(WLC)을 따른 필자의 풀이이다. 영문 인용은 킹제임스 성경(KJV)이다.

1. 5:1의 ‘세페르 톨돗 아담’(아담의 세대들의 책)은 Orthodox Jewish Bible의 음역 표기로 확인했으며 BHS 본문과는 대조하지 못했다. https://thebible.ch/OJB/GEN/5

2. 흠정역 5:1–32의 문장을 절 단위로 옮겨 적은 뒤 같은 구문의 문장 수를 셌다. 한글 번역어를 기준으로 센 수이며 히브리어 낱말 수가 아니다. 다만 5:6의 ‘와이욜레드’(וַיּוֹלֶד)와 5:11의 ‘와이마트’(וַיָּמֹת)가 해당 번역어와 맞는 것을 WLC 본문으로 확인했다. https://openbible.com/text/genesis/5-6.htm https://mail.bibliaparalela.com/texts/genesis/5-11.htm

3. 6:9의 용례는 2차 자료로 확인했고 6장 본문은 흠정역과 마소라 본문으로 직접 대조하지 못했다. Wikipedia, “Enoch”, https://en.wikipedia.org/wiki/Enoch

4. 아담의 창조를 0년으로 두고 5장의 아들을 낳은 나이를 차례로 더했다(130, 235, 325, 395, 460, 622, 687, 874, 1056). 에녹이 데려가진 해(622+365=987)와 아담의 죽음(930)의 차 57년, 노아의 출생(1056)과의 차 69년은 위 Wikipedia 항목의 같은 수치와 맞는다.

5. Wikipedia, “Genealogies of Genesis”, https://en.wikipedia.org/wiki/Genealogies_of_Genesis. 이 연결은 같은 항목이 소개하는 해석이며 본문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6. 687+969=1656, 1056+600=1656이다. 노아 육백 세의 홍수(7:6)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같은 기록을 들어 홍수 해를 따지는 대목과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사마리아 본문으로 므두셀라가 홍수의 해에 죽는다고 계산한 대목으로 맞추어 보았다. https://logoslibrary.org/augustine/city/1514.html https://catenabible.com/gn/5/25

7. 1:26과 5:3의 히브리어는 WLC 본문과 ‘첼렘’ 용례표로 확인했다. 풀이는 필자의 것이다. 흠정역 1:26과 5:3은 인쇄본에서 옮겼다. KJV 1:26은 Lueur.org 비교 본문으로, KJV 5:3은 위 용례표의 영어 대역으로 확인했다. https://bibliaparalela.com/texts/genesis/1-26.htm https://bibliaparalela.com/hebrew/strongs_6754.htm https://www.lueur.org/bible/comparer/genese1.26-28/KJV,WLC

8. Blue Letter Bible, Strong’s H6093. WLC 기준 3회로 표시된다. https://www.blueletterbible.org/lexicon/H6093/lsb

9. 5:1, 22, 24의 ‘하나님’은 히브리어 ‘엘로힘’이고 5:29의 ‘주’는 ‘여호와’이다. 5:1은 OJB 음역(각주 1)으로, 5:24는 히브리어 인용(Michael Carasik)으로, 5:29는 LSB 번역(각주 8의 링크)으로 확인했다. https://michaelcarasik.substack.com/p/enochs-alter-ego

10. 6:6과 6:7의 히브리어는 WLC 본문으로, 흠정역 6:6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 6:6–7은 Lueur.org 비교 본문으로 확인했다. https://openbible.com/text/genesis/6-6.htm https://openbible.com/text/genesis/6-7.htm https://www.lueur.org/bible/comparer/genese6.6-7/KJV,WLC

11. 모두 2차 자료로 확인했으며 원전과 직접 대조하지는 못했다. John Gill의 히브리서 11:5 주석 https://www.biblestudytools.com/sblg/hebrews/11-5.html, Albert Barnes의 히브리서 11:5 주석 https://www.godtube.com/bible/hebrews/11-5, Michael Carasik https://michaelcarasik.substack.com/p/enochs-alter-ego, Wikipedia “Enoch”. 온켈로스 번역은 해설마다 달리 읽는다.

12. ISBE, “Antediluvian Patriarchs” https://www.biblestudytools.com/dictionary/antediluvian-patriarchs/. 사마리아 수치의 야렛은 Wikipedia “Jared (biblical figure)”로, 칠십인역 연대를 옹호하는 논문은 Smith, 2018 ICC https://publications.cedarville.edu/icc_proceedings/vol_8_2018/134로, 히에로니무스의 진술은 https://catenabible.com/gn/5/25로 확인했다.

13. “Berossus”, New Catholic Encyclopedia https://www.encyclopedia.com/people/history/historians-ancient-biographies/berossus. 수메르 왕명록의 수는 Michael Carasik https://michaelcarasik.substack.com/p/live-long-and-prosper. 둘 다 2차 자료이다.

14. Wikipedia, “Genealogies of Genesis”; Jewish Encyclopedia, “Lamech” https://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9591-lamech; ISBE, “Antediluvian Patriarchs”(각주 12의 같은 항목); Alfred Edersheim, 『Bible History: Old Testament』 1권 4장 https://www.biblestudytools.com/history/edersheim-old-testament/volume-1/chapter-4.html. 일곱째 자리의 비교는 Edersheim의 같은 장에도 나온다.

15. Augustine, 『De Civitate Dei』 XV.10–12, 14, 영어 번역 Marcus Dods(웹 판본이므로 쪽수 대신 장 번호로 적는다). 230·130, 365, 열 배 짧은 해에 대한 반박은 XV.10, XV.12, XV.14를 열어 확인했다. https://logoslibrary.org/augustine/city/1510.html https://logoslibrary.org/augustine/city/1512.html https://logoslibrary.org/augustine/city/15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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