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허가장을 든 약탈자
같은 약탈은 누구의 허가를 받으면 전쟁이 되는가?
2026.10.29 · 바다
2026년 가을에도 다시 거론되는 사략 허가장
2026년 10월 16일 한국 국방부는 소말리아 아덴만의 해적 활동이 예년보다 급증했다고 밝혔다.¹ 2009년부터 이 바다에서 대해적 작전을 해 온 청해부대의 파견 동의안은 올해 12월 31일 만료된다. 정부는 연장 동의안을 준비하면서 해상초계기 추가를 포함한 전력 보강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¹
미국에서는 더 오래된 단어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허가장(letters of marque)이다. 미국 헌법 1조 8항은 의회에 전쟁을 선포할 권한과 나란히 사략(私掠) 허가장을 발행할 권한을 준다.² 상원에서는 2025년 12월 마이크 리 의원이 「카르텔 나포 허가법」(S.3567)을 발의했다. 대통령이 보증금을 받고 허가장을 발급해, 민간 무장 주체가 미국 영토 밖에서 카르텔 관련 인물과 재산을 압류하게 하는 내용이다.³ 발의 당시 법안은 상원 외교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발의만으로 사략이 허용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쓰이지 않던 제도가 국가의 군사적·재정적 부담을 덜 방안으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열두 편으로 이어질 이 시리즈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사냥을 제한하는 국제적 합의가 40년째 시험받는 장면을 보았다. 이번 시리즈는 국가가 해상 약탈을 허가했다가 다시 금지한 과정을 따라간다. 대항해시대 시리즈가 바다의 패권이 어떻게 옮겨 갔는지를 물었다면, 이번에는 그 패권 아래에서 허가를 받고 싸웠다가 방침이 바뀐 뒤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따라간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같은 약탈은 누구의 허가를 받으면 전쟁이 되는가.
약탈이 정책이던 섬, 자메이카
1655년 5월 잉글랜드 원정군이 스페인령 자메이카를 점령했다.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이 세운 ‘서방 계획(Western Design)’의 결과였다. 스페인이 쥔 카리브 해의 독점을 깨고 잉글랜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대규모 원정이었고, 처음 노린 곳은 히스파니올라섬(오늘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의 스페인 거점이었다. 그러나 1655년 4월 이 공격이 실패하자 지휘관들은 방어가 허술한 자메이카로 방향을 돌렸다. 계획은 대체로 실패였지만 이 섬만은 잉글랜드의 손에 남았다.⁴ 점령은 쉬웠지만 유지는 어려웠다. 잉글랜드가 카리브 전역의 해로와 새 식민지를 지킬 해군력을 충분히 투입하기는 어려웠고, 식민지 당국은 그 부족분을 현지 엘리트가 고용한 사략선으로 메우려 했다.⁵ 1657년에는 총독 도일리가 바다의 약탈자들에게 포트로열을 근거지로 쓰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전한다.⁶
본국의 방침은 오락가락했다. 1664년 2월 총독에 임명된 토머스 모디포드는 사략을 억제하라는 훈령을 받았고, 6월 11일 이를 금하는 포고를 냈다. 그러나 경제 사정 때문에 그는 그달이 가기 전에 방침을 뒤집었다.⁷ 사략선은 섬을 방어하는 전력이었고, 약 1,500명에 이르는 선원들이 가져온 노획물과 소비는 항구 경제를 떠받쳤다.⁷ 금지령을 유지하려면 그 수입을 대신할 길도 필요했다.
이 구조에서 헨리 모건이 나왔다. 웨일스 출신인 그는 1660년대 후반 모디포드에게서 스페인 선박을 공격할 허가장을 받았고, 1668년 포르토벨로를 약탈했다.⁸ 1670년 7월 모디포드가 모건에게 전한 원정 지시문은 노획물이 없으면 보수도 없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이들에게 약탈의 성과는 곧 수입이었다. 같은 지시문에는 군법을 공표해 집행할 권한과, 허가장 없는 선박에 허가장을 줄 때 보증금을 받는다는 조항도 있었다.⁹ 통제 장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건의 앞선 원정이 허가장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기록이 있는데도, 총독은 질책하는 데 그쳤고 처벌하지 않았다.¹⁰
그 지시문이 전해진 것은 마드리드에서 조약이 서명된 지 2주 남짓 뒤였다. 1670년 7월 스페인은 자메이카와 케이맨 제도를 잉글랜드령으로 인정했고, 잉글랜드는 카리브의 약탈 행위를 억제하기로 약속했다.¹¹ 이로써 총독이 허용해 온 공격은 본국의 외교 방침과 충돌하게 되었다. 다만 조약이 서명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원정의 지위가 곧바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소식이 카리브에 닿는 시간과 기존 허가의 범위가 따로 있었다. 조약은 섬을 먹여 살린 폭력에 새 이름을 붙일 근거를 마련했다.
1670년 12월 모건은 산타카탈리나섬과 차그레스 요새를 차례로 점령했고, 1,400명을 이끌고 지협을 건너 1671년 1월 파나마를 점령했다.¹² 모건은 훗날 조약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¹³
그러나 총독과 선장 사이의 허가만 살펴서는 이 폭력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모건의 약탈에 잔혹 행위가 따랐다는 서술은 고전적 전기에도 남아 있다.¹⁰ 공격받은 도시의 주민과 붙잡힌 사람들에게 허가장의 존재는 피해를 덜어 주지 않았다. 허가가 누구를 보호했는지 묻는다면, 그 보호에서 제외된 사람들도 함께 보아야 한다.
귀환한 모건은 총독과 평의회의 감사를 받았다.¹² 본국은 스페인과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했다. 모디포드가 소환되어 런던탑에 2년간 갇혔고,¹³ 모건도 1672년 런던으로 연행되었다.⁸ 그런데 모건은 재판도 처벌도 받지 않았다. 1674년 11월 찰스 2세는 그를 기사에 서임하고 자메이카 부총독으로 돌려보냈다.¹⁴
모건이 식민지 통치에 참여하던 1670년대 포트로열에서는 해적죄로 기소된 이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 교수대에서 처형이 이어졌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모건이 이를 다소 위선적으로 지지했다고 평한다.¹⁵ 1677년 제임스 브라운의 교수형을 두고 섬 의회는 사략선원들이 이를 덫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항의했다고 전한다.¹⁶ 브라운의 처형을 모건 개인의 결정으로 돌리려면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다만 이 항의는 허가의 경계가 언제든 옮겨 갈 수 있음을 현장이 알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작은 배는 도적이고 큰 함대는 제국이라 불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4권 4장에서 정의가 없다면 왕국은 큰 도적 떼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그 예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 끌려온 해적의 일화를 든다. 키케로의 『국가론』에서 온 이야기로 보인다.¹⁷ 왕이 바다를 어지럽히는 까닭을 묻자 해적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온 세상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다만 저는 작은 배로 하기에 도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큰 함대로 하기에 황제라 불립니다.”¹⁷
아우구스티누스의 요점은 모든 국가가 도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정의가 빠진 왕국은 규모만 다를 뿐 도적 떼와 같다는 것이다. 도적 떼가 도시를 차지하고 백성을 굴복시키면 왕국이라는 이름을 얻는데, 탐욕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처벌받지 않음이 더해졌기 때문이다.¹⁷
투키디데스는 이 이름의 문제가 훨씬 오래되었음을 보여 준다. 초기 그리스인들은 가장 힘센 자들의 지휘 아래 바다로 나가 약탈로 살았고, 그 일은 아직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얼마간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미노스가 바다에서 해적을 쓸어내려 한 것도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뜻과 이어 놓는다.¹⁸ 해상 질서와 경제적 이해가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이를 당시 해적 소탕의 유일한 동기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동양에서는 사마천이 같은 비대칭을 짧게 적었다. 『사기』 「유협열전」은 『장자』 「거협」에도 보이는 말을 끌어와 이렇게 적는다.¹⁹
竊鉤者誅,竊國者侯,侯之門仁義存。
(절구자주,절국자후,후지문인의존。)
“허리띠 갈고리를 훔친 자는 처형되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문 안에는 인의가 있다.”
사마천은 이 말이 빈말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죄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훔친 물건의 크기가 아니라, 훔친 뒤에 이름을 붙이는 자의 자리라는 뜻이다.
세 기록의 문제의식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를, 투키디데스는 이익을, 사마천은 승자가 붙이는 이름을 겨눈다. 그러나 약탈에 붙는 이름이 힘의 크기와 승인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세 기록은 만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허가의 경계는 본국의 계산에 따라 움직였다
국가의 허가가 모든 약탈을 정당한 전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허가의 대상과 범위를 넘은 행위는 모건의 경우에도 문제가 되었다. 다만 자메이카의 사례는 그 경계를 정하고 집행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자메이카의 사례를 이 세 기록에 겹쳐 놓으면 하나의 순서가 드러난다. 국가는 필요할 때 민간의 무력을 동원하고, 외교 방침이 바뀌면 자신이 허용했던 공격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허가장은 그 사이에서 같은 행위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종이가 된다.
모건의 지위 변화에는 본국의 외교적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 1660년대에는 방위의 수단이었고, 1670년의 조약 앞에서는 외교의 걸림돌이었으며, 1674년에는 다시 섬을 맡길 사람이 되었다. 그의 행위가 줄곧 같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행위가 처벌되고 어떤 인물이 다시 기용되는지를 정한 것은 모건이 아니라 본국이었다. 범죄와 전쟁을 가르는 선은 행위만이 아니라 허가의 유무와 그 시점이 그었다.
이 장면은 단선적이지 않았다.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 실린 한 연구는 1670년 조약이 식민지 총독의 해상 관할을 걷어 내려는 본국의 가장 대담한 시도였으나, 현지의 필요와 이해관계가 작용해 총독들이 해상 문제를 계속 쥐었다고 정리한다.⁵ 조약 한 장이 이름을 바꿔도 섬의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폭력은 다른 이름으로 남는다.
허가장은 공격의 대상과 권한의 범위를 정하는 문서였다. 그러나 문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이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1670년 지시문에는 군법 집행과 보증금 같은 통제 장치가 있었지만, 범위를 넘은 원정은 질책에 그쳤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이익을 얻었으며 누가 피해를 감당했는지는 허가장 바깥에서 따로 물어야 했다.
1856년 파리 선언은 사략 폐지를 규정했다. 미국은 이 선언에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고, 미국 헌법에는 허가장 발급 권한이 여전히 명시되어 있다.²⁰ 다만 이 두 사실만으로 오늘날 사략의 국제법적 적법성까지 확정할 수는 없다. 오늘의 부활론은 찬성하는 쪽에서는 함대의 수적 열세와 비용을 메우는 길로,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윤 동기가 통제를 무너뜨리고 주권 갈등을 부르는 길로 논의된다.²¹ 2025년 법안이 발급 전 보증금을 요구한 것도 17세기 지시문과 닮은 통제 장치다.³ 논쟁의 축은 17세기 자메이카가 던진 질문과 같다. 빌려 쓴 폭력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모건은 1688년 8월 25일 숨졌다. 그가 묻힌 포트로열의 묘지는 1692년 6월 7일 대지진 때 바다로 가라앉았고,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²² 기사로 서임된 약탈자의 무덤마저 도시와 함께 사라졌다. 그 이름이 어떻게 자유의 로망으로 남았는지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다룬다.
허가장을 거두는 손은 누구의 것인가
청해부대 파견에 대한 국회의 동의는 사략 허가장과 성격이 다르다. 노획 이익을 좇는 민간 선박에 공격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휘를 받는 정규군의 임무를 승인하는 절차다. 2009년 첫 파병 이후 파견 기간은 해마다 국회의 동의를 거쳐 연장되어 왔다.¹ 두 제도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의 차이만으로 책임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승인은 무력 사용의 출발점일 뿐, 그 결과에 대한 면책이 아니다. 국회는 어디까지 승인했으며, 지휘부는 그 범위를 지켰는가. 임무가 달라졌다면 누가 다시 심사하고, 피해가 발생했다면 누가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가. 17세기와의 차이는 허가를 내리는 절차뿐 아니라, 허가한 권력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서 드러나야 한다.
허가장이 유효할 때 보호받던 사람도 방침이 바뀌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략선원의 운명이 같지는 않았다. 모건처럼 통치자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해적으로 처형된 사람도 있었다. 그 갈림길은 행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허가를 거둔 뒤 누가 보호받았고 누가 버려졌는지를 다음 글이 따라간다. 허가장은 쥐고 있는 동안에만 방패였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종이가 거두어지는 순간을 기록한다.
* 참고할 말씀: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 로마서 13:4
1. 국방부 발언 및 청해부대 파견 연장 동의안 관련: 경향신문 2026.10.15·10.16·10.19; 뉴스토마토 2026.10.16; 연합뉴스 2026.10.4 보도 전재(한국센터). 청해부대는 2009년 3월 파견 시작, 동의안에 따라 2026.12.31 임무 종료 예정.
2. U.S. Constitution, Art. I, §8, cl. 11.
3. S.3567, Cartel Marque and Reprisal Authorization Act of 2025, 119th Congress (2025.12.18 발의, 마이크 리 의원, 제3조 대통령 권한·보증금 조항; 상원 외교위원회 회부), GovInfo 법안 원문. 처리 경과는 발행 직전 재확인.
4. Wikipedia “Invasion of Jamaica” (1655.5.19~27; 히스파니올라 공격 실패와 자메이카 점령); 서방 계획(Western Design)의 목적은 historyrise.com 등 2차 자료 기준.
5. Cambridge University Press, “Local Maritime Jurisdiction in the Early English Caribbean”, The Problem of Piracy in the Early Modern World (2025).
6. 1657년 도일리 총독의 포트로열 초청: 2차 자료 단일 출처(historyrise.com). 원전 대조 필요.
7. Wikipedia “Henry Morgan” (모디포드 임명 1664.2, 포고 1664.6.11 및 번복, 사략선원 약 1,500명; N. Zahedieh, ODNB 참조).
8. Dictionary of Welsh Biography, “MORGAN, HENRY (1635?-1688), buccaneer”; Britannica 11판 “Sir Henry Morgan”.
9. “English Letter of Marque, 1670” (constitution.org 전사본; 1670.7.22 전달된 모디포드→모건 지시문, no purchase no pay·군법 집행·보증금 조항). 전사본의 서지와 원문(Calendar of State Papers, Colonial) 대조 필요.
10. Britannica 11판 “Sir Henry Morgan” (허가장 범위 초과, 잔혹 행위 서술, 총독의 질책과 불처벌). 20세기 초 서술이므로 최신 연구 대조 필요.
11. “A treaty for the composing of differences, restraining of depredations, and establishing of peace in America…” (마드리드, 1670.7.8/18, 고돌핀 조약); Wikipedia “Treaty of Madrid (1670)”.
12. Britannica 11판 (산타카탈리나 1670.12.15, 차그레스 12.27, 파나마 점령; 구력 1671.1.18, 신력 표기로는 1.28); Wikipedia “Henry Morgan’s Panama expedition”. 본문은 월만 표기.
13. Wikipedia “Henry Morgan’s Panama expedition”; “Thomas Modyford” (런던탑 2년, 1674 석방, 1675 귀환).
14. Wikipedia “Henry Morgan” (1674.11 기사 서임, 부총독 임명); Ocean Navigator, “Sir Henry Morgan”.
15. National Geographic, “How the ‘wickedest city on Earth’ was sunk by an earthquake”.
16. Wikipedia “James Browne (pirate)” (Calendar of State Papers Colonial, vol. 10 인용). 1677.
17. Augustine, De civitate Dei IV.4 (Dods 영역); 키케로 『국가론』 3권 유래는 Dods 각주.
18. Thucydides,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4~1.5 (C. F. Smith 영역).
19. 司馬遷, 『史記』 「游俠列傳」. 같은 구절이 『莊子』 「胠篋」에도 보인다.
20. 1856 파리 해상법 선언; American Spectator, “Letters of Marque and Reprisal: Old Idea, New Purpose”.
21. Lawfare, Peter Neal, “Pirates, Privateers, and Cartels: Why Profit-Driven Policing Backfires”, 2025.3.11 (반대 논지); 찬성 논지는 각주 3.
22. Wikipedia “1692 Jamaica earthquake”; National Geographic (각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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