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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26동생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
가인의 대답, 라멕의 노래, 에노스의 때
제4편 · 2026.10.28 · Watchman
‘어디 있느냐’는 물음이 사람 자신에게서 그의 동생에게로 옮겨 간다
창세기 3장에서 숨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디 있는지를 물으셨다(3:9). 4장에서 하나님은 다시 물으신다. 이번에는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이다(4:9). 질문은 자신의 행방을 묻는 데서 형제의 행방을 묻는 데로 옮겨 갔다. 이 물음의 변화를 따라 4장의 장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본다.
9 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하매
9 And the LORD said un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 창세기 4: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글에서는 4:1부터 4:26까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 4:1과 4:25은 둘 다 아담이 아내를 ‘알았다’로 시작하고, 두 구절 모두 아들이 태어난 뒤 아내가 하나님을 말한다. 4:1에서는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고 하고, 4:25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정해 주셨다”고 한다.¹ 5:1에서 ‘아담 자손의 계보’가 새로 시작되므로 범위는 4:26에서 끝난다.
4:8–12에는 살해 사건과 하나님의 심문이 놓여 있고, 앞부분(4:1–7)은 사건에 이르는 과정, 뒷부분(4:13–26)은 가인의 처지와 두 계보이다.
| 절 | 장면 | 눈에 띄는 것 |
|---|---|---|
| 4:1–2 | 두 아들의 출생 | 이브(히브리어 ‘하와’)의 말, 아벨이라는 이름 |
| 4:3–5 | 헌물과 반응 | 가인의 분노, 얼굴이 침울해짐 |
| 4:6–7 |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신다 |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다 |
| 4:8 | 살해 | 가인의 말에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다 |
| 4:9–12 | 심문과 선고 | 동생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 |
| 4:13–16 | 호소와 표 | 가인이 주의 얼굴 앞에서 물러간다 |
| 4:17–24 | 가인의 후손 | 도시, 목축·음악·금속, 라멕의 노래 |
| 4:25–26 | 셋과 에노스 |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함 |
되풀이되는 ‘동생’과 한 구간에서 나타나지 않는 ‘주’의 이름
마소라 본문(BHS)을 절마다 세어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셋 있다. 나머지 낱말 수는 각주 2에 담았다.²
첫째, ‘동생·형제’(아히)는 4:2–11에 일곱 번 나온다. 장 전체로는 4:21까지 여덟 번이다. 하나님이 ‘네 동생’이라고 말씀하시는 곳이 4:9, 4:10, 4:11 세 번이다. 하나님은 ‘네 동생’을 세 번 말씀하시지만, 가인이 동생을 가리킨 말은 4:9의 ‘내 동생’ 한 번뿐이다.
가인의 입에서 ‘아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곳은 없다. 4장에서 아벨 자신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말하는 이는 이브, 하나님, 가인, 라멕이다. 아벨에게서 소리가 나는 곳은 그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 4:10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4:10을 원어로 한 번 본다. 여기서 ‘피’는 단수 ‘담’이 아니라 복수형 ‘데메’이다.
원어 관찰
מֶה עָשִׂיתָ קוֹל דְּמֵי אָחִיךָ צֹעֲקִים אֵלַי מִן־הָאֲדָמָה (메 아시타 콜 데메 아히하 초아킴 엘라이 민-하아다마) — 직역 “네가 무엇을 했느냐. 네 동생의 피들의 소리가 땅에서 내게 부르짖고 있다.” 4:10
흠정역 4:10 —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동생의 피의 소리가 땅바닥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느니라.”
둘째, ‘땅’(아다마)은 4장에 여섯 번 나온다. 가인은 ‘땅을 가는 자’로 소개된다(4:2). 선고에서는 “네가 땅을 갈아도 이후로는 땅이 너를 위해 자기 효력을 내지 아니할 것”(4:12)이라는 말을 듣는다. 두 곳 모두 같은 동사 ‘아바드’가 쓰였고, 이 동사의 기본 뜻은 ‘섬기다’이다. 가인이 생업으로 삼았던 땅이 선고에서도 중심에 놓인다.
2:15에서 사람에게 맡겨진 일은 ‘섬기고(아바드) 지키는(샤마르)’ 것이었는데, 가인은 ‘땅을 가는 자’(4:2)이면서 자기 입으로 ‘지키는 자’(4:9)를 말한다. 두 동사가 창세기 2장과 4장을 잇는 언어적 실마리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4:17–24에는 ‘주’(히브리어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4장 전체에서 이 이름은 열 번 나오는데, 마지막 용례가 가인이 ‘주의 얼굴 앞에서 물러간’ 4:16이고 다시 나오는 곳은 4:26이다. 그 사이 여덟 절에는 도시, 목축, 음악, 금속, 라멕의 노래가 있다. 4:25에는 ‘하나님(엘로힘)’만 나온다.
이러한 서술상의 침묵을 가인의 후손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상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본문이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는다.
두 계보를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개념도 · 계보의 순서만 보임 · 아다, 실라, 나아마는 그리지 않음 · 금색 세로선은 ‘주’(히브리어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4:17–24 · 근거 본문: 창세기 4:1–2, 4:8, 4:16–26
라멕은 아내 아다와 실라에게 “내 음성을 들으라” 하고 말한 뒤 “내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고 나를 다치게 한 청년을 죽였느니라”고 말한다(4:23).³ 4:10에서는 죽임당한 사람의 피가 소리(히브리어 ‘콜’)를 내고 하나님이 들으신다. 4:23에서는 죽인 사람이 자기 음성(같은 ‘콜’)을 들으라고 한다. 두 ‘콜’을 나란히 놓으면 죽임당한 자의 피와 죽인 자의 목소리가 대비를 이루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4:24에서 라멕은 ‘일곱 배’(4:15)를 ‘일흔일곱 배’로 넓힌다. 다만 4:15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4:24는 라멕의 노래이므로, 발화 상황이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4장의 물음과 낱말은 3장과 민수기, 히브리서에서 다시 맞닿는다
아래 표는 4장의 구절과 대응하는 다른 본문을 모은 것이다. 표의 ‘상태’는 본문이 직접 보여 주면 관찰, 본문에서 한 걸음 나아가면 추론이다.
| 이 장 | 반향 구절 | 연결 방식 | 상태 |
|---|---|---|---|
| 4:10 | 3:13 | 하나님이 사람에게 던지시는 ‘하다(아사)’ 동사의 물음. 3:13은 ‘마 조트 아시트’로 흠정역은 “네가 행한 이 일이 무엇이냐”, 4:10은 ‘메 아시타’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이다. 같은 동사가 쓰였으나 문장이 같지는 않다.⁴ | 관찰 |
| 4:7 | 3:16 | ‘열망(테슈카)’과 ‘다스림(마샬)’의 짝이 두 곳에 함께 나온다. 3:16은 부부 사이, 4:7은 죄와 가인 사이에 쓰였다 | 관찰 |
| 4:10–11 | 민 35:33 | 피가 땅을 더럽히고 그 땅은 피 흘린 사람의 피로만 정결해진다는 원칙. 4장이 이를 말하지는 않으나 피와 땅이 한 문장에 묶이는 점이 같다⁵ | 추론 |
| 4:10 | 히 12:24 | 신약이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를 말한다. 후대의 읽기이며, 신약이 말한 만큼만 받는다⁶ | 관찰 |
| 4:26 | 창 12:8, 13:4 | ‘주의 이름을 부르다’가 아브라함의 제단 이야기에 같은 표현으로 나온다⁷ | 관찰 |
3장의 하나님은 사람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3:9)와 “네가 행한 이 일이 무엇이냐”(3:13)를 순서대로 물으시고, 4장에서도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4:9)에 이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4:10)를 물으신다. 질문의 순서는 같지만 질문을 받은 사람의 반응은 다르다. 3장의 사람은 두려워 숨었다고 대답했고(3:10) 되묻지는 않았다. 4장의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부인한 뒤 되묻는다(4:9).
4:7의 ‘열망’과 ‘다스림’은 3:16에서 부부 사이를 말한 것과 같은 짝이다. 이 열망과 다스림의 짝이 두 곳에서 같은 뜻으로 쓰였는지는 4부에서 살펴본다.
민수기 35:33과 히브리서 12:24은 4장의 피와 땅이라는 주제를 더 넓은 성경 맥락에서 생각하게 한다. 다만 4장이 그 뜻을 미리 담고 있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본문에 없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부른’ 자리(12:8, 13:4)에 같은 표현이 나오므로 4:26의 ‘부름’도 예배의 행위로 이해할 수 있으나, 4:26에는 제단이 없으므로 이는 추론이다.
해석이 갈리는 세 구절과 본문이 허락하는 범위
첫째 구절은 4:7이다. 하나님은 가인이 동생을 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네가 잘 행하면 내가 네 헌물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네가 잘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느니라. 그의 열망이 네게 있으리니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니라.
7 If thou doest well, shalt thou not be accep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and thou shalt rule over him.
— 창세기 4: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구절에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열망’의 주어가 가리키는 대상이다. 원문의 대명사는 ‘그’에 해당하고, 흠정역도 “그의 열망이 네게 있으리니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니라”로 옮겨 이 ‘그’를 앞에 나온 ‘죄’로 읽을지 열어 둔다. 앞에 나온 ‘죄(핫타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길이 있다. 이때는 죄가 짐승처럼 가인을 노리고 가인은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동사 ‘다스릴지니라(팀샬)’의 성격이다. 이 동사는 문맥에 따라 약속이나 가능성, 또는 명령에 가까운 의미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는 설명도 있다.
문법상 ‘핫타트’(여성)와 ‘로베츠’(남성 분사형)의 불일치도 이 구절을 어렵게 만든다.⁸ 문법 논의와 별개로 본문에서 분명히 확인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가인에게 먼저 말씀하셨고, ‘잘 행하면’과 ‘잘 행하지 아니하면’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조건은 가인이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제시된 것으로 이해된다.
둘째 구절은 4:8이다. 마소라 본문에는 가인이 아벨에게 말했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고 그 말의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흠정역도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과 이야기하더니”로 옮기며 이야기의 내용을 적지 않는다.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역에는 ‘우리 들로 나가자’가 더해져 있다.⁹ 일부 해석은 마소라 본문에서 대화의 내용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반면 현재의 본문 형태를 받아들여, 말의 내용이 기록되지 않은 서술 방식 자체에 주목하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느 쪽이든 확인되는 것은, 가인이 말을 걸었고 그 뒤 들에서 동생을 죽였다는 순서이다.
셋째 구절은 4:26이다.
26 셋에게도 즉 그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매 셋이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는데 그때에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
26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 then began men to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 창세기 4:2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마지막 동사 ‘후할(הוּחַל)’은 ‘시작되었다’로도, ‘속되게 되었다’로도 옮길 수 있는 낱말이다. 이 낱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구절의 해석이 달라진다. 기본적인 읽기는 ‘시작되었다’이며, 흠정역도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로, KJV도 “then began men to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로 옮겼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나 기도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읽기는 3부에서 본 12:8, 13:4의 표현과 이어진다.
대안은 같은 자음 어근에 ‘시작하다’와 ‘속되게 하다’라는 두 뜻이 있다는 설명에 따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속되게 되었다’로 읽는 것이다. 이 읽기는 고대 유대 해석에서 전해진다.¹⁰ 두 읽기 모두에서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4:17–24에서 나타나지 않던 주의 이름이 4:26에서 다시 나오고, 그 이름이 ‘부르다(카라)’라는 말과 함께 나온다. ‘부르다’는 4:17, 4:25, 4:26에서 이름을 짓는 데 쓰이고, 같은 말이 주의 이름에도 붙는다.
라시는 왜 ‘피’가 복수형인지 물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중세 프랑스의 유대 주석가 라시(1040–1105경)는 4:10의 ‘피’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데메)으로 쓰인 점을 짚는다.¹¹ 히브리어 본문에서 ‘피’에 해당하는 표현이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라시는 이 복수형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첫째 설명은 『창세기 라바』 22:9에 기대어 적는다. 그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은 아벨의 피만이 아니라 ‘그의 피와 그의 후손들의 피’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그 개인의 생애가 끝나는 사건에 그치지 않고, 그에게서 태어날 수 있었던 후손들까지 사라지는 사건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둘째 설명은 가인이 아벨에게 상처를 여러 곳에 입혔기 때문이라고 푼다. 출처는 각주 11에 적는다. 이 단락은 후대의 한 읽기를 소개한 것이며, 위의 해석에서 근거로 쓰지 않았다.
4장의 패턴은 ‘묻는 하나님, 되묻는 사람, 피를 받은 땅’으로 나타난다
묻는 하나님. 4장에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먼저 건네시는 말씀은 물음이다(4:6–7, 4:9, 4:10). 3장과 같이 물음 뒤에 선고(4:11–12)가 온다.
되묻는 사람. 3장의 사람은 숨고 변명했지만 되묻지는 않았다. 4장의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부인하고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되묻는다(4:9). 하나님은 아벨의 행방을 물으셨지만, 가인은 자신이 동생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지를 되묻는 말로 이해된다. 하나님은 가인의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시고, 그가 저지른 일을 다시 물으신다(4:10).
피를 받은 땅. 아벨의 피는 소리가 되어 땅에서 올라온다(4:10). 땅은 입을 열어 그 피를 받았다(4:11). 가인은 땅에서 쫓겨나 땅을 떠도는 사람이 된다(4:12, 4:14). 부르짖는 것은 땅이 아니라 아벨의 피이고, 땅은 그 피를 받아들인 곳이자 호소가 하나님께 이르는 자리로 묘사된다. 3:17에서 땅이 저주를 받은 일과도 이어진다.
4:17–26에서 가인의 후손을 다루는 단락에는 도시와 여러 기술의 기원이 등장하지만 주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 셋과 에노스를 소개하는 마지막 단락에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나타난다.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폭력이 같은 계보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다음 편에서는 5:1–3의 ‘형상’이라는 낱말이 셋에게 이어지는지 본문에서 확인한다.
가인의 질문에 4장은 어디서 답하는가
창세기 4장을 끝까지 읽어도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가인은 자신이 동생을 지키는 자인지 물었다. 하나님은 그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시고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시며,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 피의 호소는 가인의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볼 수 있을까. 아니면 형제를 향한 사람의 책임은 4장 밖의 말씀까지 살펴보아야 더 분명해지는 것일까.
성경 본문 인용: 한국어는 킹제임스 흠정역, 영어는 King James Version(KJV). 흠정역은 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었다. 원어 박스의 ‘직역’은 마소라 본문을 따른 필자의 직역이다.
1. 4:1의 ‘에트 여호와’는 ‘여호와와 함께’, ‘여호와의 도움으로’ 등으로 옮길 수 있는 구문이다. 흠정역은 “주로부터”로 옮긴다. 이 글은 번역의 범위를 보이려고 이 구문이 열려 있음을 밝혔고, 문법서로 대조하지는 못했다.
2. 마소라 본문(BHS, die-bibel.de) 4:1–26을 절마다 세었다. 막켑(־)으로 이어진 말은 공백으로 나눈 뒤 모음 부호를 떼고 셌다. 동생·형제(אח) 8번: 4:2, 8(둘), 9(둘), 10, 11, 21. 땅(אדמה) 6번: 4:2, 3, 10, 11, 12, 14. 알다(ידע) 4번: 4:1, 9, 17, 25. 이 가운데 부부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셋(4:1, 17, 25)이고, 가인의 ‘알지 못하나이다’가 하나(4:9)이다. 죽이다(הרג) 5번: 4:8, 14, 15, 23, 25. 부르다(קרא) 4번: 4:17, 25, 26(둘). 소리(קול) 2번: 4:10, 23. ‘주’(히브리어 여호와) 10번: 4:1, 3, 4, 6, 9, 13, 15(둘), 16, 26. 얼굴·앞(פנים) 5번: 4:5, 6, 14(둘), 16. 3편은 세파리아의 마소라 판본(MAM)으로 세었으므로 판본에 따라 수가 다를 수 있다.
3. ‘하라그티’는 완료형이어서 ‘죽였다’로도, 가정이나 다짐의 뜻으로도 옮길 수 있다. 후자의 번역은 확인하지 못했다. 히브리어 직역으로는 ‘나의 상처 때문에’와 ‘나의 멍 때문에’이며 전치사 ‘레’를 직역한 것이다. 고백인지 자랑인지는 열려 있다. 라멕의 노래(4:23–24)는 병행하는 짧은 문장이 이어지는 시 형식의 말로 보인다.
4. 3:13의 ‘마 조트 아시트’와 4:10의 ‘메 아시타’는 의문사와 동사 형태가 다르다. 흠정역 3:13은 인쇄본 3장에서 옮겼다.
5. 민수기 35:33은 ESV 본문을 필자가 옮겼다.
6. 히브리서 12:24는 ESV 본문을 필자가 옮겼다.
7. 창세기 12:8, 13:4는 ESV 본문으로 확인했다.
8. ‘핫타트’는 여성 명사이고 ‘로베츠’는 남성 분사형이어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문법서와 대조하지는 못했다.
9.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역의 첨가는 본문으로 확인했다. 시리아역과 불가타에도 있다는 보고는 2차 자료에 기댔으며 직접 대조하지 못했다.
10. 4:26 ‘후할’의 두 읽기는 aish.com의 해설 요약으로 확인했고, 원전과 직접 대조하지는 못했다.
11. 라시, 창세기 4:10 주석. 히브리어 본문은 WideTorah에서 확인했다. 첫째 설명(후손의 피)은 『창세기 라바』 22:9를 인용한다. 둘째 설명은 산헤드린 37b에 기대어 ‘많은 상처를 입혔다’는 뜻으로 풀며, 여기에만 적는다. 영어 번역자와 판본, 쪽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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