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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1–15식탁에서 다시 들린 약속, 속웃음을 향한 물음
세 남자, 장막 문, ‘생명의 때’, 그리고 사라의 속웃음
제22편 · 2026.11.06 · Watchman
한낮의 장막 앞에 세 남자가 찾아온다
17:22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고 떠나 올라가셨다고 전한다. 18장은 마므레의 큰 나무들 곁, 더운 한낮에 장막 문에 앉아 있는 아브라함을 보여 준다(18:1절). 17:21절에서 ‘내년의 이 정해진 때’를 말씀하신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약속이 이번에는 식탁 곁에서 다시 들린다. 본문은 17:22절과 18:1절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밝히지 않는다.1
18:1–15절은 다섯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주께서 나타나시고 세 남자가 서 있는 장면(18:1–2절), 아브라함의 대접(18:3–8절), 사라를 묻는 물음과 약속(18:9–10절), 사라의 속웃음(18:11–12절), 주의 물음과 사라의 부인(18:13–15절)이다.
| 절 | 장면 | 말하는 쪽 |
|---|---|---|
| 18:1–2 | 주께서 나타나시고, 아브라함이 세 남자를 보고 달려가 엎드림 | 서술자 |
| 18:3–8 | 아브라함의 청과 대접: 물, 빵 한 조각, 고운 가루, 송아지, 버터와 우유 | 아브라함, 손님들 |
| 18:9–10 |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돌아오리라는 약속 | 손님들, 아브라함, ‘그분’ |
| 18:11–12 | 두 사람은 늙었고, 사라가 속으로 웃음 | 서술자, 사라 |
| 18:13–15 | 주의 물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사라의 부인과 ‘네가 웃었느니라’ | 주, 사라, ‘그분’ |
조금 대접하겠다던 아브라함은 달려가 서두르며 풍성한 음식을 차린다
18:1절은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알린 뒤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었다고 쓴다. 장소는 ‘엘로네 마므레’(אֵלֹנֵי מַמְרֵא), 곧 마므레의 큰 나무들이며, 흠정역은 ‘마므레의 평야’로 옮겼다. 이 표현은 창세기에서 13:18절, 14:13절, 18:1절에 있다.2 인용문은 흠정역과 KJV를 나란히 싣는다.
1 주께서 마므레의 평야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더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1 And the LORD appeared unto him in the plains of Mamre: and he sat in the tent door in the heat of the day;
— 창세기 18: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같은 어근 ‘보다’(라아)가 18:1절에서는 주께서 ‘나타나셨다’는 뜻으로, 18: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보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어근은 18:1–2절에 모두 세 번 나온다.3 18:2절은 이렇다.
2 눈을 들어 바라보니, 보라, 세 남자가 자기 곁에 서 있으므로 그가 그들을 보고는 장막 문에서 달려가 그들을 맞이하며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고
2 And he lift up his eyes and looked, and, lo, three men stood by him: and when he saw them, he ran to meet them from the tent door, and bowed himself toward the ground,
— 창세기 18: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2절부터 18:7절까지 아브라함의 움직임은 빠르다. ‘달려가다’(루츠, רוּץ)는 18:2절과 18:7절에서 한 번씩, ‘서두르다’(마하르, מָהַר)는 18:6절에서 두 번, 18:7절에서 한 번 나온다. 다섯 용례가 모두 18:2–7절의 대접 장면에 모여 있다.4
아브라함이 내놓은 음식은 처음 청했던 소박한 대접을 훌쩍 넘어선다. 18:4절에서는 ‘물을 조금’, 18:5절에서는 ‘빵 한 조각’을 가져오겠다고 하지만, 18:6–8절에서 그가 내놓는 것은 고운 가루 삼 스아로 구운 빵, 연하고 좋은 송아지, 버터와 우유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주의 종’(18:3절), ‘당신들의 종’(18:5절)이라고 부른다.5 18:5절과 18:8절은 이렇다.
5 내가 빵 한 조각을 가져오리니 당신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그 뒤에 지나가소서. 이런 까닭으로 당신들이 당신들의 종에게 오셨나이다, 하매 그들이 이르되, 네가 말한 대로 그리하라, 하니라.
5 And I will fetch a morsel of bread, and comfort ye your hearts; after that ye shall pass on: for therefore are ye come to your servant. And they said, So do, as thou hast said.
— 창세기 18:5 (킹제임스 흠정역 · KJV)
8 아브라함이 버터와 우유와 젊은이가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밑에 있는 그들 곁에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8 And he took butter, and milk, and the calf which he had dressed, and set it before them; and he stood by them under the tree, and they did eat.
— 창세기 18: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한 사람에게 말하다가, 이어 손님들 모두에게 말을 건넨다. 18:3절은 ‘내 주여’로 시작하는 단수형이고, 18:4–5절은 ‘당신들의 발’처럼 복수형이다. 손님들의 응답을 전하는 동사도 복수형과 단수형을 오간다. 18:5절과 18:9절의 ‘그들이 이르되’는 복수 동사이고, 18:10절과 18:15절의 ‘그분께서 이르시되’는 단수 동사이다. 18:13절에 이르면 서술자는 말씀하시는 분을 다시 ‘주’(여호와)라고 밝힌다. 그 사이 방문객은 ‘남자들’(18:2절), ‘그들’, ‘그분’으로만 불린다.6
18:9절에서 손님들은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사래가 사라로 바뀐 것은 17:15절이었고, 손님들은 이미 바뀐 이름으로 그녀를 부른다. 아브라함이 ‘장막에 있나이다’ 하고 답하자 18:10절의 말씀이 이어진다.
10 그분께서 이르시되,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확실히 네게 돌아오리니, 보라, 네 아내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라가 그의 뒤에 있는 장막 문에서 그것을 들었더라.
10 And he said, I will certainly return unto thee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and, lo, Sarah thy wife shall have a son. And Sarah heard it in the tent door, which was behind him.
— 창세기 18:1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내가 확실히 돌아오리니’에는 같은 동사의 두 형태를 이어 쓴 ‘슈브 아슈브’(שׁוֹב אָשׁוּב)가 놓여 있다. 돌아오겠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약속(‘아슈브 엘레하 케에트 하야’)은 18:14절에서 앞의 강조형 없이 다시 나온다. 18:10절에서 ‘그분’이 한 말이 18:14절에서는 ‘주’의 말씀으로 되풀이된다. ‘케에트 하야’는 구약 전체에서 창세기 18:10절, 18:14절과 열왕기하 4:16절, 4:17절에 있다.7 또 18:10절은 사라가 장막 문에서 들었다고 서술한다. ‘장막 문’(페타흐 하오헬)은 18:1절, 2절, 10절에 나온다. ‘장막 문’이라는 같은 표현이 아브라함이 앉아 있다가 달려 나간 자리(18:1–2절)와 사라가 약속을 듣는 자리(18:10절)에 함께 쓰인다.8
18:11절은 서술자가 사정을 설명하는 절이다.
11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 많아 연로하였고 사라에게는 여인들의 관례에 따른 것이 멈추었으므로
11 Now Abraham and Sarah were old and well stricken in age; and it ceased to be with Sarah after the manner of women.
— 창세기 18: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11–13절에서는 두 사람의 늙음을 나타내는 표현이 거듭 나온다.9 이어 사라가 웃는다.
12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이르되, 내가 늙었고 내 주(主)도 늙었는데 내게 즐거움이 있으리요? 하매
12 Therefore Sarah laughed within herself, saying, After I am waxed old shall I have pleasure, my lord being old also?
— 창세기 18:1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웃다’(차하크, צָחַק)는 18:12절에서 18:15절까지 네 번 쓰인다. 서술자가 사라의 웃음을 전하고(18:12절), 주께서 그 웃음을 아브라함에게 되묻고(18:13절), 사라가 부인하자 그분께서 ‘네가 웃었느니라’ 하고 답하신다(18:15절).10
13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꼬요, 하느냐?
13 And the LORD said unto Abraham, Wherefore did Sarah laugh, saying, Shall I of a surety bear a child, which am old?
— 창세기 18: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사라의 속말에는 자신의 즐거움과 남편의 늙음이 함께 등장한다(18:12절).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되물으실 때는 사라가 늙은 나이에 아이를 낳는 문제에 초점이 놓인다(18:13절). 18:13절의 인용에는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부분이 없다.11 왜 다르게 전하셨는지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18:14절에서 주께서는 자신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고 물으신 뒤,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약속을 다시 들려주신다.
14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정해진 때에 내가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므로
14 Is any thing too hard for the LORD? At the time appointed I will return unto thee,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and Sarah shall have a son.
— 창세기 18:1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한 절에는 때를 가리키는 두 표현이 함께 나온다. ‘정해진 때’(모에드)는 17:21절을, ‘생명의 때를 따라’(케에트 하야)는 18:10절을 떠올리게 한다.12 18:9–14절에서 사라는 손님에게 말하지 않고, 직접 입을 여는 것은 18:15절이 처음이다.
15 그때에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시니라.
15 Then Sarah denied, saying, I laughed not; for she was afraid. And he said, Nay; but thou didst laugh.
— 창세기 18:15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13절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18:14절의 ‘네게’(엘레하)도 남성 단수형이다. 18:15절의 ‘네가 웃었느니라’는 여성 단수형이어서 사라를 향한다. 말씀의 상대가 아브라함에서 사라로 옮겨 간다.
‘정해진 때’는 21장에서, ‘생명의 때’는 열왕기하 4장에서, ‘너무 어려운 일’은 예레미야에서 다시 나온다
17:17절에서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을 때, 하나님은 17:19절에서 이삭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19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참으로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내 언약을 그와 또 그의 뒤를 이을 그의 씨와 세워 영존하는 언약으로 삼으리라.
19 And God said, Sarah thy wife shall bear thee a son indeed; and thou shalt call his name Isaac: and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him for an everlasting covenant, and with his seed after him.
— 창세기 17:1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삭’(이츠하크)은 ‘웃다’(차하크)와 같은 어근의 형태로 풀이된다.13 18:12–15절의 웃음은 이 이름 곁에 놓인다.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21장이다.
1 주께서 친히 이르신 대로 사라를 찾아오셨고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니 2 사라가 수태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정해진 때에 늙은 나이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셨으므로 듣는 모든 자가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고
1 And the LORD visited Sarah as he had said, and the LORD did unto Sarah as he had spoken. 2 For Sarah conceived, and bare Abraham a son in his old age, at the set time of which God had spoken to him. … 6 And Sarah said, God hath made me to laugh, so that all that hear will laugh with me.
— 창세기 21:1–2, 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7:21절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전하고, 21:2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서술한다. 17:21절, 18:14절, 21:2절에는 ‘정해진 때’를 가리키는 같은 낱말(모에드)이 쓰인다. 21:1절의 ‘주’와 21:2절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약속의 성취 장면에 함께 놓인다.12
수넴 여인은 지나가던 하나님의 사람을 권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그가 쉴 방을 마련한다(열왕기하 4:8–11절). 뒤이어 여인에게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었다는 사정이 밝혀진다(4:14절).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아들을 안게 되리라고 말한다(4:16절). 이 이야기는 18장과 닮은 짜임을 가진다. 그 대화는 다음과 같다.
14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까? 하매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그녀에게는 아이가 없고 그녀의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므로 15 엘리사가 이르되, 그녀를 부르라, 하니 그가 그녀를 부르매 그녀가 문에 서므로 16 엘리사가 이르되, 생명의 때를 따라 이맘때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그녀가 이르되, 아니니이다. 내 주 곧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여종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그 여인이 수태하여 생명의 때를 따라 엘리사가 그녀에게 말해 준 그때에 아들을 낳았더라.
14 And he said, What then is to be done for her? And Gehazi answered, Verily she hath no child, and her husband is old. 15 And he said, Call her. And when he had called her, she stood in the door. 16 And he said, About this season,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thou shalt embrace a son. And she said, Nay, my lord, thou man of God, do not lie unto thine handmaid. 17 And the woman conceived, and bare a son at that season that Elisha had said unto her,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 열왕기하 4:14–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4:16절의 ‘레모에드 하제 케에트 하야’는 17:21절의 ‘레모에드 하제’와 18:10절의 ‘케에트 하야’를 한 절에 모은 표현이다. 환대와 출생 약속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약속을 듣는 여인의 반응은 다르게 그려진다. 여인은 웃는 대신 거짓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14
18:14절의 ‘너무 어렵다’(팔라, פָּלָא)는 니팔형이다. 이 동사와 ‘일·말씀’(다바르)은 신명기 17:8절과 예레미야 32:17절, 32:27절에도 함께 나온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어려운 일이 없다는 주제를 이어 가는 예레미야의 두 구절을 살펴본다.15
17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큰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 … 27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17 Ah Lord GOD! behold, thou hast made the heaven and the earth by thy great power and stretched out arm, and there is nothing too hard for thee: … 27 Behold, I am the LORD, the God of all flesh: is there any thing too hard for me?
— 예레미야 32:17, 2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32:17절에서는 선지자가 주께 너무 어려운 일이 없다고 아뢰고, 32:27절에서는 주께서 스스로 같은 물음을 던지신다. 손님 접대는 19장에서도 이어진다. 19장의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저녁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다다랐는데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어나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절하며 2 이르되, 이제 보소서, 내 주(主)들이여, 원하건대 발길을 돌려 당신들 종의 집으로 들어와 온밤을 묵으며 당신들의 발을 씻고 일찍 일어나 당신들의 길을 가소서, 하니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거리에서 온밤을 지내리라, 하였으나 3 그가 간절히 그들에게 조르므로 그들이 그에게로 발길을 돌려 그의 집으로 들어오니 그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누룩 없는 빵을 구우매 그들이 먹었더라.
1 And there came two angels to Sodom at even; and Lot sat in the gate of Sodom: and Lot seeing them rose up to meet them; and he bowed himself with his face toward the ground; 2 And he said, Behold now, my lords, turn in, I pray you, into your servant’s house, and tarry all night, and wash your feet, and ye shall rise up early, and go on your ways. And they said, Nay; but we will abide in the street all night. 3 And he pressed upon them greatly; and they turned in unto him, and entered into his house; and he made them a feast, and did bake unleavened bread, and they did eat.
— 창세기 19: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롯은 두 천사를 맞이하여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절하고(19:1절), 발을 씻고 쉬어 가라고 청하며(19:2절), 잔치를 베푼다(19:3절). 발을 씻으라는 말(베라하추 라글레켐)은 18:4절과 19:2절에 같은 형태로 나온다.16
신약의 여러 본문에서도 창세기 18장과 연결해 볼 만한 표현과 주제를 만날 수 있다. 먼저 히브리서 13:2절은 나그네 대접을 말한다.
2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그리함으로써 어떤 자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천사들을 대접하였느니라.
2 Be not forgetful to entertain strangers: for thereby some have entertained angels unawares.
— 히브리서 13: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구절은 흔히 아브라함(18장)과 롯(19장)의 접대와 이어서 풀이되지만, 아브라함과 롯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바울은 로마서 9:7–9절에서 약속의 자녀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쓴다.
7 또한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다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라. 오히려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8 즉 육체의 아이들인 자들,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히려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지느니라. 9 그 까닭은 약속의 말씀이 이것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 때에 내가 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느니라.
7 Neither, because they are the seed of Abraham, are they all children: but, In Isaac shall thy seed be called. 8 That is, They which are the children of the flesh, these are not the children of God: but the children of the promise are counted for the seed. 9 For this is the word of promise, At this time will I come, and Sara shall have a son.
— 로마서 9:7–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바울은 육체의 아이들과 약속의 아이들을 가르는 논증 속에서 9절을 ‘약속의 말씀’으로 제시한다. 로마서 9:9절과 창세기 18:10절은 흠정역 번역에서 표현이 다르다(‘이 때에 내가 오리니’,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확실히 네게 돌아오리니’). 다만 그 차이만으로 바울이 인용한 본문의 형태를 판단하기는 어렵다.17 베드로전서 3:6절은 사라를 이렇게 언급한다.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主)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같이 너희가 잘 행하고 어떤 놀랄 만한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딸들이 되느니라.
6 Even as Sara obeyed Abraham, calling him lord: whose daughters ye are, as long as ye do well, and are not afraid with any amazement.
— 베드로전서 3: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구절은 흔히 18:12절의 ‘내 주(主)도 늙었는데’와 이어서 풀이되나, 두 본문 사이에 인용 표시는 없다. 히브리서 11:11절은 같은 사라를 믿음의 관점에서 말한다.
11 믿음을 통해 사라도 친히 나이가 지났을 때에 씨를 수태하는 힘을 받아 아이를 출산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라.
11 Through faith also Sara herself received strength to conceive seed, and was delivered of a child when she was past age, because she judged him faithful who had promised.
— 히브리서 11: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1:37절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는 말이다. 36절은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아들을 수태했다는 소식을 앞서 전한다.
3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 하매
37 For with God nothing shall be impossible.
— 누가복음 1:3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말은 18:14절의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와 뜻이 닿으나, 누가복음은 창세기를 직접 인용한다고 밝히지는 않는다.17 이 연결들은 어휘와 주제가 겹치는 지점이며, 한 곳이 다른 곳과 같은 사건이나 같은 뜻이라는 근거는 아니다.
세 남자의 정체, 두 웃음의 성격, 사라의 말이 달리 전해진 이유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첫째 쟁점은 세 남자가 누구인가이다. 18:1절은 주께서 나타나셨다고 하고, 18:2절은 아브라함이 세 남자를 본다고 한다. 18:3절의 ‘내 주여’는 단수로 말해지고, 18:13절에서 말하는 이는 ‘주’로 밝혀진다. 18장에는 ‘천사’(말아크)라는 낱말이 없고, 19:1절과 19:15절에서 두 천사가 나온다.18 18:22절은 이렇다.
22 그 남자들이 거기서 얼굴을 돌려 소돔을 향해 갔으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주 앞에 서 있다가
22 And the men turned their faces from thence, and went toward Sodom: but Abraham stood yet before the LORD.
— 창세기 18:2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그 남자들’은 소돔으로 가고 아브라함은 ‘주 앞에’ 서 있다. 이를 두고 세 남자 가운데 한 분이 주이고 나머지 둘이 천사라는 이해가 있으며, 18:22절의 대비와 19:1절의 두 천사가 그 근거로 거론된다. 반대로 세 남자 모두를 천사(사자)로 보고, 18:1절은 만남 전체를 먼저 요약한 말이며 18:13절의 ‘주’는 사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이해가 있다. 이 입장은 히브리서 13:2절이 천사 대접을 말한다는 점을 든다. 마소라 본문은 18:3절의 호칭과 18:12절에서 남편을 가리키는 호칭에 서로 다른 모음 부호를 붙인다.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지는 자음 본문과 모음 전승, 문맥을 함께 살펴야 한다.19 본문은 세 남자 각각의 정체와 역할을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둘째 쟁점은 아브라함의 웃음(17:17절)과 사라의 웃음(18:12절)의 성격이다. 17:19절에서 하나님은 웃은 아브라함에게 되묻지 않고 아들의 이름을 주시지만, 18:13–15절에서 주께서는 사라의 웃음을 되물으신다. 본문은 두 웃음의 성격을 직접 밝히지 않는다. 18:15절의 ‘두려워서 부인하여’는 사라의 반응을 보여 주지만 웃음의 성격까지 말해 주지는 않는다. 두 웃음의 성격을 곧바로 나누기보다, 각 장면에서 약속과 응답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신약 본문은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하지 아니하였다고 하고(롬 4:19–20절), 사라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게 여겼다고 하는데(히 11:11절), 창세기 본문의 서술과 신약 본문이 조명하는 믿음의 모습은 구별하여 살필 필요가 있다.
셋째 쟁점은 18:13절에서 주께서 사라의 말을 달리 전하신 이유이다. 한 해설 자료는 라시의 풀이를 평화를 위한 배려로 소개한다. 사라가 남편을 늙었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언짢아하지 않도록 하셨다는 것이다.20 다른 이해로는 주께서 물음의 초점을 아이를 낳는 일에 모으셨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본문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 남자를 천사로 보고 단수 호칭만으로 그리스도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신국론》 16권 29장에서 마므레의 세 남자를 천사로 이해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본성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피조물을 통해 나타나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이 한 분을 단수로 ‘주’라 부른 것을 근거로 그분을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를 소개한다. 그러나 롯이 두 천사를 단수로도 부르는 장면을 들어, 단수 호칭만으로 그 견해를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단수형과 복수형의 교차는 하나님께서 천사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며, 성경이 이들을 천사라 부른다는 증거로 히브리서 13:2절을 든다. 이 해석은 세 방문객의 정체를 이해해 온 한 전통을 보여 준다. 앞서 살핀 본문의 관찰과 구분하여 참고할 수 있다.21
열다섯 절의 짜임은 식탁의 약속, 속웃음, 되풀이되는 ‘때’로 헤아려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본문에서 확인되는 사항을 ‘관찰’, 그 배열에서 이끌어 낸 해석을 ‘추론’,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가능성을 ‘사변’으로 구분한다.
| 어휘·구절·주제 | 내용 | 판단 구분 |
|---|---|---|
| ‘달려가다’·‘서두르다’ | 달려가다 두 번(18:2; 18:7절), 서두르다 세 번(18:6절 두 번; 18:7절). 18:1–15절에서는 모두 18:2–7절 안에만 있음 | 관찰 |
| 말과 행동의 크기 | 말은 ‘물을 조금’(18:4절), ‘빵 한 조각’(18:5절). 행동은 고운 가루 삼 스아, 송아지, 버터와 우유(18:6–8절) | 관찰 |
| ‘장막 문’ | 18:1; 2; 10절. 같은 표현이 아브라함의 자리(18:1–2절)와 사라가 말씀을 듣는 자리(18:10절)에 쓰임 | 관찰 |
| 말하는 이의 수 | 복수 동사 18:5; 9절, 단수 동사 18:10; 15절, ‘주’가 말하는 이로 밝혀짐 18:13절 | 관찰 |
| ‘주’라는 이름 | 18:1; 13; 14절. 18:2–12절에는 없음 | 관찰 |
| ‘케에트 하야’ | 창세기 18:10; 18:14절, 열왕기하 4:16; 4:17절 | 관찰 |
| ‘정해진 때’ | 17:21; 18:14; 21:2절(1:14절의 ‘모에드’는 계절의 뜻) | 관찰 |
| ‘웃다’ | 18:12–15절에 네 번. 17:17절이 창세기의 첫 용례 | 관찰 |
| 사라의 말과 주의 인용 | 18:12절은 ‘즐거움’과 ‘내 주도 늙었는데’, 18:13절은 ‘정말로 아이를 낳을꼬’와 ‘내가 늙었는데’ | 관찰 |
| 말씀의 상대 | 18:13–14절은 아브라함에게(남성 단수), 18:15절의 ‘네가 웃었느니라’는 사라에게(여성 단수) | 관찰 |
| ‘너무 어렵다’ | ‘팔라’(니팔)와 ‘다바르’가 한 절에 있는 곳: 창세기 18:14; 신명기 17:8(판결의 문맥); 예레미야 32:17; 32:27절 | 관찰 |
| 약속의 순서 | 18:10절의 약속은 17:19; 17:21절에서 이미 주어진 말씀과 이어짐 | 관찰 |
| 약속의 근거 | 약속이 대접에 앞서 주어졌으므로 환대를 조건으로 보기는 어렵고, 식사 자리에서 기존의 약속이 다시 확인되는 장면으로 볼 수 있음 | 추론 |
| 때의 표현 | 18:14절에서 ‘모에드’와 ‘케에트 하야’가 한 절에 모임. 약속의 성취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고 풀이해 볼 수 있음 | 추론 |
| 웃음의 반복 | 17:17; 18:12–15; 21:6절의 웃음이 이삭의 이름 둘레에서 되풀이됨 | 추론 |
| 18:13절의 생략 | 아브라함의 늙음이 빠진 이유(배려인지, 물음의 초점 이동인지) | 사변 |
| 18:15절의 두려움 | 두려움의 대상과 마지막 말씀의 어조(책망인지 확인인지) | 사변 |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18:10절의 약속은 17:19절과 17:21절에서 이미 주어진 말씀의 되풀이이다. 약속은 아브라함의 대접에 앞서 이미 주어졌다. 따라서 이 장면의 환대를 약속을 얻는 조건으로 보기는 어렵다. 식사 자리에서 기존의 약속이 다시 확인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18:14절은 ‘모에드’와 ‘케에트 하야’를 한 절에 모으고, 열왕기하 4:16절도 같은 두 표현을 함께 쓴다. 이 반복은 약속의 성취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고 풀이해 볼 수 있다.
셋째, 웃음은 17:17절에서 18:12–15절을 거쳐 21:6절까지 이삭의 이름 둘레에서 되풀이된다. 이 배열은 이삭이라는 이름이 속웃음과 나중의 웃음을 함께 담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으나, 두 웃음이 같은 뜻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변으로 남기는 것은 둘이다. 하나는 18:13절에서 아브라함의 늙음이 빠진 까닭이다. 다른 하나는 사라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마지막 말씀을 어떤 어조로 들었는지이다. 본문은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했다고 밝히지만 이 점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문맥에 비추어 풀어 볼 수는 있으나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해석이므로 사변으로 분류한다.
장막 안의 속말을 아신 분은 곧이어 무엇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겠다고 하시는가
사라는 웃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분께서는 사라의 웃음을 알고 계신다(18:15절). 그보다 앞서 들려주신 출생의 약속도 이 대화 속에 남아 있다. 본문은 사라가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더 설명하지 않는다. 이어 방문객들은 일어나 소돔 쪽을 바라보고(18:16절), 주께서는 ‘내가 하는 그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리요?’ 하고 스스로 물으신다(18:17절). 장막 안의 속웃음에서 시작된 대화는 이제 어디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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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흠정역은 인쇄본(창세기 17:17–18:31, 19장, 21장; 열왕기하 4장; 예레미야 32장; 로마서 9장; 베드로전서 3장; 히브리서 11·13장; 누가복음 1장)에서 옮겼다. 인쇄본의 기울임체(번역자 보충어)는 박스에 반영하지 않았다. KJV는 thiagobodruk/bible의 en_kjv.json(https://github.com/thiagobodruk/bible)에서 해당 구절을 열어 대조했고, 철자와 문구를 그대로 유지했다(원본의 ‘them ,’, ‘it ,’, ‘LORD ?’처럼 쉼표·물음표 앞 공백만 정리했다). 다섯 장면의 구분은 편집 의도에 따른 것이며 본문에 구분 표시가 있는 것은 아니다. 17:22절과 18:1절 사이의 시간 경과는 본문에 서술이 없다. ↩
‘엘로네 마므레’는 OSHB(WLC 기반, https://github.com/openscriptures/morphhb)에서 ‘엘론’(표제어 436)의 연계형 뒤에 ‘마므레’(표제어 4471)가 이어진 형태를 찾아 창세기에서 13:18; 14:13; 18:1절로 확인했다. ‘마므레’는 14:24절(사람 이름)과 23:17; 23:19; 25:9; 35:27; 49:30; 50:13절(지명)에도 나오나 ‘엘로네’ 형태가 아니어서 세지 않았다. 흠정역 인쇄본은 18:1절을 ‘마므레의 평야’로, KJV는 ‘the plains of Mamre’로 옮겼다. ‘엘론’이 큰 나무를 뜻한다는 설명은 일반 히브리어 사전의 풀이이며 이 계수에서 확인한 사항이 아니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
‘보다’(라아, 표제어 7200)는 18:1절에서 니팔형(‘와예라’, ‘나타나다’), 18:2절에서 칼형(‘와야르’) 두 번으로 18:1–2절에 모두 세 번이다. 18:3–15절에는 이 어근이 없다. ↩
‘달려가다’(루츠, 표제어 7323)는 18:2절 ‘와야라츠’, 18:7절 ‘라츠’이다. ‘서두르다’(마하르, 표제어 4116)는 18:6절 ‘와예마헤르’와 ‘마헤리’, 18:7절 ‘와예마헤르’이다. OSHB 표제어 번호로 18:1–15절의 모든 낱말을 대조하여, 이 두 어근이 18:2–7절 밖에는 없음을 확인했다. ↩
‘종’(에베드, 표제어 5650)은 18:3절 ‘아브데카’, 18:5절 ‘아브데켐’이다. 18:5절의 ‘빵 한 조각’은 ‘페트 레헴’(표제어 6595, 3899)이고, 18:6절의 ‘삼 스아’는 ‘셸로샤 세임’(표제어 7969, 5429)이다. 양과 종류는 본문 서술에 따랐으며 ‘스아’의 용량 환산은 하지 않았다. ↩
18:3절의 2인칭 단수형(‘타아보르’, ‘베에이네카’, ‘아브데카’)과 18:4–5절의 2인칭 복수형(‘베라하추’, ‘라글레켐’, ‘베히샤아누’, ‘베사아두’, ‘리브켐’, ‘타아보루’, ‘아바르템’, ‘아브데켐’)을 OSHB 형태 표지(2ms/2mp)로 확인했다. 18:5절 끝의 ‘와요므루’(복수) 뒤에 이어지는 ‘켄 타아세’는 2인칭 단수형이다. ‘말하다’(아마르, 표제어 559)의 3인칭 동사는 18:5절과 18:9절 첫째 동사가 복수(‘와요므루’)이고, 18:3; 18:6절, 18:9절 둘째 동사(아브라함), 18:10; 18:13; 18:15절은 단수(‘와요메르’)이다. ‘주’(YHWH, 표제어 3068)는 18:1; 18:13; 18:14절 세 곳이고 ‘엘로힘’(표제어 430)은 18:1–15절에 없다. ‘남자들’(아나쉼, 표제어 376)은 18:2절에만 있다. 흠정역 인쇄본이 18:9절은 ‘그들이’, 18:10절과 18:15절은 ‘그분께서’로 옮긴 것을 확인했다. ↩
‘슈브 아슈브’(표제어 7725의 부정사 절대형과 미완료 1인칭 단수)는 18:10절이고, 18:14절에는 ‘아슈브’만 있다. ‘케에트 하야’는 ‘에트’(표제어 6256)와 ‘하야’(표제어 2416, 여성형)가 이어진 형태를 구약 39권 OSHB에서 찾아 창세기 18:10; 18:14절과 열왕기하 4:16; 4:17절로 확인했다. 두 낱말이 떨어져 있거나 다른 어형으로 쓰인 곳은 이 검색에 잡히지 않는다. ‘하야’의 뜻과 ‘케에트 하야’의 풀이는 이 계수로 판정하지 않았다. KJV는 18:10절을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열왕기하 4:16절을 ‘About this season,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로 옮긴다. ↩
‘장막’(오헬, 표제어 168)은 18:1; 18:2; 18:6(‘하오할라’); 18:9; 18:10절에 한 번씩 다섯 번이다. ‘장막 문’(‘페타흐’ 표제어 6607 뒤에 ‘오헬’)은 18:1; 18:2(‘미페타흐’); 18:10절이다. 18:10절 끝의 ‘그의 뒤에 있는 장막 문’은 흠정역 인쇄본의 문구이고 KJV는 ‘which was behind him’이다. 원문의 대명사 ‘후’가 가리키는 대상은 이 계수로 판정하지 않았다. ↩
‘늙다’는 18:11절 ‘제케님’(표제어 2205, 형용사 복수), 18:12절 ‘자켄’, 18:13절 ‘자카네티’(표제어 2204)이다. ↩
‘차하크’(표제어 6711)는 18:12절 ‘와티츠하크’, 18:13절 ‘차하카’, 18:15절 ‘차하크티’와 ‘차하크트’로 18:12–15절에 네 번이다. 17:17절의 ‘와이츠하크’(표제어 6711)는 창세기의 첫 용례이다. ↩
18:12절은 ‘아하레이 벨로티 하이타 리 에드나 바아도니 자켄’, 18:13절은 ‘하아프 암남 엘레드 바아니 자카네티’의 구성이다(OSHB 본문). 18:12절의 ‘에드나’(즐거움)와 ‘아도니’(내 주)는 18:13절에 없고, 18:13절의 ‘아프 암남’(정말로)은 18:12절에 없다. 18:14절의 ‘엘레하’(네게, 18:10절도 같은 형태)는 2인칭 남성 단수, 18:15절의 ‘차하크트’(네가 웃었다)는 2인칭 여성 단수임을 OSHB 형태 표지로 확인했다. 18:13절의 수신자는 ‘엘 아브라함’(아브라함에게)으로 본문에 밝혀져 있다. ‘에드나’의 낱말 뜻은 판정하지 않았다. ↩
17:21절의 ‘레모에드 하제 바샤나 하아헤레트’(‘모에드’ 표제어 4150), 18:14절의 ‘레모에드 … 케에트 하야’, 21:2절의 ‘레모에드 아셰르 디베르 오토 엘로힘’을 OSHB 본문에서 확인했다. 창세기에서 ‘모에드’는 이 세 곳과 1:14절이다. 1:14절의 ‘모에드’(복수형 ‘레모아딤’)는 계절·정해진 때의 뜻이어서 이 줄에서 뺐다. ↩
‘이삭’(이츠하크, 표제어 3327)은 17:19절에 처음 나온다. ‘이츠하크’와 ‘차하크’가 같은 어근의 형태라는 설명은 일반 히브리어 사전의 풀이이며 이 계수에서 확인한 사항이 아니다. 21:1–2절과 21:6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는 en_kjv.json과 대조했다. 21:6절의 ‘츠호크’(웃음, 표제어 6712)는 동사(표제어 6711)와 표제어 번호가 다르나 같은 어근 계열이다. ↩
열왕기하 4:14–17절은 인쇄본·KJV 대조 박스이고, 4:8–11절은 인쇄본을 보고 따옴표 없이 요약했다. 4:14절 ‘이샤 자켄’(그의 남편이 늙었다), 4:16절 ‘레모에드 하제 케에트 하야’, 4:17절 ‘레모에드 하제 케에트 하야 아셰르 디베르 엘라 엘리샤’를 OSHB 본문에서 확인했다. 4:16절에서 여인이 한 말 ‘알 티크자브’(거짓말하지 마소서; 흠정역 인쇄본은 ‘거짓말을 하지 마옵소서’)의 ‘카자브’(표제어 3576)는 18:15절의 ‘부인하다’(‘카하쉬’, 표제어 3584)와 다른 동사이다. ↩
‘팔라’(니팔 미완료 3인칭 남성 단수)와 ‘다바르’(표제어 1697)가 한 절에 있는 곳은 구약 39권 OSHB 검색으로 창세기 18:14절, 신명기 17:8절, 예레미야 32:17절, 32:27절이다. 신명기 17:8절은 KJV의 ‘a matter too hard for thee in judgment’로 확인되는 판결의 문맥이어서 본문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시편 145:5절에도 두 어근이 함께 나오나 ‘닙레오테카’(놀라운 일들, 분사형)여서 세지 않았다. 예레미야 32:17절과 32:27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 ↩
‘베라하추 라글레켐’은 ‘라하츠’(표제어 7364)와 ‘라글’(표제어 7272)이 한 절에 있는 곳을 찾아 창세기 18:4; 19:2; 24:32; 43:24절로 확인했다. 18:4절과 19:2절은 ‘베라하추 라글레켐’(명령, 2인칭 복수)으로 철자가 같고, 24:32절은 ‘라하츠 라글라이브’(그의 발을 씻기 위해), 43:24절은 ‘와이르하추 라글레헴’(그들이 발을 씻었다)이어서 같은 형태로 세지 않았다. 19:1절의 두 천사는 ‘쉐네 함말아킴’이다. 19:1–3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 ↩
신약 구절(히브리서 13:2; 11:11, 로마서 9:7–9, 베드로전서 3:6, 누가복음 1:37)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는 en_kjv.json과 대조했다. 로마서 9:9절의 ‘이 때에 내가 오리니’와 창세기 18:10절·18:14절의 문구가 같지 않다는 것은 흠정역 인쇄본 문구의 비교이며, 바울이 어느 본문(히브리어 본문, 칠십인역)을 인용했는지는 대조하지 못했다. 히브리서 13:2절과 18장, 베드로전서 3:6절과 18:12절의 연결은 본문에 명시되지 않은 해석상의 연결이다. 누가복음 1:37절과 18:14절의 연결은 문구의 유사성에 근거한 것이며 본문이 인용 표시를 달고 있지 않다. 누가복음 1:36절은 인쇄본을 보고 따옴표 없이 요약했다. ↩
‘천사’(말아크, 표제어 4397)는 창세기 18장에 없고 19:1절(‘쉐네 함말아킴’)과 19:15절에 나온다. 18:16절과 18:22절은 ‘하아나쉼’(그 남자들)이다. 흠정역 18:22절은 인쇄본에서, KJV는 en_kjv.json에서 옮겼다. ↩
모음 부호는 OSHB에서 확인했다. 18:3절의 ‘아도나이’는 첫 글자에 ‘하텝 파타흐’, 끝의 ‘나’에 ‘카메츠’가 있고, 18:12절의 ‘바아도니’는 끝에 ‘히리크’가 있다. 모음 부호는 후대 마소라 학자들이 붙인 것이어서 자음 본문과 층위가 다르다. OSHB의 형태 표지는 18:3절을 1인칭 단수 접미가 붙은 복수형으로 분석한다. 이 형태를 하나님께 대한 호칭으로 볼지 존칭으로 볼지는 이 확인으로 판정하지 않았다. ↩
라시의 18:13절 풀이(평화를 위하여 말씀이 바뀌었다는 설명)는 njop.org의 해설 글(https://njop.org/vayeira-5769-2008/)에서 확인했다. 그 글은 라시가 민수기 라바를 인용한다고 소개하며, 예바못 65b가 평화의 중요성을 들어 설명한다고 덧붙인다. 라시 본문과 이들 원문은 직접 대조하지 못했다. ↩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제16권 29장. 확인한 곳: CCEL(https://ccel.org/ccel/schaff/npnf102.iv.XVI.29.html)과 biblehub 도서관 쪽(https://biblehub.com/library/augustine/city_of_god/chapter_29_of_the_three_men.htm). 두 페이지 모두 번역자를 적지 않았으며 NPNF 1집 2권(Philip Schaff 편) 계열이다. 페이지를 열어 장의 논지를 확인했으나 전문 직접 대조와 쪽수 확인은 하지 못했다. 본문의 소개는 요지를 옮긴 것이며 따옴표 인용이 아니다. 이 장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을 다루는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