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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1–27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고 이름과 표를 주신다
엘 샤다이, 열세 번의 ‘언약’, 아브라함·사라·이삭, 그리고 할례
제21편 · 2026.11.05 · Watchman
열세 해 뒤에 주께서 나타나시고, 17장은 네 장면으로 이어진다
16장은 아브람이 팔십육 세일 때 이스마엘이 태어났다는 서술로 끝났다(16:16절). 17장은 ‘아브람이 구십구 세였을 때’로 시작한다(17:1절). 본문은 그 열세 해의 경과를 별도로 서술하지 않는다. 17장은 네 장면으로 짜여 있다. 언약의 선언과 이름의 변경(17:1–8절), 언약의 표인 할례(17:9–14절), 사라와 이삭의 약속 및 이스마엘을 위한 청(17:15–22절), 같은 날의 순종(17:23–27절)이다.1 아래 표는 그 흐름이다.
| 절 | 장면 | 말하는 쪽 |
|---|---|---|
| 17:1–2 | 주의 나타나심, 엘 샤다이, ‘내 앞에서 걸으며 완전할지니라’ | 하나님 |
| 17:3–8 | 아브람이 엎드림, 언약,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영존하는 언약과 땅 | 하나님 |
| 17:9–14 | 언약을 지킬 것, 할례, 언약의 증표, 할례받지 않은 자는 끊어짐 | 하나님 |
| 17:15–16 | 사래가 사라가 됨, 사라에게 복과 아들이 약속됨 | 하나님 |
| 17:17–19 | 아브라함의 엎드림과 웃음, 이스마엘을 위한 청, 이삭이라는 이름 | 아브라함과 하나님 |
| 17:20–22 | 이스마엘에 대한 응답, 언약은 이삭과, 하나님께서 올라가심 | 하나님 |
| 17:23–27 | 바로 그날 집안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음, 아브라함 구십구 세, 이스마엘 십삼 세 | 서술자 |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고, 아브람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
17:1절에서 ‘주’(여호와)께서 나타나 자신을 ‘엘 샤다이’(אֵל שַׁדַּי)라 밝히신다. 이 호칭은 창세기에서 17:1절, 28:3절, 35:11절, 43:14절, 48:3절에 나온다.2 이 장에서 ‘주’라는 이름이 쓰인 곳은 17:1절 한 번뿐이고, ‘하나님’(엘로힘)은 아홉 번 쓰인다. 흠정역은 17:1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였을 때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걸으며 완전할지니라.
1 And when Abram was ninety years old and nine,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unto him, I am the Almighty God; walk before me, and be thou perfect.
— 창세기 17: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내 앞에서 걸으라’(히트할레크 레파나이, הִתְהַלֵּךְ לְפָנַי)는 창세기에서 17:1절, 24:40절, 48:15절에 나온다. 노아에 대해서는 ‘완전한’(타밈, תָּמִים)이라는 형용사가 6:9절에 쓰였는데, 창세기에서 이 낱말은 6:9절과 17:1절 둘이다.3 두 곳의 연결이 의도된 것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는다. 흠정역은 6:9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9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자기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의인이며 완전하였고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
9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Noah: Noah was a just man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and Noah walked with God.
— 창세기 6: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6:9절과 17:1절은 모두 ‘걷다’의 히트파엘 어간으로 철자가 같은 ‘히트할레크’(הִתְהַלֵּךְ)를 쓴다. 6:9절에서는 서술이고 17:1절에서는 명령이다. 다만 6:9절에서는 ‘하나님과 함께’(에트 하엘로힘)가, 17:1절에서는 ‘내 앞에서’(레파나이)가 뒤따른다.3 두 곳 모두 ‘걷다’와 ‘완전하다’가 한 인물에게 함께 붙는다.
아브람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고(17:3절),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17:4–8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다. 왕들이 그에게서 나오리라는 약속도 주신다. 이어 그의 후손과 대대로 영존하는 언약을 세우고, 가나안 온 땅을 영존하는 소유로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흠정역은 17:5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5 네 이름이 다시는 아브람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요, 네 이름이 아브라함이 되리니 이는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니라.
5 Neither shall thy name any more be called Abram, but thy name shall be Abraham; for a father of many nations have I made thee.
— 창세기 17:5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창세기 본문에서 ‘아브람’(אַבְרָם)이라는 형태는 17:5절 이후 다시 나오지 않는다.4 17장 한 장 안에서 ‘언약’(베리트, בְּרִית)은 열세 번, 열 개 절에 나온다. 창세기 전체에서 이 낱말이 나오는 절은 스물네 곳이므로, 그중 열 곳이 17장에 모여 있다.5 ‘영존하는’(올람, עוֹלָם)은 17:7절, 17:8절, 17:13절, 17:19절에 쓰이고, ‘씨’(제라, זֶרַע, 곧 후손)는 17장에 일곱 번 나온다.5 흠정역은 17:7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씨 사이에 그들의 대대로 세워 영존하는 언약으로 삼고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씨에게 하나님이 되리라.
7 And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between me and thee and thy seed after thee in their generations for an everlasting covenant, to be a God unto thee, and to thy seed after thee.
— 창세기 17: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절의 ‘세우다’(헤킴, הֵקִים)는 17장의 언약 어휘에서 눈에 띈다. 창세기에서 ‘언약’과 ‘세우다’가 한 절에 함께 나오는 곳은 6:18절, 9:9절, 9:11절, 9:17절과 17:7절, 17:19절, 17:21절이다.6 15:18절은 다르다. 흠정역은 15:18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8 바로 그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되,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그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네 씨에게 주었노니
18 In the same day the LORD made a covenant with Abram, saying, Unto thy seed have I given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 창세기 15:1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여기서는 ‘언약을 맺다’(카라트 베리트, כָּרַת בְּרִית)가 쓰인다. 이 표현은 창세기에서 15:18절, 21:27절, 21:32절, 26:28절, 31:44절에 있다. 17장은 같은 아브람 이야기 안에서 다른 동사로 언약을 설명한다. 다만 동사의 차이만으로 17장이 15장과 다른 새 언약을 말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이미 주어진 약속을 ‘세우신다’는 뜻으로 이해해 볼 여지가 있다.
할례는 ‘언약의 증표’로 주어지고, 그날 아브라함의 집은 순종한다
17:9–14절은 언약을 ‘지키라’는 말씀으로 시작해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라는 규정으로 이어진다. ‘할례를 받다’(물, מוּל)는 17장에 열 번 나오고, 창세기 전체에서는 17장 아홉 개 절과 21:4절, 34장 네 개 절에서 쓰인다.7 흠정역은 17:11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1 너희는 너희 포피 살을 베어 내라. 그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있는 언약의 증표가 되리라.
11 And ye shall circumcise the flesh of your foreskin; and it shall be a token of the covenant betwixt me and you.
— 창세기 17: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언약의 증표’(오트 베리트, אוֹת בְּרִית)는 창세기에서 9:12절, 9:13절, 9:17절과 17:11절에 나온다. 앞의 세 곳은 노아 이후 무지개의 표이고, 17:11절은 할례의 표이다.8 흠정역은 9:17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7 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이것이 나와 땅 위에 있는 모든 육체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표이니라, 하시니라.
17 And God said unto Noah, This is the token of the covenant, which I have established between me and all flesh that is upon the earth.
— 창세기 9: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7:12–13절에서 할례의 대상에는 집에서 태어난 남자와 타국인에게서 돈으로 산 남자도 포함된다. 17:12절은 ‘여드레가 되면’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다. 17:14절은 할례 규정을 어겼을 때의 결과를 가장 직접 말하는 절이다. 흠정역은 이렇게 옮긴다.
14 포피 살을 베어 내지 아니하여 할례를 받지 않은 사내아이 곧 그 혼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니 그는 내 언약을 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4 And the uncircumcised man child whose flesh of his foreskin is not circumcised, that soul shall be cut off from his people; he hath broken my covenant.
— 창세기 17:1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절에서 ‘끊어지다’(니크레타, וְנִכְרְתָה)는 ‘언약을 맺다’의 동사와 같은 어근(카라트)이다. 같은 어근이 15:18절에서는 언약을 맺는 표현에, 17:14절에서는 사람이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는’ 표현에 쓰인다.6 또 ‘할례받지 않은 사내’(아렐, עָרֵל)는 창세기에서 17:14절에만 있다.7
아브라함은 이 말씀대로 행한다. 17:23절은 ‘바로 그날’(베에쳄 하욤 하제, בְּעֶצֶם הַיּוֹם הַזֶּה)에 이스마엘과 집안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았다고 서술하고, 17:26절도 같은 표현을 되풀이한다. 이 표현은 창세기에서 7:13절, 17:23절, 17:26절에 있다. 흠정역은 15:18절도 ‘바로 그날에’로 옮기지만 원문은 ‘그날에’(바욤 하후, בַּיּוֹם הַהוּא)로 표현이 다르다.9 17:24–25절은 아브라함이 구십구 세, 이스마엘이 십삼 세였다고 적는다. 16:16절의 팔십육 세에서 열세 해가 지나면 구십구 세가 되므로, 이스마엘의 나이도 그에 맞는다. 17:27절은 집에서 태어난 자와 타국인에게서 산 자 모두가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다고 서술한다. 흠정역은 17:23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23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바로 그날 자기 아들 이스마엘과 자기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자기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들 가운데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들의 포피 살을 베어 냈는데
23 And Abraham took Ishmael his son, and all that were born in his house, and all that were bought with his money, every male among the men of Abraham’s house; and circumcised the flesh of their foreskin in the selfsame day, as God had said unto him.
— 창세기 17:2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사라와 이삭의 약속, 그리고 웃음과 이스마엘을 위한 청
17:15절에서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꾸신다. 17:16절에서 하나님은 사라에게 복을 주시고, 사라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사라가 민족들의 어머니가 되고 왕들이 그녀에게서 나오리라는 약속도 덧붙이신다. 17장에서 두 사람의 이름 변경(17:5절, 17:15절)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반응한다. 흠정역은 17:17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7 그때에 아브라함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인 사람에게 아이가 태어나리오? 구십 세인 사라가 아이를 낳으리오? 하고
17 Then Abraham fell upon his face, and laughed, and said in his heart, Shall a child be born unto him that is an hundred years old? and shall Sarah, that is ninety years old, bear?
— 창세기 17: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다’(와이폴 알 파나우, וַיִּפֹּל עַל פָּנָיו)는 17장에서 17:3절과 17:17절에 두 번 쓰이며, 이 표현이 이런 모양으로 쓰인 곳은 창세기에서 이 둘뿐이다.10 17:3절에서는 엎드린 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17:17절에서는 엎드린 채 웃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본문은 이 웃음의 뜻을 판정하지 않는다. ‘웃다’(차하크, צָחַק) 동사는 창세기에서 17:17절이 처음이고, 이어 18:12–13절, 18:15절, 21:6절 등에 나온다.11
아브라함의 청은 17:18절에 있다. 흠정역은 다음과 같이 옮긴다.
18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르기를, 이스마엘이나 주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18 And Abraham said unto God, O that Ishmael might live before thee!
— 창세기 17:1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7:19절에서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이삭(이츠하크, יִצְחָק)이라 하라고 하시고, 그와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17:20절은 이스마엘을 위한 청에 대한 응답이고, 17:21절은 언약을 이삭과 세우겠다고 다시 밝힌다. 흠정역은 17:20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20 이스마엘에 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보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었고 그를 다산하게 하며 심히 번성하게 하리라. 그가 열두 통치자를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리라.
20 And as for Ishmael, I have heard thee: Behold, I have blessed him, and will make him fruitful, and will multiply him exceedingly; twelve princes shall he beget, and I will make him a great nation.
— 창세기 17:2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셰마티카, שְׁמַעְתִּיךָ)의 ‘듣다’(샤마)는 17장에서 이 절에만 있다. 16장에서 이스마엘의 이름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으로 주어졌고, 하갈에게 주어진 말씀은 이러했다.
11 또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보라, 네가 아이를 가졌으므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주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느니라.
11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unto her, Behold, thou art with child, and shalt bear a son, and shalt call his name Ishmael; because the LORD hath heard thy affliction.
— 창세기 16: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6:11절에서 하나님은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고, 17:20절에서는 아브라함의 청을 들으셨다. ‘열두 통치자’(쉐나임 아사르 네시임)는 25:16절에서 이스마엘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말로 다시 나온다.12 17:21절은 언약의 계승자를 다시 밝히는 말씀이다. 흠정역은 다음과 같이 옮긴다.
21 그러나 내 언약은 내가 내년의 이 정해진 때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시니라.
21 But my covenant will I establish with Isaac, which Sarah shall bear unto thee at this set time in the next year.
— 창세기 17:2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정해진 때’(모에드, מוֹעֵד)는 창세기에서 1:14절, 17:21절, 18:14절, 21:2절에 있다.13 17:21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정해진 때’는 18:14절의 ‘정해진 때’와 21:2절에서 이삭이 태어난 시점으로 이어진다. 17:22절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마치고 ‘아브라함을 떠나 올라가셨다’고 서술하는데, 하나님이 주어로 ‘올라가시는’ 장면은 창세기에서 17:22절과 35:13절 둘이다.13
앞뒤의 구약 본문과 신약은 17장의 어휘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 간다
노아 언약의 어휘는 앞서 보았다(6:9절, 6:18절, 9:17절). 야곱에게 나타나신 ‘엘 샤다이’(35:11절)는 17:6절과 비슷하게 번성과 왕들을 말씀하시고, 35: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올라가신다’. 이 대응은 어휘와 구조의 만남이며, 17장과 35장이 같은 사건이라는 뜻은 아니다. 21:2–4절에서 이삭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해진 때에 태어난다. 흠정역은 21:4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4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자기 아들 이삭이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매 아브라함이 그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And Abraham circumcised his son Isaac being eight days old, as God had commanded him.
— 창세기 21: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삭의 할례는 17:12절의 ‘여드레’와 이어진다. 한편 34:15–24절에서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가 요구되는 장면은 같은 동사(물)가 쓰이지만 맥락이 전혀 달라 17장과 직접 묶지 않는다. 25:16절의 흠정역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을 ‘열두 통치자’로 옮겨 17:20절과 같은 표현을 쓴다. 24:40절의 흠정역은 ‘내가 주 앞에서 걸었으니’로 옮겨 17:1절의 ‘내 앞에서 걸으며’와 이어진다.
출애굽기 6:3절은 17:1절의 호칭과 맞닿는다. 흠정역은 다음과 같이 옮긴다.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 곧 전능자의 이름으로는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나를 알리지 아니하였느니라.
3 And I appeared unto Abraham, unto Isaac, and unto Jacob, by the name of God Almighty, but by my name JEHOVAH was I not known to them.
— 출애굽기 6: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창세기 17:1절은 ‘주’(여호와)께서 나타나 ‘나는 엘 샤다이’라고 하셨다고 서술한다. 반면 출애굽기 6:3절은 ‘엘 샤다이’로는 나타났으나 ‘여호와’라는 이름으로는 알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두 서술의 관계는 해석이 나뉜다. 창세기의 서술자가 후대의 이름으로 부른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고, ‘알리다’의 뜻을 이름의 의미를 경험하게 함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본 편은 어느 쪽도 판정하지 않는다.14 출애굽기 6:4절은 ‘내 언약을 세워’ 가나안 땅을 주기로 하셨다고 하여 17:8절의 땅 약속을 되새긴다.
신약에서는 17장이 여러 곳에서 언급되거나 인용된다.15 로마서 4장은 할례와 믿음의 순서를 묻는다. 흠정역은 4:11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1 그가 할례의 표적 곧 아직 할례받지 않은 때에 자기가 소유한 믿음의 의를 봉인한 표식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는 아니하였으나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어 의가 그들에게도 전가되게 하려 함이요,
11 And he received the sign of circumcision, a seal of the righteousness of the faith which he had yet being uncircumcised: that he might be the father of all them that believe, though they be not circumcised; that righteousness might be imputed unto them also:
— 로마서 4: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로마서 4:9–10절은 믿음이 의로 간주된 때가 할례받은 때가 아니라 받지 않은 때였다고 말한다. 4:12절은 그가 할례자들에게 속한 이들뿐 아니라, 아직 할례받지 않은 때에 그가 가졌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이들의 조상도 된다고 덧붙인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졌다는 순서를 강조하고, 할례를 그 믿음의 의를 봉인한 표로 설명한다. 이는 할례가 의를 만들어 낸다는 서술이 아니다. 17장의 ‘언약의 증표’(17:11절)와 바울의 ‘표’는 이 순서 안에서 이어진다고 풀어 볼 수 있다. 4:17절은 17:5절을 인용한다.
17 (이것은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았느니라, 함과 같으니)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그것들을 마치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며 부르시는 분이시니라.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thee a father of many nations,) before him whom he believed, even God, who quickeneth the dead, and calleth those things which be not as though they were.
— 로마서 4: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어 4:19–20절은 아브라함이 백 세쯤 되었을 때를 말한다.
19 그는 백 세쯤 되었을 때에 믿음이 약하지 아니하여 당시 죽어 있는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였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19 And being not weak in faith, he considered not his own body now dead, when he was about an hundred years old, neither yet the deadness of Sara’s womb:
— 로마서 4:1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20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0 He staggered not at the promise of God through unbelief; but was strong in faith, giving glory to God;
— 로마서 4:2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로마서 4:19–20절의 인쇄본에는 17:17절의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노년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언급하며 약속을 믿는 믿음을 설명한다. 웃음의 성격은 창세기 17장의 관찰과 후대의 해석을 구별하여 살펴야 한다.
사도행전 7:8절에서 스데반은 할례의 언약을 받은 일과 이삭의 출생 및 할례를 이어서 회고한다.
8 또 할례의 언약을 그에게 주셨느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아 여드레째 날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으며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열두 족장을 낳았느니라.
8 And he gave him the covenant of circumcision: and so Abraham begat Isaac, and circumcised him the eighth day; and Isaac begat Jacob; and Jacob begat the twelve patriarchs.
— 사도행전 7: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7:12절의 명령과 21:4절의 실행이 이어지는 모습을 이 회고가 한 줄로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갈라디아서 5장은 할례를 의롭게 되는 근거로 삼으려는 이들을 경계하는 논쟁의 맥락에 있다. 5:2절은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하고, 5:3절은 할례를 받는 사람이 온 율법을 행해야 할 빚진 자라고 한다. 5:4절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아무 효력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들을 모든 할례 행위에 대한 일반 금지로 옮기기는 어렵다. 흠정역은 5:6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6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효력이 없고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만 효력이 있기 때문이라.
6 For in Jesus Christ neither circumcision availeth any thing, nor uncircumcision; but faith which worketh by love.
— 갈라디아서 5: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5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효력이 없고 새로운 창조물만 있느니라.
15 For in Christ Jesus neither circumcision availeth any thing, nor uncircumcision, but a new creature.
— 갈라디아서 6:15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밖의 본문은 보충으로 짧게 살핀다. 마음의 할례는 구약에도 나온다. 흠정역은 신명기 10:16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6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포피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말라.
16 Circumcise therefore the foreskin of your heart, and be no more stiffnecked.
— 신명기 10: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신명기 30:6절에서는 이 일을 행하시는 이가 주 하나님이시다.
6 또 주 네 하나님께서 네 마음과 네 씨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사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심으로써 네가 살게 하실 것이며
6 And the LORD thy God will circumcise thine heart, and the heart of thy seed, to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ine heart, and with all thy soul, that thou mayest live.
— 신명기 30: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두 구절은 육체의 포피와 마음의 포피를 잇는 구약의 중간 고리로 볼 수 있고, 로마서 2:28–29절은 겉의 할례와 마음의 할례를 구별한다. 골로새서 2:11–12절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말한 뒤 곧바로 침례와 믿음의 문맥을 잇지만, 이를 특정 침례론의 확정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빌립보서 3:3절은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이들을 ‘할례자들’이라 부르고, 요한복음 7:22절은 할례가 모세에게서가 아니라 조상들에게서 났다고 한다. 히브리서 11:11–12절과 로마서 9:7–9절은 사라와 이삭의 약속을 되새긴다.
신약 저자들은 각자의 논증 속에서 창세기의 언약과 할례를 해석한다. 로마서 4장은 믿음과 할례의 순서, 사도행전 7장은 언약과 후손의 역사, 갈라디아서 5장은 할례와 칭의 문제에 무게를 둔다. 창세기 17장의 문맥을 먼저 살핀 뒤 신약이 그 약속을 어떻게 이어 읽는지를 구별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할례의 표와 지킬 의무, 이스마엘의 자리, 아브라함의 웃음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첫째 쟁점은 할례의 성격이다. 17:11절은 할례를 ‘언약의 증표’라 부르고, 17:14절은 할례받지 않은 자가 ‘내 언약을 범하였다’고 말한다. 본문은 같은 할례 규정 안에서 언약의 표와 언약 위반을 함께 말한다. 이를 두고 할례를 이미 주어진 언약의 외적 표지로 보는 입장과 언약 공동체에 머무는 조건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두 이해는 반드시 양자택일이 아니며, 표와 지킬 의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쟁점이다. 17:7절의 언약 선언이 17:9절 이하의 ‘지키라’보다 앞에 놓인 배열은 이 연결을 헤아리는 단서가 된다.
둘째 쟁점은 이스마엘의 자리이다. 이스마엘은 같은 날 할례를 받지만(17:23절, 17:25절), 하나님은 언약을 이삭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17:21절). 17:20절은 이스마엘에게 복과 번성을 약속하신다. 언약의 표를 받는 범위와 약속이 계승되는 계보를 구별하여 풀어 볼 여지가 있다. 본문은 이스마엘의 할례와 17:21절을 나란히 두되 그 관계를 직접 풀이하지 않는다.
셋째 쟁점은 아브라함의 웃음(17:17절)이다. 이 웃음을 기쁨이나 놀람의 표현으로 보는 입장도 있고, 믿기 어려움의 표현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본문은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라고만 서술하고 이 웃음을 평가하지 않는다. 17:18절의 청이 웃음의 성격을 가리는 단서인지는 17장의 서술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매튜 헨리는 아브라함의 웃음을 불신이 아니라 기쁨으로 풀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소개한다. 매튜 헨리(1662–1714)는 《성경 전체 주석》의 창세기 17장 해설에서 아브라함의 웃음을 불신이 아니라 기쁨의 웃음으로 풀면서 로마서 4:20절을 든다. 그는 17:18절의 청도 이스마엘의 영적 생명에 대한 아브라함의 염려를 보여 준다고 본다. 같은 해설은 엘 샤다이를 ‘모든 것으로 충분하신 분’이라는 뜻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헨리의 주석적 설명이지 히브리어 어원에 대한 판정이 아니다. 헨리는 또 ‘완전하라’(17:1절)를 성실과 정직의 뜻으로, 할례를 하나님의 약속의 ‘표와 인’으로 이해한다. 이 소개는 해당 편의 해석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니며, 앞서 살핀 해석이나 아래 정리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16
17장의 짜임은 언약의 어휘와 이름의 변화, 그리고 들으심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본문에서 확인되는 사항을 ‘관찰’, 그 배열에서 이끌어 낸 해석을 ‘추론’,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가능성을 ‘사변’으로 구분한다.
| 어휘·구절·주제 | 내용 | 판단 구분 |
|---|---|---|
| ‘언약’ | 17장에 열세 번(열 개 절), 창세기 전체 스물네 개 절 중 열 곳 | 관찰 |
| ‘세우다’ | ‘언약+세우다’가 한 절에 나오는 곳은 6:18; 9:9; 9:11; 9:17; 17:7; 17:19; 17:21절 | 관찰 |
| ‘맺다·끊어지다’ | 같은 어근 ‘카라트’가 15:18절에서는 언약을 맺는 데, 17:14절에서는 사람이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는 표현에 쓰임 | 관찰 |
| 엘 샤다이 | 창세기에서 17:1; 28:3; 35:11; 43:14; 48:3절 | 관찰 |
| ‘언약의 증표’ | 9:12; 9:13; 9:17절(무지개), 17:11절(할례) | 관찰 |
| 이름의 변경과 부여 | 17:5절 아브라함, 17:15절 사라는 이름이 바뀌고, 17:19절 이삭은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주어짐. 모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일어남 | 관찰 |
| 나이 | 16:16절 팔십육 세, 17:1절·17:24절 구십구 세, 17:25절 이스마엘 십삼 세 | 관찰 |
| ‘듣다’ | 17장에서는 17:20절 한 곳, 16:11절의 ‘들으셨다’와 이어짐 | 관찰 |
| ‘바로 그날’ | 창세기에서 7:13; 17:23; 17:26절 | 관찰 |
| ‘정해진 때’ | 1:14; 17:21; 18:14; 21:2절 | 관찰 |
| ‘웃다’ | 창세기에서 17:17절(아브라함)이 첫 용례, 18:12절(사라)이 이어짐. ‘마음속으로’(벨립보)와 ‘속으로’(베키르바)는 다른 낱말 | 관찰 |
| 엘 샤다이와 여호와 | 17:1절은 ‘주’께서 나타나 ‘엘 샤다이’라 하심, 출애굽기 6:3절은 ‘엘 샤다이’로 나타나셨고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고 함 | 관찰 |
| 말씀의 순서 | 17:7절의 언약 선언이 17:9절 이하의 ‘지키라’와 할례 규정보다 앞에 놓임 | 관찰 |
| 들으심과 언약의 계승 |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위한 청을 ‘들으셨고’(17:20절) 언약은 이삭과 세우겠다고 하심(17:21절) | 관찰 |
| 언약의 주도권 | 말씀의 순서를 언약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이는 구조로 볼 여지 | 추론 |
| 들으심과 계승의 구별 | 이스마엘에게는 복과 번성이, 이삭에게는 언약이 이어지는 두 갈래 구도 | 추론 |
| 이름을 주시는 방식 | 16:11절의 이스마엘에서 17장의 이삭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름이 주어지는 방향이 이어짐 | 추론 |
| 아브라함의 웃음 | 마음속으로 한 말의 뜻(기쁨인지 믿기 어려움인지) | 사변 |
| 17:18절의 청 | ‘주 앞에서 살기를’ 바라는 뜻이 후계 문제인지 영적 삶인지 | 사변 |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17장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는’ 말씀(17:7절)을 먼저 두고, 사람이 ‘지킬’ 일(17:9절 이하)을 그 뒤에 놓는다. 이 배열을 언약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이는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다만 17:14절의 ‘범하였다’는 말도 같은 장 안에 있으므로, 한쪽만 강조하기는 어렵다.
둘째, 이삭의 이름이 주어지는 17:19절은 이스마엘의 이름이 주어진 16:11절과 같은 방향에 있다. 두 아이의 이름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졌고, 이스마엘에게는 ‘들으심’이, 이삭에게는 ‘언약’이 이어진다. 이 배열은 17:20–21절의 두 갈래 응답, 곧 이스마엘에게는 복과 번성을, 이삭에게는 언약을 주시는 구도와 이어진다고 헤아려 볼 수 있다.
셋째, 17장은 할례를 ‘표’(17:11절)이자 ‘지킬 일’(17:10절)이자 ‘끊어짐의 경계’(17:14절)로 서술하는데, 아브라함은 말씀하신 ‘바로 그날’ 이를 행한다(17:23절). 말씀과 순종이 같은 날에 놓인 배열은 7:13절에서도 확인되지만, 두 장면이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변으로 남기는 것은 둘이다. 17:17–18절의 웃음과 청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는 창세기 17장의 서술만으로 하나로 확정하기 어렵다. 문맥에 비추어 헤아려 볼 수는 있으나,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해석이므로 사변으로 분류한다.
17장의 ‘정해진 때’는 18장에서 어떻게 이어지는가
17:21절의 하나님은 ‘내년의 이 정해진 때’를 말씀하신다. 17:22절에서 하나님께서 올라가신 뒤, 18장은 같은 약속을 다시 꺼낸다. 18:10절에서 그분은 ‘생명의 때를 따라’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시고, 사라는 그분 뒤의 장막 문에서 그 말을 듣는다. 흠정역은 18:12절과 18:14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2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이르되, 내가 늙었고 내 주(主)도 늙었는데 내게 즐거움이 있으리오? 하매
12 Therefore Sarah laughed within herself, saying, After I am waxed old shall I have pleasure, my lord being old also?
— 창세기 18:1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4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정해진 때에 내가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므로
14 Is any thing too hard for the LORD? At the time appointed I will return unto thee,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and Sarah shall have a son.
— 창세기 18:1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7:17절에서 아브라함은 ‘마음속으로’(벨립보) 말했고, 18:12절에서 사라는 ‘속으로’(베키르바) 웃는다.17 두 낱말은 서로 다르며, 그 차이가 어떤 뜻을 지니는지는 본문이 풀이하지 않는다. 18:13절에서 주께서는 사라의 웃음을 아브라함에게 묻는다.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웃고, 18장에서는 사라가 웃는다. 약속을 들은 두 사람의 반응에 하나님은 각각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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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흠정역은 인쇄본(창세기 17:1–27, 18:1–31과 각주 15에 적은 구절)에서 옮겼다. 인쇄본의 기울임체(번역자 보충어)는 박스에 반영하지 않았다. KJV는 thiagobodruk/bible의 en_kjv.json(https://github.com/thiagobodruk/bible)에서 해당 구절을 열어 대조했고, 철자와 문구를 그대로 유지했다(원본의 ‘LORD ?’는 물음표 앞 공백만 정리했다). 본문 장면 구분은 편집 의도에 따른 것이며 본문에 구분 표시가 있는 것은 아니다. ↩
2. 계수는 OSHB(WLC 기반, https://github.com/openscriptures/morphhb)의 표제어 번호로 세었고 접두 전치사·접속사가 붙은 형태를 포함했다. ‘엘 샤다이’는 ‘엘’(표제어 410) 바로 뒤에 ‘샤다이’(표제어 7706)가 이어진 형태를 찾아 창세기에서 17:1; 28:3; 35:11; 43:14; 48:3절로 확인했다. 49:25절의 ‘샤다이’는 앞에 ‘엘’이 붙지 않아 세지 않았다. 17장에서 ‘주’(YHWH, 표제어 3068)는 17:1절 한 곳이고, ‘하나님’(엘로힘, 표제어 430)은 17:3; 17:7; 17:8; 17:9; 17:15; 17:18; 17:19; 17:22; 17:23절에 한 번씩이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
3. ‘타임’(표제어 8549)은 창세기에서 6:9절과 17:1절이다. ‘히트할레크 레파나이’는 ‘할라크’(표제어 1980)의 히트파엘 형태와 ‘레파나이’(‘내 앞에서’) 계열 낱말이 한 절에 있는 곳을 찾아 17:1; 24:40; 48:15절로 확인했다. 5:22; 5:24; 6:9절은 KJV의 ‘walked with God’에 해당해 ‘앞에서’ 형태가 아니므로 세지 않았다. 6:9절은 원문이 ‘את האלהים התהלך’(에트 하엘로힘 히트할레크), 17:1절은 ‘התהלך לפני’(히트할레크 레파나이)로 두 곳의 ‘히트할레크’ 철자가 같고(6:9절은 완료 3인칭 남성 단수, 17:1절은 명령 2인칭 남성 단수) 뒤따르는 말이 다름을 OSHB 본문에서 확인했다. ↩
4. ‘아브람’(표제어 87)은 17장에서 17:1절(두 번), 17:3절, 17:5절에 나오며 창세기 18장 이후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브라함’(표제어 85)은 17:5절이 첫 용례이다. ↩
5. ‘언약’(베리트, 표제어 1285)은 17장에서 17:2; 17:4; 17:7(두 번); 17:9; 17:10; 17:11; 17:13(두 번); 17:14; 17:19(두 번); 17:21절로 열세 번, 열 개 절이다. 창세기 전체에서 이 낱말이 나오는 절은 6:18; 9:9; 9:11; 9:12; 9:13; 9:15; 9:16; 9:17; 14:13; 15:18; 17장의 열 개 절; 21:27; 21:32; 26:28; 31:44절로 스물네 곳이다. 14:13절은 ‘언약을 맺은 동맹자들’을 뜻하는 표현이다. ‘올람’(표제어 5769)은 17장에서 17:7; 17:8; 17:13; 17:19절이다. ‘씨’(제라, 표제어 2233)는 17장에서 17:7(두 번); 17:8; 17:9; 17:10; 17:12; 17:19절로 일곱 번이다. ↩
6. ‘세우다’(쿰 히필, 표제어 6965)와 ‘언약’이 한 절에 함께 있는 곳을 찾으면 6:18; 9:9; 9:11; 9:17; 17:7; 17:19; 17:21; 21:32절인데, 21:32절의 ‘쿰’은 아비멜렉이 ‘일어난’ 것을 가리키므로 제외했다. ‘카라트’(표제어 3772)와 ‘언약’이 이어진 표현은 15:18절(어순이 달라 인접 검색에서는 빠지고 절 단위 검색에서 확인), 21:27절, 21:32절, 26:28절, 31:44절이다. 9:11절과 17:14절에도 ‘카라트’와 ‘언약’이 함께 있지만 ‘끊어지다’의 뜻이다. 15장과 17장의 ‘언약’이 서로 같은 언약인지는 이 계수만으로 판정하지 않았다. ↩
7. ‘물’(표제어 4135)은 17장에서 17:10; 17:12; 17:13(두 번); 17:14; 17:23; 17:24; 17:25; 17:26; 17:27절로 열 번이다. 창세기 전체에서는 17장 아홉 개 절과 21:4절, 34:15; 34:17; 34:22; 34:24절이다. ‘포피’(오를라, 표제어 6190)는 17:11; 17:14; 17:23; 17:24; 17:25절과 34:14절이다. ‘할례받지 않은’(아렐, 표제어 6189)은 창세기에서 17:14절 하나이다. ↩
8. ‘언약의 증표’(‘오트’ 표제어 226 다음에 ‘베리트’ 표제어 1285가 이어진 형태)는 창세기에서 9:12; 9:13; 9:17; 17:11절이다. ↩
9. ‘바로 그날’은 ‘베에쳄’(בעצם) 형태를 찾아 7:13; 17:23; 17:26절로 확인했다. 2:23절과 29:14절의 ‘에쳄’(뼈)은 뜻이 달라 세지 않았다. ↩
10. ‘와이폴 알 파나우’는 ‘나팔’(표제어 5307)의 ‘와이폴’과 ‘알 파나우’(‘그의 얼굴 위에’)가 한 절에 있는 곳을 찾아 17:3절과 17:17절로 확인했다. 44:14절; 50:1절; 50:18절은 ‘레파나우’ 등 다른 형태여서 세지 않았다. ↩
11. ‘차하크’(표제어 6711·6712 계열)는 창세기에서 17:17; 18:12; 18:13; 18:15; 19:14; 21:6; 21:9; 26:8; 39:14; 39:17절 등이며 17:17절이 첫 용례이다. 19:14절, 26:8절, 39:14절 등은 맥락과 뜻이 달라 이삭의 이름과 곧바로 묶지 않았다. ‘이삭’(이츠하크)은 17:19절과 17:21절에 나온다. ↩
12. ‘통치자’(나시, 표제어 5387)는 창세기에서 17:20; 23:6; 25:16; 34:2절이다. 17:20절과 25:16절의 ‘열둘’은 두 곳이 이스마엘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KJV 25:16절에서 확인했다. 25:16절의 흠정역 인쇄본에서도 ‘열두 통치자’로 옮긴 것을 확인했다. ↩
13. ‘모에드’(표제어 4150)는 창세기에서 1:14; 17:21; 18:14; 21:2절이다. 1:14절의 ‘모에드’는 계절·정해진 때의 뜻이다. ‘하나님께서 올라가시다’는 ‘와야알’(וַיַּעַל) 형태와 ‘엘로힘’이 한 절에 있는 곳을 찾아 17:22절과 35:13절로 확인했다. 같은 형태 열 개 절(8:20; 13:1; 17:22; 19:30; 26:23; 35:13; 38:12; 46:29; 50:7; 50:9) 가운데 주어가 하나님인 것은 이 두 곳이다. ↩
14. 출애굽기 6:3절은 흠정역 인쇄본으로 옮겼다. 창세기 17:1절의 ‘엘 샤다이’(OSHB 표제어 410+7706)와 출애굽기 6:3절의 ‘베엘 샤다이’(원문 ‘באל שדי’)가 같은 호칭임을 OSHB로 확인했다. 두 서술의 관계에 관한 해석 갈림은 이 계수로 판정하지 않았다. 출애굽기 6:4절의 ‘내 언약을 세워’는 흠정역 인쇄본의 문구이며 원문 동사는 별도로 세지 않았다. ↩
15. 신약과 구약 인용 구절의 흠정역은 인쇄본에서 옮겼다(로마서 4:11; 4:17; 4:19–20, 사도행전 7:8, 갈라디아서 5:6; 6:15, 창세기 6:9; 9:17; 15:18; 21:4, 출애굽기 6:3, 신명기 10:16; 30:6). 각 구절의 KJV는 en_kjv.json으로 대조했다. 신명기 10:16절과 30:6절의 흠정역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는 en_kjv.json으로 대조했다. 골로새서 2:11–12절은 인쇄본에서 ‘침례’로 옮긴 것을 확인했다. 로마서 4:17절이 창세기 17:5절을 인용함을 확인했고, 로마서 9:7절은 창세기 21:12절, 9:9절은 창세기 18:10절의 인용이다. 박스로 옮기지 않은 구절(로마서 4:9–10; 4:12, 갈라디아서 5:2–4, 골로새서 2:11, 빌립보서 3:3, 로마서 2:28–29; 9:7–9, 요한복음 7:22, 히브리서 11:11–12)은 인쇄본에서 요지를 확인해 따옴표 없이 요약했다. 로마서 4:19–20절에서 ‘웃음’이 언급되지 않음을 인쇄본과 KJV로 확인했다. ↩
16. 매튜 헨리, 《성경 전체 주석》 제1권(창세기–신명기), 창세기 17장 해설(‘The Covenant with Abraham Renewed’). 확인한 곳: CCEL. 페이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으나 전문 직접 대조와 쪽수 확인은 하지 못했다. 본문의 소개는 요지를 옮긴 것이며 따옴표 인용이 아니다. 그 페이지에서 아브라함의 웃음과 사라의 웃음(18장)을 비교하는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
17. ‘마음속으로’(벨립보, בְּלִבּוֹ)는 17:17절과 27:41절이고, ‘속으로’(베키르바, בְּקִרְבָּהּ)는 18:12절의 형태이다(OSHB 본문에서 ‘בלב’, ‘בקרב’로 시작하는 낱말을 검색). 두 낱말의 차이가 뜻의 차이를 나타내는지는 판정하지 않았다. 18:10–14절의 흠정역은 인쇄본에서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