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않으시는 분께 쉰에서 열까지 묻다

창세기 18장 16–33절을 묘사한 장면으로, 바위 능선에 서 있는 아브라함과 멀리 소돔 성읍으로 향하는 두 여행자
두 여행자는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남아 주께 묻는다. 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함께 멸하실 것인지, 그의 간구는 쉰 명에서 열 명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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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16–33 — 숨기지 않으시는 분께 쉰에서 열까지 묻다

소돔을 향한 주의 말씀과 아브라함의 여섯 번의 청

제23편 · 2026.11.06 · Watchman


남자들이 소돔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은 배웅하러 따라나선다

18:15절은 사라에게 하신 ‘네가 웃었느니라’는 말씀으로 끝난다. 18:16절에서 장면이 바뀐다. 남자들이 일어나 소돔 쪽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배웅하러 함께 간다. 식탁에서 나누던 말씀이 이제 길 위에서 이어진다.1

16 그 남자들이 거기서 일어나 소돔을 바라보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배웅하러 그들과 함께 갔는데

16 And the men rose up from thence, and looked toward Sodom: and Abraham went with them to bring them on the way.

— 창세기 18: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16–33절은 아래 표처럼 여섯 마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앞부분인 18:16–21절에서는 주의 말씀이 중심을 이루고, 뒤쪽(18:23–32절)은 아브라함과 주의 문답이다.

절장면말하는 쪽
18:16남자들이 소돔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이 배웅하러 따라감서술자
18:17–19‘숨기리오?’ 하시는 물음과, 아브라함을 ‘안다’는 이유주
18:20–21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 내려가서 살펴보겠다는 말씀주
18:22남자들은 소돔으로 가고, 아브라함은 주 앞에 서 있음서술자
18:23–32아브라함의 여섯 번의 청과 주의 답: 쉰에서 열까지아브라함, 주
18:33대화를 마치신 주는 가시고, 아브라함은 자기 처소로 돌아감서술자

주께서는 아브라함을 ‘안다’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쉰에서 열까지 여섯 번 청한다

18:17절에서 주께서는 스스로 물으신다.

17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는 그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리오?

17 And the LORD said, Shall I hide from Abraham that thing which I do;

— 창세기 18: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카사’(כָּסָה, 숨기다)는 창세기 여덟 절에 나오며, 이번 범위에서는 18:17절에만 나온다.2 이어 18:18절은 아브라함이 크고 강력한 민족이 되고 땅의 모든 민족이 그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18:19절은 숨기지 않으시는 까닭을 밝힌다.

19 이는 내가 그를 알기 때문이라. 그가 자기 아이들과 자기 뒤에 있을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명령함으로써 그들이 주의 길을 지켜 정의와 판단의 공의를 행하게 하리니 이로써 주가 친히 아브라함에 관하여 말한 것을 그에게 이루리라, 하시고

19 For I know him, that he will command his children and his household after him, and they shall keep the way of the LORD, to do justice and judgment; that the LORD may bring upon Abraham that which he hath spoken of him.

— 창세기 18:1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절의 ‘알다’(야다, יָדַע)는 18:16–33절에서 18:19절과 18:21절 두 곳에만 있다. ‘정의’(체다카, צְדָקָה)와 ‘판단’(미슈파트, מִשְׁפָּט)이 한 절에 함께 있는 곳은 창세기에서 18:19절뿐이다.3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맡기려 하시는 ‘주의 길’의 내용이 바로 이 두 낱말로 말해진다.

그다음 주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말씀하신다.

20 또 주께서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들의 죄가 심히 중하므로

20 And the LORD said, Because the cry of Sodom and Gomorrah is great, and because their sin is very grievous;

— 창세기 18:2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들이 행한 바가 내게 도달한 그곳에 대한 부르짖음과 전적으로 같은지 살펴보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 또한 알고자 하노라, 하시니라.

21 I will go down now, and see whether they have done altogether according to the cry of it, which is come unto me; and if not, I will know.

— 창세기 18:2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번역문에서는 18:20절과 18:21절이 모두 ‘부르짖음’이지만, 히브리어에서는 서로 다른 두 명사(자아카, זַעֲקָה; 체아카, צְעָקָה)가 쓰인다. 소돔의 죄를 말하는 것도 18장이 처음은 아니다. 13:13절은 ‘소돔 사람들은 사악하여 주 앞에 심히 큰 죄인들이었더라’고 서술한다. 18:21절은 ‘내려가다’와 ‘보다’를 한 절에 모으고 마지막에 다시 ‘알다’로 끝나는데, 11:5절의 ‘내려오셔서 … 보려고’도 같은 두 어근이다.4 18:19절에서 아브라함을 ‘안다’고 말씀하신 주께서, 18:21절에서는 소돔의 일을 ‘알고자’ 하신다. 주의 말씀이 이어지는 동안 아브라함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가 처음 입을 여는 곳은 18:23절이다.

남자들이 소돔으로 떠나는 장면이 18:22절이다.

22 그 남자들은 거기서 얼굴을 돌려 소돔을 향해 갔으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주 앞에 서 있다가

22 And the men turned their faces from thence, and went toward Sodom: but Abraham stood yet before the LORD.

— 창세기 18:2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어 아브라함이 가까이 가서 묻는다.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가서 이르되, 주께서 또한 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3 And Abraham drew near, and said, Wilt thou also destroy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 창세기 18:2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의로운 자’(차디크, צַדִּיק)는 창세기에 모두 열 번 나오는데, 그중 일곱 번이 18:23–28절의 다섯 절에 모여 있다. ‘사악한 자’(라샤, רָשָׁע)는 창세기에서 세 번이며 모두 18:23절과 18:25절에 있다. 나머지 ‘의로운 자’ 세 번은 노아(6:9절; 7:1절)와 아비멜렉의 물음(20:4절)에 있다.5 18:25절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묻는다.

25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사 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셔야 하지 아니하리이까? 하매

25 That be far from thee to do after this manner, to slay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and that the righteous should be as the wicked, that be far from thee: Shall not the Judge of all the earth do right?

— 창세기 18:25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25절의 ‘심판자’(쇼페트, שֹׁפֵט)와, 같은 절에서 ‘의롭게 행하다’로 번역된 구문의 명사 ‘미슈파트’(מִשְׁפָּט)는 같은 어근 계열에 속한다. 이 ‘미슈파트’는 18:19절에도 나온다. 흠정역은 18:19절의 미슈파트를 ‘판단’으로, 18:25절의 미슈파트를 ‘의롭게’로 옮겨, 번역에서는 두 절의 낱말이 같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3

‘의로운 자’가 18장 밖에서 쓰인 장면도 의로운 이의 보존이라는 문제와 닿는다. 주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주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오라. 내가 이 세대 가운데서 내 앞에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느니라.

1 And the LORD said unto Noah, Come thou and all thy house into the ark; for thee have I seen righteous before me in this generation.

— 창세기 7: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아비멜렉은 이렇게 묻는다.

4 그러나 아비멜렉이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민족도 죽이려 하시나이까?

4 But Abimelech had not come near her: and he said, Lord, wilt thou slay also a righteous nation?

— 창세기 20: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노아의 장면에서는 의로운 이와 그의 집이 보존되고, 아비멜렉의 장면에서는 의로운 민족도 죽이실 것인지 묻는다. 두 장면은 의로운 이의 보존이라는 문제에서 만나지만 말씀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주의 첫 답은 18:26절이다.

26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에서 즉 그 도시 안에서 쉰 명의 의로운 자들을 찾으면 그들로 인해 그곳 전체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26 And the LORD said, If I find in Sodom fifty righteous within the city, then I will spare all the place for their sakes.

— 창세기 18:2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대화는 여섯 번의 청으로 이어진다. ‘혹시’(울라이, אוּלַי)가 18:24절, 18:28–32절의 여섯 번의 청에 각각 쓰이며, 첫 청의 쉰 명에서 시작해 청이 이어질 때마다 수가 줄어든다. 주께서는 여섯 번의 청에 모두 응답하시며, 제시된 수의 의로운 자가 있으면 그곳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6

청청한 수주의 답
18:23–24쉰쉰 명으로 인해 ‘그곳 전체’를 용서하리라(18:26)
18:28마흔다섯마흔다섯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18:29마흔마흔 명으로 인해 그 일을 하지 아니하리라
18:30서른서른 명을 찾으면 그 일을 하지 아니하리라
18:31스물스무 명으로 인해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18:32열열 명으로 인해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의 말투에는 되풀이되는 틀이 있다. 18:27절은 이렇다.

27 아브라함이 응답하여 이르되, 이제 보소서, 티끌과 재에 불과한 내가 감히 주께 말씀드리기로 작정하였나이다.

27 And Abraham answered and said, Behold now, I have taken upon me to speak unto the Lord, which am but dust and ashes:

— 창세기 18:2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감히 작정하였나이다’(호알티, הוֹאַלְתִּי)는 창세기에서 18:27절과 18:31절에만 있고, ‘노하지 마옵소서’(알 나 이하르, אַל־נָא יִחַר)는 18:30절과 18:32절에 있다. 두 표현은 18:27절, 30절, 31절, 32절의 순서로 번갈아 나온다. 아브라함이 주를 부르는 호칭도 18:27절 이하에서는 ‘아도나이’(אֲדֹנָי)이고, ‘주’(여호와)라는 이름은 아브라함의 말 안에 없다.7 마지막 청과 대화의 끝은 다음과 같다.

32 그가 이르되, 오 주께서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 한 번만 더 말하리이다. 혹시 거기서 열 명을 찾으신다면 어찌하시려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열 명으로 인해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2 And he said, Oh let not the Lord be angry, and I will speak yet but this once: Peradventure ten shall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 창세기 18:3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33 주께서는 아브라함과 대화하기를 마치신 뒤 즉시 자신의 길로 가셨고 아브라함은 자기 처소로 돌아갔더라.

33 And the LORD went his way, as soon as he had left communing with Abraham: and Abraham returned unto his place.

— 창세기 18:3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32절에서 ‘열’ 다음의 청은 없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왜 거기서 멈추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물음은 구출과 용서를 말하는 뒤이은 본문들에서 다시 나온다

18:16–33절의 낱말 몇 개는 곧바로 이어지는 19장에서 되돌아온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가서’(와이가쉬) 묻는 18:23절의 동사는 19:9절에서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가까이 와서’ 문을 부수려는 장면에 다시 쓰이고, 18:25절의 ‘심판자’와 같은 어근이 19:9절에서 소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8

9 그들이 이르되, 물러서라, 하고 또 이르되, 이놈이 체류하려고 들어와서는 우리의 재판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나쁘게 다루리라, 하며 그 사람 곧 롯을 강하게 밀치고 가까이 와서 문을 부수려 하더라

9 And they said, Stand back. And they said again, This one fellow came in to sojourn, and he will needs be a judge: now will we deal worse with thee, than with them. And they pressed sore upon the man, even Lot, and came near to break the door.

— 창세기 19: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같은 어근이라고 같은 뜻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18:23절에서는 청하려고, 19:9절에서는 문을 부수려고 가까이 간다. 다만 ‘온 땅의 심판자’를 부른 아브라함의 말과 롯을 ‘재판관’이라 비난하는 소돔 사람들의 말이 같은 어근으로 이어지는 점은 눈에 띈다. 아브라함의 청에 쓰인 ‘멸하다’(샤하트, שָׁחַת)는 19:13–14절과 19:29절에, ‘사파’(סָפָה)는 19:15절과 19:17절에 되돌아온다.9

19:29절은 롯이 나오게 된 까닭을 이렇게 서술한다.

29 하나님께서 그 평야의 도시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하던 도시들을 엎어 멸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그 엎어 멸하시는 가운데서 롯을 내보내셨더라.

29 And it came to pass, when God destroyed the cities of the plain, that God remembered Abraham, and sent Lot out of the midst of the overthrow, when he overthrew the cities in the which Lot dwelt.

— 창세기 19:2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기억하다’(자카르)와 ‘아브라함’이 한 절에 있는 곳은 모세오경에서 19:29절, 출애굽기 2:24절, 32:13절, 레위기 26:42절, 신명기 9:27절이다. 출애굽기 32:13절에서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하고 간청하고, 32:14절은 주께서 그 해악에 대해 뜻을 돌이키셨다고 서술한다. 19:29절은 롯이 나온 까닭을 ‘아브라함을 기억하사’라고 하되 열 명의 헤아림과의 관계는 말하지 않는다.10

중보와 용서의 말은 다른 본문에도 있다. 민수기 14:19–20절에서 모세는 백성의 불법을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주께서는 ‘네 말에 따라 용서하였노라’ 하신다.

19 간청하건대 주의 크신 긍휼에 따라 이 백성의 불법을 용서하시되 주께서 이집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용서하신 것같이 하옵소서, 하매

20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에 따라 용서하였노라.

19 Pardon, I beseech thee, the iniquity of this people according unto the greatness of thy mercy, and as thou hast forgiven this people, from Egypt even until now. 20 And the LORD said, I have pardoned according to thy word:

— 민수기 14:19–2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예레미야서 5:1절에서 주께서는 거리를 두루 찾아 한 사람이라도 발견하면 그곳을 용서하겠다고 하신다.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들을 이리저리 달리면서 이제 보고 알며 그곳의 넓은 곳들에서 찾아보라. 만일 판단의 공의를 집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있어서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내가 그곳을 용서하리라.

1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now, and know, and seek in the broad places thereof,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that executeth judgment, that seeketh the truth; and I will pardon it.

— 예레미야 5: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예레미야 5:1절에는 ‘판단’(미슈파트), ‘찾다’(마차), ‘용서하다’(살라흐)가 있고, 18:26절에는 ‘찾다’와 ‘용서하다’(나사)가 있다. 민수기 14:19절은 ‘용서하다’의 두 동사(살라흐, 나사)를 한 절에 쓴다. 용서에 쓰인 동사는 다르다. 다만 18:26절과 예레미야 5:1절은 의를 행하는 이의 발견과 도시의 용서를 연결한다. 이를 의도적인 재사용으로 볼 수 있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11

‘티끌과 재’(아파르 베에페르, עָפָר וָאֵפֶר)는 창세기에서 18:27절에만 있고, 같은 두 낱말이 짝으로 있는 곳은 욥기 30:19절과 42:6절이다.12

‘노하지 마옵소서’에 해당하는 ‘알 … 이하르’ 형태는 18:30절, 18:32절 외에 31:35절, 44:18절, 45:5절에 있다. 44:18절은 유다가 요셉에게 ‘가까이 가서’ 말하는 장면이다.

18 그때에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오 내 주여, 원하건대 주의 종이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분노하지 마옵소서. 주께서는 파라오와 꼭 같으시니이다.

18 Then Judah came near unto him, and said, Oh my lord, let thy servant, I pray thee, speak a word in my lord’s ears, and let not thine anger burn against thy servant: for thou art even as Pharaoh.

— 창세기 44:1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23절과 44:18절에는 ‘가까이 가서 이르되’라는 표현이 공통으로 나온다. 아브라함의 뒤이은 청과 유다의 말에는 노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도 나타난다.13

17:22절과 18:33절은 같은 ‘말씀을 마치다’ 표현으로 대화를 닫고, 18:33절의 ‘돌아갔더라’(샤브)는 18:10절·18:14절의 ‘돌아오리라’와 같은 어근이다.14

이사야 1장도 소돔과 고모라를 말한다. 1:9절은 이렇다.

9 군대들의 주께서 우리에게 아주 소수의 남은 자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같이 되고 고모라같이 되었으리라.

9 Except the LORD of hosts had left unto us a very small remnant, we should have been as Sodom, and we should have been like unto Gomorrah.

— 이사야 1: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10절은 ‘너희 소돔의 치리자들아’라고 부른다. 같은 장의 1:17절, 1:21절, 1:27절에는 ‘판단’(미슈파트)이 있고, 1:27절에는 ‘정의’(체다카)도 한 절에 함께 있어 창세기 18:19절과 같은 짝을 이룬다. 흠정역은 이 ‘판단’을 ‘판단의 공의’로 옮겼다.15

에스겔 16:49–50절은 소돔의 불법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49 보라, 네 자매 소돔의 불법은 이것이니 그것은 곧 그녀와 그녀의 딸들 안에 있는 교만과 빵의 풍족함과 게으름이 많은 것이라. 그녀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손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50 또 그들이 거만하여 내 앞에서 가증한 짓을 행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선하게 여긴 대로 내가 그들을 제거하였느니라.

49 Behold, this was the iniquity of thy sister Sodom, pride, fulness of bread, and abundance of idleness was in her and in her daughters, neither did she strengthen the hand of the poor and needy. 50 And they were haughty, and committed abomination before me: therefore I took them away as I saw good.

— 에스겔 16:49–50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20절은 소돔의 죄를 ‘심히 중하다’고만 말한다. 에스겔은 불법을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만, 그 내용을 창세기 18장이 직접 밝힌 죄목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15 로마서 9:29절은 앞의 이사야 구절을 가리킨다.

29 이것은 또 이사야가 미리 말한 것 즉, 군대들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같이 되고 고모라같이 되었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9 And as Esaias said before, Except the Lord of Sabaoth had left us a seed, we had been as Sodoma, and been made like unto Gomorrha.

— 로마서 9:2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인용한 번역문에서 이사야 1:9절은 ‘아주 소수의 남은 자’, 로마서 9:29절은 ‘씨’라고 표현한다. 18:26–32절의 소수의 의로운 자와 이사야 1:9절의 소수의 남은 자는 맞닿는 면이 있으나, 이사야의 ‘남은 자’가 의로운 자를 가리키는지는 이 대조로 판정하지 않았다.16 베드로후서 2:6–9절은 소돔과 고모라를 본보기로 들면서 롯을 ‘의로운’ 이로 부른다.

7 사악한 자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해 괴로움을 받던 의로운 롯을 구출하셨으니

8 (이는 저 의로운 사람이 그들 가운데 거하면서 보고 들음으로써 그들의 불법 행위들로 인해 날마다 자기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라.)

7 And delivered just Lot, vexed with the filthy conversation of the wicked: 8 (For that righteous man dwelling among them, in seeing and hearing, vexed his righteous soul from day to day with their unlawful deeds;)

— 베드로후서 2:7–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그러나 18:16–33절에는 롯이 나오지 않으므로 이 평가를 18:23–32절의 열 명 헤아림에 곧바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마태복음 10:15절과 11:24절, 누가복음 17:28–32절, 유다서 7절도 소돔을 심판의 비교와 본보기로 든다. 갈라디아서 3:8절의 복 약속과 야고보서 5:16절의 기도는 각주에서 다룬다.16

18:22절의 ‘서 있는 이’와 아브라함이 열에서 멈춘 까닭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첫째 쟁점은 18:22절이다. 마소라 본문과 흠정역은 아브라함이 여전히 주 앞에 서 있었다고 읽는다. 후대 유대교 전승에는 이 구절을 ‘소페림의 수정’(티쿤 소페림)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본래 읽기가 ‘주께서 아브라함 앞에 서 계셨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승이 실제 본문 변경을 입증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 글에서는 마소라 본문의 읽기를 따라 아브라함이 주 앞에 서 있었다는 서술을 살핀다.17 이 표현만으로 아브라함의 자세나 역할에 더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둘째 쟁점은 아브라함이 열에서 멈춘 까닭이다. 18:32절 이후 더 내려가는 청은 없고 18:33절은 대화가 끝났다고만 서술한다. 아브라함이 스스로 멈추었는지, 주께서 멈추게 하셨는지, 열이 어떤 의미를 갖는 수인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이 질문은 본문이 답하지 않는 질문으로 남긴다.

웨슬리는 아브라함이 열에서 멈춘 까닭을 두 가지로 풀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소개한다. 존 웨슬리(1703–1791)는 창세기 18장 주해에서 아브라함이 ‘가까이 갔다’(18:23절)는 말에서 거룩한 염려와 거룩한 담대함을 함께 보고, ‘티끌과 재’(18:27절)를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자신의 낮음을 헤아리는 사람의 말로 풀었다. 18:30절 주해에서는 사람 사이에서라면 무례해 보일 끈질긴 간구를 하나님은 씨름하듯 매달리는 이를 기뻐하신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열에서 멈춘 까닭으로는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열 명에 못 미치면 그 도시가 멸망해 마땅함을 아브라함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고(누가복음 13:9절을 곁들인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더 간구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설명이다. 웨슬리는 이를 멸망이 정해진 곳을 위한 기도를 막으시는 경우와 연결한다(예레미야 7:16절을 곁들인다). 웨슬리는 18:33절 주해에서 아브라함의 기도는 들으셨으나 소돔에는 열 명의 의로운 자가 없었기에 구원받지 못했다고 정리한다. 이는 웨슬리의 해석이며, 아브라함이 멈춘 이유를 본문에서 확인한 사실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 소개는 해당 편의 해석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니며, 앞서 살핀 관찰·추론이나 아래 정리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18

이 장면의 짜임은 ‘안다’, ‘판단’, 줄어드는 수로 헤아려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본문에서 확인되는 사항을 ‘관찰’, 그 배열에서 이끌어 낸 해석을 ‘추론’,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가능성을 ‘사변’으로 구분한다.

어휘·구절·주제내용판단 구분
‘알다’18:16–33절에서는 18:19절(‘내가 그를 알기 때문’)과 18:21절(‘알고자 하노라’) 두 곳관찰
‘카사’(숨기다)18:17절. 이번 범위에서는 이 한 곳관찰
‘정의’와 ‘판단’한 절에 함께 있는 곳은 창세기에서 18:19절. ‘판단’(미슈파트)은 18:19; 18:25; 40:13절관찰
‘의로운 자’창세기 열 번 중 일곱 번이 18:23; 18:24(두 번); 18:25(두 번); 18:26; 18:28절관찰
‘사악한 자’창세기 세 번이 모두 18:23; 18:25(두 번)절관찰
‘혹시’와 수18:24; 28–32절에 여섯 번. 쉰, 마흔다섯, 마흔, 서른, 스물, 열관찰
주의 답여섯 번의 청 모두에 응답하심. 제시된 수의 의로운 자가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응답관찰
아브라함의 호칭18:27; 30; 31; 32절의 ‘아도나이’. 아브라함의 말 안에 ‘여호와’(주의 이름)는 없음관찰
두 표현의 반복‘감히 작정하였나이다’와 ‘노하지 마옵소서’가 18:27; 30; 31; 32절의 순서로 번갈아 나옴관찰
‘티끌과 재’창세기에서는 18:27절만. 욥기 30:19; 42:6절에 같은 짝관찰
대화의 끝18:33절 ‘마치다’와 ‘말하다’가 17:22절에도 있음. 18:33절의 ‘돌아가다’는 18:10; 14절의 ‘돌아오다’와 같은 어근관찰
아브라함의 물음의 근거18:19절에서 말씀하신 ‘판단’이 18:25절 아브라함의 물음으로 이어짐추론
말투의 반복아브라함은 필요한 의인의 수를 줄여 청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말투로 간구를 이어 감추론
소수와 다수제시된 수의 의로운 자가 있으면 그들로 인해 도시 전체를 멸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반복됨추론
19:29절의 까닭롯을 내보내신 까닭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사’라고 서술하며 열 명의 헤아림과의 관계는 말하지 않음관찰
롯과 열 명아브라함이 열 명이면 롯의 집안을 포함하기에 충분하다고 헤아렸을 가능성(본문에 롯이 나오지 않으며 19:29절도 말하지 않음)사변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18:25절의 아브라함의 물음은 18:19절에서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맡기려 하신 ‘정의와 판단의 공의’와 같은 어근으로 이어진다. 주께서는 아브라함이 자기 집안에게 이 길을 가르치리라고 ‘아시고’ 숨기지 않으시며, 아브라함은 그 낱말로 심판자께 되묻는다. 아브라함이 이 연결을 의식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는다.

둘째, ‘혹시’가 여섯 번의 청에 각각 쓰이고 두 표현의 반복이 이어지는 점은, 아브라함이 필요한 의인의 수를 줄여 청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말투로 간구를 이어 간다는 인상을 준다.

셋째, 주께서는 18:26절 이후 제시된 수의 의로운 자가 있으면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고 되풀이해 응답하신다. 이 대화에서는 의로운 자의 존재가 도시 전체의 보존과 연결된다. 다만 이를 모든 심판에 적용되는 보편 공식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변으로 남기는 것은 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열 명이면 롯의 집안을 포함하기에 충분하다고 헤아렸을 가능성이다. 18:16–33절에는 롯이 나오지 않으며19 19:29절도 이 점을 말하지 않으므로 사변으로 분류한다.

열 명의 존재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이야기는 소돔 성문으로 이어진다

18:33절은 주께서 가시고 아브라함이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고 끝낸다. 열 명의 존재 여부는 18장 안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19:1절은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19:9절의 소돔 사람들은 ‘재판관’을 말하며 문을 부수려 한다. 아브라함은 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함께 멸하실 것인지 물었다. 그 물음을 남긴 채 이야기는 소돔의 성문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서 그 물음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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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흠정역은 인쇄본(창세기 7:1; 11:5–7; 13:13; 18:12–20:4와 44:18, 출애굽기 32:13–14, 민수기 14:19–20, 욥기 42:6, 이사야 1장, 예레미야 5:1, 마태복음 10:15; 11:23–24, 누가복음 17:28–32, 로마서 9:29, 갈라디아서 3:8, 야고보서 5:16–18, 베드로후서 2:6–9, 유다서 7)와 에스겔 16:49–50에서 옮기거나 확인했다. 인쇄본의 기울임체(번역자 보충어)는 박스에 반영하지 않았다. KJV는 thiagobodruk/bible의 en_kjv.json(https://github.com/thiagobodruk/bible)에서 해당 구절을 열어 대조했고, 철자와 문구를 그대로 유지했다(원본의 ‘LORD ,’처럼 쉼표·마침표 앞 공백만 정리했다). 여섯 마디의 구분은 편집 의도에 따른 것이며 본문에 구분 표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어 계수는 OSHB(WLC 기반, https://github.com/openscriptures/morphhb)의 표제어 번호로 센 것이며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

‘숨기다’(카사, 표제어 3680)는 창세기에서 7:19; 7:20; 9:23; 18:17; 24:65; 37:26; 38:14; 38:15절이다. 18:17절의 형태는 ‘하메캇세’(הַמְכַסֶּה)이다. 다른 곳은 ‘덮다’의 뜻으로 쓰이는 곳이 있어 같은 의미로 묶지 않았다. ↩

‘알다’(야다, 표제어 3045)는 18:16–33절에서 18:19절 ‘예다티브’(יְדַעְתִּיו)와 18:21절 ‘에다아’(אֵדְעָה) 두 곳이다. ‘정의’(체다카, 표제어 6666)는 창세기에서 15:6; 18:19; 30:33절이고, ‘판단’(미슈파트, 표제어 4941)은 18:19; 18:25; 40:13절이다. 두 낱말이 한 절에 함께 있는 곳은 창세기에서 18:19절 하나이다. ‘의로운 자’(차디크, 표제어 6662)와 ‘정의’(체다카)는 같은 어근 계열이지만 표제어 번호가 달라 세지 않았다. 흠정역은 18:19절을 ‘정의와 판단의 공의’로, 18:25절의 ‘미슈파트’를 ‘의롭게’로 옮겼고 KJV는 ‘justice and judgment’와 ‘do right’로 옮겼다. 이는 번역 선택의 차이이며, 원문 낱말의 일치는 OSHB 표제어 번호로 확인했다. ↩

18:20절의 ‘부르짖음’은 ‘자아카트’(זַעֲקַת, 표제어 2201, 창세기에서 이 한 곳)이고, 18:21절의 ‘부르짖음’은 ‘하크차아카타’(הַכְּצַעֲקָתָהּ, 표제어 6818)로 창세기에서 18:21; 19:13; 27:34절이다. 18:20절의 ‘죄’(핫타아트, 표제어 2403)는 창세기에서 4:7; 18:20; 31:36; 50:17절이다. ‘중하다’(카베드, 표제어 3513)는 창세기에서 13:2; 18:20; 34:19; 48:10절이며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 이 계수로는 뜻을 판정하지 않았다. 18:21절의 ‘내려가다’(야라드, 표제어 3381)와 ‘보다’(라아, 표제어 7200)는 한 절에 함께 있다. 11:5절 ‘와예레드 아도나이 릴롯’(‘내려오셔서 … 보려고’)에도 같은 두 어근이 있고, 11:7절의 ‘네레다’(‘우리가 내려가’)도 ‘야라드’이다. 11:5–7절과 13:13절(‘소돔 사람들은 사악하여 … 심히 큰 죄인들’)은 인쇄본에서 확인했고 KJV와 대조했다. 13:13절에서 ‘사악한’은 ‘라임’, ‘죄인들’은 ‘핫타임’이다. ↩

‘의로운 자’(차디크, 표제어 6662)는 창세기에서 6:9; 7:1; 18:23; 18:24(두 번); 18:25(두 번); 18:26; 18:28; 20:4절의 열 번이다. 18:23–28절의 일곱 번은 18:23; 18:24; 18:25; 18:26; 18:28절의 다섯 절에 있다. ‘사악한 자’(라샤, 표제어 7563)는 18:23절 ‘라샤’, 18:25절 ‘케라샤’와 ‘라샤’로 세 번이다. 7:1절과 20:4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 6:9절은 인쇄본(‘노아는 자기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의인이었고’)과 KJV(‘a just man’)로 확인했다. 18:23절의 ‘사파’, 18:25절의 ‘죽이다’(무트의 사역형 ‘레하미트’, 표제어 4191), 20:4절의 ‘죽이다’(하라그 ‘타하로그’, 표제어 2026)는 서로 다른 동사이며, 흠정역은 18:25절과 20:4절을 모두 ‘죽이다’로 옮겼다. ↩

‘혹시’(울라이, 표제어 194)는 18:24; 18:28; 18:29; 18:30; 18:31; 18:32절에 한 번씩이다. 수는 ‘쉰’(하밋심, 표제어 2572) 18:24; 18:26; 18:28절, ‘다섯’(하밋샤, 표제어 2568) 18:28절, ‘마흔’(아르바임, 표제어 705) 18:28; 18:29절, ‘서른’(셸로쉼, 표제어 7970) 18:30절, ‘스물’(에스림, 표제어 6242) 18:31절, ‘열’(아사라, 표제어 6235) 18:32절이다. ‘용서하다’(나사, 표제어 5375)는 18:24절 ‘티싸’(תִשָּׂא)와 18:26절 ‘베나사티’(וְנָשָׂאתִי)에서 ‘그곳’(마콤, 표제어 4725)과 함께 있다. 같은 두 어근이 한 절에 있는 13:14절과 22:4절은 ‘눈을 들다’의 구문이어서 뺐다. 주의 답에서 18:26절은 ‘용서하다’, 18:28; 18:31; 18:32절은 ‘멸하다’(샤하트), 18:29; 18:30절은 ‘하다’(아사, 표제어 6213)가 쓰였다. 이 차이가 뜻의 차이를 나타내는지는 판정하지 않았다. ↩

‘아도나이’는 18:27절 ‘아도나이’(אֲדֹנָי), 18:30절 ‘라아도나이’, 18:31절 ‘아도나이’, 18:32절 ‘라아도나이’의 형태이다(OSHB 형태 표지는 1인칭 단수 접미가 붙은 복수형으로 분석). 이 형태를 하나님께 대한 호칭으로 볼지 존칭으로 볼지는 이 확인으로 판정하지 않았다. 흠정역 인쇄본은 ‘아도나이’와 ‘여호와’를 모두 ‘주’로 옮겨 번역문에서는 구별되지 않고, KJV는 ‘the Lord’와 ‘the LORD’로 구별한다. ‘여호와’(표제어 3068)는 18:16–33절에서 18:17; 18:19(두 번); 18:20; 18:22; 18:26; 18:33절에 있고, 아브라함의 말(18:23–25절; 18:27–32절) 안에는 없다. ‘감히 작정하다’(호알티, 표제어 2974)는 창세기에서 18:27절과 18:31절이고, ‘노하다’(하라, 표제어 2734) 동사의 ‘알 나 이하르’는 18:30절과 18:32절이다. ↩

‘가까이 가다’(나가쉬, 표제어 5066)는 18:23절 ‘와이가쉬’와 19:9절 ‘게쉬’(물러서라로 옮겨진 명령형), ‘와이그슈’이다. ‘판단하다’(샤파트, 표제어 8199)는 창세기에서 16:5; 18:25; 19:9(두 번); 31:53절이며 18:25절은 ‘하쇼페트’, 19:9절은 ‘와이쉬포트 샤포트’이다. 19:9절의 흠정역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 어근이 같다고 뜻이 같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

‘멸하다’(샤하트, 표제어 7843)는 창세기에서 6:11; 6:12(두 번); 6:13; 6:17; 9:11; 9:15; 13:10; 18:28(두 번); 18:31; 18:32; 19:13(두 번); 19:14; 19:29; 38:9절의 열일곱 번이다. 38:9절은 맥락이 달라 이 글에서 뺐다. ‘사파’(표제어 5595)는 창세기에서 18:23; 18:24; 19:15; 19:17절 네 번이다. 흠정역 인쇄본은 18:23절에서 이 낱말을 ‘멸하다’로 옮겼고, KJV는 18:23절을 ‘destroy’, 19:15절과 19:17절을 ‘consumed’로 옮긴다. 6장·9장·13장·19장의 해당 절은 이 글에서 인쇄본을 옮기지 않았고, 19장 본문은 후속 편에서 다룬다. ↩

‘기억하다’(자카르, 표제어 2142)와 ‘아브라함’(표제어 85)이 한 절에 있는 곳은 모세오경에서 창세기 19:29절, 출애굽기 2:24절, 32:13절, 레위기 26:42절, 신명기 9:27절이다. 19:29절은 ‘와이즈코르 엘로힘 에트 아브라함’이다. 19:29절과 출애굽기 32:13–14절은 인쇄본에서 확인했고 KJV와 대조했다. 나머지 세 곳은 이 글에 옮기지 않았다. 19:29절의 ‘멸하다’는 ‘샤하트’(표제어 7843)이다. ↩

민수기 14:19절은 ‘살라흐’(표제어 5545, ‘슬라흐’)와 ‘나사’(표제어 5375, ‘나사타’)를 한 절에 쓰고, 14:20절은 ‘살라흐’(‘살라흐티’)를 쓴다. 예레미야 5:1절은 ‘미슈파트’(표제어 4941), ‘찾다’(마차, 표제어 4672 ‘티므차우’), ‘용서하다’(살라흐 ‘베에슬라흐’)를 한 절에 쓴다. 18:26절은 ‘마차’와 ‘나사’를 쓴다. 두 구절의 흠정역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 ↩

‘티끌’(아파르, 표제어 6083)은 창세기에서 2:7; 3:14; 3:19(두 번); 13:16(두 번); 18:27; 26:15; 28:14절이고, ‘재’(에페르, 표제어 665)는 창세기에서 18:27절 하나이다. 두 낱말이 한 절에 함께 있는 곳은 구약 39권 OSHB 검색으로 창세기 18:27절, 욥기 30:19절, 42:6절이다. 에스겔 27:30절은 ‘아파르 베에페르’(‘티끌을 … 재 속에’)로 형태가 달라 같은 짝으로 세지 않았다. 욥기 42:6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repent in dust and ashes’). 욥기 30:19절은 KJV(‘dust and ashes’)로만 확인했다. 욥기 42:6절의 ‘회개하다’(나함, 표제어 5162)는 ‘니함티’이다. 욥기 42:6절의 흠정역 인쇄본은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며 티끌과 재 속에 회개하나이다, 하니라.’이다. 창세기 18:27절은 ‘티끌과 재에 불과한 내가’, 욥기 42:6절은 ‘티끌과 재 속에’ 회개한다고 말하며, 이 짝이 쓰이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

‘알 … 이하르’ 형태는 창세기에서 18:30; 18:32; 31:35; 44:18; 45:5절이다. 44:18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 18:23절과 44:18절의 공통점은 ‘와이가쉬 … 와요메르’(가까이 가서 이르되) 꼴이며, ‘노하지 마옵소서’는 18:23절이 아니라 18:30; 18:32절과 44:18절에 있다. 이 꼴이 창세기에서 이 두 곳에만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호칭은 18장의 ‘아도나이’와 44:18절의 ‘아도니’(내 주)로 모음이 다르다. ↩

‘마치다’(칼라, 표제어 3615)와 ‘말하다’(다바르, 표제어 1696)가 한 절에 있는 곳은 창세기에서 17:22; 18:33; 24:15; 24:45절이다. 17:22절은 ‘와예칼 레다베르 이토’, 18:33절은 ‘킬라 레다베르 엘 아브라함’이다. 24:15절과 24:45절은 리브가 장면이어서 이 대조에서 뺐다. ‘돌아오다’(슈브, 표제어 7725)는 18장에서 18:10절 ‘슈브 아슈브’, 18:14절 ‘아슈브’, 18:33절 ‘샤브’이다. 18:10절과 18:14절의 주체는 방문자이고 18:33절의 주체는 아브라함이다. ↩

이사야 1:9–10절은 인쇄본에서 옮겼다. ‘판단’(미슈파트, 표제어 4941)은 이사야 1:17; 1:21; 1:27절에 있고, ‘정의’(체다카, 표제어 6666)는 1:27절에 ‘미슈파트’와 한 절에 함께 있다(1:21절과 1:26절의 ‘체덱’, 표제어 6664은 다른 낱말이라 세지 않았다). 흠정역은 1:17; 1:21; 1:27절의 미슈파트를 ‘판단의 공의’로 옮겼다. 두 낱말이 한 절에 있는 곳은 모세오경에서 창세기 18:19절과 신명기 33:21절이다. 이사야와 창세기의 같은 짝이 같은 뜻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에스겔 16:49–50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16:48절은 ‘내 자매 소돔’의 맹세 문맥으로 인쇄본에서 확인했으나 옮기지 않았다). 에스겔의 서술이 창세기 18–19장에 대한 직접 해설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에스겔 16:49–50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 흠정역은 49절을 ‘보라, 네 자매 소돔의 불법은 이것이니 그것은 곧 그녀와 그녀의 딸들 안에 있는 교만과 빵의 풍족함과 게으름이 많은 것이라’, 50절을 ‘또 그들이 거만하여 내 앞에서 가증한 짓을 행하였느니라’로 옮겼다. 이 서술은 18장 본문이 직접 밝힌 죄목이 아니다. ↩

신약 구절은 인쇄본에서 옮겼고 KJV와 대조했다(갈라디아서 3:8, 로마서 9:29, 야고보서 5:16–18, 베드로후서 2:6–9, 마태복음 10:15; 11:23–24, 누가복음 17:28–32, 유다서 7). 로마서 3:5–6절은 인쇄본이 없어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다. 로마서 9:29절은 ‘이사야가 미리 말한 것’으로 시작해 이사야 1:9절과 같은 취지이나, 이사야는 ‘아주 소수의 남은 자’, 로마서는 ‘씨’로 옮겨 문구가 같지 않다. 바울이 어느 본문(히브리어, 칠십인역)을 인용했는지는 대조하지 못했다. 갈라디아서 3:8절의 KJV는 ‘In thee shall all nations be blessed’이고, 12:3절의 KJV는 ‘in thee shall all families of the earth be blessed’(‘콜 미슈페홋 하아다마’, ‘베카’), 18:18절은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shall be blessed in him’(‘콜 고예 하아레츠’, ‘보’), 22:18절은 ‘in thy seed shall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be blessed’(‘콜 고예 하아레츠’, ‘베자르아카’)이다. 12:3절의 인쇄본은 이 글에 옮기지 않았다. 이 대조로 바울이 어느 구절을 가리키는지는 판정하지 않았다. 롯이 18:16–33절에 나오지 않음은 OSHB에서 ‘롯’(표제어 3876)을 찾아 확인했다(18장에는 없고 19:1절부터 나온다). 갈라디아서 3:8절의 흠정역은 ‘또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이교도들을 의롭다 하실 것을 성경기록이 미리 보고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선포하여 이르되, 네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KJV: And the scripture, foreseeing that God would justify the heathen through faith, preached before the gospel unto Abraham, saying, In thee shall all nations be blessed.)이다. ‘네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는 12:3절의 ‘안에서’와 18:18절·22:18절의 ‘민족들’ 어휘를 함께 지녀 어느 구절을 가리키는지 이 대조로 판정하지 않았다. 야고보서 5:16절의 흠정역은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사람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효능이 있느니라’(KJV: Confess your faults one to another, and pray one for another, that ye may be healed. The effectual fervent prayer of a righteous man availeth much.)이다. 이어지는 5:17–18절은 엘리야를 예로 들며 창세기 18장을 언급하지 않는다. ↩

‘티쿤 소페림’(소페림의 수정) 설명은 https://torahresource.com/article/genesis-1822-the-tiqqune-sopherim/ 글에서 확인했다. 글쓴이와 간행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 글이 전하는 내용: 마소라 목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은 페트로폴리타누스 바벨로니쿠스 사본(약 916년)이며 예멘 사본 세 점(14세기)과 BM Add. 15,451(약 1200년)에도 18:22절이 올라 있고 카이로 사본에는 이 구절의 해당 주가 없다. 창세기 라바 49:7절, 미드라시 쉐못 41:4, 미드라시 테힐림에서 랍비 시몬이 이 구절을 티쿤 소페림이라 부른다. 본문 증거로 칠십인역, 사마리아 오경, 페쉬타, 옹켈로스, 불가타는 모두 아브라함을 주어로 읽고 쿰란 8Q1은 보존이 나빠 판정하기 어렵다. 가장 이른 ‘키누임’ 목록(메킬타, 시프레)에는 없고 5–7세기의 탄후마–옐람메데누 계열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 글의 인용 자료(맥카시, 반스 등)와 라시, 메킬타 원문은 직접 열어 대조하지 못했다. 마소라 본문 형태(‘베아브라함 오덴누 오메드 리프네이 아도나이’)는 OSHB로 확인했다. 사본 연대, 목록의 선후 관계 등 세부는 단일 소개 글에 의존한 것이어서 본문에서 전개하지 않았다. 이 글이 전승의 동기에 관한 가설도 제시하나 인용된 연구와 서지를 확인하지 못해 싣지 않았다. ↩

존 웨슬리(1703–1791), 창세기 18장 주해. 확인한 곳: https://notes.historyofmethodism.com/genesis/18. 페이지를 열어 18:23; 18:27; 18:30; 18:33절 해당 주를 확인했고, 18:22; 18:25절 등에는 주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본문의 소개는 요지를 옮긴 것이며 따옴표 인용이 아니다. 이 페이지에서 서명·판본·연도를 확인하지 못했고, 웨슬리의 생몰 연대는 일반 참고 지식이며 이 페이지로 확인한 것이 아니다. 쪽수 확인과 전문 대조는 하지 못했다. ↩

‘롯’(표제어 3876)은 창세기 18장에 없다. 이 글의 사변 표시는 본문이 롯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한다. 19:29절은 본문에서 옮겼다(각주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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