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지 않으려고 집을 샀다

해질녘 한국 아파트 단지 앞 사다리차로 이사하는 가족의 뒷모습
해질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아래, 비 그친 바닥 위에 짐을 쌓아두고 사다리차를 올려다보는 가족의 풍경.

이사하지 않으려고 집을 샀다

전월세 난민, 갭투자, 그리고 이사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

2026.10.24 · 역사 · 한국현대사 · Watchman


집을 살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 집을 사는 이유

이달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전세 물량이 고갈되어 전월세 가격이 오르자, 원래 집을 살 필요가 없던 사람들까지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매수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¹ 이 진단이 시장 전체를 설명하는지는 따져 볼 일이다. 그러나 이 문장 속 매수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하다. 집을 원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사를 멈추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이 둘로 나뉘어 살던 2000년대의 기러기 가족을 살펴보았다. 그 이동에는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이동의 이유는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었고, 떠나는 이유만 시대마다 바뀌었다. 2010년대에 이사 날짜를 정한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계약서의 만기였다.

만기가 정하는 이사, 2010년대의 전월세 난민

한국의 전세는 세계적으로 드문 임대차 방식이다. 세입자는 집값의 상당 부분을 보증금으로 집주인에게 맡기고, 대신 월세를 내지 않는다. 집주인에게 그 보증금은 이자 없이 쓰는 목돈이고, 세입자에게 그 이자는 월세를 면제받는 형태로 돌아온다. 계약 기간은 보통 2년이다. 이 구조에서 이사는 2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만기일이 된다.

2011년에 이 만기일이 폭발했다. 2009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전셋값은 2011년 한 해 전국적으로 12% 가까이 뛰었고, 언론은 이를 전세대란이라 불렀다.² 집을 구하지 못해 만기마다 쫓기듯 옮겨 다니는 사람들, 이 글이 전월세 난민이라 부르는 이들이 이때 눈에 띄게 늘어났다.

여기에 저금리가 겹쳤다. 2012년 하반기 기준금리가 3% 안팎이던 때, 전세금을 월세로 환산하면 이율은 평균 10%를 넘는다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집계했다.³ 집주인에게 월세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세입자에게 그것은 같은 집에 사는 값이 몇 배로 환산되는 일이었다. 보증금을 더 올려 주거나, 월세로 갈아타거나, 짐을 싸는 세 가지 길이 있었고, 세 번째 길은 이사를 선택이 아니라 가격표가 내린 결정으로 만들었다.

통계가 이를 보여 준다. 2013년 한 해 읍·면·동 경계를 넘어 거처를 옮긴 사람은 741만 명이었다. 인구이동률 14.7%는 1973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였다.⁴ 그런데도 가장 덜 움직인 해에 인구 100명 중 약 15명이 짐을 쌌다. 정착이 아니라 이동이 한국 사회의 기본값이었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숫자였다.

2014년 방향이 바뀌었다. 정부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고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빚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가구당 부채 증가율은 2012~2014년 3~4%대에서 2015년 9.1%, 2016년 10.0%로 치솟았다.⁵ 이사에 지친 사람들 앞에 문 하나가 열린 셈이었다. 그 문의 이름이 갭투자였다.

갭투자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방식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2016년 6월 75.1%에 이르렀다.⁶ 10억 원짜리 아파트에 전세 보증금이 7억 5천만 원이면, 2억 5천만 원으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 이때 매수 자금의 대부분은 세입자가 맡긴 보증금이다. 한 사람의 보증금이 다른 사람의 집이 되는 구조였고, 당시 전세 세입자 가운데 일부가 직접 매수자로 나서면서 호황이 만들어졌다고 한다.⁷ 쫓겨나는 쪽과 사들이는 쪽은 같은 사람일 수 있었다.

가계신용(가계부채)은 2013년 말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었고, 2017년 말에는 1,450조 9천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⁸ 국내총생산 대비로 따지면 이미 위험 수위로 여겨지던 수준이었다.⁹ 집을 사기 위해 낸 빚이 이사를 멈추려는 사람들의 장바구니였던 셈이다. 그러나 같은 구조는 반대 방향으로도 돌아갔다. 서울 전세가율은 2016년 6월 75.1%에서 2018년 6월 65.4%로 내려왔고, 입주 물량이 늘어 전셋값이 흔들리자 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모자란 집주인과 돌려받지 못할까 불안한 세입자, 곧 역전세와 깡통전세의 공포가 퍼졌다.¹⁰ 오를 때는 세입자의 보증금이 매수 자금이 되었고, 흔들릴 때는 그 보증금이 집주인의 부담이 되었다.

이 연쇄를 시대별로 이어 보면 하나의 선이 보인다. 1960년대의 이사는 가난이 정했고, 1970년대의 이사는 철거가 정했고, 2000년대의 이사는 교육이 정했고, 2010년대의 이사는 만기와 가격이 정했다. 이유는 매번 바뀌었으나, 이사하는 사람이 날짜를 정하지 못했다는 점만은 바뀐 적이 없다.

짐은 가격보다 오래 남는다 — 일본의 1990년과 아테네의 기원전 594년

일본은 이 길을 먼저 걸었다. 1986년부터 4년 동안 일본에서는 가계대출 붐이 일었고, 은행들은 주택금융전문회사까지 세워 대출 경쟁을 벌였다. 전체 은행 대출 가운데 부동산 투자 대출의 비중은 1984년 6%에서 1990년 11%로 늘었다.¹¹ 닛케이 평균주가가 정점을 찍은 것은 1989년 12월이었다. 땅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토지신화가 대출의 담보였다.

신화는 1990년 이후 무너졌다. 버블 붕괴 이후의 불황을 ‘대차대조표 불황’으로 설명해 온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 리처드 쿠는 사라진 자산 가치를 약 1,500조 엔으로 추산했는데, 1990년 일본의 명목 GDP 449조 엔의 세 배가 넘는 규모다.¹² 1990년대 중반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금융기관과 개인의 파산이 늘었다.¹³ 가격은 내려갔지만 빚은 내려가지 않았다. 가계는 소비 대신 빚 갚기에 나섰고, 그 합이 경제 전체를 움츠러들게 했다. 집은 오를 때는 자산이지만 내릴 때는 부채가 된다. 일본이 남긴 교훈은 그것이다.

한국의 구조는 한 겹 더 두껍다. 일본의 집이 은행 대출 위에 서 있었다면, 한국의 집에는 한 겹이 더 있었다. 은행이 준 1차 레버리지 위에 세입자의 보증금이라는 무이자 사적 신용이 2차 레버리지로 얹힌 이중 구조였다. 보증금은 이자가 없는 대신 집값이 흔들릴 때의 위험을 세입자가 함께 떠안게 만든다. 2018~2019년의 역전세 공포는 이 이중 구조가 가격 하락기에 어떤 모양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 준 장면으로 읽힐 수 있다. 2007~2008년 미국에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설계된 대출이 압류라는 강제 이사로 바뀐 것도 같은 문법을 따른다.

더 오래된 선례가 있다. 기원전 594년경의 아테네에서는 빚을 갚지 못한 농민이 땅을 잃었고, 그래도 모자라면 자기 몸과 가족이 담보가 되어 노예로 팔려 가기도 했다. 이 위기를 수습할 사람으로 뽑힌 이가 솔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솔론이 쌓인 부채를 탕감하고, 사람의 몸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일을 금지했다고 전한다.¹⁴

이 개혁에는 세이사크테이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직역하면 ‘짐 벗기’다. 이삿짐이 아니라 빚이라는 짐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손댄 순서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아테네가 가장 먼저 풀어낸 것은 땅값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 빚의 담보가 되는 고리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빚의 문제가 한 개인의 사정을 넘어 공동체가 다룰 일이 되는 지점이 늘 그곳이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거주가 금융이 되는 순간, 이동은 비용이 된다

일본의 1990년, 미국의 2008년, 한국의 2010년대를 한 장에 놓으면 같은 문법이 나온다. 집이 거처이면서 동시에 담보와 레버리지가 되는 순간, 가격의 움직임은 곧 사람의 움직임으로 번역된다. 집값이 오르면 세입자가 밀려나고, 내리면 세입자의 보증금이 위태로워진다.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위험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주소는 같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이 글은 세 가지를 짚는다.

첫째, 척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의 주거 논쟁은 거의 언제나 가격 곡선 위에서 벌어졌고, 한 가구가 십 년 동안 자기 뜻과 무관하게 몇 번 이사했는가는 정책의 지표가 된 적이 드물었다. 거주의 안정은 집값의 방향이 아니라 비자발적 이동의 횟수로 재어야 한다.

둘째, 보증금이라는 사적 신용을 공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계약 전에 집주인의 선순위 채무와 보증금 총액을 세입자가 볼 수 있어야 한다. 역전세의 공포는 모두가 서로의 대차대조표를 모른 채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셋째, 사지 않아도 머무를 수 있는 길을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집이 거처가 아니라 자산으로만 다뤄질 때, 이동은 선택이 아니라 시장이 내미는 청구서가 된다.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사 날짜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권이 남아 있어야 한다. 공급을 늘리는 일과 세입자를 보호하는 일은 서로 싸우는 두 진영의 구호가 아니라 이동의 비용을 낮추는 두 개의 도구다. 그리고 일본의 교훈에 따라, 이사하지 않기 위해 지는 빚이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안에 있는지를 사회가 먼저 정직하게 계산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현실은 이 질문을 시험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로 서울 아파트값은 2026년 9월 넷째 주 기준 86주 연속 상승해, 문재인 정부 때의 종전 최장 기록 85주를 넘어섰다.¹⁵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026년 4월 1만 5,427건으로 2년 전보다 절반가량 줄었다는 국회입법조사처 자료가 보도되었다.¹⁶ 이달 7일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은 강남 3구와 용산구 가격이 내렸고 연말에는 상승 폭이 줄 것이라고 답했고, 야당은 이를 정책 실패의 결과라고 맞섰다. 정부는 올해 1~8월 서울의 인허가·착공이 전년 동기보다 40% 늘었다고 설명했다.¹⁷ 두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앞으로의 통계가 가려 줄 것이다. 이 글이 짚으려는 것은 그 너머의 구조다. 다만 전세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이사 날짜를 세입자가 정하지 못하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이사하지 않으려고 집을 사는 행렬은 이름만 바꿔 계속될 것이다.

다음에 짐을 쌀 때, 날짜는 누가 정하는가

우리는 흔히 이사를 개인의 사건으로 기억한다. 이삿짐 트럭과 박스 테이프와 새 집의 첫 밤은 사사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 풍경들을 반세기쯤 포개어 놓으면 사사로움은 사라지고, 같은 질문이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놓여 있다.

솔론의 아테네는 사람을 빚의 담보에서 떼어 내는 길을 택했고, 일본은 짐이 가격보다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값비싸게 배웠다. 우리는 아직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다음에 짐을 쌀 때 그 날짜를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질문이 처음 던져진 자리로 계속 돌아가 볼 것이다.


* 참고할 말씀: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 잠언 22:7


¹ 머니투데이방송, 「오세훈 “집값 연말까지 우상향”」, 2026.10.19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서울시 국정감사 보도).

² 뉴스토마토, 「대한민국은 지금 ‘방구하기’ 전쟁중」, 2011.2.17; 비즈워치, 「서울 전세 수급, 2011년 전세대란 수준」, 2013.8.11 (2011년 전국 전셋값 연 12% 상승 언급).

³ 현대경제연구원 현안과 과제 보고서(2013.2) 보도, 경기일보, 2013.2.14 (2012년 하반기 월세 환산이율 평균 10.28%).

⁴ 통계청, 「2013년 국내인구이동 통계」(2014.1.28 발표), 세계일보 보도 (이동자 741만 2천 명, 인구이동률 14.7%).

⁵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 및 아주경제 보도(2019.2.24) (가구당 부채 증가율: 2012~2014년 3~4%대, 2015년 9.1%, 2016년 10.0%).

⁶ 2016년 6월 서울 전세가율 75.1%, 2018년 6월 65.4%: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 및 전세가율의 동향과 전망」, Earticle.

⁷ 아주경제, 2019.10.30 (경제만랩 분석: 서울 전세가율 70% 수준이던 2016~2017년 갭투자 호황).

⁸ 한국은행 가계신용: 2013년 말 첫 1,000조 원 돌파(뉴시스, 2018.8.23); 2017년 말 1,450조 9천억 원(토요경제, 2018.2.22).

⁹ 토요경제, 2017.8.23 (2016년 말 가계부채 GDP 대비 92.8%, BIS가 2011년 제시한 임계치 85%).

¹⁰ 데일리안, 「갭투자의 역습…역전세·깡통전세 공포 현실 어떻게」, 2019.6.12 외.

¹¹ 서울신문, 2002.10.29 (일본 1986~1990년 가계대출 붐, 은행 대출 중 부동산 비중 1984년 6%에서 1990년 11%).

¹² 홍춘욱, 「버블 붕괴 이후 미·일 중앙은행의 상반된 대응」, 비즈한국 (리처드 쿠 『대침체의 교훈』 인용: 소멸 자산 약 1,500조 엔, 1990년 명목 GDP 449조 엔).

¹³ 현대경제연구원, 「부동산 경기 침체와 일본형 복합불황 점검」.

¹⁴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Athenaion Politeia) 6장 (솔론의 부채 탕감과 인신 담보 대출 금지).

¹⁵ 파이낸셜뉴스, 「집값상승부터 용산공원·공급대책까지…국토부 국감 대규모 정쟁 예고」, 2026.10.5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가격동향, 9월 넷째 주 기준).

¹⁶ 데일리안, 「집은 나중에, 전월세는 지금…국토위 국감, ‘주거정책’ 공방 예고」, 2026.9.8 (국회입법조사처 「2026 국정감사 이슈」 인용).

¹⁷ 메트로신문, 「[2026 국감] 여야 부동산 정책 난타전」, 2026.10.7; SBS Biz, 「서울 아파트값 최장 기간 상승에 이형일 “무겁게 느껴”」, 202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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