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게이트 앞에서 갈라진 식탁

겨울 새벽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떠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빈 카트 옆에 서서 바라보는 기러기 아빠의 뒷모습
2000년대 초반 인천공항 출국장, 아이의 미래를 위해 식탁을 나누어야 했던 기러기 가족의 이별 순간.

공항 게이트 앞에서 갈라진 식탁

기러기 아빠와 조기유학, 가족이 둘로 나뉜 이사

2026.10.22 · 역사 · 한국현대사 · Watchman


공항 게이트 앞에서 돌아선 사람

2000년대 어느 겨울 아침,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서 한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아내는 아이 둘의 여권을 챙기고, 아이들은 면세점 앞에서 들뜬 얼굴로 서 있다. 남편은 카트를 게이트 앞까지 밀어 주고는 돌아선다.

이 가족의 짐은 이삿짐이라 부르기에는 초라하다. 캐리어 몇 개가 전부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이사였다. 집의 절반이 통째로 다른 나라로 옮겨 가는 이사였다.

남은 절반은 서울의 아파트나 작은 월세방으로 돌아간다. 아이 신발이 놓여 있던 현관, 식구 수대로 놓이던 수저가 남는다. 그는 달마다 송금 창구 앞에 선다. 사람들은 이 남자를 기러기 아빠라고 불렀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1998년, 전세 보증금을 잃고 짐을 싸야 했던 가족들을 살펴보았다. 그때 가족은 집을 잃고 함께 움직였다. 이번 이야기는 방향이 다르다. 이번에는 가족이 스스로 나뉘었다. 집을 잃어서가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숫자가 그 규모를 말해 준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개발원 집계에서, 이민과 부모 해외 파견 동행을 제외한 순수 유학 목적의 초중고 출국자는 1998학년도 1,562명에서 2006학년도 2만 9,511명으로 늘었다.¹ 8년 만에 약 19배다. 2000년 11월 자비 유학 자율화 대상이 고교 졸업에서 중학교 졸업 이상으로 넓어진 뒤 증가세는 가팔랐고, 초등학생 출국자가 2006학년도에만 1만 3,814명에 이르렀다.²

한 나라 안에서 한 지붕 아래 살던 가족이 왜 둘로 쪼개져야 했는가. 이 질문의 답은 한국 안에만 있지 않다.

먼저 갈라진 가족들 — 홍콩, 대만, 그리고 로마

같은 구조를 한국보다 먼저 겪은 곳이 있다. 1980~90년대의 홍콩과 대만이다.

홍콩에서는 1984년 12월 중영공동성명으로 1997년 반환이 확정되었고, 1989년 6월 톈안먼 사건 이후 중산층의 불안이 이주로 번졌다. 행선지는 밴쿠버와 토론토, 호주, 미국이었다. 그런데 이주자 상당수는 가족 전체를 옮기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이는 새 나라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의 요건을 채우고, 아버지는 홍콩에 남아 일했다. 홍콩의 식탁에는 수저 한 벌이 놓였고, 밴쿠버의 식탁에는 한 벌이 모자랐다.

태평양 위를 오가는 이 남자들을 광둥어권 사회는 타이훙얀(太空人), 곧 ‘우주인’이라 불렀다. 아내(太太)가 곁에 없는(不在) 사람이라는 말놀이도 겹쳐 있다.³ 인류학자 아이화 옹(Aihwa Ong)은 이들을 ‘우주인 가족(astronaut family)’이라 칭했고, 부모 없이 북미에 남겨진 아이들은 ‘낙하산 아이들(parachute kids)’로 불렸다.⁴ 옹은 국적과 거주지를 위험에 따라 분산 배치하는 이 전략을 ‘유연한 시민권(flexible citizenship)’ 개념으로 해석했다.⁵ 가족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이 되는 순간, 가족은 둘로 쪼개진다.

더 오래된 선례도 있다. 기원전 45년 무렵 로마의 키케로는 아들 마르쿠스를 아테네로 보내 페리파토스학파의 크라티포스 문하에서 공부하게 했다. 아버지는 로마에서 넉넉한 생활비를 보냈고, 기원전 44년 가을에는 아들에게 읽히려고 『의무론』을 썼다.⁶ 먼 곳의 식탁을 돈과 편지로 지탱한 아버지라는 점에서 기러기 아빠의 오랜 선조처럼 보인다.

다만 두 그림은 완전히 겹치지 않는다. 마르쿠스는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이었고, 기러기 가족의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적지 않았으며 대개 어머니가 동행했다.³ 키케로의 편지는 아들 한 사람에게 갔지만, 기러기 아빠의 송금은 둘로 갈라진 한 가족의 살림을 유지하는 데 쓰였다. 같은 것은 하나다. 아버지가 멀리 있는 식탁을 돈으로 지탱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 구조를 다른 이유로 반복했다. 홍콩의 위험이 반환이라는 정치였다면, 한국의 위험은 경쟁이었다. 1997년 11월 구제금융 신청 이후 한국의 중산층은 직장도, 집도, 국가도 영원한 방패가 아님을 체험했다. 그런 사회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믿은 것은 건물이 아니라 능력, 그중에서도 영어였다고 읽힐 수 있다. 그 자산을 가장 빨리 쌓는 길이 영어권 현지였고, 그 비용을 감당하는 방식이 가장의 분리였다.

비용의 규모도 기록에 남아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서 2007년 유학·연수 지급액은 약 50억 2,500만 달러, 수입은 4,490만 달러였다.⁷ 대학 이상 유학이 포함된 수치이므로 조기유학만의 몫은 아니다. 다만 서울의 월급 통장에서 태평양 건너로 흘러간 가장들의 송금이 이 적자의 한 축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순수 초중고 유학 출국자는 2007학년도에 2만 7,668명으로 처음 줄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와 경기침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⁸ 이유가 바뀌면 이동의 모양도 바뀐다. 이 시리즈가 계속 확인해 온 사실이다.

1950년의 이산은 전쟁이 갈랐다. 2000년대의 이산은 가족이 스스로 갈랐다. 그러나 ‘스스로’라는 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선택지가 하나로 좁혀진 자리에서 하는 선택을 자발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택(擇)은 집을 고르는 일이었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 이런 문장이 있다.

子曰:里仁爲美。擇不處仁,焉得知?

(자왈:이인위미。택불처인,언득지?)

“어진 마을에 사는 것이 아름다우니, 어진 곳을 가려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동아시아 부모들은 이 문장을 오래도록 ‘가려서 사는 일’의 근거로 읽었다. 맹모삼천지교의 이야기가 그 전통을 대표한다. 그런데 공자가 말한 택(擇)은 거처를 고르는 일이었지, 가족을 나누는 일이 아니었다. 그 문장에서 이사하는 주체는 집 전체다. 환경을 고르는 지혜가 가족을 쪼개는 비용으로 바뀌는 순간, 질문은 ‘어디에 살 것인가’에서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로 옮겨 간다. 한 식탁이 두 나라의 식탁으로 갈라지는 순간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Fred Hirsch)는 1976년 『성장의 사회적 한계』에서 ‘위치재(positional good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⁹ 가치가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남보다 앞선 위치에서 나오는 재화다. 허시는 이를 군중 속에서 까치발을 드는 일에 비유했다. 모두가 까치발을 들면 아무도 더 잘 보지 못하고, 다리만 아프다.

이 비유는 조기유학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한 가정이 아이를 일찍 보내면 다른 가정도 더 일찍 보내야 한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갈 때 이득은 사라지고 비용만 남는다. 그 비용의 명세서에서 가장 큰 항목은 영어가 아니라, 한 식탁에 함께 둘러앉지 못한 시간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학력과 언어 능력을 ‘문화자본’으로 보고 교육을 계급 재생산의 장치로 분석했다.¹⁰ 그의 구분을 빌리면, 영어권에서 몸에 밴 발음과 언어 습관은 ‘체화된 문화자본’이고 해외 학력은 ‘제도화된 문화자본’이다. 이 자본이 사회에서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는 순간 그것은 ‘상징자본’, 곧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위신이 된다. 조기유학이 사 온 것은 지식이기 전에 이 위신의 가능성이었다고 읽힐 수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기러기 가족의 사연이 모두 이 구조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아이의 적성도, 부모의 판단도, 가정마다 달랐다. 그러나 수만 가정이 같은 해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개별 사연들 뒤에서 하나의 압력이 작동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신뢰의 비용을 가족이 치를 때

홍콩, 로마, 서울. 세 장면의 공통 구조는 하나다. 안전이 제도 안에 있지 않을 때, 가족이 안전의 비용을 몸으로 치른다. 거리로, 시간으로, 식탁의 빈자리로.

홍콩의 가장은 반환이라는 불확실성을 가족의 분산으로 메웠다. 서울의 가장은 외환위기 이후의 불안과 입시 경쟁을 가족의 분리로 메웠다. 제도가 약속하지 못한 것을 가족이 대신 약속해야 했고, 그 약속의 이자는 가장이 외로움과 송금으로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그리고 이 압력은 2007학년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국경을 넘던 이사는 이제 학군의 경계와 사교육 시장이라는 안쪽의 성벽을 따라 움직인다. 이 시리즈의 말로 하면, 이동은 멈추지 않고 모양을 바꾼다. 공항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 학군의 경계가, 태평양이 있던 자리에 서울 안의 몇 킬로미터가 놓였을 뿐이다.

2026년 10월 현재, 이 압력은 숫자로 남아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 조사에서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5천억 원으로 전년보다 5.7% 줄어 5년 만에 감소했다. 그러나 월평균 100만 원 이상을 쓰는 학생의 비중은 11.6%로 오히려 늘었다.¹¹ 국회 교육위원회는 10월 7일부터 23일까지 국정감사를 진행 중이며, 대입 원서접수 시스템 장애와 사교육업계의 수능 문항 거래 의혹 등이 쟁점으로 올라 있다.¹² 총액이 줄어도 상단의 지출이 늘고 있다면, 압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한 것이다.

다시 한 식탁으로 가는 길

위치재 경쟁은 한 가정의 노력으로 풀리지 않는다. 까치발을 든 군중에게 “발꿈치를 내리라”고 권하는 것은 해법이 되지 못한다. 풀 수 있는 곳은 무대의 높이, 곧 경기장의 규칙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향할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입시와 채용의 평가 신호를 다원화해 한 줄 세우기의 간격을 줄이는 일, 지역 간 공교육의 편차를 줄여 신뢰를 제도 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것은 어느 진영의 구호가 아니라, 가족을 쪼개는 비용이 어디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답이다. 가족을 나누지 않고도 아이가 갈 수 있는 길이 하나 더 생기는 것, 그것이 교육 개혁이 성공했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실질적인 기준이다.

공항 게이트 앞에서 돌아서던 그 뒷모습은 당시에는 한 가족의 사정으로 보였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한 사회가 치르던 비용의 모양이다.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식탁을 나누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식탁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뒷모습을 기록해 둔다.


* 참고할 말씀: ‘이러므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세기 2:24

¹ 연합뉴스, 「초중고 유학 6년새 10배 늘어」(2006.01.03, 1998학년도 1,562명); 「초중고 조기유학 출국 3만명 육박 ‘최다’」(2006학년도 2만 9,511명, 한국교육신문 전재).

² 위 동일 기사(2000년 11월 자율화 확대, 2006학년도 초등학생 출국자 1만 3,814명).

³ 太空人(광둥어 taai hung yahn)의 말놀이와 ‘어머니 동반, 아버지 잔류’ 구조: “East Asia’s astronaut and geese families: Hong Kong and South Korean cosmopolitanisms,” Critical Asian Studies 46(2), 2014, 259–286.

⁴ ‘우주인 가족’과 ‘낙하산 아이들’ 용어: Aihwa Ong (1999) 및 위 각주 3의 논문 참조.

⁵ Aihwa Ong, Flexible Citizenship: The Cultural Logics of Transnationality (Duke University Press, 1999).

⁶ Cicero, De Officiis (기원전 44년 가을 집필, 아들 마르쿠스에게 헌정); Walter Miller 영역 서문(Loeb Classical Library). 크라티포스 문하 수학 기록도 같은 서문 참조.

⁷ 한국은행 서비스수지 통계 (새사연, 「교육서비스 국제수지 적자 분석」, 2009.11.12 재인용).

⁸ 연합뉴스, 「해외 조기유학생 처음으로 줄었다」(2007학년도 2만 7,668명).

⁹ Fred Hirsch, Social Limits to Growth (Harvard University Press, 1976).

¹⁰ Pierre Bourdieu & Jean-Claude Passeron, La Reproduction (1970); Bourdieu, La Distinction (1979); Bourdieu, “The Forms of Capital” (1986).

¹¹ 한국교육신문, 「사교육비 5년만에 감소 불구 ‘양극화 심화’」(교육부·통계청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¹² 뉴시스, 「교육위 국감 돌입…문항거래·채용차별·사학비리 쟁점 부상」(2026.10.07); 경향신문 주간지, 「’11개 대학만 채용’에 AI 교과서 수천억 소송까지…교육위 국감 쟁점은」(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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