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을 다시 긋다
요금이 만든 길, 정치가 만드는 연결
바다 · 연안여객 시리즈 최종화
새 배를 띄우면 길은 다시 이어지는가
해양수산부가 최근 「제3차 연안여객선 현대화 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해운법 제37조의2에 근거해 5년마다 수립되는 이 계획에 따라, 인천~백령·인천~덕적·인천~풍육도 등 서해권 노후 항로의 선박들이 2030년까지 신조 또는 해외 중고선 도입을 통해 교체될 예정이다.
2016년부터 운영되어온 ‘연안선박 현대화 펀드’는 선가의 최대 60%를 지원하고, 선사는 3년 거치 12년 분할로 상환한다.1
이는 공급의 정치다. 낡은 배를 새 배로 바꾸는 일이다. 마침 이 글을 쓰기 이틀 전인 지난 17일, 인천시는 ‘i 바다패스’ 지원 대상을 도서지역 현장근무자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인천시민은 이미 편도 1,500원, 시내버스 기본요금 수준으로 연안여객선을 이용해왔다.2 이는 수요의 정치다. 선박이 아닌 요금을 바꾸는 일이다.
배를 새로 짓는 것과 요금을 낮추는 것, 이 둘은 같은 목적을 다른 도구로 겨냥한다. 스코틀랜드는 먼저 후자의 길을 걸었다.
요금표 한 장이 바꾼 지도 — 스코틀랜드의 실험
2008년 10월, 스코틀랜드 정부는 아우터헤브리디스·콜·타이리 항로에 RET(Road Equivalent Tariff, 도로환산요금제) 시범사업을 도입했다. 페리 요금을 자동차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비용 수준으로 맞추는 방식이었다.3
2012년 정식 정책으로 전환되며 아일레이·콜론세이·기가 항로로 확대됐고, 2014년 10월 애런 항로, 2015년 10월에는 오반~크레이그뉴어·웨미스베이~로시세이 등 남은 모든 항로로 확대되며 7년에 걸친 단계적 시행이 완성됐다.
2015년 확대 당시 여객요금은 평균 44%, 차량요금은 평균 55% 인하됐다. Transport Scotland의 2018년 평가에 따르면, RET 시행 이후 네트워크 전체의 여객·차량 통행량이 각각 11.6%, 20.6% 증가했다.4
애런 항로에서는 도입 2년 뒤 차량 통행량이 최대 60%까지 늘었고, 여러 섬에서 관광 시즌이 길어졌다는 보고가 이어졌다.5
그러나 이것을 만능 해법으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 Transport Scotland의 자체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RET는 사회·경제적으로는 편익을 냈지만 환경 측면에서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차량 주행거리 증가, 페리 운항 횟수 증가, 항구 주변 대기질 영향이 근거로 제시됐다. 재정 지출도 2018년까지 누적 1억 2천만 파운드를 넘어섰다.4
더 예리한 역설도 있다. 요금이 낮아지자 캠핑카와 관광객이 몰렸고, 정작 섬 주민들은 배편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2021년 멀·아이오나 페리위원회는 조문객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환자 이송 구급차가 거의 일주일간 승선 공간을 배정받지 못한 사례를 공개했다.6
Transport Scotland가 직접 수집한 지역 의견에도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RET는 관광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주민이 배를 타기는 더 어려워질 때가 있다.”7
요금을 낮추는 것과 접근권을 지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 그리고 국가라는 윤리적 실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이 문장은 단순한 애민(愛民)의 수사가 아니다. 국가라는 체제보다 그 체제가 존재하는 이유, 곧 백성의 삶이 우선한다는 위계의 선언이다.
국가가 존재하려면 구성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동양의 민본 사상은, 구성원들이 온전히 결합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보는 서양의 윤리적 실체론과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헤겔은 국가를 개인들의 사적 이익이 우연히 모인 집합체가 아니라, 구성원 전체를 하나의 윤리적 공동체(Sittlichkeit)로 묶어내는 실체로 보았다. 이 관점에서 변두리 섬 주민의 접근권은 시혜가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의 윤리적 완결성을 위해 책임져야 할 몫이다.
끊어진 선, 다시 그은 선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두 개의 상반된 결손을 지켜보았다. 세인트킬다는 국가의 무관심 속에 서서히 버려졌다 — 방치였다.
로마는 스스로 브리타니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 결단이었다. 방향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선은 끊어졌다.
RET는 그 두 갈래와는 다른 세 번째 길을 보여준다. 연결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다시 긋기로 결정해야 유지된다.
다만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그러한 결정조차 완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요금을 낮췄더니 관광객이 밀려와 정작 주민의 자리를 빼앗는 역설 — 선을 다시 긋는 일에는 늘 누구를 위해 긋는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지금 한국의 제3차 현대화 계획과 인천의 바다패스 확대는 각기 선박과 요금이라는 다른 도구로 같은 질문에 답하려 하고 있다. 국가는 연결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결국 누구의 몫으로 돌릴 것인가.
다시 그어야 할 선들
멀리서 보면 국가의 정책은 예산 항목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등하교 길이고, 병원 가는 길이고, 나이 든 부모가 마지막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세인트킬다는 그 선을 방치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었다. 로마의 브리타니아 철수는 국가가 스스로 선을 거둘 때 남는 공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것을 알려주었다 — 완벽하지는 않아도,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낼 수는 있다는 것. 다만 그 길 위에 누구의 자리가 남는가는, 여전히 국가가 답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연안여객 시리즈
1편 — 세인트킬다, 방치된 항로
2편 — 로마의 브리타니아 철수
3편(최종) — 선을 다시 긋다 (본편)
* 참고할 말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리니” — 이사야 43:19
각주
1. 해양수산부, 「제3차 연안여객선 현대화 계획(2026~2030)」 및 ‘연안선박 현대화 펀드’ 관련 보도
2. 인천광역시, 「인천 i 바다패스」 지원대상 확대 관련 보도 (2026.09)
3. Transport Scotland, 「Road Equivalent Tariff」 공식 정책 페이지
4. Transport Scotland, 「Evaluation of Road Equivalent Tariff on the Clyde and Hebridean Network」 / 「RET ferry fares」 보도자료
5. Transport Scotland, 「Ferry fares scheme boosts tourism on Arran」
6. Mull & Iona Ferry Committee, “The ferries are full.” (2021)
7. Transport Scotland, 「Project Neptune — Community Engagement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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