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오지 않는 날

여수 함구미 연안여객선 선착장과 선착장에 서서 배를 기다리는 섬 주민들의 모습
여수 함구미 선착장에서 배편을 기다리는 주민들의 시선 너머로 연안여객선이 정박해 있다.

배가 오지 않는 날

연안여객 적자 항로와 세인트킬다 소개(疏開) — 국가가 섬을 지우는 방식

2026.08.17 · 바다 · 연안여객운송 시리즈 1편

적자 항로 위에 서 있는 사람들

지난달 해양수산부는 2026년도 연안여객항로 안정화 지원사업 대상으로 14개 항로를 발표했다.1 그중 여수-함구미, 통영-욕지, 인천-덕적, 흑산-가거를 포함한 10개 항로는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노선이다.1 지원이 끊기는 순간 배는 멈춘다.

인천 옹진군의 인구는 2026년 2월 기준 약 1만9,559명까지 줄었다.2 숫자 자체는 감정이 없다. 한국섬진흥원 통계가 보여주는 유인도 인구 추이는 서서히 좁아지는 삶의 지형을 드러내는 듯하다. 2016년 82만 명이었던 인구는 2022년 79만 명으로 줄었고, 2042년에는 65만 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3

배편이 끊긴다는 것은 교통 불편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떤 공간을 살 만한 곳의 목록에서 지워나가는 과정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앞선 글 “바다를 버린 나라의 미래”에서 우리는 국가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가 곧 그 국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숫자와 결항으로 나타나는지를 들여다본다.


1930년 8월, 세인트킬다가 사라진 방식

스코틀랜드 서쪽 헤브리디스 제도 너머, 육지에서 65km 떨어진 세인트킬다는 수천 년간 사람이 살아온 섬이었다. 그러나 정기 항로는 늘 날씨에 좌우되는 비정기 방문선에 의존했고, 겨울이면 몇 달씩 우편과 물자가 끊겼다.4

1930년 5월 10일, 마지막 남은 주민 36명 중 20명이 “더 이상 겨울을 날 수 없다”며 정부에 이주를 청원했다.4

그 절박함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1930년 5월 26일, 출산 합병증을 겪던 메리 길리스(35세)가 배편이 늦어져 글래스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고, 그의 갓난 딸도 함께 사망했다. 같은 이름의 또 다른 메리 길리스(22세)는 7월 21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5 섬에는 정기 여객선이 없었다. 여름철 관광선 던아라 캐슬(Dunara Castle)이 비정기로 오갈 뿐이었고, 배가 오지 않는 계절에는 주민들이 편지를 작은 나무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방법으로 육지와 소통을 시도했다.6

정부는 섬 주민들의 이주 청원을 받아들여, 1930년 8월 29일 아침, 군함 HMS 헤어벨(Harebell)이 마지막 주민들을 태우고 섬을 떠났다.7 수천 년의 정주가 그렇게 끝났다.

주목할 것은 이 소개(疏開)가 침략이나 재난이 아니라, 국가가 최소한의 연결을 유지하지 않은 결과로서 조용히 도달한 결말이었다는 점이다.

이 패턴은 한국사에도 낯설지 않다. 조선은 왜구의 피해를 막기 위해 울릉도 주민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쇄환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사람을 비운 섬에는 국가의 관리도 함께 비었다. 그 공백을 파고든 것은 일본 돗토리번의 오야·무라카와 가문이었다 — 1618년 무렵 도해면허를 받아 울릉도를 드나들기 시작했고, 1693년에는 조업 중이던 안용복과 박어둔을 붙잡아 끌고 가는 사건까지 벌어졌다.9 이른바 울릉도쟁계다. 1696년 일본 막부가 도해금지령을 내리며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그 공백기의 도항 기록은 훗날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논쟁에서 일본 측 주장의 소재로 다시 소환되곤 한다.10 섬을 비운 결정은 그 순간에는 방어였을지 몰라도, 훗날의 해석에서는 취약함의 증거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조용히 보여준다.

버려짐을 해석하는 두 개의 시선

天地不仁,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대한다.”

노자의 이 문장은 냉소가 아니라, 제도가 감정 없이 작동한다는 사실 자체를 직시하라는 요구로 읽힌다. 예산표 위에서 적자 항로는 숫자일 뿐, 그 배를 타야 병원에 가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서양에서 홉스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보호”에서 찾았다 — 시민이 자연권을 양도하는 대가로 국가로부터 생존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사회계약의 핵심 전제였다. 연안 항로가 끊긴다는 것은 이 계약의 아주 작은, 그러나 실질적인 조각이 조용히 파기되는 순간으로도 읽힐 수 있다.

다만 노자의 ‘불인’은 개입하지 않는 자연의 질서에 가깝고, 오늘의 행정이 보이는 무관심은 그와 다르다. 예산표의 우선순위는 결국 사람이 개입하는 선택의 영역에 가깝다. 의도 없는 하늘과 의도된 배제 사이, 그 간극이 이 문제를 자연재해가 아닌 원인을 물어야 할 대상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행정의 논리와 생존의 논리가 만나지 않는 지점

세인트킬다와 한국의 적자 항로 사이에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과 대륙의 거리가 있다. 그러나 두 사례가 겹치는 지점은 명확하다. 어느 쪽도 “섬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정기선의 결항이 늘고, 예산 지원이 유동적으로 바뀌고, 지원 대상 항로 목록이 매년 갱신되는 과정에서, 섬은 서서히 지도 밖으로 밀려난다. 국가는 언제나 “지원한다”고 말하지만, 그 지원의 조건이 매년 재검토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 공간을 잠정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세인트킬다의 정부도 소개 직전까지 “지원을 검토 중”이었다.8

우리가 아직 던지지 못한 질문

배가 오지 않는 날에도 섬에는 사람이 산다. 그 사람들의 하루는 항로 지원사업 예산안의 숫자 하나에 위태롭게 얹혀 있다. 배편의 축소는 단지 이동권의 제약에 그치지 않는다. 젊은이의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청년 인구가 빠져나간 자리는 인구 구조의 급격한 균열로 이어지기 쉽다. 사람이 줄어들면 마트나 약국 같은 기본적 생활 편의성은 빠르게 해체되고, 응급 환자 발생이나 기상 악화 시 골든타임을 지켜낼 위기 대응력마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처럼 선박의 결항은 일상의 모든 안전망을 순차적으로 무너뜨리는 도미노의 첫 번째 조각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국가가 한 공간을 포기하는 순간은 단호한 선언이 아니라, 무관심이 조용히 쌓여가는 과정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우리는 어디까지 목격하고 있는가.

지도에서 한 영역이 지워져 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에는 묵직한 질문 하나가 따라붙는다. 오늘 우리가 건너다보는 이 침묵과 방치가, 언젠가 우리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도 다다르지 않으리라고 과연 확신할 수 있는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이 침묵의 붕괴를 끝까지 따라가려 한다.

※ 함께 보기: “포르투갈 향신료 무역과 바스코다가마” — 국가가 바다를 확장의 도구로 삼았던 시대와, 오늘 바다를 축소의 대상으로 방치하는 시대를 나란히 읽어볼 수 있다.


* 참고할 말씀: “하나님은 고독한 자들을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 시편 68:6


1. 해양수산부, 「2026년도 연안여객항로 안정화 지원사업」 대상 항로 발표 (2026.06)
2. 옹진군 인구통계, 2026년 2월 기준
3. 한국섬진흥원, 유인도 인구 추이 통계
4. National Trust for Scotland, “St Kilda – the evacuation of a community”
5. Scotland’s People (National Records of Scotland), 1930 Valuation Rolls — St Kilda 관련 기록
6. National Trust for Scotland, “St Kilda – the evacuation of a community” (Dunara Castle 정기 방문선 및 우편 관습 관련)
7. The Scotsman, “On this day 1930: The evacuation of St Kilda”
8. Mark Bridgeman, “St Kilda, The Evacuation”
9. 대한민국 외교부 독도, “우리 영토인 근거” (안용복·박어둔 피랍, 도해면허 관련)
10. 우리역사넷, “안용복과 울릉도”; 대한민국 외교부 독도, “독도에 관한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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