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기는 계산에서 시작된다
선언된 철수와 침묵의 방치 사이 — 로마와 적자항로의 계산법
2026.09.05 · 바다 · 연안여객운송 시리즈 2편
해마다 다시 그려지는 지도
매년 발표되는 해양수산부의 적자항로 지원 대상 명단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행정 안건처럼 보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유효기간이 적힌 지도와 같다. 어떤 항로는 명단에 남고, 어떤 항로는 조용히 빠진다.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승선 인원, 운영 손실률, 대체 교통수단 유무 같은 지표들이다. 숫자로만 보면 합리적인 절차로 비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심사가 매년 반복된다는 점이다.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지원이 아니라 매년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구조는, 해당 항로를 이미 불확실한 잠정적 존재로 다루고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앞선 글 “배가 오지 않는 날”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외딴섬 세인트킬다를 살펴보았다. 정기 항로 없이 겨울을 나던 그 섬은 침략이나 재난이 아닌, 국가의 조용한 무관심 속에서 1930년 결국 주민 전체가 떠나야 했다. 오늘은 그 침묵의 안쪽, 즉 포기가 실제로 시작되는 계산의 순간을 들여다본다. 예산표 위에서 한 항로의 존폐가 갈리는 논리는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그 논리는 정말 냉정함만으로 설명되는가.
410년, 로마가 스스로 물러난 방법
로마가 브리타니아를 잃은 것은 침략이 아니라 철수였다.
5세기 초, 서로마제국은 서고트족 알라리크(당시 이탈리아 반도까지 진군)의 압박과 내부 찬탈자들의 반란으로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브리튼의 도시들은 본토에 거듭 지원을 요청했지만, 로마는 더 이상 병력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410년 초, 황제 호노리우스는 브리튼의 여러 도시에 서신을 보내 스스로 방어하라고 답했다.1 이 서신은 전통적으로 로마가 한 속주에 내린 공식적인 자위(自衛) 명령이자, 4세기에 걸친 통치의 상징적 종언으로 해석되어 왔다.
여기서 1편의 세인트킬다·적자항로 사례와 갈라지는 지점이 드러난다. 세인트킬다의 소개(疏開)도, 오늘의 적자항로 축소도 국가가 “포기한다”고 선언한 적은 없었다. 반면 호노리우스의 서신은 다르다. 그것은 방치가 아니라 명시적으로 통보된 전략적 철수였다. 로마는 브리타니아를 지킬 여력을 계산했고, 그 결과를 문서로 알렸다. 침묵 속에 지워진 섬과 통보받고 남겨진 속주 — 두 결말은 표면적으로 닮아 보이지만 도달하는 과정은 정반대였다.
계산하는 통치자들 —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한비자는 이렇게 썼다.
世異則事異,事異則備變
(세이즉사이, 사이즉비변)
“시대가 다르면 일이 다르고, 일이 다르면 대비도 달라져야 한다.”2
이 문장은 흔히 개혁의 정당화로 읽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통치자가 감상이 아니라 조건의 변화에 따라 자원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냉정한 원칙을 말한다. 조건이 바뀌면 제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이 법가적 발상은, 효율성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매년 다시 심사하는 오늘의 행정 논리와 원형에서 그리 멀지 않다. 항로를 유지할지 말지를 정하는 예산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 승선 인원과 손실률이라는 조건이 변하면, 지원의 형태도 함께 변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국가의 존속이 걸린 상황이라면, 통치자는 사적 도덕의 잣대로는 정당화되기 어려운 선택도 감수해야 한다고 썼다. 국가를 보존하는 결과로 판단받는 선택, 그것이 그가 말한 실리의 정치다. 호노리우스의 서신 역시 이 틀에서 읽을 수 있다 — 그는 브리타니아를 버렸다기보다, 로마 본토를 지키기 위해 브리타니아라는 변수를 계산에서 제외했을 가능성이 크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선언된 철수와 선언 없는 방치,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여기서부터는 패턴을 흐리지 않고 말한다. 선언은 불확실성을 끝낸다. 침묵은 불확실성을 영속화한다. 호노리우스의 서신을 받은 브리튼인들은, 그것이 설령 무책임한 방기의 통보였다 할지라도, 로마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확정된 정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분명해지자 그들은 비로소 각자도생의 방어 체계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반면 매년 재검토되는 적자항로 지원 명단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유지하는 대가로, 항로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을 주민들에게 영구히 지운다. 결항이 늘고, 지원 조건이 바뀌고, 명단이 갱신되는 그 반복 속에서 섬 주민들은 매년 다시 “올해는 버려지지 않을까”를 계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철수의 형식이 남겨진 자들에게 무엇을 허락하는가 — 이 질문 앞에서, 선언은 최소한 준비할 시간을 남긴다. 침묵은 그 시간마저 주지 않는다.
국가의 계산식에 사람은 언제 변수로 들어가는가
예산은 결국 계산이다. 로마의 원로원이 지도 위에서 방어선을 다시 그었던 것도, 오늘의 예산 담당자가 엑셀 위에서 항로를 다시 배열하는 것도, 본질은 같은 작업이다. 계산에는 변수가 필요하고, 변수는 숫자로 환원될 수 있는 것들로 제한된다. 승선 인원은 숫자가 된다. 운영 손실률은 숫자가 된다. 결항 일수도, 대체 교통수단까지의 거리도 모두 표 안의 한 칸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끝내 숫자가 되지 못한다. 그 배를 놓치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의 얼굴, 겨울마다 되풀이되는 기다림의 피로, 명단이 발표되는 날 아침 서로의 표정을 살피는 주민들 — 이런 것들은 어떤 정교한 계산식에도 변수로 편입되지 않는다. 계산은 언제나 계산 가능한 것부터 채워지고, 계산 불가능한 것은 나중으로 미뤄진다. 문제는 그 ‘나중’이 대개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 참고할 말씀: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여 능히 이것을 완공할 수 있을는지 보지 아니하겠느냐” — 누가복음 14:28
- Zosimus, Historia Nova, Book VI; 호노리우스의 브리타니아 서신(Rescript of Honorius) 관련 기록. 조시무스의 서술이 이탈리아 남부 지명 목록 사이에 단편적으로 등장해, 서신의 수신지가 브리타니아가 아니라 브루티움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견이 서양고대사학계 일각에 존재한다.
- 『韓非子』 五蠹篇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 새 글 알림 받기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