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는 누구의 이름으로 서 있는가

해질녘 기자 고원에서 거대한 대피라미드 석재 위에 자신의 이름(낙서)을 장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새기고 있는 이집트 노동자의 꼿꼿한 실루엣 뒷모습. 굴종의 채찍 대신 노동의 존엄을 상징하는 시네마틱한 장면.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아 올린 것은 이름 없는 노예의 채찍 자국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돌에 새겨 넣은 ‘쿠푸의 친구들’ — 존엄한 노동자의 손길이었다.

영화로 떠나는 세계사 · 시네마-③ · 이집트

Watchman · 2026.09.20

이름 없는 자들이 돌을 끌고 있다

1955년, 하워드 혹스가 만든 영화 한 편이 스크린에 사막을 펼쳐놓는다. 수천 명의 인간이 밧줄에 묶여 거대한 석재를 끌고, 채찍을 든 감독관이 그 뒤를 걷는다. 건축가 바쉬타르는 정복지에서 끌려온 포로이며, 그가 설계하는 피라미드는 파라오 쿠푸의 사후 세계를 위한 것이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완성되면 자유를 주겠다는 약속 하나로 그는 20년을 버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세실 B. 드밀의 〈십계〉가 그렸던 것과 똑같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익숙함 자체가 수상하다. 우리가 “고대 이집트”라고 믿는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실제 유적이 아니라, 기원전의 한 여행자와 20세기의 카메라가 차례로 덧칠한 스크린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 스크린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걷어내 본다.


채찍의 기록과 빵의 기록 — 헤로도토스와 기자 발굴단

이 “노예 서사”의 최초 출처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다. 그는 쿠푸의 피라미드가 완공된 지 이미 2천 년도 더 지난 시점에 이집트를 여행하며, 현지인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 10만 명의 인부가 20년간 동원되었다는 그 숫자는, 현장을 본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여행자가 채집한 구전이었다.1

이 구전이 할리우드의 상상력과 결합해 20세기 대중문화의 표준 이미지로 굳어지는 동안, 실제 기자 고원의 땅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 이집트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와 미국 고고학자 마크 레너가 이끈 발굴팀은 대피라미드 남쪽에서 “일꾼들의 도시(Heit el-Ghurab)”를 발견했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그 간극이 선명해진다.

헤로도토스와 할리우드가 그린 건설 현장에는 채찍에 맞으며 돌을 끄는 노예와 포로, 착취 속에 스러져 간 익명의 집단, 사슬로 대표되는 단선적인 ‘동양적 압제’의 이미지만 있었고, 남은 것은 압제자 파라오의 이름뿐이었다. 그러나 기자 고원의 흙 속에서 드러난 실체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그곳엔 국가 부역 체계로 동원된 농민과 전문 작업조가 있었고, 의료 처치와 고기·빵 지급, 피라미드 옆에 조성된 묘지가 있었다. 채찍이 아니라 정교한 국가 행정과 순환 근무 시스템이 있었고, 그들이 남긴 것은 파라오의 이름이 아니라 돌에 새겨진 작업조의 낙서 — “쿠푸의 친구들” — 이었다.

발굴 기록이 결정적인 이유는 묘지에 있다. 노예는 자기 이름을 새긴 무덤을 갖지 못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소박하지만 격식을 갖춘 미니 피라미드형 무덤들이 나왔고, 그 안의 유골에서는 척추 손상 같은 중노동의 흔적과 함께 성공적으로 치유된 골절, 심지어 두개골 수술의 흔적까지 확인되었다. 국가가 이들의 신체를 회복시킬 만큼 관리했다는 뜻이다.

하와스는 이렇게 정리한다 — 피라미드를 세운 이들은 노예가 아니라, 순환 근무로 소집된 농민들이었다고. 나일강 범람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계절에 지방에서 교대로 소집되어 몇 달씩 복무하고 돌아가는, 일종의 국가 부역 체계였다는 것이다.3

다만 마크 레너 자신도 최근 인터뷰에서 이 그림이 지나치게 목가적으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고 짚는다. 전쟁 포로를 끌어와 사회에 편입시킨 정황 역시 함께 존재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노예냐 자원자냐”라는 이분법보다 훨씬 복잡한 지점에 있다.


채찍을 그린 이유 — 한비자의 세(勢)와 1955년 혹스의 카메라

한비자는 통치자의 힘을 법(法)과 술(術)과 세(勢)로 나눈다. 그중 세는 지위 자체가 만들어내는 위압, 신민이 통치자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가시적 권위다.

“백성은 본디 권세에 복종하고, 의(義)를 마음에 품는 자는 드물다.”
— 한비자, 『오두(五蠹)』

대피라미드는 이 세의 극단적 형태다. 20년에 걸쳐 국가의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146미터의 석조 건축물을 쌓아 올렸다. 이는 쿠푸가 살아서든 죽어서든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신민에게 증명하는 장치였다.

여기서 두 개의 ‘세’를 구분해야 한다. 쿠푸가 실제로 쌓은 것은 물리적 세 — 부역 체계와 행정력을 조직해 돌을 쌓아 올린, 실체가 있는 권력이었다. 반면 1955년의 스크린이 만들어낸 것은 이데올로기적 세 — 채찍과 사슬이라는 이미지만으로 “동양적 압제”라는 관념을 관객의 머릿속에 세운, 실체 없는 권력이었다. 쿠푸의 세는 돌을 움직였고, 혹스의 세는 인식을 움직였다.

이 선택은 감독 개인의 상상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냉전 초입의 할리우드는 “자유 진영 대 압제 진영”이라는 구도를 거듭 반복해서 그려야 했던 시기였고, 같은 해를 전후해 쏟아진 〈십계〉류의 성서 서사시들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출애굽 서사 — 압제자 파라오와 노예가 된 히브리인 — 를 이집트 전체의 이미지로 확장해버렸다. 감독의 국적과 제작 시기는 카메라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결정한다. 미국인 혹스가 1955년에 서 있던 자리에서, 고대 이집트는 정교한 국가 행정 체계가 아니라 “동양적 압제”의 무대로 보였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겹쳐보면 뒤틀림이 하나 더 보인다.

“노동은 대상을 가공하는 동시에, 노동하는 자를 형성한다.”
— 헤겔, 『정신현상학』(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헤겔의 노예는 노동을 통해 대상을 가공하며 역설적으로 자기의식을 얻고, 결국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주인보다 더 단단한 존재가 된다. 그런데 기자의 발굴 기록은 이 도식조차 넘어선다. 이들은 애초에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된 ‘노예’라기보다, 독립된 이름과 작업조, 그리고 무덤을 부여받은 존재였을 가능성이 크다.

“쿠푸의 친구들”이라는 돌 위의 낙서는 주인-노예의 변증법이 설명하려는 자기의식보다 더 단순하고 더 확실한 방식으로 역사에 남았다 — 철학적 도식이 필요 없을 만큼, 이름 그 자체로.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스펙터클이 지운 자리

영화와 사료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패턴이 선명해진다. 권력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언제나 ‘보이는 것’을 필요로 한다. 쿠푸에게는 146미터의 돌이 그것이었고, 그 돌을 쌓은 손은 스펙터클 뒤편으로 자연스레 가려지곤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역사에서는 그 손이 다시 이름을 되찾았다. 반면 20세기의 카메라는 오히려 그 손에서 이름을 지우고 채찍 자국만 남겼다.

1955년의 스크린이 그린 ‘노예’는 기원전 2600년의 실제 현장보다, 20세기 냉전 서구의 자기 확신에 더 가까운 발명품이었다. 사실을 왜곡한 쪽은 파라오의 선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4,500년 뒤의 카메라였다는 것 — 이것이 이 편이 말하고 싶은 패턴이다.

우리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대규모 건설이나 화려한 착공식은 언제나 정치적 정당성을 증명하는 가장 손쉬운 언어였다. 신공항이든 대형 국책사업이든, 완공된 구조물의 사진은 정권의 업적을 증명하는 세(勢)로 소비되고, 그 구조물을 실제로 쌓아 올린 이들의 이름은 준공식 카메라 앵글 밖으로 밀려난다. 그 사업 하나하나의 옳고 그름을 이 자리에서 판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펙터클이 완성되는 순간, 노동은 거의 항상 배경으로 물러난다는 사실만은 반복해서 확인된다.

기자의 돌은 여전히 서 있다. 그 돌을 쌓은 이들의 이름은 낙서로만 남았다가, 3천 년 만에 다시 발굴되었다.

질문은 파라오에게도, 감독에게도 향하지 않는다. 스펙터클을 완성된 결과로만 소비하고 그 아래를 들여다보지 않는 우리 자신에게 향한다 — 우리가 오늘 세우는 것들 밑에서, 훗날 발굴될 이름은 누구의 것일까.

* 참고할 말씀: ‘내가 해 아래에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물려줄 것이기 때문이라’ — 전도서 2:18

파라오가 붙잡으려 한 것은 사후의 영원이었지만, 전도서가 말하는 것은 그 수고의 헛됨이다. 그런데 기자의 땅이 보여준 것은 이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 영원을 얻은 것은,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던 이들이 무심코 새긴 낙서였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모헨조다로의 미해독 문자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문명”을 살펴보았다. 이번 편은 정반대로, 지우려 했지만 결국 다시 새겨진 이름들을 다루었다.

각주
1. Herodotus, Histories, Book II.
2. Hawass, Z. & Lehner, M., Heit el-Ghurab 발굴 자료, Ancient Egypt Research Associates(AERA).
3. “Who Built the Pyramids?”, Harvard Magazine, 2003.
4. Land of the Pharaohs(1955), Warner Bros. Pictures, 감독 Howard Haw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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