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입장권 줄 — 자격의 증명
표 한 장이 증명서였던 시대
한국현대-줄-⑦ · 1988년 · 역사·철학
요즘도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선다
명품 매장 앞 오픈런, 콘서트 예매 전쟁, 신제품 발매일의 밤샘 줄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이 줄들은 흔히 “과시욕”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되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희소한 자리를 선점해 “이것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서사적 지위를 얻으려는 행위에 가깝다.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줄인 셈이다.
그런데 1988년 가을, 서울의 거리에도 이와 닮은 줄이 있었다. 다만 당시의 줄이 팔던 증명서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었다.
표는 귀했고, 자격은 증명해야 했다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것은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였다.1 일본 나고야를 제친 결과였다. 이후 7년 동안 대한민국 전체가 이 대회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회는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간 열렸고, 160여 개국이 참가해 12년 만에 동서 진영이 한자리에 모인 최대 규모의 올림픽으로 기록되었다.2
이 유치와 준비 과정 전체에는 정치적 맥락이 짙게 배어 있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정권이 스포츠와 대형 이벤트를 활용해 정치적 관심을 돌리고 체제 안정을 도모하려 했다는 평가다.
이 무대 위에서 입장권은 단순한 관람권에 그치지 않았다. 표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기업들은 단체로 표를 구매해 임직원에게 나눠줌으로써 회사의 위신을 세웠다.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 주변에서는 암표가 성행했고, 값은 정가의 몇 배로 뛰었다. 표 한 장을 손에 쥐는 행위는 “이 나라가 마침내 세계의 중심 무대에 섰다”는 서사에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는 일이었다.
4년 전 로스앤젤레스에도 같은 줄이 있었다
서울 올림픽을 다각도로 이해하려면 4년 앞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함께 되짚어야 한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한 미국 등 서방 진영의 보이콧으로 반쪽짜리 대회가 되었다. 그 보복으로 1984년 LA 올림픽에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이 불참했다.
이 대회는 정부 재정 지원 없이 순수 민간 자본으로 치러진 최초의 상업 올림픽이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4 피터 유베로스 조직위원장은 기업 후원과 중계권 판매, 성화 봉송 구간을 기업이 구매하도록 하는 방식까지 동원해 대회를 흑자로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회에서도 표를 구하려는 줄은 길었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과 이란 인질 사태로 위축되었던 미국 사회가 “다시 아침이 밝았다”는 레이건 시대의 낙관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할 무대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따른다.
LA의 표를 산 사람들과 서울의 표를 구하려 했던 사람들은 언어도, 체제도, 처한 상황도 전혀 달랐다. 그러나 두 줄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우리가 다시 강한 나라, 자랑스러운 나라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표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이었다.
줄은 표를 사는 행위가 아니었다
여기서 하나의 패턴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줄은 결핍을 견디는 인내가 아니라, 서사에 참여할 자격을 구매하는 행위였다. 1984년의 미국인도, 1988년의 한국인도 표 자체에 줄을 선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는 다시 일어섰다”는 국가적 서사의 등장인물이 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나 이 패턴에는 반드시 함께 오는 그림자가 있다. 1986년 겨울부터 1987년까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는 40여 세대 200여 명이 살던 천막촌이 강제로 철거되었다.3 성화 봉송로가 그 부근을 지날 수 있다는 이유, 외국인의 눈에 깨끗하게 보여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철거는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에 담겨 있다.
“9월에 1분도 안 되는 성화 봉송을 위해 1월부터 200여 명이 떨어야 한다”
—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감독) 중
이 증언은, 국가적 서사가 완성되는 그늘 아래 누군가는 삶의 터전 밖으로 밀려나야 했음을 보여준다. 국가의 통치 전략, 기업의 위신, 개인의 존재 증명이라는 세 가지 욕망이 같은 줄 위에서 교차했을 뿐이다. 그 교차의 대가는 표를 살 형편이 안 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애초에 그 줄에 설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고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나눠 짊어졌다. 자부심은 언제나 그것을 살 수 없었던 사람의 존재를 담보로 완성된다. 이것은 1988년 서울에서도,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줄을 서는가
지금도 이 패턴은 사라지지 않았다. 백화점 오픈런 줄, 한정판 발매 줄, 수백 대 일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는 줄. 사려는 물건의 실질적 가치보다 “그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서사적 지위를 사려는 줄이라는 점에서, 1988년의 표 한 장과 본질적으로 멀지 않다. 다만 그때는 국가가 그 줄의 서사를 써 주었고, 지금은 각자가 각자의 서사를 스스로 써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가가 개인에게 자부심의 각본을 나눠주던 시대는 저물었지만, 자부심을 사려는 줄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라보는 자는 그 줄의 끝에 서서 묻는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줄은, 정말 우리가 원해서 선 줄인가. 아니면 누군가 미리 써 놓은 서사에 우리가 이름만 채워 넣고 있는 줄인가.
앞선 글에서 우리는 1980년대 말 은행 창구 줄에서 통장이 계급이 되던 순간을 살펴보았다.5 은행 창구 줄 — 통장이 계급이 되던 순간 그 줄이 계급을 증명하는 줄이었다면, 이번 줄은 국가를 증명하는 줄이었다.
* 참고할 말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도서 1:2
1. 서울 올림픽 개최지 확정 —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 IOC 총회
2. 대회 기간 및 참가국 — 1988년 9월 17일~10월 2일, 160여 개국 참가
3. 상계동 강제철거 및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감독, 1986~1988 제작)
4.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등 동구권 불참, 민간 자본 중심 최초의 상업 올림픽으로 평가됨
5. 바라보는 자의 기록, 「은행 창구 줄 — 통장이 계급이 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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