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고래를 구했는가

1871년 9월 알래스카 북극해 유빙에 갇혀 버려진 미국 포경선단과 얼음 위를 이동하는 선원들의 역사적 장면
1871년 9월, 알래스카 북극해에 갇힌 서른세 척의 포경선과 구조를 위해 유빙 위를 건너는 선원들.

석유가 고래를 구했는가

시장이 멈춘 사냥은 구원이라 불릴 수 있는가

2026.10.20 · 바다


석유 시대가 읽는 문장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문장이 있다. 석기시대는 돌이 떨어져서 끝나지 않았고, 석유 시대도 석유가 떨어져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을 지낸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의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¹ 이 문장이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단순하다. 한 시대의 끝은 자원이 바닥날 때가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날 때 온다는 직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직관에는 선례가 있다. 지금 석유가 서 있는 자리에, 160여 년 전에는 고래기름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고래기름을 밀어낸 것이 바로 석유였다.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가 뒤바뀌었을 뿐이다. “석유가 고래를 구했다”는 말은 그 선례를 가장 짧게 줄인 문장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고래기름이 산업혁명의 불빛과 기계의 관절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았다. 그 글은 포경이 연민이 아니라 더 싼 불 앞에서 물러났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번 글은 그다음 질문을 붙든다. 연민 없이 멈춘 사냥을, 그래도 구원이라 부를 수 있는가.

얼음 속에 버려진 서른세 척

석유가 고래기름을 밀어내기 시작한 날짜를 1859년 하나로 못 박기는 어렵다. 캐나다의 지질학자 에이브러햄 게스너는 1846년 광물에서 뽑은 등유를 공개 시연했고, 이 등유는 이미 고래기름 램프의 값을 위협하고 있었다. 한 전기 자료에 따르면 게스너의 등유는 갤런당 1달러로, 향유고래기름 2.25달러보다 쌌다.²

그리고 1859년 8월, 펜실베이니아의 타이터스빌에서 에드윈 드레이크가 약 21미터 깊이의 우물로 석유를 끌어 올렸다.³ 땅에서 솟는 원유는 등유의 원료값을 크게 낮추었다고 읽을 수 있다. 값싼 등유는 고래기름 램프의 자리를 조금씩 먹어 들어갔다.

그렇다고 포경선이 그날 항구에 묶인 것은 아니다. 향유고래가 줄어든 바다에서 선단은 더 멀리, 더 차가운 곳으로 나갔다. 여기에 전쟁이 겹쳤다.

1861년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북부는 남부 연합의 항구를 드나드는 뱃길을 끊으려 했고, 그해 12월 낡아서 더는 먼바다로 내보내기 어려운 포경선 24척을 사들였다. 이 배들은 돌을 싣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으로 가서, 배가 드나드는 좁은 수로에 일부러 가라앉혀졌다. 고래를 쫓던 배가 이번에는 항구의 뱃길을 막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 가던 1865년 6월에는 포경선이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남부 연합의 순양함 셰넌도어호가 알래스카 앞 베링해에서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선박 24척을 덮쳤다. 20척은 불태웠고, 나머지 4척은 나중에 일정한 금액을 내겠다는 증서를 받고 풀어 주었다. 이 24척 가운데 대부분이 포경선이었다.⁴

그리고 1871년이 온다. 그해 8월, 알래스카 북서쪽 해안의 북극해에서 포경선 마흔 척 안팎이 갑자기 밀려든 유빙에 갇혔다.⁵ 선장들은 배를 빼낼 수 없다고 판단했고, 9월 중순 서른세 척을 그 자리에 버렸다.

선원과 가족 1,219명은 보트로 얼음 사이를 건너 남쪽에서 기다리던 일곱 척에 옮겨 탔고, 한 사람의 목숨도 잃지 않고 돌아왔다. 버려진 배와 화물의 값은 160만 달러가량으로 추산된다. 5년 뒤인 1876년에는 비슷한 재난이 다시 닥쳤고, 이번에는 배에 남았던 선원들 가운데 일부가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 장면에서 눈여겨볼 것은 그들이 무엇을 쫓고 있었는가이다. 북극해에서 노린 것은 북극고래였다. 이 고래의 값어치는 기름만이 아니라 입속에 늘어선 고래수염에 있었다. 고래수염은 코르셋과 치마 뼈대를 세우는 재료였고, 석유가 대신해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⁶

고래 한 마리의 몸은 기름과 수염으로 따로 팔리는 상품이었고, 석유는 그중 기름의 조명 용도만 대체했다. 램프의 시장은 흔들렸지만 고래의 다른 부분을 사 가는 시장은 남아 있었다. 그 시장이 있는 한, 배는 얼음 속까지 들어갈 이유를 가졌다.

이 산업이 닫혀 가는 길은 세 갈래로 읽힌다. 향유고래가 줄어 어장이 먼 바다로 밀려났고, 등유가 조명 수요를 가져갔고, 얼음과 전쟁이 항해의 값을 올렸다. 이 가운데 고래의 안위를 목적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시장은 상품을 대체할 뿐, 생명을 구하지 않는다.

석유가 가져간 것은 조명이라는 용도이지 포경이라는 행위가 아니었다. 다른 상품이 팔리는 동안 사냥은 이어졌고, 북극고래의 수는 20세기 초까지 크게 줄어든 것으로 평가된다.⁷

스스로 타는 기름, 방향 없는 손

『장자』 「인간세」에는 쓸모가 목숨을 해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산의 나무는 쓸모가 있어서 베이고, 등불의 기름은 제 몸을 태워서 빛을 낸다.

山木自寇也,膏火自煎也。

(산목자구야,고화자전야。)

“산의 나무는 스스로 베임을 부르고, 기름불은 스스로를 태운다.”⁸

고래기름 램프는 이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물건이었다. 고래에게 쓸모란 곧 포경선이 쫓아온다는 뜻이었다.

같은 편에는 반대편 이야기도 있다. 목수가 마을 사당 곁의 거대한 상수리나무를 보고 쓸 데 없는 나무라 배도 관도 만들 수 없다고 지나치자, 나무는 꿈에 나타나 쓸모없는 덕분에 오래 살았다고 말한다. 장자는 사람들이 쓸모 있음의 쓸모만 알고 쓸모없음의 쓸모는 모른다고 했다(無用之用).

석유 시대는 이 역설을 기묘하게 실현했다. 등유가 조명 시장에서 고래를 쓸모없게 만든 순간, 고래는 한동안 베이지 않았다. 구원이 아니라 쓸모의 상실이 목숨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이 역설에는 조건이 붙는다. 쓸모없다는 판정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쓸모없음이 몸을 지킨다.

20세기 초 고래기름이 마가린과 비누의 원료로 새 용도를 얻자 판정은 뒤집혔다.⁹ 장자의 상수리나무는 목수가 눈길을 거두면 살았지만, 고래는 시장이 눈길을 거두었을 때만 살았다. 쓸모는 언제든 다시 발견될 수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4편에서 자기 이익만 의도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제 의도에 없던 목적을 증진하게 되는 경우를 적었다.¹⁰ 등유를 팔던 사람들에게 고래를 구하려는 뜻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계산은 의도 밖에서 고래에게 휴식을 주었다. 이것만 보면 시장은 선한 손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미스의 문장은 칭찬보다 관찰에 가깝게 읽힌다. 손은 방향을 정하지 않는다. 시장이 한 일은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수익이 향할 곳을 옮긴 것이다.

한 세대 앞에서 고래를 비껴간 같은 손이, 한 세대 뒤에는 증기선과 작살포로 투자금을 몰아 고래를 더 멀리까지 쫓게 했다. 손은 고래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 다만 그 손이 향한 곳에 마침 고래가 없었던 시기가 있었을 뿐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구원과 유예 사이

구원이라는 말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구하는 자, 구해지는 자, 그리고 구하려는 뜻이다. 1860~70년대의 바다에서 이 셋이 함께 갖추어진 장면은 찾기 어렵다. 구한 것으로 불리는 쪽에는 뜻이 없었고, 구해졌다는 고래 가운데서도 일부 종과 일부 시기만 숨을 돌렸을 뿐이다. 구원에는 의도가 필요하다. 가격에는 의도가 없다.

그래서 시장이 멈춘 사냥에는 구원보다 유예(猶豫)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 유예는 조건부다. 그 조건은 가격표다. 가격표가 바뀌면 유예는 끝난다.

그 사이 사냥은 이미 다른 기계를 얻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스벤 포인은 1863년 세계 최초의 증기 포경 소형선을 만들었고, 1870년에는 폭발하는 작살촉을 쏘는 작살포를 특허로 냈다.¹¹ 이 두 가지가 합쳐지자 사냥꾼은 손으로 던지는 작살로는 따라잡을 수 없던 크고 빠른 수염고래까지 겨눌 수 있게 되었다. 조명 시장이 닫히던 바로 그 시기에, 사냥의 능력은 더 커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들에서 따라간다.

시장은 산업을 끝낼 때 조용하고 빠르다. 설득도 합의도 필요 없고,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일도 없다. 그 대신 시장이 끝낸 산업에는 다시 시작될 길이 남는다. 산업이 끝나도 자본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포경의 중심지였던 뉴베드퍼드는 포경으로 번 돈을 방직 공장에 쏟아부으며 다른 산업 도시로 옮겨 갔다.¹²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구해진 것은 고래보다 선주의 자본이었다고 읽을 수도 있다.

가격표가 휴식을 허락하는 동안, 그 휴식을 제도로 바꾸는 일이 있어야 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1871년의 얼음에서 국제포경규제협약이 서명된 1946년까지는 75년이 걸렸고, 상업포경의 전면 중지가 결정된 것은 1982년이다.¹³

그 사이 포경은 더 큰 배와 더 강한 무기를 갖고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로 돌아왔다. “석유가 고래를 구했다”는 문장은 앞부분만 참이다. 고래기름이 조명에서 물러난 뒤에도 고래를 쫓는 기계는 오히려 자랐다.

시장이 허락한 휴식은 시장이 거두어 갈 수 있다. 휴식이 보호가 되려면 누군가 그것을 선택으로 바꿔야 한다. 선택이 없는 휴식은 다음 사냥의 준비 기간과 구별되지 않는다.

대신 멈춰 준 것을 우리의 선택이라 부를 때

석기시대는 돌이 떨어져서 끝나지 않았다. 고래잡이도 고래가 사라져서만 끝나지 않았다. 둘 다 더 싼 무언가가 와서 끝났다. 그렇다면 석유 시대가 같은 방식으로 끝날 때, 그 끝은 누구의 선택으로 기록될까.

오늘의 에너지 전환을 두고도 두 가지 설명이 나란히 있다. 탄소를 줄이겠다는 결단이 흐름을 만든다는 설명이 있고, 새 에너지가 값에서 앞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어느 쪽이 더 큰 몫을 하는지는 이 글이 가릴 일이 아니다. 다만 고래잡이의 선례는, 가격이 닫은 문이 가격 때문에 다시 열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시장이 대신 멈춰 준 일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의 결단으로 기억해 왔는가. 그리고 가격표가 잠시 쉬게 해 준 바다와 땅에서, 지금 우리는 그 휴식을 제도로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다음 가격표를 기다리고 있는가.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계산 덕에 잠시 숨을 돌린 생명이 그렇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휴식이 선택이 될 때까지 지켜보는 일이다.


* 참고할 말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21


1. Ahmed Zaki Yamani(1930~2021)의 발언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장.

2. Engineering and Technology History Wiki, “Abraham Gesner”. 1846년 시연, 1850년 특허, 1854년 미국 특허권 매각. 등유 갤런당 1달러, 향유고래기름 갤런당 2.25달러.

3. Drake Well Museum(Pennsylvania Historical and Museum Commission). 1859년 8월 27일 시추, 깊이 69.5피트.

4. Wikipedia, “Stone Fleet”; Wikipedia, “CSS Shenandoah”; NOAA, “The First Blow is Struck: The Saga of the CSS Shenandoah”.

5. National Park Service, 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 1871년 북극 포경선단 조난 및 1876년 조난; NOAA, Whaling Fleet 자료.

6. National Park Service, 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 “Whale Products”.

7. 북극고래(서부 북극 개체군) 감소 관련 NOAA·IWC 자료.

8. 『莊子』 「人間世」.

9. 고래기름의 경화(수소 첨가)와 마가린·비누 원료화 관련 20세기 초 포경사 문헌.

10. Adam Smith, The Wealth of Nations, Book IV, Chapter II.

11. Wikipedia, “Svend Foyn”.

12. 뉴베드퍼드 포경 자본의 방직업 이동 관련 지역사 문헌.

13.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1946년 국제포경규제협약 및 1982년 상업포경 모라토리엄 결정(1986년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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