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해 집을 잃은 사람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새벽 골목길에서 닫힌 대문 앞 이삿짐 트럭 옆에 서 있는 세입자 가족
1998년 겨울 새벽,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길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가족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과 닫힌 대문을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해 집을 잃은 사람들

IMF 이사, 그리고 후버빌과 오클라호마의 길

2026.10.22 · 역사 · 한국현대사


이삿날, 집주인에게 돈이 없었다

1998년 봄 한국의 신문에는 낯선 말이 자주 올랐다.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대란’이다.¹ 계약은 끝났고 새 집으로 옮겨야 하는데, 집주인에게 돌려줄 돈이 없다. 새 세입자를 들이려 해도 전셋값이 내려앉아 예전 금액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KB국민은행 집계로 1998년 전셋값은 전년보다 18.4% 떨어졌다.² 정부도 사태를 외면하지 못했다. 그해 5월 건설교통부는 전세금 반환 지원자금 3천억 원을 마련해 집주인에게 가구당 최대 2천만 원을 융자하겠다고 밝혔다.³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전세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보아야 한다. 전세금은 월세 없이 살기 위해 맡기는 목돈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빌려준 대출에 가깝다. 세입자는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2년 뒤 돌려받기로 약속한다. 담보는 집주인의 신용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전부다. 집값이 오르는 시대에는 이 약속이 지켜졌다. 집주인은 그 돈으로 집을 사거나 지었고, 세입자는 월세를 내지 않았다. 문제는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내려갈 때다. 약속의 양쪽 끝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분당과 일산 같은 신도시로 향한 1990년대의 이동을 살펴보았다. 그 이동은 위를 향해 있었다. 더 넓은 집과 더 나은 동네라는 기대가 사람을 끌어당겼다. 1997년 11월 21일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방향이 바뀌었다. 12월 24일 원·달러 환율은 2천 원 안팎까지 치솟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대,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30%대까지 올랐다.⁴ 1998년 한 해 실업자는 149만 명에 이르렀다.⁵ 이번에는 기대가 아니라 신용이 끊겨서 사람이 밀려났다.

후버빌에서 오클라호마까지, 1930년대 미국의 짐 싸기

같은 장면은 60여 년 전 태평양 건너에도 있었다.

1929년 10월 뉴욕 증시가 무너진 뒤 미국에서는 은행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영업을 멈춘 은행은 약 9,100곳이었다.⁶ 예금자는 은행과 함께 저축을 잃었다. 1933년 실업률은 25% 안팎까지 올랐다. 직장과 집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 변두리 빈터에 판자와 양철로 집을 짓고 모여 살았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후버빌’이라 불렀다.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비꼰 것이다. 1932년 여름에는 제1차 세계대전 퇴역 군인들이 약속된 보너스를 당장 달라며 워싱턴 남동쪽 아나코스티아 평지에 천막촌을 이루었다. 7월 28일 정부는 군대를 보내 이들을 몰아냈다.⁷

농촌의 사정은 더 나빴다. 농산물 값이 떨어졌고, 오클라호마를 비롯한 중부 대평원에는 가뭄과 모래폭풍, 이른바 ‘더스트볼’이 겹쳤다. 은행 빚으로 땅과 기계를 샀던 농민은 갚을 길을 잃었고 은행은 담보를 가져갔다. 1930년대에 오클라호마는 1930년 인구의 18.4%, 약 44만 명을 다른 곳으로 떠나보냈다.⁸ 이들 다수가 향한 곳은 서쪽의 캘리포니아였다. 그러나 환영은 없었다. 현지에서는 이들을 ‘오키’라 불렀고, 이 말에는 경멸이 담겼다.⁹ 1936년 도로시아 랭이 찍은 이주 농장 노동자 어머니의 사진, 1939년 존 스타인벡이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 그린 조드 가족의 길은 오클라호마의 소작지를 잃고 서쪽으로 향한 이 행렬의 기록이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은 겹치면서도 갈라진다. 오키의 이주에는 은행 빚을 갚지 못해 담보를 잃은 농민이 적지 않았고, 소작지에서 밀려난 사람도 많았다. 1998년의 한국 세입자들은 반대로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었고, 돌려받지 못해 집을 잃었다. 빚진 자와 빌려준 자의 자리는 달랐지만 두 쪽 모두 신용의 사슬 맨 끝에 매달려 있었다. 사슬 한가운데가 끊기면 가장 끝의 가장 작은 장부가 먼저 찢어진다.

미국은 이 사슬을 손보았다. 1933년 3월 6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국 은행 휴업을 선포했고, 같은 해 6월 은행법으로 예금보험제도가 마련되어 1934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6월에는 부실 주택담보대출을 정부가 사들이고, 주택 소유자에게 15년 이상의 장기 상환 조건으로 새 대출을 내주는 주택소유자대출공사(HOLC)도 만들어졌다.¹⁰ 미국은 신용을 없애지 않았다. 신용이 끊길 때 개인이 혼자 지지 않도록 제도가 일부를 떠안았다. 이 제도들 안에서 예금자는 보호받는 채권자가 되었다. 1998년의 한국 세입자가 맡긴 전세금은 예금과 달리 그런 보호막이 얇은 채권이었다.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한다

자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식량을 넉넉히 하고,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이 믿게 하는 것이라 답했다. 자공이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꼽았고,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 식량을 꼽았다. 마지막 하나는 끝내 버릴 수 없다고 했다.¹¹

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자고개유사,민무신불립。)

“예로부터 누구에게나 죽음은 있었다. 그러나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서지 못한다.” — 『논어』 안연

공자가 말한 신(信)은 다스리는 쪽과 다스림을 받는 쪽 사이의 믿음이다. 이 문장을 전세 계약의 자리로 옮겨 읽을 수 있다. 전세는 집주인에 대한 믿음 위에서 수천만 원, 수억 원이 오가는 계약이다. 믿음이 두터울 때 이 제도는 월세보다 가볍고 싸게 보였다. 믿음이 끊기는 순간에는 담보 없는 목돈이 그대로 허공에 걸린다. 신용을 뜻하는 영어 ‘credit’이 ‘믿다’를 뜻하는 라틴어 credere에서 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서양에서 같은 질문을 깊이 판 사람 가운데 하나가 헝가리 출신의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다. 그는 1944년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이 사회를 삼킬 만큼 커지면 사회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반대 움직임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시장의 확장과 사회의 자기보호가 서로 부딪치는 이 흐름을 그는 ‘이중 운동(double movement)’이라 불렀다.¹² 이 관점에서 보면 대공황 이후 미국의 은행 휴업과 예금보험, 주택대출 구제는 시장의 폭주에 맞선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으로 읽힐 수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집은 소유물이기 전에 신용이었다

이 시리즈가 지켜 온 질문은 하나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람들은 왜 계속 짐을 싸는가. 1960년대에는 가난이 사람을 서울로 밀어 올렸고, 1970년대에는 철거가 사람을 도시 바깥으로 밀어냈다. 1990년대에는 신도시라는 기대가 사람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1998년에는 신용이 끊겨 사람이 밀려났다. 떠나는 이유는 번번이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것은 짐을 싸는 쪽이 언제나 담보가 가장 얇은 쪽이었다는 사실이다.

1998년의 결과는 통계 곳곳에 남았다. 서울역 부근 노숙인은 그해 4월 약 500명에서 8월 약 1,800명으로 늘었고, 서울 전체로는 2,400명 안팎으로 추정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역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¹³ 이혼은 1997년 약 9만 1천 건에서 1998년 약 11만 6천 건으로 뛰어 처음으로 10만 건을 넘었다.¹⁴ 일자리와 집이 흔들리자 가족이 흔들렸고, 가족이 흔들리자 짐은 더 작아졌다고 읽힌다.

위기는 곧 지나갔지만 이삿짐은 풀린 채로 남았다. 1998년 18.4% 떨어졌던 전셋값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연속 10% 넘게 올랐다. 위기 동안 얼어붙은 주택 공급이 그 기폭제로 지적된다.¹⁵ 하락의 고통이 상승의 고통으로 이름만 바꿔 돌아온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1990년대 말까지 강남 빌딩의 3분의 2가 전세였는데, 외환위기 뒤 빌딩이 국내외 투자자에게 팔리면서 대부분 월세로 바뀌었다.¹⁶ 전세는 그때 상업용 건물에서 먼저 사라졌다. 그러나 주택의 전세는 살아남았고, 사라지지 않은 위험은 다음 위기까지 미뤄졌을 뿐이다. 이 위험이 2022년 이후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으로 다시 드러났다고 읽힌다.¹⁷

2026년 가을, 이 구조는 다시 시험대에 올라 있다. 2022년 전세사기 이후 월세 비중은 꾸준히 올라, 올해 1~8월 전국 임대차 거래의 68.5%, 서울은 69.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¹⁸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월 기준 1만 5,427건으로 2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¹⁹ 이재명 대통령은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를 한국에만 있는 일종의 사금융이라 부르며, 줄어드는 흐름을 정상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²⁰ 시장 일각에서는 급격한 축소가 서민의 주거비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²¹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7일 국정감사에 들어갔고, 입법조사처는 전월세 시장 불안을 가장 큰 쟁점으로 꼽았다. 수도권 집값과 전월세를 둘러싼 여야 공방도 예고되었다.²² 어느 설명이 옳은지는 이 글이 가릴 일이 아니다. 다만 보증금이라는 사적 신용을 걷어낼 때 그 위험을 누가 대신 지는지 정하지 않으면, 1998년의 이삿짐은 형태만 바꿔 다시 풀린다.

짐을 싸되 집을 잃지 않는 사회

미국이 대공황에서 얻은 교훈은 신용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었다. 신용이 끊길 때 가장 끝에 선 사람이 혼자 지지 않게 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의 1998년은 달랐다. 집주인에게 급전을 빌려주는 임시 대책이 나왔고, 보증금이라는 사적 신용의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지금 한국 사회 앞에는 전세를 지킬 것인가 없앨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처럼 보이는 질문이 놓여 있다. 그러나 양자택일로 묻는 순간 선택지가 줄어든다. 전세가 남든 사라지든 위험은 어딘가에 쌓이기 때문이다. 방향은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 보증금의 위험은 개인의 장부에서 제도의 장부로 옮겨져야 한다. 대공황의 미국이 예금과 주택대출에서 그렇게 했다. 둘째, 목돈을 맡기고 돌려받던 강제저축의 길이 월세 시대에 무엇으로 대체되는지 설계해야 한다. 그 자리를 비워 두면 월세로 옮겨 간 청년과 신혼부부는 자산을 쌓을 경로를 잃는다. 셋째, 이동의 비용을 낮춰야 한다. 월세가 오를수록 짐을 싸는 일은 더 잦고 더 비싸진다.

한국 현대사는 정착의 역사가 아니라 이동의 역사였다. 이동의 이유는 가난에서 철거로, 기대에서 신용으로 바뀌어 왔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이동을 막는 제도가 아니라, 이동이 재난이 되지 않게 하는 제도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삿짐 트럭이 서 있는 골목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슬이 한 걸음 물러서면 보인다. 다음에 짐을 싸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의 장부는 지금 누가 들고 있는가.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이 질문을 이번에도 독자에게 돌려준다.


* 참고할 말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 시편 127:1

각주

1. 서울신문 1998.5.8, 3면 사설.

2. KB국민은행 주택가격 통계(1998년 전셋값 18.4% 하락), 아주경제 2011.7.19 보도 인용.

3. 서울신문 1998.5.8, 3면. 건설교통부 5월 6일 발표, 전세금반환 지원자금 3천억 원·가구당 최고 2천만 원 융자.

4. 뉴시스 2022.12.29(1997.11.21 구제금융 신청); The Korea Herald 1997.12.24자(2023.9.13 재수록); JoongAng Daily, “A looming foreign exchange crisis”(주택담보대출 20%대, 중소기업 대출 30%대).

5. 한국경제연구원 분석(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연간자료), 더팩트 2021.2.16 보도.

6. FDIC, A Brief History of Deposit Insurance in the United States. 1933년 실업률 25% 안팎은 통상 인용되는 추정치.

7.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The 1932 Bonus Army”.

8. Bay Path University, “Migration and the Great Depression” 강의 자료.

9. California State University 학술지 The Dust Bowl Migration; ushistory.org, “Sinking Deeper and Deeper: 1929-33”.

10. FDIC 위 자료(1933.3.6 은행 휴업, 1933.6.16 은행법, 1934.1.1 예금보험 시행); Living New Deal, “Home Owners’ Loan Act, 1933″(1933.6.13).

11. 『논어』 안연편.

12.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1944.

13. 참여연대 『복지동향』 1998년 11월호.

14. 통계청 인구동향조사(1997년 9만 1,200건, 1998년 11만 6,300건), 파이낸셜뉴스 2012.2.27 보도 인용.

15. 아주경제 2011.7.19(KB국민은행 자료 인용).

16. 『한경 매거진』 부동산114 대표 칼럼.

17. 시대일보 2016.8.9(역전세난; 외환위기 때 집주인 대상 전세금 대출 지원); 쿠키뉴스 2025.4.28(2022년 이후 전세사기·역전세난과 월세 비중).

18. YTN 2026.10.10(국회 입법조사처 ‘2026 국정감사 이슈’ 보고서 인용).

19. 데일리안 2026.9.8(입법조사처 보고서 인용).

20. 경향신문 2026.6.8; 노컷뉴스,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보도.

21. 더팩트 2026.6, 전세 축소 관련 기사.

22. 파이낸셜뉴스 2026.10.5(국토위 10월 7일 국정감사 시작); 데일리안 202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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