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기름으로 켠 산업혁명

1840년대 밤바다 위 미국 포경선 갑판에서 벽돌 가마 불빛을 받으며 향유고래 지방을 끓이는 선원들
1840년대 태평양 한가운데의 밤, 포경선 갑판 위 벽돌 가마(Tryworks)의 불빛을 받으며 향유고래 지방을 가공하는 선원들의 모습.

고래기름으로 켠 산업혁명

문명의 조명은 누구의 생명을 태웠는가

2026.10.18 · 바다


여든 살이 된 협약, 그 이전에 켜진 등불

2026년 9월 28일부터 10월 2일까지,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호바트에서 국제포경위원회(IWC) 제70차 총회가 열렸다. 올해는 1946년 국제포경규제협약이 서명된 지 여든 해가 되는 해다.¹ 회의장의 구도는 이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U 이사회가 회원국에 공유한 보고 문서에 따르면, IWC70도 이전 회의들처럼 고래 보존을 앞세운 쪽과 그 맞은편 진영으로 뚜렷이 갈렸다.²

여든 해 동안 협약과 위원회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거꾸로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협약 이전에, 바다에서 무엇을 얼마나 오래 가져가고 있었는가. 그 답은 거창한 전쟁이나 제국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해가 진 뒤 방에 불을 켜는 일에서 시작한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1820년 포경선 에식스호를 들이받은 고래를 따라갔다. 이번에는 그 배가 바다로 나간 이유를 묻는다. 고래의 몸은 무엇이 되었는가. 18~19세기의 불에는 연료가 필요했고, 그 연료 가운데 가장 밝고 깨끗한 것은 깊은 바다에 사는 포유류의 몸에서 나왔다. 이 글은 그 불빛이 어떤 산업이 되었고, 그 산업이 어떤 문명의 관절을 움직였는지를 따라간다. 첫 편의 질문은 단순하다. 문명의 조명은 누구의 생명을 태웠는가.

향유고래의 머리에서 기계의 관절까지

고래기름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기름은 아니었다. 고래의 지방을 끓여 얻는 일반 고래기름이 있었고, 향유고래의 머리 속에서 얻는 스퍼마세티(경랍)가 있었다. 스퍼마세티는 엄밀히 말해 기름이 아니라 액체 상태의 밀랍에 가깝다. 이것을 눌러 짜면 최상급 기름과 질 좋은 양초 재료가 갈라져 나왔다.³

이 양초는 연기와 냄새가 적고 밝게 오래 탔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뉴베드퍼드의 로드먼 양초 공장을 소개하며, 이런 양초가 ‘캔들파워’라는 말을 낳았다고 설명한다.⁴ 이 단위는 법에도 올랐다. 1860년 영국의 도시가스법은 6분의 1파운드짜리 순수 스퍼마세티 양초가 시간당 120그레인씩 탈 때의 빛을 표준으로 정했다.¹⁶ 촛불 한 자루가 밝기의 단위가 되었을 만큼, 스퍼마세티의 빛은 기준이 되는 빛이었다.

가격표는 이 위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낸터키트역사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향유고래의 머리 기름은 일반 고래기름의 평균 세 배 가격에 거래되었다.⁵ 부유한 집은 스퍼마세티 양초를 켰고, 중간 계층과 노동자의 집은 더 싼 고래기름 램프를 썼다.⁴

고래는 불빛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향유고래 기름은 점도가 낮고 안정적이어서 윤활유로 높이 평가받았다.⁶ 낸터키트 쪽 자료는 기관차, 방직기, 재봉틀, 시계 같은 기계의 움직이는 부분에 이 기름이 쓰였다고 전한다.⁷ 수염고래의 고래수염은 코르셋과 칼라, 치마 뼈대를 세우는 재료가 되었다.³ 불, 윤활, 의복의 골격. 고래의 몸이 세 갈래의 상품으로 뜯겨 나간 셈이다.

수요가 이렇게 넓어지자 공급도 산업이 되었다. 낸터키트에서 첫 향유고래를 잡은 해는 1712년으로 전해진다.⁷ 해안에서 고래가 떠밀려 오기를 기다리던 포경은 먼바다로 나갔고, 배 위에 벽돌 가마(트라이웍스)를 놓아 선상에서 지방을 끓이게 되면서 항해는 길어지고 수익은 커졌다.⁸ 1846년 미국 포경선단은 정점에 이르렀다. 집계에 따라 700여 척에서 735척까지 수치가 갈리는데, 한 연구는 이 해 약 7만 명이 이 산업에 고용되었다고 추산한다.⁹ 뉴베드퍼드는 1850년대 포경 덕에 미국에서 1인당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혔다.¹⁷

우리는 산업혁명을 석탄과 증기의 이야기로 기억한다. 석탄이 기계의 심장을 뛰게 했다면, 그 심장이 쉬지 않고 돌려 낸 축과 톱니의 마찰은 다른 물질이 감당해야 했다. 그 몫의 일부를 향유고래 기름이 맡았다고 읽을 수 있다.

조명도 같은 계열이다. 해가 지면 멈추던 하루가 램프 아래에서 늘어났다. 밤을 쓸 수 있게 된 사회는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팔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연결을 수치로 입증하는 일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다만 방향은 분명히 읽힌다.

눈여겨볼 것은 연결의 모양이다. 영국 방직 공장의 기어와 뉴잉글랜드 항구의 포경선, 그리고 태평양 한가운데 향유고래가 하나의 사슬로 이어져 있었다. 소비자는 사슬의 끝에서 불을 켜고 기계를 돌릴 뿐, 사슬의 처음에 있는 몸을 보지 못했다. 사슬의 끝에서는 사슬의 처음이 보이지 않는다.

이익은 어디에 놓여 있었는가

한비자는 「비내(備內)」 편에서 수레 짓는 장인과 관 짜는 장인을 나란히 세운다. 수레 장인은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 장인은 사람들이 일찍 죽기를 바란다. 수레 장인이 어질고 관 장인이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귀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情非憎人也,利在人之死也。
(정비증인야,이재인지사야。)

“미워해서가 아니다. 이익이 그 사람의 죽음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¹⁰

이 문장이 쓰인 맥락은 군주가 가까운 이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문장이 말하는 구조, 곧 마음이 아니라 이익의 위치가 행동을 정한다는 구조는 맥락을 넘어 읽힌다. 램프 상인이 고래를 미워해서 고래를 잡은 것은 아니다. 포경선 선주도, 양초 장인도, 램프 아래서 책을 읽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익이 고래의 죽음에 놓여 있었다. 악의가 없는 구조도 같은 결과를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1권 4장에서 이렇게 상상한다. 모든 도구가 명령을 받거나 앞서 알아서 제 일을 해낼 수 있다면, 북이 저절로 천을 짜고 채가 저절로 현을 튕긴다면, 장인에게는 조수가, 주인에게는 노예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¹¹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이었고, 그가 노예제를 설명하는 맥락 안에 있었다.

산업혁명은 이 상상을 현실의 공장으로 끌어왔다. 북과 베틀이 스스로 움직이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는 공짜가 아니었다. 기계에는 에너지와 윤활이 필요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상상 속에서 지워져 있던 것, 곧 도구를 움직이는 몸의 값이 이번에는 바다 쪽으로 옮겨 갔다. 도구가 스스로 움직이는 순간, 노동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간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먼저 꺾인 것은 고래였다

이 산업의 끝을 흔히 ‘석유가 고래를 구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연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국 포경선단은 1846년 정점에 이르렀고, 한 에너지 분석에 따르면 선단 규모는 1859년까지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¹² 그 사이 향유고래가 줄자 포경선은 긴수염고래, 북극고래, 혹등고래로 눈을 돌렸다. 포경업자들 사이에는 “갈색 기름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었다.¹³ 한 종이 희소해지면 사냥을 멈춘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꾼 것이다.

어장은 점점 멀어졌다. 1887년 미국 과학지에 실린 정리 글은 남태평양의 많은 어장이 버려진 까닭을, 고래가 줄어서만이 아니라 향유기름 값이 떨어지고 먼 바다까지 가는 비용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¹⁴ 고래의 감소, 가격의 하락, 항해 비용의 상승이 한꺼번에 이 산업을 조였다.

그 위로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시작된 석유 시대가 겹친다.¹⁵ 등유는 더 싸고 더 풍부했고, 조명용 고래기름의 자리를 빠르게 잠식했다. 한 컨설팅 분석은 1880년에 이르면 석유 생산량이 고래기름의 70배에 달했다고 추산한다.¹² 같은 분석은 고래기름 공급이 수요보다 먼저 정점을 찍었다고 짚는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고래를 놓아준 것은 연민이 아니라 더 싼 불이었다. 조명 시장이 끝났을 때 고래가 구해진 것이 아니라, 구해질 고래가 이미 많이 줄어 있었다. 산업은 자원이 마를 때 줄어들지 않고 옮겨 간다. 다른 종으로, 더 먼 바다로, 그리고 끝내는 다른 연료로. 멈춤은 안에서 오지 않고, 대체재가 올 때 밖에서 온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의 첫 질문, 바다의 생명을 연료로 바꾼 문명은 왜 스스로 멈추었는가에 대한 첫 대답은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가 된다. 조명용 고래기름이라는 용도가 끝났을 뿐, 포경은 다른 기술을 만나 다른 얼굴로 이어졌다.

1870년 노르웨이의 스벤 포인이 폭발하는 작살촉을 단 작살포를 특허로 냈다. 이것이 증기선과 결합하자 사냥꾼은 대왕고래와 참고래 같은 큰 수염고래까지 훨씬 효율적으로 쫓을 수 있게 되었다.¹⁸ 1900년대 초에는 증기 공장선이 먼바다로 나가 고래를 배 위에서 가공하기 시작했고, 곧 남극해까지 이르렀다.¹⁹ 손으로 던지던 작살이 포로 쏘는 작살로 바뀐 것이다. 조명 시장이 닫힌 자리에서 사냥의 규모는 오히려 커질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들에서 따라간다.

우리 방의 불은 무엇의 몸을 태우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켜는 불은 고래를 태우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표에 적힌 것은 연료의 값일 뿐, 그 연료가 어디서 왔고 무엇이 그 값을 치렀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1846년의 램프 앞에 앉은 사람도 그랬다. 문제는 그가 무정했다는 것이 아니라, 가격표가 알려 주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제학은 이렇게 가격에 잡히지 않은 채 제3자나 자연이 떠안는 비용을 외부효과라 부른다. 1846년의 가격표는 바다 쪽에서 치르는 비용이 빠진 표였다.

호바트의 회의장에서 여든 살 된 협약을 다시 읽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 가격표를 고쳐 쓰려는 시도의 후예다. 그 시도가 어디까지 성공했는지, 혹은 무엇을 놓쳤는지는 아직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가격표에서 지워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언제, 무엇에 떠밀려 읽게 될까.

가까이서는 불빛만 보인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불빛이 닿지 않는 자리를 적는다.


* 참고할 말씀: ‘그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 시편 104:26


1.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IWC70 안내 (iwc.int/events-and-workshops/iwc70-2026). 1946년 협약 80주년 호바트 선언 안건 포함.

2. Council of the European Union, 14066/26, 2026.10.8 (IWC70 결과 보고).

3. National Park Service, New Bedford Whaling NHP, “Whale Products”.

4. National Park Service, “Rodman Candleworks”.

5. Nantucket Historical Association 설명 (Adverts 250 Project, 2016.4.22 재인용).

6. “Sperm oil” 항목, Wikipedia.

7. Amy Jenness, Nantucket History & People (yesterdaysisland.com).

8. PBS American Experience, “Whaling in America” 연표.

9. J. L. Coleman Jr., “The American Whale Oil Industry: A Look Back to the Future of the American Petroleum Industry?” 초록(1994); Clark(1887), 722척; 미 내무부 어류야생동물국 1940년 보도자료, 735척.

10. 『韓非子』 「備內」.

11. Aristotle, Politics I.4 (1253b).

12. Thunder Said Energy, “Great white whales” (2020.9.3).

13. Cape Cod Maritime Museum, “Why was sperm whale so prized by 19th century whalers?”

14. Clark(1887), “The American Whale-Fishery”, Science.

15. 1859년 펜실베이니아 석유 시추.

16. “Candlepower” 항목, Wikipedia (Metropolitan Gas Act 1860).

17. New England 매거진, New Bedford 항목 (newengland.com).

18. “Whaling in Norway” 항목, Wikipedia (1870년 특허).

19. 위와 같음 (1903 Telegraf, 1905 Admiralen 남극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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