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살포와 공장선, 기술이 바다를 비우다

1930년대 남극해에서 거대한 공장식 포경선이 대왕고래를 선미 경사로로 끌어올리는 모습. 거친 파도와 포경선, 작살포, 빙산이 어우러진 역사적 포경 장면.
1930년대 남극해의 포경선. 거대한 대왕고래와 강철 선체,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는 산업 포경의 규모와 냉혹함을 드러낸다.

작살포와 공장선, 기술이 바다를 비우다

효율은 왜 멈출 줄 모르는가

2026.10.22 · 바다


제본스의 역설이 다시 불려 나온 날

2025년 1월 27일,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 사티아 나델라는 짧은 글 한 줄을 올렸다. 중국의 인공지능 기업 딥시크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만든 모델을 공개하면서 시장이 크게 흔들리던 때였다. 나델라가 꺼낸 것은 제본스의 역설이 또 한 번 작동한다는 말이었다.¹ 인공지능이 더 싸지면 수요가 줄기는커녕 폭발할 것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이 역설에 이름을 남긴 이는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다. 그는 1865년 『석탄 문제』에서, 연료를 아끼는 기술이 나아질수록 석탄 소비는 줄기보다 오히려 늘어 왔다고 짚었다.² 석탄이 싸지자 석탄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터까지 불을 지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효율이 절약으로 이어질지 확장으로 이어질지는 효율 자체가 아니라, 그 효율이 풀어 준 수요가 어디까지 번지는가에 달려 있다.

제본스가 책을 내던 무렵, 바다 위에서는 석탄 대신 고래를 놓고 같은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석유가 고래기름을 조명 시장에서 밀어냈지만 고래를 구하지는 못했다는 데까지 살펴보았다. 그 글의 끝에서 미뤄 둔 이야기가 이번 글이다. 조명 시장이 닫히던 바로 그때, 사냥은 훨씬 강한 기계를 얻고 있었다.

잡을 수 없던 고래가 잡히기까지

19세기 중반까지 포경업자가 잡을 수 있는 고래는 정해져 있었다. 헤엄이 느리고 죽어서도 물에 뜨는 고래들이었다. 흰긴수염고래나 참고래 같은 대형 수염고래는 달랐다. 빨랐고, 작살을 맞으면 끌고 달아났으며, 죽으면 가라앉았다. 노를 젓는 보트와 손으로 던지는 작살로는 닿지 않는 고래였다. 이 고래들을 지켜 준 것은 보호가 아니라 불가능이었다.

그 불가능을 연 사람이 노르웨이의 스벤 포인(1809~1894)이다. 그는 1863년 증기기관으로 달리는 포경 소형선을 만들어 이듬해 첫 사냥에 나섰고, 1870년에는 고래 몸속에서 터지는 포탄을 단 작살을 대포로 쏘는 장치를 특허로 냈다.³ 죽은 고래 몸에 압축 공기를 불어 넣어 가라앉지 않게 하는 방법도 뒤따랐다.⁴ 속도, 살상, 부력이 차례로 풀린 셈이다. 1868년에는 한 해에 30마리를 잡았다고 전한다. 그는 북부 핀마르크에 기지를 세우고 1873년부터 10년 동안 정부의 독점권을 얻었다.

이 기술은 한 사람의 영감만은 아니었다. 1867년 덴마크의 화약업자와 영국인이 포탄 작살과 비슷한 특허를 각각 냈다.⁵ 같은 시대가 같은 문제를 동시에 풀고 있었다는 뜻이다. 문이 한번 열리면 한 사람의 손으로는 닫을 수 없다. 포인의 독점이 끝나자 후발 업자들이 몰려들었고, 핀마르크 연안에서만 1885~86년에 참고래 1,046마리와 흰긴수염고래 148마리가 잡혔다는 기록이 있다.⁶

남은 한계는 거리였다. 1904년 11월 노르웨이 선장 카를 안톤 라르센이 선단을 이끌고 남대서양 사우스조지아섬 그리트비켄에 닿아 남극 해역 최초의 육상 포경 기지를 세웠고, 첫 기름은 그해 12월 24일에 나왔다.⁷ 그러나 육상 기지는 고래를 육지로 끌고 와야 했고, 사냥은 기지가 닿는 바다 안에 머물렀다.

이 거리의 제약을 끊은 것이 공장선이다. 라르센이 1923년 공장선과 포획선을 이끌고 로스해로 내려간 원정이 원양 포경의 길을 열었다. 1925년에는 노르웨이 선주들이 낡은 화물선을 개조한 랭싱호의 선미에 경사로를 내어, 고래를 통째로 갑판 위로 끌어올릴 수 있게 했다.⁸ 해체와 정제가 바다 위에서 이루어지면서 고래는 어디서 잡아도 되었고, 사냥꾼은 육지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

결과는 숫자로 남아 있다. 1930~31년 시즌 남극해에서 잡힌 고래는 4만 201마리였고, 그중 흰긴수염고래만 2만 9,410마리였으며, 기름은 360만 배럴을 넘었다.⁹ 오늘 전 세계 흰긴수염고래는 1만~2만 5천 마리로 추정된다.¹⁰ 한 시즌에 잡힌 수가 지금 남은 전체 추정치의 상단보다도 많았다는 말이다.

얼마면 족한가를 묻지 않는 기술

제본스는 연료를 경제적으로 쓰면 소비가 줄어든다고 믿는 태도를 개념의 혼동이라고 잘라 말했다. 작살포는 그 문장을 바다에서 증명한 셈이었다. 고래 한 마리를 잡는 비용이 내려가자 사냥은 줄지 않고 불어났다. 불어난 사냥은 더 큰 배와 더 많은 포수를 불렀고, 그 배와 포수는 더 많은 고래를 필요로 했다. 효율이 비용을 낮추면, 낮아진 비용이 다시 규모를 키운다.

이 고리를 노자는 이천 년도 더 전에 한 문장으로 적었다. 『도덕경』 46장이다.

禍莫大於不知足,咎莫大於欲得。

(화막대어부지족,구막대어욕득。)

“재앙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허물은 얻으려 욕심내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¹¹

여기서 족함은 절약의 기술이 아니다. 효율이 ‘어떻게 더 빨리, 더 싸게’를 묻는 말이라면 족함은 ‘얼마면 되는가’를 묻는 말이다. 효율은 수단 안에서 작동하고, 족함은 목적을 향해 묻는다. 효율은 어떻게를 묻고, 족함은 얼마를 묻는다. 증기선, 작살포, 압축 공기, 경사로는 모두 어떻게의 기술이었다. 얼마의 기술은 어디에도 없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병목이 하나씩 지워진 바다

속도, 살상, 부력, 거리. 네 개의 한계가 육십 년 남짓한 사이에 차례로 지워졌다. 앞의 셋은 포인의 기계가, 마지막 하나는 라르센의 기지와 공장선이 풀었다. 한계 하나가 풀릴 때마다 사냥은 쉬워졌고, 쉬워진 사냥은 다음 한계를 풀 이유가 되었다. 문제는 맨 마지막에 남는 병목이다. 흰긴수염고래는 한 번에 한 마리를 낳고, 임신 기간만 열 달이 넘는다. 기술은 거의 모든 것을 풀 수 있었지만 번식 속도는 풀 수 없었다. 기술이 풀지 못한 마지막 병목은 처음부터 바다 쪽에 있었다.

그렇다면 가격이 브레이크가 되어 주었는가. 일부는 그랬다. 1930~31년 시즌의 기록적 수확은 기름값 하락을 불렀고, 이듬해 노르웨이 선단 대부분이 출어를 쉬었다고 전한다.⁹ 앞선 글의 문장을 다시 꺼내면, 시장은 상품을 대체할 뿐 생명을 구하지 않는다. 쉬게 한 것은 고래를 위한 연민이 아니라 과잉 공급이었다. 그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시즌 뒤인 1937~38년 시즌에는 남극해에서 4만 6,039마리가 잡혔다.⁹

규제가 나온 뒤에도 같은 문법이 남았다. 1946년 국제포경규제협약 이후 남극해 어획 상한은 ‘흰긴수염고래 단위’로 정해졌다. 한 시즌 1만 6천 단위였고, 흰긴수염고래 한 마리가 한 단위, 참고래 두 마리, 혹등고래 두 마리 반이 각각 한 단위로 계산되었다.¹² 이 환산이 기름 산출량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은 당시 통계 보고서가 직접 보여 준다. 크고 기름 많은 고래부터 겨누게 하는 구조로 읽힐 수 있다. 총량을 정하는 숫자마저 고래를 세지 않고 기름을 셌다. 규제조차 효율의 언어로 쓰인 것이다. 상업포경이 1982년 중지 결정을 거쳐 1986년에 멈추기까지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따라간다.

우리가 아직 정하지 않은 숫자

오늘의 효율 곡선 위에 서 있는 것은 고래잡이가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연산이 싸지면 우리는 같은 일을 더 적은 전력으로 하게 될까, 아니면 더 많은 일에 전력을 쓰게 될까.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아직 어떤 통계도 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래잡이의 선례는 한 가지를 보여 준다. 효율의 곡선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것은 언제나 곡선 바깥의 무엇이다. 고갈이거나, 가격이거나, 선택이다.

작살포를 쏜 사람들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그 계산이 한 번도 묻지 않은 것이 있었을 뿐이다. 얼마면 족한가. 그 숫자를 누가, 언제, 어떤 단위로 정할 것인가. 정하지 않으면 바다가 대신 정한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갑판 위에서는 작살이 빨라지는 속도만 보이고, 바다가 비어 가는 속도는 보이지 않았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속도를 갑판 바깥에서 세는 일이다.


* 참고할 말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전도서 5:10


1. Fortune, “Microsoft CEO Satya Nadella believes DeepSeek could be a win for tech, even as Microsoft’s shares tumble,” 2025.1.27. 나델라의 게시글은 “Jevons paradox strikes again!”.

2. William Stanley Jevons, The Coal Question (London: Macmillan, 1865), ch. 7 “Of the Economy of Fuel.”

3. “Svend Foyn,” Wikipedia; “Whaling in Norway,” Wikipedia. 1863년 증기 포경선 건조, 1870년 작살포 특허.

4. Karl-Hermann Kock, “Whaling and Whale Management in the Southern Ocean, and German Participation and Interests Therein,” Deutsches Schiffahrtsarchiv 33 (2010). 사체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부력을 확보.

5. “Harpoon,” Wikipedia. 1867년 Gaetano Amici(덴마크)와 George Welch(영국)의 특허.

6. “Whaling in Norway,” Wikipedia. 1885~86년 핀마르크 포획 기록(참고래 1,046마리, 흰긴수염고래 148마리).

7. “Larsen, Carl Anton,” Falkland Islands Dictionary of Biography; “Compañía Argentina de Pesca,” Wikipedia. 1904년 11월 16일 도착, 12월 24일 첫 기름.

8. “Larsen, Carl Anton,” Falkland Islands Dictionary of Biography(1923년 로스해 원정); “Lancing,” NOAA Office of National Marine Sanctuaries, Maritime Heritage(1925년 개조, 선미 경사로).

9. Committee for Whaling Statistics, International Whaling Statistics, vols. VIII (1935/36), X (1936/37), XII (1937/38), Oslo. 1930~31 시즌 표 수록.

10. WWF 추정치(1만~2만 5천 마리)를 전하는 Better Planet Education 팩트시트에서 재인용.

11. 『老子』 46장.

12. Committee for Whaling Statistics, International Whaling Statistics, vols. XXXVI (1954/55), XXXVIII (1955/56)의 흰긴수염고래 단위 환산 설명;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Regulation of Whaling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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