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 › 모세오경
창세기 6:1–8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일곱 절 끝에서 노아가 불린다
보는 눈의 세 장면, 마음의 두 방향
제6편 · 2026.10.29 · Watchman
이름을 하나씩 부르던 5장 뒤로, 개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일곱 절이 이어진다
창세기 5장은 아담과 셋, 에노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고, 마지막에는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6:1절부터는 개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번성하는 ‘사람’, 그들에게 태어난 딸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올 뿐이다. 사람의 이름이 다시 불리는 곳은 6:8절이다.
이번에 살필 본문은 6:1–8절이다. 여기서 끊는 이유는 6:9절이 ‘이것이 노아의 족보’(엘레 톨돗 노아)라는 표제로 새 단위를 열기 때문이다.¹ 이 글에서는 본문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살핀다. 6:1–2절은 사람의 번성과 혼인, 6:3절은 주의 말씀, 6:4절은 네피림에 관한 설명을 다룬다. 6:5–7절은 사람의 악을 보신 주의 반응을 전하고, 6:8절은 노아를 소개한다. 5편에서 예고한 ‘위로’와 ‘수고’의 어근은 이번 편에서 살피고, ‘동행’의 표현은 다음 편으로 넘긴다.
‘보다’는 두 번 나오고 ‘여호와’는 다섯 번 나온다
6:1–8절에서 ‘보다’가 쓰인 곳은 두 번이다. 6: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았고’(와이르우), 6:5절에서 주께서 사람의 악을 ‘보셨다’(와야르).² 6:2절은 딸들을 ‘좋다’(토보트)는 뜻의 말로 묘사한다. 이 문맥에서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6:5절은 사람 마음의 생각이 오로지 악하다고 서술한다. 6:8절에는 ‘보다’ 대신 ‘눈’이 나온다. 히브리어 표현에는 ‘주의 눈에’(베에이네이)라는 말이 들어 있고, 본문 서술은 노아가 주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다. ‘보다’가 두 번 등장하고 마지막에 ‘눈’이라는 표현이 이어지므로, 이를 시선과 관련된 세 장면으로 묶어 살펴볼 수 있다. 이 구성은 필자의 정리이다. 아래 표에서 ‘관찰’은 본문에 직접 나타나는 표현을, ‘추론’은 그 표현들을 연결한 해석을 뜻한다.
| 반복 구절 | 내용 | 상태 |
|---|---|---|
| ‘보다’(6:2, 6:5) | 하나님의 아들들이 본다 / 주께서 보신다 | 관찰 |
| ‘좋다’(6:2) ↔ ‘악’(6:5) | 딸들에 대한 묘사 / 사람의 악에 대한 서술 | 관찰 |
| ‘눈’(6:8) | 노아가 주께 은혜를 입는다(히브리어 표현은 ‘주의 눈에’) | 관찰 |
| 시선의 세 장면 | 하나님의 아들들이 본다 / 주께서 보신다 / 노아가 주께 은혜를 입는다 | 추론 |
6:1–8절에서 ‘여호와’는 다섯 번 등장한다(6:3, 5, 6, 7, 8절). ‘엘로힘’은 두 번 나오며,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에 포함되어 있다(6:2, 4절). 5장에서 여호와가 5:29절 한 번뿐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이 범위에서는 주의 말씀과 보심, 슬퍼하심이 ‘여호와’라는 이름과 함께 서술된다. 노아가 은혜를 입는 마지막 절에도 같은 이름이 나온다. 흠정역은 6:5절을 ‘주께서’로 옮겨 히브리어 본문과 맞지만, KJV는 같은 자리를 대문자 ‘GOD’으로 표기하므로 영역만 읽으면 하나님으로 보이기 쉽다.³ 히브리어 본문은 여호와이다.⁴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담’은 관사나 전치사가 붙은 여러 형태로 6:1–7절에 여덟 번 나오고 6:8절에는 나오지 않는다.⁵ 그 일곱 절에서 사람은 집합으로만 불린다. 6:4절의 ‘이름 있는 자들’(안셰 핫셈)은 명성을 얻은 이들을 가리키지만, 이들의 개인 이름은 제시되지 않는다. 개인의 이름이 다시 나오는 곳은 6:8절의 ‘노아’이다.
3장의 ‘보고 취함’이 되돌아오고 ‘마음’은 8장으로 이어진다
6:2절의 문장 짜임은 3:6절과 닮았다. WLC에서 3:6절은 여자가 ‘보니’(와테레), 나무가 ‘좋고’(토브), ‘취하여’(와티카흐)의 순서이고, 6:2절은 ‘보았고’(와이르우), ‘좋은’(토보트), ‘취하였다’(와이크후)의 순서이다.⁶ 두 절에는 ‘보다’, ‘좋다’, ‘취하다’에 해당하는 어휘가 같은 순서로 나타난다. 다만 3:6절의 ‘좋다’는 나무를 말하고 6:2절의 ‘좋다’는 딸들을 말한다. 이러한 배열은 두 장면을 연결해 살펴볼 근거가 될 수 있다. 다만 어휘의 순서만으로 두 사건의 의미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원어 관찰
3:6 וַתֵּרֶא (와테레) · טוֹב (토브) · וַתִּקַּח (와티카흐) — 풀이 “보니 · 좋고 · 취하여”
6:2 וַיִּרְאוּ (와이르우) · טֹבֹת (토보트) · וַיִּקְחוּ (와이크후) — 풀이 “보았고 · 좋은 · 취하였다”
앞선 편에서 살핀 5:29절의 두 어근이 6:6절에 다시 등장한다. 5:29절의 ‘수고’(잇차본)는 3:16, 3:17, 5:29절에만 나오는 낱말로 어근이 ‘아차브’(עצב)이다. 6:6절에서 주께서 마음속으로 근심하셨다고 전할 때의 동사 ‘와이트앗체브’(וַיִּתְעַצֵּב)가 같은 어근이다.⁷ 또 6:6–7절의 ‘슬퍼하시고’(와인나헴, 니함티)는 5:29절의 ‘위로하리라’(예나하메누)와 같은 어근이다. 라멕이 아들의 이름을 설명하며 사용한 ‘위로’와 ‘수고’의 두 어근이 6:6절에서는 주의 슬퍼하심과 근심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그러나 같은 어근이 쓰였다고 해서 각 문맥의 뜻까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어지는 두 절은 사람의 마음과 주의 마음을 차례로 언급한다. 6:5절은 사람 마음에서 빚어지는 생각(예체르)이 계속 악할 뿐이라고 서술하고, 6:6절은 주께서 마음속으로 근심하셨다고 전한다. ‘그의 마음속으로’에 해당하는 ‘엘 리보’는 8:21절에서도 주를 가리키며 사용된다.⁸ 8:21절에서 주는 사람 때문에 땅을 다시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그 이유로 사람 마음의 ‘예체르’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점이 나온다. 6:5절과 거의 같은 진단이다. 두 대목은 사람 마음의 악을 공통으로 언급하지만, 그에 이어지는 선언은 다르다. 6:7절은 멸하겠다고 하고 8:21절은 다시 저주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 차이는 홍수 전후의 서사적 대비로 살펴볼 수 있다. 두 구절만으로 하나님의 성품이나 판단 기준이 바뀌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네피림’이라는 말이 다른 본문에서는 어떻게 쓰이는지도 살펴본다. ‘네피림’(하네필림)은 구약의 두 절에 걸쳐 총 세 번 등장한다. 6:4절과 민수기 13:33절이다. 민수기 13:33절은 가나안을 정탐한 이들이 아낙의 자손을 네피림에서 나온 자들로 보고하며 자신들이 메뚜기 같았다고 말하는 대목이다.⁹ 6:4절은 네피림이 ‘그때’와 ‘그 후에도’ 땅에 있었다고 서술한다. 다만 이 시간 표현과 뒤따르는 출생 서술의 관계만으로 네피림의 기원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어지는 ‘그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해석이 갈린다.
하나님의 아들들, 백이십 년, 슬퍼하심을 두고 읽기가 갈린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베네 하엘로힘)이다. 본문은 이들이 누구인지 직접 밝히지 않는다. 한 해석은 5장에서 이어지는 셋의 계보로 보고, ‘사람의 딸들’을 그 바깥의 사람들로 본다. 다른 해석은 천상의 존재로 본다. 같은 히브리어 표현이 욥기 1:6절과 2:1절에서 주 앞에 나아오는 존재들에게 쓰이고, 일부 칠십인역 사본이 6:2절을 ‘하나님의 천사들’로 옮겼다는 설명이 있다.¹⁰ 베드로후서 2:4–5절은 죄를 지은 천사들을 심판 때까지 어둠에 넘기신 일과 홍수 때 노아를 보호하신 일을 이어서 말하고, 유다서 6절은 자기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않고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어둠 속에 묶어 두셨다고 말한다. 두 본문은 창세기 6:2절을 직접 가리키지 않으므로, 두 본문과 창세기 6장을 연결하는 데에는 해석적 판단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확인되는 것은 6:2절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대비시키고 그 행위를 ‘보고 취함’으로 서술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6:3절이다.
3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육체이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그의 날들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3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for that he also is flesh: yet his days shall be an hundred and twenty years.
— 창세기 6: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다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돈’은 뜻이 분명하지 않아 번역이 갈린다. 백이십 년이 수명의 한도인지, 심판까지 허락된 기간인지는 이 절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절 자체에는 홍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어느 해석도 이 문장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칼뱅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 구별하신 셋의 후손으로 읽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칼뱅(1509–1564)은 『창세기 주석』 6장에서 이 대목을 다룬다.¹¹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입양으로 하나님께 구별된 셋의 가문으로 풀었다. 여기서 입양은 현대의 법적 입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자녀로 삼아 따로 세우셨다는 뜻이다. 그는 ‘사람의 딸들’을 가인의 후손과 다른 불경건한 족속으로 보았다. 잘못은 아름다움을 본 일 자체가 아니라 눈의 욕심에 이끌려 신앙의 경계를 허문 혼인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천사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해석을 불합리하다고 보아 배척했다. 귀족과 평민의 혼인으로 보는 칼데아 역의 해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6:3절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 끝에 심판을 선언하시는 말씀으로 읽었고, 백이십 년은 수명의 한도가 아니라 온 세상에 허락된 회개의 기간이라고 풀었다. 6:6절의 슬퍼하심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슬픔을 표현한 말씀이라고 읽었다. 이 단락은 후대의 한 읽기를 소개한 것이며, 위의 해석에서 근거로 쓰지 않았다.
6:1–8절을 ‘보고 취함, 마음의 두 방향, 이름 없는 세상의 은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보고 취함. 6:2절의 보다, 좋다, 취하다는 3:6절과 같은 어휘 순서를 보인다. 6:5절에서는 보는 주체가 ‘하나님의 아들들’에서 주께로 바뀐다.
마음의 두 방향. 6:5절은 사람 마음의 악을 서술하고, 6:6절은 주께서 마음속으로 근심하셨다고 전한다. 사람의 마음과 주의 마음을 대비해 읽는 것은 필자가 정리한 관점이다. 같은 진단은 8:21절에서 다시 나오지만 이어지는 선언은 달라진다.
이름 없는 세상의 은혜. 일곱 절 동안 사람은 집합으로 불리다가 6:8절에서 노아가 주께 은혜를 입는다. 이 절은 은혜를 입은 까닭을 적지 않는다. ‘노아’의 자음 נח와 ‘은혜’의 자음 חן은 순서가 서로 반대다. 이를 이름과 은혜를 연결하는 말놀이로 볼 여지는 있지만, 본문이 그러한 의도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는다.
은혜를 입은 노아는 어떤 사람으로 불리는가
5:29절에서 위로의 기대와 함께 소개된 노아는 6:8절에서 주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6:9절은 새로운 족보의 표제와 함께 그의 삶을 설명한다. 이어지는 본문은 은혜를 입은 노아의 삶을 어떻게 설명하며, 그 설명은 에녹의 동행과 어떻게 이어지는가. 다음 편에서는 이 연결을 살펴본다.
← 창세기 5:1–32 — 일곱째 사람의 기록은 ‘죽으니라’로 끝나지 않는다 · 창세기 전체 보기
성경 본문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음). 원어 표기는 마소라 본문(WLC)을 따른 필자의 풀이이다. 영문 인용은 킹제임스 성경(KJV)이다.
1. 6:9의 히브리어 ‘엘레 톨돗 노아’는 OpenBible의 WLC 본문으로 확인했으며 BHS 본문과는 대조하지 못했다. 5:1의 표제는 5편 각주 1을 따른다. https://openbible.com/text/genesis/6-9.htm
2. 6:2–5의 히브리어와 KJV는 Lueur.org 비교 본문으로, 6:6–7은 OpenBible의 WLC 본문으로 확인했다. ‘보다’(라아)의 쓰임은 6:1–8절의 WLC 본문에서 직접 훑었다. https://www.lueur.org/bible/comparer/genese6.1-5/KJV,WLC?p=5 https://openbible.com/text/genesis/6-7.htm
3. KJV 6:5의 ‘GOD’ 표기는 Lueur.org의 KJV·WLC 비교 본문에서 KJV 쪽 표기와 WLC의 יהוה를 나란히 보고 확인했다. https://www.lueur.org/bible/comparer/genese6.1-5/KJV,WLC?p=5
4. 여호와와 엘로힘의 수는 6:1–8절 WLC 본문에서 센 것이다. 6:1–5와 6:8은 Lueur.org, 6:6은 Lueur.org와 OpenBible, 6:7은 OpenBible 본문을 썼다. 5장의 수는 5편 각주 9를 따른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5. 계수 기준: WLC 본문에서 어근 אדם(사람)을 접두사(ה, ב, מ)를 포함해 세고 ‘땅’(אדמה)은 제외했다. 6:1, 6:2, 6:3, 6:4, 6:5, 6:6절에 한 번씩, 6:7절에 두 번이다. 낱말의 모음 부호를 제거한 자음 문자열에서 세었으며 같은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다.
6. 3:6의 히브리어는 OpenBible의 WLC 본문으로, KJV 3:6은 Lueur.org 비교 본문으로 확인했다. 흠정역 3:6은 직접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https://openbible.com/text/genesis/3-6.htm https://lueur.org/bible/genese3.6/KJV,WLC
7. 잇차본은 Strong’s H6093이며 어근 H6087에서 온 것으로 표시된다. H6087의 히트파엘 형태가 6:6에 나온다. Blue Letter Bible, Strong’s H6093, H6087. https://blueletterbible.org/lexicon/h6093 https://biblehub.com/hebrew/6087.htm
8. 8:21의 히브리어는 OpenBible의 WLC 본문으로, KJV는 thebible.ch로 확인했다. 흠정역 8:21은 직접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https://openbible.com/text/genesis/8-21.htm https://thebible.ch/KJV/GEN/8/21
9. 네피림은 Strong’s H5303이며 WLC 기준 두 절에 걸쳐 세 번 나온다. 민수기 13:33은 직접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https://www.blueletterbible.org/lexicon/H5303/wlc
10. 셋 계보 해석은 Haydock 주석(1849)에서, 욥기 1:6과 2:1의 용례는 Wikipedia ‘Sons of God’ 항목과 번역 해설에서, 칠십인역 사본의 ‘천사들’ 표기는 Haydock 주석이 Calmet을 인용한 대목에서 확인했다. 모두 2차 자료이며 원전과 직접 대조하지 못했다. 욥기 1:6, 2:1, 베드로후서 2:4–5, 유다서 6은 직접 인용하지 않고 풀어 썼다. https://catenabible.com/gn/6/2 https://en.wikipedia.org/wiki/Sons_of_God https://goddidntsaythat.com/2009/11/15/qa-on-the-sons-of-gods/
11.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6:1–6 주석, John King 영역(웹 판본이므로 쪽수 대신 해당 절 주석으로 적는다). 6:1–4, 6:6, 6:3의 해당 문단을 열어 확인했으며 라틴어 원문과는 대조하지 못했다. https://ccel.org/ccel/calvin/comment3/comm_vol01/htm/xii.htm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