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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8:1–22홍수 전의 진단, 홍수 뒤의 약속
‘기억하시니라’에서 ‘그치지 아니하리라’까지
제9편 · 2026.10.30 · Watchman
물이 마른 것을 본 노아는 왜 방주에서 바로 나오지 않는가
8:13절에서 노아는 방주의 덮개를 벗기고 바깥을 내다본다. 지면이 말라 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곧바로 나갔다고 쓰지 않는다. 땅이 말랐다고 알리는 8:14절의 날짜는 8:13절보다 거의 두 달 뒤이고,¹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는 장면(8:18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8:15–16절 다음에 나온다. 그는 들어갈 때에도 말씀을 받고 들어갔고(7:1절), 나올 때에도 말씀을 받고 나온다.
앞선 글은 두 질문을 남겼다. 문을 닫으신 분은 기억하시는 분으로 나타나는가. 노아의 말이 한마디도 기록되지 않은 채 흐른 방주 안의 시간은 어떻게 서술되는가. 8장은 첫 절에서 첫째 질문에 답한다. 다만 7:16절은 닫으시는 분을 ‘여호와’로, 8:1절은 기억하시는 분을 ‘엘로힘’으로 부른다. 이 이름의 문제는 4부에서 다시 다룬다. 둘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8장에서도 노아의 말이 기록되지 않는다.² 방주 안의 시간은 날짜와 새의 왕복으로 기록된다(8:3–14절).
이번에 살필 범위는 8:1–22절이다. 7장은 물이 땅 위에 백오십 일 동안 넘쳤다는 서술로 끝나고, 8:1절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장면으로 흐름을 바꾼다. 8:22절은 땅이 있는 동안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는 말씀으로 끝난다. 본문은 넷으로 나뉜다. 8:1–5절은 물이 줄어드는 때, 8:6–12절은 까마귀와 비둘기, 8:13–19절은 땅이 마르고 방주에서 나오는 장면, 8:20–22절은 제단과 주의 속말이다. 이 글은 네 장면을 차례로 따라간 뒤, 마지막 장면의 한 문장이 6장의 한 문장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말이 없는 방주 안의 시간은 날짜와 날갯짓으로 기록된다
8:1절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방주 안의 생물들을 기억하셨다는 서술로 시작한다.
1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짐승과 모든 가축을 기억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땅 위에 바람을 지나가게 하시니 물들이 줄어들고
1 And God remembered Noah, and every living thing, and all the cattle that was with him in the ark: and God made a wind to pass over the earth, and the waters asswaged;
— 창세기 8: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기억하다’(자카르)는 8장에서 이 한 번뿐이고, 주어는 엘로힘이다.³ 기억하심의 결과는 말씀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땅 위로 ‘바람’(루아흐)을 지나가게 하시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노아가 한 일은 서술되지 않는다. 행동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노아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이로 등장한다.
7장에서 열린 것은 8장에서 막힌다. 7:11절에서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니브케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니프타후). 8:2절은 같은 샘들과 창들이 ‘막히고’(와이사케루) 비가 ‘그쳤다’(와이클라)고 적는다.⁴ 같은 두 곳에서 열림과 막힘이 짝을 이룬다. 방주의 창은 8:6절에서 노아가 연다. 하늘의 창(아룻보트)과 방주의 창(할론)은 서로 다른 낱말이지만, ‘열다’(파타흐)라는 어근은 7:11절의 하늘의 창과 8:6절의 방주의 창에 함께 쓰였다.
날짜가 기록된 대목을 모으면 방주 안의 시간이 보인다.⁵
| 날짜 | 서술 | 절 |
|---|---|---|
| 600년 둘째 달 17일 |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림 | 7:11 |
| 백오십 일이 끝난 뒤 | 물이 줄어듦 | 8:3 |
| 일곱째 달 17일 | 방주가 아라랏의 산들 위에 머묾 | 8:4 |
| 열째 달 1일 | 산들의 꼭대기가 보임 | 8:5 |
| 사십 일이 끝난 뒤 |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냄 | 8:6–7 |
| 601년 첫째 달 1일 | 물이 땅에서 마름. 노아가 덮개를 제거함 | 8:13 |
| 둘째 달 27일 | 땅이 마름 | 8:14 |
둘째 달 17일에서 일곱째 달 17일까지는 다섯 달이다. 한 달을 30일로 셈하면 백오십 일이 되어 7:24절과 8:3절의 숫자와 맞아떨어진다. 다만 본문이 한 달의 길이를 밝히지는 않으므로 이는 셈법에 기댄 추론이다. 600년 둘째 달 17일에서 601년 둘째 달 27일까지는 날짜만 놓고 보면 한 해에 열흘이 더해진 기간이다.
8:6–12절의 중심은 새이다. ‘보내다’(샬라흐)는 8:7, 8, 9, 10, 12절에 다섯 번 나온다. 까마귀에게 한 번, 비둘기에게 세 번, 그리고 비둘기를 붙들려고 내민 노아의 손에 한 번이다.⁶ ‘돌아오다’(슈브)도 8:3절에 두 번, 8:7, 9, 12절에 각각 한 번씩, 모두 다섯 번 나온다. 이 동사는 물이 땅에서 ‘물러가는’ 모습(8:3절)과 까마귀가 ‘이리저리 왕래하는’ 모습(8:7절),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는’ 모습(8:9절)을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비둘기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모습(8:12절)에도 쓰인다.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서술에 이어, 8:13절은 물이 땅에서 말랐다고 전한다.
비둘기는 처음 나갔을 때 발바닥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고,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붙들어 방주 안으로 데려온다(8:9절). 두 번째로 돌아온 장면은 이렇게 서술된다.
11 그 비둘기가 저녁 때에 그에게로 들어왔는데, 보라, 그것의 입에 올리브 잎사귀가 있더라. 노아가 이로써 물들이 땅에서 줄어든 것을 알았더라.
11 And the dove came in to him in the evening; and, lo, in her mouth was an olive leaf pluckt off: so Noah knew that the waters were abated from off the earth.
— 창세기 8: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노아가 물이 줄어든 것을 알게 되는(와예다) 계기는 그가 한 말이 아니라 비둘기가 가져온 잎 하나로 제시된다. 8장은 노아가 창을 열고(8:6절), 새를 보내고, 손을 내밀고(8:9절), 덮개를 벗기고(8:13절), 제단을 쌓는(8:20절) 모습을 기록한다. 그러나 노아가 한 말은 기록하지 않는다.
‘쉬다’(누아흐) 어근의 낱말은 8:4, 9, 21절에 하나씩 나온다. 방주가 아라랏의 산들 위에 ‘머물렀고’(와타나흐, 8:4절), 비둘기는 발바닥을 둘 ‘쉴 곳’(마노아흐)을 찾지 못했으며(8:9절), 제단에서 올라간 번제의 ‘향기’(하니호아흐)를 주께서 맡으신다(8:21절).⁷ 노아의 이름(노아흐)도 같은 자음으로 쓰이며 8장에 일곱 번 나온다(8:1, 6, 11, 13, 15, 18, 20절). 5:29절은 노아의 이름을 ‘위로’(야나헤무)와 연결해 설명하는데, 8장의 쉼 어휘가 그 이름을 겨냥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는다. 여기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어근의 세 낱말이 방주와 비둘기와 제단을 서술하는 대목에 하나씩 나온다는 점이다. 이를 노아의 이름과 연결된 소리놀이로 볼 여지는 있으나, 그러한 연결은 추론에 해당한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은 8장 안에서 한 번 바뀐다. 엘로힘은 8:1절에 두 번, 8:15절에 한 번 나오고, 여호와는 8:20절에 한 번, 8:21절에 두 번 나온다.⁸ 8장에서 엘로힘은 세 번, 여호와도 세 번 나오며, 이름이 바뀌는 자리는 노아가 제단을 쌓는 8:20절이다. 기억하시고 말씀하여 나오게 하시는 분은 엘로힘으로, 제단의 향기를 맡으시고 속으로 말씀하시는 분은 여호와로 기록된다.
나오라는 명령은 8:16절에 있다.
16 너는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아들들의 아내들도 함께 나오라.
16 Go forth of the ark, thou, and thy wife, and thy sons, and thy sons’ wives with thee.
— 창세기 8: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7:7절과 8:18절은 가족을 부르는 순서가 같고, ‘들어갔다’와 ‘나왔다’가 서로 대응한다. 7:7절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의 아내들이 그와 함께 방주로 들어갔다고 쓰고, 8:18절은 같은 순서에 ‘나왔다’를 놓는다.⁹ 반면 8:16절의 명령은 ‘너와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아들들의 아내들’로, 아내가 아들들 앞에 온다. 6:18절의 명령은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아들들의 아내들’로 아들들이 앞에 있다. 여기서 비교한 6:18, 7:7, 8:16, 8:18절 가운데 노아와 그의 아내가 이어서 호명되는 것은 8:16절뿐이다.
7:1절의 ‘들어오라’(보)와 8:16절의 ‘나오라’(체)는 방주를 가운데 두고 짝을 이루는 말씀이다. ‘나오다’(야차) 어근은 8:16, 17, 18, 19절에 한 번씩 모인다. 또 ‘명령하다’(차와)는 7장의 5, 9, 16절에 한 번씩, 모두 세 번 나오지만 8장에는 한 번도 없다.¹⁰ 나오라는 말씀(8:15–16절)은 ‘말씀하셨다’와 ‘나오라’로 서술되고, 6:22절과 7:5절에서 보았던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는 서술은 8장에 나오지 않는다. 문에 관한 서술도 눈에 띈다. 7:16절에서 주께서 ‘닫으신’ 것을 노아가 여는 장면은 8장에 없다. 노아가 여는 것은 방주의 창(8:6절)이고 벗기는 것은 덮개(8:13절)이다.
8:20절에서 노아는 제단을 쌓고, 정결한 모든 짐승과 정결한 모든 새 가운데서 취하여 번제를 드린다. 8장에서 노아가 하는 마지막 행동이다. 이 서술에는 노아의 기도도 말도 없다. 본문은 노아가 제단을 쌓은 동기를 밝히지 않는다. 방주에서 나온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쌓았을 수 있으나, 본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추측이므로 이 글에서는 사변으로 분류한다.
홍수 전의 진단은 8:21절에서 거의 같은 낱말로 다시 나온다
주께서 번제의 향기를 맡으신 뒤, ‘마음속으로’ 말씀하신다.
21 주께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시고 주께서 마음속으로 이르시되, 내가 이후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다시는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상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이후로는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치지 아니하리라.
21 And the LORD smelled a sweet savour; and the LORD said in his heart, I will not again curse the ground any more for man’s sake; for the imagination of man’s heart is evil from his youth; neither will I again smite any more every thing living, as I have done.
— 창세기 8:2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절의 낱말은 6장의 두 절과 겹친다.¹¹ 6:5절은 사람의 ‘마음’(레브)에서 나오는 ‘상상’(예체르)이 ‘악하다’(라)고 하고, 6:6절은 주께서 ‘마음에’(엘 립보) 근심하셨다고 한다. 8:21절에는 ‘사람의 마음의 상상’(예체르 레브 하아담)이 ‘악하다’(라)는 말과, 주께서 ‘마음속으로’(엘 립보) 말씀하신다는 말이 함께 나온다.
| 요소 | 6:5–7절 | 8:21절 |
|---|---|---|
| 마음의 상상 | 마음(레브)의 생각(예체르) | 마음(레브)의 상상(예체르) |
| 악하다 | ‘오직 악’(라크 라) | ‘악’(라) |
| 때 | ‘종일’(콜 하욤) | ‘어려서부터’(민네우라이우) |
| 주의 마음 | 마음에 근심하심(6:6절) | 마음속으로 말씀하심 |
| 주의 말씀 | 사람을 ‘지우리라’(에므헤, 6:7절) | 땅을 다시 저주하지, 모든 생물을 다시 치지 않으리라 |
6:5절과 8:21절은 ‘예체르’(상상)와 ‘레브’(마음)와 ‘라’(악)를 함께 쓴다. 눈에 띄는 차이는 두 가지이다. 8:21절에는 6:5절의 ‘오직’(라크)과 ‘종일’(콜 하욤)이 없고, 같은 진단 앞에서 주의 말씀이 ‘지우리라’(6:7절)에서 ‘다시는 치지 아니하리라’(8:21절)로 바뀌었다. 같은 진단이 6장에서는 심판의 앞에, 8장에서는 약속의 앞에 놓인다. 이 반복은 심판의 근거였던 진단이 약속의 배경으로 옮겨지는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이는 … 악함이라’(키 예체르 …)가 약속의 이유를 밝히는 말인지, 악함에도 불구하고 약속이 주어진다는 뜻인지는 해석이 갈리며, 이 문제는 4부에서 다룬다.
8:21절의 ‘땅’은 ‘아다마’(האדמה)이다. 이 낱말은 5:29절과 3:17절에도 나온다.¹² 5:29절에서 라멕은 노아를 낳고, 여호와께서 저주하신 땅(아다마)에서 오는 수고와 손의 고통에서 ‘위로’를 얻으리라고 말한다. 3:17절에서는 땅이 사람 때문에(바아부르) ‘저주받은’(아루라) 것으로 서술된다. 8:21절의 주께서는 사람 때문에(바아부르 하아담) 땅을 다시는 ‘저주하지’(레칼렐) 않겠다고 하신다. 세 구절은 ‘땅’(아다마)과 ‘~ 때문에’(바아부르)를 공유하고, 저주를 가리키는 동사는 3:17절과 5:29절의 ‘아라르’와 8:21절의 ‘칼랄’로 다르다. 8:21절이 3:17절의 저주를 거두겠다는 뜻인지, 앞으로 저주를 더하지 않겠다는 뜻인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5:29절의 기대와 8:21절의 약속이 같은 땅을 향한다는 연결은 낱말의 겹침에 근거한 것이다. 이 겹침만으로 8:21절이 5:29절을 가리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그렇게 가리킨다는 표지도 본문에는 없다.
이어지는 8:22절은 이 속말의 두 번째 부분이다.
22 땅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씨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와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2 While the earth remaineth, seedtime and harvest, and cold and heat, and summer and winter, and day and night shall not cease.
— 창세기 8:2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여덟 낱말이 네 쌍을 이룬다.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다. ‘낮과 밤’(욤 와라일라)은 1:14절에서도 나뉘어 불리는 한 쌍이다. ‘그치다’(샤바트)는 2:2–3절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할 때 쓰인 어근이다. 8장은 이 밖에도 1장의 낱말을 몇 군데에서 다시 쓴다.¹³ 8:1절의 ‘바람’(루아흐)은 1:2절의 ‘루아흐 엘로힘’과 같은 낱말이며, 킹제임스 성경은 1:2절을 ‘Spirit’, 8:1절을 ‘wind’로 옮긴다. 8:14절의 ‘땅이 말랐다’(야베샤)는 1:9–10절에서 ‘마른 땅’(야바샤)이 드러나는 대목과 같은 어근이다. 8:17절의 ‘생육하고 번성하라’(페루 우르부)는 1:22절과 1:28절에도 있는 어구이다. 낱말이 겹친다는 사실은 관찰이고, 홍수 뒤의 땅이 창조의 순서를 다시 거치는 구조로 이해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추론이다. 다만 낱말의 겹침만으로 8장이 1장을 의도적으로 가리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그렇게 가리킨다는 표지도 본문에는 없다.
‘이는 마음의 상상이 악함이라’는 약속의 이유인가, 악함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약속인가
8:21절의 쟁점은 ‘이는’으로 옮겨진 접속어 ‘키’(כי)이다. 이 낱말은 ‘~이므로’의 뜻으로도, ‘~일지라도’의 뜻으로도 쓰일 수 있고, 번역본들도 갈린다.¹⁴
첫째는 ‘키’를 인과의 뜻인 ‘~이므로’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for’로 옮긴다. 이 해석은 사람의 마음의 상상이 홍수로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진단이, 이제 심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시는 이유가 된다고 풀어 본다. 제단 직후에 이 말씀이 놓인 점도 이 해석의 근거로 든다.
둘째는 ‘키’를 양보의 뜻인 ‘~일지라도’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NIV는 ‘even though’, NKJV는 ‘although’, YLT는 ‘though’로 옮긴다. 이 해석은 6:5–7절에서 같은 진단이 멸하심의 근거였으므로, 8:21절에서 같은 진단을 멸하지 않으시는 이유로 놓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이 경우 약속은 진단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주어진 것이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는 이 접속을 ‘상상으로 말미암아’(through the imagination)로 옮길 가능성도 적어 두었다. 이 난외주는 다른 번역 가능성도 검토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것만으로 번역자들이 해석을 정하지 못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본문은 접속의 방향을 풀이하지 않는다. 여기서 소개한 두 해석은 땅을 다시 저주하지 않으시고 모든 생물을 다시 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의 내용에서는 차이가 없다. 갈리는 것은 마음의 악함이 이 약속과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이다. 이 글은 어느 쪽도 확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 쟁점은 이름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8장은 엘로힘 세 번과 여호와 세 번으로 나뉘고, 7:16절 한 절 안에서도 이름이 바뀐다. 한 입장은 이를 서로 다른 전승 자료가 접합된 흔적으로 본다. 다른 입장은 창조주를 가리키는 엘로힘이 방주의 시간을 이끌고, 제단 장면부터는 관계를 드러내는 여호와가 나오도록 의도된 설계로 본다. 본문은 이름이 바뀐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라시는 8:16절을 가정의 회복으로, 8:21절의 ‘어려서부터’를 태어나는 때로 풀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11세기 프랑스의 랍비 라시(1040–1105)는 창세기 주석에서 8:16절의 ‘너와 네 아내’를 남편과 아내가 함께 호명된 것으로 보고, 이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부의 생활을 다시 허락하셨다고 풀었다. 그는 이 풀이를 창세기 라바 34:8에 기댄다고 밝힌다. 라시는 8:21절의 ‘어려서부터’(민네우라이우)도 풀이한다. 그는 이를 태아가 모태에서 나오려고 움직이는 순간부터 악한 성향이 주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했고, 이 설명을 창세기 라바 34:10과 이어서 제시한다.¹⁵ 라시가 8:16절을 방주 안의 시간과 방주 밖의 시간을 가르는 말씀으로 보았다는 점은, 위에서 살핀 어순의 차이와 같은 지점을 짚는다. 이 소개는 후대의 한 풀이를 보인 것이며, 위의 해석을 입증하는 근거로 쓰지 않았다.
8장의 짜임은 ‘기억, 마름, 나옴, 제단, 약속’의 순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아래 표에서 상태는 본문의 사실이면 관찰, 거기서 이끌어 낸 읽기이면 추론, 근거가 약한 추측이면 사변이라고 적는다.
| 어휘·구절·주제 | 내용 | 상태 |
|---|---|---|
| ‘기억하다’(자카르) | 8:1절에 한 번, 주어는 엘로힘, 뒤이어 바람과 줄어드는 물 | 관찰 |
| 열림과 막힘 | 7:11절의 터짐과 열림, 8:2절의 막힘과 그침 | 관찰 |
| ‘보내다’(샬라흐)와 ‘돌아오다’(슈브) | 각각 다섯 번, 마지막 ‘돌아오다’는 부정(8:12절) | 관찰 |
| ‘쉬다’(누아흐) 어근 | 8:4, 9, 21절에 하나씩 | 관찰 |
| 하나님의 이름 | 엘로힘 3회(8:1, 15절), 여호와 3회(8:20, 21절), 바뀌는 자리는 8:20절 | 관찰 |
| ‘명령하다’(차와) | 7:5, 9, 16절에 세 번, 8장에는 없음 | 관찰 |
| 8:16절의 어순 | 아내가 아들들 앞에 호명됨(6:18, 7:7, 8:18절과 대조) | 관찰 |
| 6:5절과 8:21절 | 예체르·레브·라를 공유, ‘오직’과 ‘종일’은 없음 | 관찰 |
| 들어오라와 나오라 | 7:1절과 8:16절이 방주를 가운데 두고 짝을 이루며, 노아의 움직임이 말씀 사이에 놓임 | 추론 |
| 심판의 근거와 약속의 배경 | 같은 진단이 6:5–7절에서는 멸하심 앞에, 8:21절에서는 약속 앞에 놓임 | 추론 |
| 1장 어휘의 반향 | 루아흐(1:2), 마른 땅(1:9–10), 낮과 밤(1:14), 샤바트(2:2–3), 생육·번성(1:22, 28) | 추론 |
| 노아의 제단 | 방주에서 나온 사람의 감사였을 수 있음 | 사변 |
먼저 관찰된 것을 정리한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자(8:1절) 샘과 창이 막히고(8:2절), 물이 줄어드는 날짜와 새의 왕복이 서술되며, 노아가 창을 열고 덮개를 벗긴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말씀하시고(8:16절)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며(8:18절), 제단과 속말(8:20–22절)로 끝난다. 이 가운데 노아의 말은 한마디도 없고, 제단 장면에 이르면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 엘로힘에서 여호와로 바뀐다. 8:21절의 진단은 6:5절과 같은 낱말을 쓰되 ‘오직’과 ‘종일’을 덜고 있다.
이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노아는 7:1절의 말씀을 받고 들어갔고 8:16절의 말씀을 받고 나오므로, 그의 움직임이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놓이는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둘째, 6:5–7절에서 심판의 근거였던 진단이 8:21절에서는 약속의 앞에 놓이므로, 같은 낱말로 제시된 진단이 서로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풀어 볼 수 있다. 다만 이 진단이 약속의 이유를 밝히는 말인지, 악함에도 불구하고 약속이 주어진다는 뜻인지는 해석이 갈린다. 셋째, 바람과 마른 땅과 생육·번성의 어휘가 1장과 겹치므로 홍수 뒤의 땅이 창조의 순서를 다시 거치는 구조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 셋은 말씀과 행동의 배열, 반복되는 낱말, 1장 낱말과의 겹침에 근거한 추론이며, 본문이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므로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 패턴들은 앞선 글에서 살핀 명령과 순종의 구조(6:22절, 7:5절)와 이어지되, 8장에서는 순종의 공식 대신 기다림과 날짜가 서술의 자리를 차지한다.
근거가 약한 추측도 하나 적어 둔다. 노아의 제단이 방주에서 나온 사람의 감사였을 수 있다. 그러나 8:20절은 제단의 동기를 적지 않으므로 이는 사변이다.
마음속으로 하신 약속은 9장의 말씀과 어떻게 이어지는가
8:21–22절의 말씀은 주께서 ‘마음속으로’ 하신 말씀이다. 본문은 노아가 이 속말을 들었다고도, 듣지 못했다고도 적지 않는다. 다음 본문인 9장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음속으로 하신 약속은 9장에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어떻게 이어지는가. 그리고 8:21절이 짚은 마음의 진단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집안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서술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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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인용: 킹제임스 흠정역(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음). 원어 표기는 마소라 본문(WLC)을 따른 필자의 풀이이다. 영문 인용은 킹제임스 성경(KJV)이다.
1. 8:13–14절의 날짜는 WLC·KJV(https://www.bibliaonline.com.br/wlc+kjv/gn/8)로 확인했다. 첫째 달 첫째 날과 둘째 달 이십칠일이며, 한 달의 길이는 본문에 밝혀져 있지 않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2. WLC 8:1–22절을 통독하여 노아가 말하는 직접 화법이 없음을 확인했다. 7장도 같다(제8편 각주 1).
3. 8:1의 ‘자카르’(וַיִּזְכֹּר)가 8장에서 쓰인 횟수는 WLC 8:1–22절을 직접 센 것이다. 8:1은 KJV 본문으로도 확인했다. 흠정역 8:1은 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은 것이다.
4. 7:11의 ‘니브케우’(נִבְקְעוּ), ‘니프타후’(נִפְתָּחוּ), 8:2의 ‘와이사케루’(וַיִּסָּכְרוּ), ‘와이클라’(וַיִּכָּלֵא), 8:6의 ‘와이프타흐’(וַיִּפְתַּח), ‘아룻보트’(אֲרֻבֹּת), ‘할론’(חַלּוֹן)은 WLC로 확인했다.
5. 날짜는 WLC 7:11, 7:24, 8:3–5, 8:13–14절로 확인했다. ‘다섯 달 = 백오십 일’은 한 달을 30일로 놓은 셈이며 본문의 서술이 아니다.
6. 계수 기준: WLC 8장의 자음 문자열을 단어 단위로 나누어 접두사가 붙은 형태를 포함해 센다. ‘샬라흐’(שלח)는 8:7(וַיְשַׁלַּח), 8:8(וַיְשַׁלַּח), 8:9(וַיִּשְׁלַח יָדוֹ), 8:10(שַׁלַּח), 8:12(וַיְשַׁלַּח)이다. ‘슈브’(שוב)는 8:3(וַיָּשֻׁבוּ, וָשׁוֹב), 8:7(וָשׁוֹב), 8:9(וַתָּשָׁב), 8:12(שׁוּב)이다. 같은 방법으로 다시 세어 같은 결과를 얻었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7. 8:4의 ‘와타나흐’(וַתָּנַח), 8:9의 ‘마노아흐’(מָנוֹחַ), 8:21의 ‘하니호아흐’(הַנִּיחֹחַ)는 WLC로 확인했다. 노아의 이름(נֹחַ)은 8:1, 6, 11, 13, 15, 18, 20절에 있다. KJV 8:21의 난외주는 ‘a savour of rest’(Heb.)를 적는다. 5:29의 ‘야나헤무’(יְנַחֲמֵנוּ)는 WLC로 확인했다.
8. 계수 기준은 각주 6과 같다. 엘로힘(אֱלֹהִים)은 8:1(두 번), 8:15, 여호와(יהוה)는 8:20(לַיהוָה), 8:21(두 번)이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7:16절 안의 이름 전환은 WLC 7:16으로 확인했다.
9. 8:16(אַתָּה וְאִשְׁתְּךָ וּבָנֶיךָ וּנְשֵׁי־בָנֶיךָ אִתָּךְ), 8:18(וַיֵּצֵא־נֹחַ וּבָנָיו וְאִשְׁתּוֹ וּנְשֵׁי־בָנָיו אִתּוֹ), 7:7(וַיָּבֹא נֹחַ וּבָנָיו וְאִשְׁתּוֹ וּנְשֵׁי־בָנָיו אִתּוֹ), 6:18(אַתָּה וּבָנֶיךָ וְאִשְׁתְּךָ וּנְשֵׁי־בָנֶיךָ אִתָּךְ)의 어순 비교는 WLC로 했다. 7:13절은 아들들의 이름을 먼저 적고 아내를 뒤에 둔다.
10. ‘야차’(יצא) 어근은 8:16(צֵא), 8:17(הוצא, 기록형 케티브), 8:18(וַיֵּצֵא), 8:19(יָצְאוּ)이다. 8:7의 까마귀에 쓰인 ‘야초’(יָצוֹא)는 이 계수에서 뺐다. ‘차와’(צוה)는 7:5, 9, 16절에 있고 8장에는 없다. 방주의 ‘문’(פֶּתַח)은 6:16에 나오고 7–8장에는 나오지 않는다. 계수 기준은 각주 6과 같다.
11. 6:5–7과 8:21의 ‘예체르’(יֵצֶר), ‘레브’(לֵב), ‘라’(רַע), ‘라크’(רַק), ‘콜 하욤’(כָּל־הַיּוֹם), ‘민네우라이우’(מִנְּעֻרָיו), ‘엘 립보’(אֶל־לִבּוֹ), 6:6의 ‘와이트앗체브’(וַיִּתְעַצֵּב), 6:7의 ‘에므헤’(אֶמְחֶה)는 WLC·KJV로 확인했다.
12. 3:17의 ‘아루라 하아다마 바아부레카’(אֲרוּרָה הָאֲדָמָה בַּעֲבוּרֶךָ), 5:29의 ‘에라라 여호와’(אֵרְרָהּ יְהוָה), 8:21의 ‘레칼렐 … 바아부르 하아담’(לְקַלֵּל … בַּעֲבוּר הָאָדָם)은 WLC·KJV로 확인했다.
13. 1:2(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1:9–10(הַיַּבָּשָׁה), 1:14(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1:22와 1:28(פְּרוּ וּרְבוּ), 2:2–3(וַיִּשְׁבֹּת, שָׁבַת), 8:1(רוּחַ), 8:14(יָבְשָׁה), 8:17(וּפָרוּ וְרָבוּ), 8:22(לֹא יִשְׁבֹּתוּ)은 WLC·KJV로 확인했다.
14. KJV 8:21은 ‘for’이며 난외주에 ‘or, through the imagination’이 있다(WLC+KJV 8장). NIV(‘even though’), NKJV(‘although’), YLT(‘though’)는 https://www.biblia.com/bible/Ge8.21 과 https://www.biblehub.com/niv/genesis/8-21.htm 의 본문으로 확인했다. ‘키’의 용법 범위는 사전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15. 라시, 『창세기 주석』 8:16과 8:21. 8:16은 https://widetorah.com/genesis/8/16/ 에서 히브리어 원문과 영어 풀이로, 8:21은 https://widetorah.com/genesis/8/21/ 에서 영어 풀이로 확인했다. 영어 번역자는 해당 페이지에 밝혀져 있지 않아 직접 인용하지 않았고, 한국어 풀이는 필자의 요약이다. 8:21 주석의 히브리어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8:21 풀이의 출처로는 창세기 라바 34:10만 적었다. 같은 페이지의 셰부오트 36a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반복에 관한 언급으로 보여 ‘어려서부터’ 풀이와는 연결하지 않았다. 성경 본문의 후대 해석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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