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3%대의 나라, 왜 살림은 팍팍한가

비 내린 한국의 골목길에서 빈 식당을 지키는 자영업자가 멀리 불 밝힌 반도체 공장을 바라보는 모습. 반도체 호황과 내수 부진, 한국 경제성장과 체감경기의 격차를 상징한다.
멀리 반도체 공장은 환하게 빛나지만, 골목의 식당에는 빈자리만 남아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서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의 거리를 보여 주는 상징적 이미지.

성장률 3%대의 나라, 왜 살림은 팍팍한가

총량의 언어와 생활의 언어 사이에서 — 대한민국 경제 진단

2026.10.26 | 경제·국방 · 사회·문화


수출은 호황을 말하고, 골목은 매출 감소를 말한다

2026년 9월 2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3.7%로 높였다. 석 달 전 제시했던 2.6%에서 1.1%포인트 올린 수치다.¹ 한국은행(3.3%)과 한국개발연구원(KDI, 3.2%)의 전망도 3%를 넘는다.² 한국은행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인 4,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³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통계가 있다. 2분기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29만 5천 원으로 1년 전보다 4.5% 늘었다. 그러나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소득은 1.5%, 실질 소비지출은 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이전소득은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영향으로 20.4% 늘었다.⁴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는 97만 6천 곳으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100만에 가까웠다.⁵ 9월 고용동향에서 전체 취업자는 11만 3천 명 늘었으나, 15~29세 취업자는 47개월째 줄었다.⁶

두 묶음의 통계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수출과 기업 활동, 가계의 소득과 소비, 자영업의 현실이라는 경제의 서로 다른 면을 각각 보여 줄 뿐이다. 이 글은 그 면들이 왜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지에서 출발한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부산 북항의 상어가 한 달 만에 154만 명을 모은 뒤 무엇이 남는가를 살펴보았다. 사람을 모으는 일과 그 이후의 변화를 감당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지를 묻는 글이었다. 이번에는 같은 질문을 한 나라의 경제에 던진다.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곳과 그 성과가 닿는 곳은 같은가.

이 글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다시 진단한다. 어렵다는 결론을 정해 놓고 근거를 찾지 않는다. 회복을 말하는 지표와 어려움을 말하는 현실을 모두 인정한 뒤, 둘 사이의 간극이 어디서 생기는지를 따라간다.

1934년의 경고와 일본의 ‘실감 없는 호황’

오늘날 GDP로 대표되는 국민경제 총량 지표의 뿌리부터 보자. GDP는 일정 기간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합한 지표다. 그 뿌리인 국민소득 통계는 대공황 직후 미국 상원의 요청으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1934년 작성한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쿠즈네츠는 이 보고서에서 개인 간 소득 분포를 알지 못하면 경제적 복지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으며, 국민소득만으로 한 나라의 복지를 추론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⁷ 총량을 재는 도구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었다. 다만 그 총량이 누구의 소득이 되었는지는 총량 안에 들어 있지 않다.

수출 주도 회복과 체감의 괴리라는 한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 내각부의 경기기준일자로 2002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73개월 동안 이어진 경기 확장은 당시 전후 최장이었고, 흔히 ‘이자나미 경기’로 불린다.⁸ 수출과 설비투자가 이끌었고 대기업 중심으로 실적이 개선됐다. 그러나 임금과 소비의 증가는 제한적이었다. 같은 기간 취업자 증가율은 연 0.1%에 그쳤다는 분석이 있고, 1인당 명목임금도 하락 기조였다는 지적이 있다.⁹ 그래서 ‘실감 없는 경기회복’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해외 수요가 급감하자 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일본 경제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2000년대 일본과 2026년 한국이 같지는 않다. 한국의 근로소득은 11분기 연속 늘었고, KDI는 반도체 호황이 내년에는 민간소비로도 번질 것으로 전망한다.⁴ ² 이 글이 비교하는 것은 산업구조 전체가 아니라 한 가지, 호황이 한 부문에 집중될 때 체감이 따라오는 방식이다. KDI는 이번 성장률 상향분 0.7%포인트 가운데 0.6%포인트가 반도체 효과이며, 소득 증가가 반도체 부문에 편중되어 있다고 설명했다.¹⁰ 호황이 일부 산업에 집중될수록, 그 성과가 다른 산업과 가계에 닿기까지 거쳐야 할 고리는 늘어난다.

몫과 안정을 묻는 두 사람

논어 계씨편에서 공자는 나라와 집안을 가진 자가 무엇을 근심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한다.¹¹ 이 말은 원래 정치적 질서와 공동체의 안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不患寡而患不均,不患貧而患不安。(불환과이환불균,불환빈이환불안。) “적음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며,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되지 못함을 걱정한다.”

여기서 ‘균(均)’은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는 산술적 평등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몫이 적절하게 돌아가는 질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안(安)’ 역시 경제적 생활 안정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포괄한다. 그러니 공자의 말을 오늘의 소득분배 개념에 그대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다만 공동체의 건강을 부의 총량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은 문장에 분명히 드러난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하다면 그 사회를 번영하고 행복한 사회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보았다. 사회 전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생산물에서 스스로 그럭저럭 먹고 입고 살 만한 몫을 받는 것이 공평하다는 주장도 이어진다.¹² 스미스는 분업과 시장의 작동 원리가 부의 증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경제사상가다. 그런 그가 성장의 설명 곁에 몫의 문제를 함께 놓았다.

두 사상가의 논의가 오늘 한국 경제의 해법을 직접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장의 규모뿐 아니라 그 성과가 어떻게 나뉘는지 살펴야 한다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질문은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를 가르는 이념 논쟁보다 앞선, 성과가 어디에서 멈추는지를 확인하는 구조의 문제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호황이 가계에 닿기까지 지나는 네 개의 길목

수출과 기업 이익의 증가는 임금과 고용, 투자와 소비, 세수 확대 등 여러 경로로 가계와 지역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산 가격의 상승도 한 경로지만 모든 가계의 생활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경로들이 지금 어디에서 느슨해지는지, 네 곳을 짚어 본다.

첫째는 일자리다. KDI는 8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면서도 취업자 증가 규모는 종전 전망보다 6만 명 줄여 잡았다.¹³ 반도체는 고용 유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KDI의 설명이다. 설비투자와 협력업체를 통한 간접 효과가 어느 업종과 지역에 얼마나 퍼지는지는 앞으로 확인할 대목이다. 9월 고용동향에서는 제조업 취업자가 27개월 만에 늘었지만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9만 7천 명 줄었다.⁶ 모든 서비스업이 부진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호황 산업의 회복과 내수 업종의 고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둘째는 소득이다. 2분기 명목소득은 4.5% 늘었지만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소득은 1.5% 증가에 그쳤다. 상반기에 지급된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영향으로 이전소득이 20.4% 늘어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⁴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7%로 전망한다.² 소득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을 얼마나 웃도느냐가 가계가 실제로 더 쓸 수 있는 몫을 결정한다. 소비지출이 0.4% 늘어나는 데 그친 이유는 소득 계층별 차이와 저축, 부채 상환 부담을 함께 살펴야 알 수 있다.

셋째는 가게다. 국세청 집계로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는 97만 5,681개로 전년(100만 8,282개)보다 줄었다. 다만 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업자 단위의 집계다. 소상공인 주요 6대 업종의 폐업률은 11.08%로 전체 폐업률(8.64%)보다 높았다.⁵ 폐업 소상공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중소벤처기업부 설문에서는 70.9%가 수익성 악화와 매출 부진을 폐업 이유로 꼽았고, 이 응답자 가운데 62.5%가 내수 부진에 따른 고객 감소를 들었다. 폐업 당시 68.5%가 부채를 보유했고, 부채 보유자의 평균 부채는 8,531만 원이었다.⁵ 이 설문은 정부 지원사업에 참여한 폐업자를 대상으로 해서 모든 폐업자의 모습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폐업에는 임대료와 인건비, 사업자의 고령화 같은 다른 요인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수출이 늘어나는 동안 내수 업종의 회복은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이다.

넷째는 빚이다.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 8천억 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처음 2,000조 원을 넘었다. 한 분기에 25조 9천억 원이 늘어 4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¹⁴ 한국은행은 주택 거래와 주식 투자 관련 자금 수요 등을 증가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의 증가액(12조 8천억 원)이 주택 관련 대출(12조 2천억 원)을 웃돈 것은 2021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¹⁴ 빚이 늘어난 모든 이유를 생활비 부족으로 돌릴 수는 없다. 자산을 사려고 낸 대출과 생활비를 메우려는 대출은 성격이 다르다. 다만 소득의 증가가 부담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계는 소비를 줄이거나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늘리는 선택 앞에 선다.

반론도 있다. 시차의 문제일 수 있다. KDI도 호황이 내년에는 소비로 번질 것으로 보고 있으니, 성과가 가계에 아직 도착하는 중일 수 있다. 그러나 가계에는 기다리는 동안에도 대출 원리금과 생활비가 어김없이 청구된다. 호황이 도착하는 속도보다 청구서가 도착하는 속도가 빠르면, 가계는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늘려 그 시차를 메우게 된다.

네 개의 길목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이렇다. 성장은 총량의 언어이고, 삶은 분포의 언어다. 성장률 3%는 모든 가계의 소득이 3% 늘었다는 뜻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연봉과 골목 식당의 매출은 같은 GDP 안에 담기지만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삶은 소득의 분포뿐 아니라 물가와 부채, 고용의 안정성, 공공서비스의 질에도 좌우된다.

이 글이 끝까지 묻는 것

이 글은 진단일 뿐 처방이 아니다. 앞으로 사안에 따라 수출과 내수, 일자리와 소득, 부동산과 부채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펴보려 한다. 경제성장의 성과가 국민의 삶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이 질문의 중심에 놓일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핵심 질문은 성장률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그 성장이 생활에 닿기까지의 거리다.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해에도 우리가 ‘살 만하다’고 말할 근거는 숫자 안에 있는가, 숫자 밖에 있는가. 경제지표가 보여 주지 못하는 사람들의 식탁까지 살펴보는 것. 그것이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이 글에서 하려는 일이다.


* 참고할 말씀: ‘재산이 늘면 먹는 자들도 느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 전도서 5:11

각주

1. OECD 중간 경제전망, 2026.9.23. 올해 3.7%(6월 2.6%). 경북매일, 「OECD, 올해 한국 성장률 3.7% 전망…3개월 만에 1.1%p 상향」, 2026.9.24.

2. 한국은행 「경제전망(2026년 8월)」, 2026.8.27(성장률 3.3%, 소비자물가 2.7%). KDI 「경제전망 수정」, 2026.8.19(성장률 3.2%, 2027년 2.2%).

3. 한국은행 「경제전망(2026년 8월)」. 2026년 경상수지 4,500억 달러는 실적이 아닌 전망치.

4. 국가데이터처 2026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 파이낸셜뉴스 영문판, 2026.8.27(월평균 소득 529만 5천 원, 실질소득 +1.5%, 실질 소비지출 +0.4%, 이전소득 +20.4%, 근로소득 11분기 연속 증가).

5. 중소벤처기업부 「폐업자 통계분석 및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 2026.6.30.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2025년 폐업자 현황(97만 5,681개, 사업자 단위). 설문은 폐업 소상공인 1,500명 대상(희망리턴패키지 등 정부사업 참여자). 헤럴드경제·머니투데이·파이낸셜뉴스 2026.6.30 보도.

6. 국가데이터처 「2026년 9월 고용동향」, 2026.10.16. 아이뉴스24·연합뉴스 보도(제조업 27개월 만에 증가, 숙박·음식점업 −9.7만 명).

7. Simon Kuznets, National Income, 1929–1932 (1934), p.7. 개인 간 소득 분포에 관한 문장은 같은 보고서의 인용(Ernst Berndt, BEA Survey of Current Business, 2020.6)에 따른 것. 한국어는 필자의 요약.

8. 일본 내각부 경기기준일자(2002년 1월 저점, 2008년 2월 정점, 확장 73개월).

9. 大和総研, 鈴木準, 「雇用が増えていることの意味」, 2018.3.9(취업자 연율 0.1%). ぶぎんレポート No.224, 2018.8·9월호(1인당 명목임금 하락 기조).

10. KDI 「경제전망 수정」, 2026.8.19. 세계일보, 2026.8.19.

11. 『논어』 계씨(季氏)편. 한국어는 필자의 의역. 판본에 따라 ‘寡’와 ‘貧’의 자리가 바뀐 이설이 있다.

12. 애덤 스미스, 『국부론』(1776) 1편 8장. 한국어는 필자의 의역.

13. 세계일보, 2026.8.19(KDI 취업자 증가 전망 종전 대비 6만 명 하향).

14. 한국은행 「2026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 2026.8.19(헤럴드경제·머니투데이 보도).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