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의 순간이 가장 위험했다
성왕, 사비 천도, 그리고 관산성에서 끝난 개혁
2026.10.26 · 역사 · 한국사
오십 기의 밤
554년, 관산성 인근 구천의 밤이다. 백제의 왕이 보병과 기병 오십 기만 이끌고 길을 서두른다.
『삼국사기』는 성왕이 신라를 기습하려 했다고 기록하지만, 『일본서기』는 전선에서 오랫동안 고생한 아들 여창을 위로하러 가던 길이었다고 전한다.¹ 어느 쪽을 따르든 길목에는 신라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은 그 밤을 넘기지 못했다.
그가 성왕이다. 475년 한성을 잃고 남쪽으로 밀려난 백제가 76년 만에 한강 하류를 되찾을 때, 그 중심에 있던 왕이다. 그러나 그 땅을 되찾은 지 3년 만에, 바로 그 땅을 둘러싼 싸움에서 죽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무령왕이 담로를 통해 흔들린 나라를 다시 묶어 세운 과정을 살펴보았다. 성왕은 그 복구를 바탕으로 국가 체제를 한 단계 더 정비한 왕이다. 나라를 일으킨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이번 글은 그 질문의 기록이다. 가장 크게 이긴 직후가 가장 크게 지는 자리가 되는 일은 왜 되풀이되는가.
도읍을 옮긴 왕, 한강을 되찾은 왕
523년 무령왕이 죽고 아들 명농, 곧 성왕이 즉위했다. 15년 뒤인 538년, 성왕은 도읍을 웅진에서 사비(지금의 충남 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² 금강 하류의 넓은 평지와 서해로 이어지는 물길은 산세에 둘러싸인 웅진이 줄 수 없던 것이었다.
사비 시기에 중앙 관청이 22개 부서로 정비된 것도 성왕 대의 개혁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³
개혁은 안으로만 향하지 않았다. 541년 성왕은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시경』 전문가인 모시박사와 『열반경』 등 경전의 뜻풀이, 그리고 기술자와 화공을 청했고 양은 이를 들어주었다.⁴ 백제가 왜에 불상과 경전을 보낸 것도 이 무렵으로 전한다. 그 연대는 538년설과 552년설로 갈린다. 다만 불교를 매개로 동아시아 문명의 교류망에 이어지려 했다는 방향은 기록들이 같은 쪽을 가리킨다.⁵
그다음이 한강이다. 551년 백제는 신라·가야와 함께 고구려를 쳤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신라 장군 거칠부가 고구려의 열 개 군을 차지했다고 전한다. 백제가 한강 하류의 옛 땅을 회복한 경위는 『일본서기』와 후대 연구를 종합해 살펴야 한다.⁶
433년 나제동맹이 맺어진 지 118년 만에, 동맹은 처음으로 함께 나눠야 할 큰 성과를 얻었다. 앞서 눌지 편에서 살펴본 그 동맹이다.
그러나 2년 뒤인 553년, 『삼국사기』는 신라가 백제의 동북 변경을 빼앗아 신주를 두었다고 적는다. 같은 해 백제 왕의 딸이 진흥왕의 소비(小妃, 정비 아래의 왕비)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동맹을 혼인으로 이어 가려는 시도였을 가능성이 있으나, 그 의도를 기록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⁷
이듬해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죽었고, 신라본기는 이 싸움에서 백제의 좌평 네 명과 병사 2만 9천 6백 명이 죽었다고 전한다.¹
이 대목을 신라의 배신으로 읽으면 이야기는 쉽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의 기록, 그리고 『일본서기』의 서술이 서로 어긋나서 누구의 의도도 확정하기 어렵다. 확인되는 것은 구조다.
한강 하류는 서해를 통해 중국과 이어지는 통로라는 점에서 두 나라 모두에게 필요한 땅이었다. 그 땅을 나눌 규칙이 동맹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같은 시대, 지중해와 양쯔강 하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527년 즉위해 옛 로마 제국의 영토를 되찾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533~534년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무너뜨렸고, 535년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과 전쟁에 들어가 540년 수도 라벤나를 손에 넣었다. 여기까지는 눈부신 회복이었다.
그러나 같은 540년 동쪽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1세가 안티오키아를 점령했고, 541년 시작되어 542년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덮친 역병이 인구와 세수를 갉아먹었다. 이탈리아 전쟁은 장기전으로 번졌고, 로마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554년, 성왕이 죽은 바로 그해에 황제는 실용칙법을 반포해 이탈리아 통치 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을 규정했다.⁸ 20년 가까운 전쟁 끝에 얻은 정점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미 전쟁으로 황폐해져 있었고, 568년 북쪽에서 롬바르드족이 내려오자 제국은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수복에 드는 비용보다 수복한 것을 지키는 비용이 더 커지는 순간이 온다.
양나라는 방향이 다르다. 성왕이 541년 사신을 보내 문물을 청했던 상대가 바로 양 무제다. 502년 양나라를 세운 그는 549년까지 거의 반세기 가까이 재위하며, 불교를 가장 열렬히 후원한 군주로 이름을 남겼다.
그 열정은 의례의 형태로도 나타났다. 황제가 절에 들어가 스스로 몸을 바치는 일을 사신(捨身)이라 한다. 황제의 옷 대신 승복을 입고 사찰의 허드렛일을 맡겠다는 뜻이다. 무제는 이 일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그때마다 신하들은 막대한 재물을 절에 시주해 황제를 ‘되사’ 궁으로 모셔 왔다. 황제의 몸값이 거액의 재물로 치러진 셈이다.
548년 후경이 반란을 일으켰고 549년 수도 건강이 함락되었으며, 무제는 유폐된 채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삼국사기』는 그 549년 백제 사신이 양나라에 닿아 황폐해진 궁성 앞에서 통곡하다 후경에게 갇혔다고 전한다.⁹
성왕이 문물을 구했던 상대가 크게 흔들린 지 2년 뒤에 한강 수복 작전이 벌어진 셈이다. 이 시간적 겹침이 성왕의 판단에 어떤 무게를 더했는지는 사료만으로 알기 어렵다. 다만 백제가 기댈 수 있는 서쪽의 후원이 약해진 시기였다는 사실은 남는다.
세 이야기는 같은 뼈대를 가진다. 회복은 정점에서 완결되지 않고, 정점에서 비용이 청구된다.
땅의 이로움과 사람의 화합
『맹자』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조건을 이렇게 정리했다.
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천시불여지리,지리불여인화。) “하늘의 때는 땅의 이로움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¹⁰
성왕은 땅의 이로움을 얻었다. 한강 하류의 평야와 서해로 나가는 길목이다. 그러나 그 땅이 열어 준 이익이 클수록 동맹의 화합은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사람의 화합이 뒷받침되지 않는 땅은 지키기 어렵다는 맹자의 문장은 윤리의 훈계라기보다 계산서에 가깝다.
『주역』 건괘의 마지막 효는 다른 각도를 비춘다.
亢龍有悔。(항룡유회。) “끝까지 올라간 용은 뉘우칠 일이 생긴다.”¹⁰
고전의 문장은 정점이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는 경고로 전해 온다. 이 글은 거기에 내려올 길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을 보탠다. 이 문장으로 성왕의 선택을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당시 백제가 쓸 수 있던 패를 우리는 모두 알지 못한다.
다만 551년이 정점이었다면, 그 정점에서 풀어야 했던 가장 큰 과제가 분배의 규칙이었다는 점은 구조의 눈으로 보면 분명하다.
공동의 위협이 물러나는 순간
나제동맹을 이어 온 가장 큰 외부 요인은 433년 이래 고구려의 남진이라는 공동의 위협이었다. 551년의 고구려는 안으로는 내분의 상처가 남아 있었고 북쪽에서는 돌궐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연합군은 그 틈을 쳤다.¹¹
연합은 성공했고, 바로 그 성공이 동맹의 존재 이유를 줄였다. 위협이 약해지면 동맹에는 함께 얻은 땅의 분배라는 문제만 남는다. 동맹은 공동의 위협 위에 서고, 위협이 약해지는 순간 분배의 문제가 동맹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성왕은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관제를 정비하고, 문명의 중심과 이어지는 데 성공한 왕이었다. 안을 다지는 개혁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나제동맹의 영토 분배나 장기 협력의 규칙을 새로 마련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이 없다는 것이 합의가 없었다는 증명은 아니다. 다만 이후의 전개는 그런 규칙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정복의 속도에 걸맞은 재정과 병력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 양 무제가 신앙의 후원에 기대며 정치의 균열을 막지 못한 것과 닮은 지점이다. 분배의 규칙을 정하지 않은 동맹에게 승리는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2026년 10월의 한국에서도 이 뼈대를 닮은 쟁점 둘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는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갈등이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권한이 셋으로 나뉜 구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로 공석이 길어졌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사법부 독립과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했다며 9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대법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공문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고, 서울고등법원장은 제청권과 임명권에 우열이 없다고 설명하면서도 재제청의 정당성에는 판단을 유보했다.¹²
다른 하나는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까지 바꾸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10월 전망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5년 1.94%에서 2026년 2.14%, 2027년 2.20%로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인공지능 투자와 반도체 산업의 확장이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6월 추정에서 같은 기간 잠재성장률이 1.85%에서 1.52%로 오히려 낮아질 것으로 보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8월 경제전망에서 반도체에 집중된 성장의 온기가 다수 가계로 충분히 번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¹³ 결국 중요한 질문은 성장률이 얼마나 높아지는가에만 있지 않다. 반도체 산업에서 시작된 성장이 다른 산업의 생산성과 국민의 생활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에 있다.
양쪽 모두 근거를 들어 말하고 있고, 어느 설명이 맞는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앞으로 쌓일 통계가 드러낼 것이다. 두 쟁점은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권한의 경계를, 다른 하나는 호황이 만든 성과가 어디까지 퍼지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둘 다 새로 생긴 힘을 나누는 규칙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권한이 나뉘어 있고 호황이 새로 생긴 자리에서는, 나누는 규칙이 먼저 정해지지 않으면 논쟁이 먼저 격해진다.
이긴 뒤에 누가 규칙을 쓰는가
후대가 그에게 붙인 이름은 ‘성(聖)’이었다. 성스러운 왕이라 불린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승리 뒤의 질문이었다. 그는 한강을 되찾았고, 그 땅을 지키는 싸움에서 기록이 끝났다.
성왕의 죽음 이후 백제와 신라는 적대와 충돌을 거듭했고, 그 길은 660년 사비성 함락으로 이어진다. 660년의 멸망을 성왕의 죽음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한강 하류를 얻은 신라가 서해를 통한 대외 교류의 통로를 얻었다는 점은 다음 글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이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승리 위에 서 있고, 그 승리를 나누는 규칙은 누가, 언제 쓰는가.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승리가 끝나는 자리가 늘 다음 시험이 시작되는 자리라는 사실이다.
* 참고할 말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되도다’ — 시편 127:1
1.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성왕 32년(554)조, 권4 신라본기 진흥왕 15년(554)조; 『일본서기』 흠명기 15년(554)조. 성왕의 출정 목적과 전사 경위에 관한 서술이 서로 다르다. 관산성은 충북 옥천 일대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2.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성왕 16년(538)조.
3. 『주서』 이역전 백제조, 『북사』 백제전. 22부제가 성립한 시기와 성왕 대에 정비되었다는 견해를 두고 이견이 있다.
4.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성왕 19년(541)조.
5. 『일본서기』 흠명기 13년(552)조; 『원흥사가람연기』(538년설).
6.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흥왕 12년(551)조, 권44 거칠부전; 『일본서기』 흠명기 12년(551)조. 백제가 회복한 한강 하류의 범위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해석이 엇갈린다.
7.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흥왕 14년(553)조. 소비(小妃)는 정비 아래의 왕비를 뜻한다.
8. Peter Heather, Rome Resurgent: War and Empire in the Age of Justinian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9.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성왕 27년(549)조; 『양서』 무제기·후경전; 『자치통감』 권161~162.
10. 『맹자』 공손추 하; 『주역』 건괘 상구.
11. 『삼국사기』 권19 고구려본기 양원왕 즉위년(545)·7년(551)조.
12. 노컷뉴스 「법사위 여야, 조희대 이석·재제청 거부 두고 충돌…국감 내내 고성」(2026.10.6); 파이낸셜뉴스 「조희대, 국감서 ‘靑 재제청 공문, 구체적 사유·헌법적 근거 없어’」(2026.10.6); 아이뉴스24 「[2026 국감] 與野, ‘대법관 재제청·李 재판 중단’ 정면 충돌」(2026.10.16); 국민의힘의 권한쟁의심판 청구(2026.9.21)는 아이뉴스24 보도(2026.9.29) 참조.
13. 연합뉴스 「반도체 호황에 작년 1.94%→올해 2.14%→내년 2.20%…IMF 지표 분석」(2026.10.18); OECD의 한국 잠재성장률 추정(2025년 1.85%, 2026년 1.66%, 2027년 1.52%, 2026년 6월 추정)은 같은 보도 참조; 아이뉴스24 「KDI, 올 성장률 3.2%로 대폭 상향…‘반도체 초호황, 체감경기 못 미쳐’」(202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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