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난 사람, 혼자서는 좋지 않다고 하셨다

메마른 갈라진 땅 위에서 한 남자가 손에서 흙먼지를 떨어뜨리며 발밑의 작은 초록 싹을 바라보는 신비롭고 영화적인 창세기 2장 창조 장면
땅의 흙으로 빚어진 사람과 그 발밑에서 돋아나는 생명의 첫 싹 (창세기 2장)

구약 › 모세오경

창세기 2:4–25 — 흙에서 난 사람, 혼자서는 좋지 않다고 하셨다

땅에서 시작해 사람의 곁에 이르는 이야기

제2편 · 2026.10.26 · Watchman


하늘과 땅의 이야기는 땅에서 다시 시작되고, 사람이 그 한가운데 선다

일곱째 날로 닫힌 1장 바로 뒤에서, 본문은 다시 ‘아직 없다’는 말로 시작한다. 들의 풀도 밭의 채소도 아직 나지 않았고, 비도 내리지 않았으며, 땅을 갈 사람도 없다(2:5). 이야기는 왜 이 ‘없음’에서 다시 출발하는가.

1편에서 본 창조 이야기는 일곱째 날에 저녁과 아침의 마감 없이 끝났다. 2:4은 그 자리에서 새 단위를 연다. ‘하늘들과 땅의 생성물들(톨레돗, תוֹלְדוֹת)’이라는 표제를 달고(흠정역 인쇄본은 이 문장을 5절 끝에 놓는다), 1:1과 2:1의 ‘하늘과 땅’을 어순만 바꾸어 ‘땅과 하늘’로 다시 부른다.¹

이 단락은 우주 전체를 내려다보던 1장과 시선이 다르다. 풀도 아직 나지 않은 땅(2:5)에서 시작해, 한 사람과 동산, 그리고 그 사람의 곁으로 차례로 좁혀 든다.

이 이야기에서 처음 드러나는 부족은 땅을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나아가면서 더 깊은 부족이 이어 드러나는 것으로 읽힌다. 사람은 땅을 맡았으나 자기에게 맞는 돕는 이 없이 홀로 있다.

구간내용구조상 역할
2:4하늘들과 땅의 생성물들 (흠정역 인쇄본은 5절 끝)새 단위를 여는 표제
2:5–6들풀·채소·비·땅을 갈 사람이 아직 없음출발 상태 (‘아직’ 두 번)
2:7–9흙으로 사람을 빚음, 동산과 두 나무사람과 터전
2:10–14동산에서 나뉘는 강 넷동산의 물
2:15–17동산을 갈고 지키는 일, 먹는 것에 관한 명령맡긴 일과 한계
2:18–20혼자 있음, 짐승들, 이름 짓기부족의 확인
2:21–25여자를 지으심, 사람의 첫 말, 벌거벗음부족의 채움

2:5에는 ‘아직 ~않았다’는 뜻의 ‘테렘(טֶרֶם)’이 두 번 나온다. 이 단락은 ‘없는 것’을 먼저 말하고 하나씩 채워 가는 모양으로 읽힌다.

물도 두 장면을 잇는다. 2:6의 물은 땅을 적시고, 2:10의 강은 동산에 물을 댄다. 같은 어휘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며, 물을 통해 땅이 살아난다는 주제로 이어지는 것으로 읽힌다.

사람은 땅의 흙으로 빚어지고, 짐승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2:7에서 ‘사람(아담, אָדָם)’과 ‘땅(아다마, אֲדָמָה)’은 한 뿌리에서 난 한 쌍의 낱말로 놓인다.² 사람의 재료는 그 땅의 ‘흙먼지(아파르, עָפָר)’이다. 하나님이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은 ‘산 존재(네페쉬 하야, נֶפֶשׁ חַיָּה)’가 되었다.

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 창세기 2: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원어 관찰

אָדָם (아담) — 사람. 2:7

אֲדָמָה (아다마) — 땅. 2:7

עָפָר (아파르) — 흙먼지. 2:7

נֶפֶשׁ חַיָּה (네페쉬 하야) — 직역 “산 존재”. 흠정역은 2:7을 “살아 있는 혼”, 2:19를 “살아 있는 창조물”로 옮긴다.

לֹא־טוֹב הֱיוֹת הָאָדָם לְבַדּוֹ (로 토브 헤요트 하아담 레바도) — 직역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2:18

עֵזֶר כְּנֶגְדּוֹ (에제르 크네그도) — 직역 “그에게 맞는 돕는 이”. 흠정역은 “합당한 조력자”. 2:18, 2:20

1장은 같은 ‘산 존재(네페쉬 하야)’를 물의 생물과 땅의 짐승에게 썼다(1:20, 21, 24, 30). 2:19도 짐승을 이 이름으로 부른다. 그래서 2:7의 사람은 짐승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로 시작한다. 이는 우선 어휘상의 연결이다. 같은 낱말이 쓰였다고 두 존재의 지위까지 같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사람과 들짐승·새는 같은 동사 ‘빚다(야차르, יָצַר)’로, 같은 ‘땅(아다마)’에서 나온다(2:7, 2:19). 1장에서는 짐승이 ‘만들다(아사, עָשָׂה)’(1:25), 사람이 ‘창조하다(바라, בָּרָא)’(1:27)였다.³ 한편 2:7과 달리 2:19은 짐승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다고 쓰지 않는다. 다만 이 차이와 동사 선택의 차이만으로 존재의 서열을 말할 수는 없다. 짐승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2:16–17의 명령에도 눈여겨볼 점이 있다. 허락(‘아콜 토켈’, אָכֹל תֹּאכֵל)과 경고(‘모트 타무트’, מוֹת תָּמוּת)는 둘 다 같은 동사를 두 번 겹쳐 뜻을 강하게 하는 표현을 쓴다. 허락은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로, 경고는 ‘틀림없이 죽는다’로 읽힌다. 이 명령은 여자가 지어지기 전(2:22)에 사람에게 내려진다.

이제 제목이 된 문장이다. 1장에서 하나님은 지으신 것을 보시고 ‘좋다(토브, טוֹב)’라 하셨고, 여섯째 날 끝에는 지으신 모든 것을 ‘매우 좋다’고 하셨다(1:31). 2:18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좋지 않다(로 토브, לֹא־טוֹב)’를 말씀하신다. 그 대상은 사람이 혼자(레바도, לְבַדּוֹ) 있음이다.

‘좋다(토브)’는 2:4–25에서 다섯 번 쓰인다. 하나님의 판정으로 쓰인 것은 부정형인 2:18 하나뿐이다. 나머지 넷은 열매의 먹기 좋음과 선악을 아는 나무의 이름(2:9, 17), 그 땅의 금(2:12)에 붙은 말이다. 같은 낱말이라도 사물의 성질을 가리킬 때와 하나님의 평가일 때는 쓰임이 다르다. 2:18의 ‘좋지 않다’는 1:31의 ‘매우 좋다’와 맞서는 자리에 선다.

18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해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

18 And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n help meet for him.

— 창세기 2:1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판정은 본문 속 이 사람의 상황에 대한 말씀이다. 독신이나 결혼 여부 일반에 대한 판정은 이 편에서 다루지 않는다. 이 ‘없음’은 2:20에서 다시 확인된다. 사람은 짐승들에게 이름을 주었지만 ‘그에게 맞는 돕는 이(에제르 크네그도, עֵזֶר כְּנֶגְדּוֹ)’는 찾지 못했다.

처음의 부족과 이 부족은 서로 닮았다. 2:5은 땅을 갈 사람이 없다고 하고, 2:20은 그 사람에게 맞는 돕는 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땅에는 사람이 없고, 사람에게는 짝이 없다.

두 ‘없음’이 한 쌍을 이루고, 부족이 땅에서 사람으로 옮겨 가는 것으로 읽힌다. 이 읽기의 근거는 두 문장의 내용이다.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가 남자에게서 취하여졌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하니라.

23 And Adam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 창세기 2:2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2:23은 창세기에서 사람의 말이 처음 직접 기록되는 자리이다. 1장에서는 하나님만 말씀하셨고, 2:16–18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의 첫 말은 ‘이것(조트, זֹאת)’을 세 번 되풀이한다.

또 여자를 가리키는 ‘여자(잇샤, אִשָּׁה)’는 2:22에서 서술자가 먼저 쓴다. ‘남자(이쉬, אִישׁ)’는 2:23의 사람의 말에서 처음 나온다. 1:27의 ‘남성과 여성(자카르 우네케바, זָכָר וּנְקֵבָה)’와는 다른 낱말 쌍이다. 소리가 닮은 두 낱말이 ‘사람(아담)’과 ‘땅(아다마)’처럼 짝으로 놓였다.

앞서 사람은 짐승들에게 이름을 붙였다. 이 장면의 말은 이름 붙이기에 머물지 않는다. 자기 앞의 존재를 자기와 이어진 존재로 알아보는 말로 읽힌다.

2:24은 ‘그러므로(알켄, עַל־כֵּן)’로 시작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서술자가 독자에게 직접 하는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아직 부모가 없다. 그러니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이 두 사람이 한 일이라기보다, 이후 모든 부부에게 하는 말로 읽힐 수 있다.

이 단락의 어휘는 3장과 4장, 전도서, 시편, 신약으로 다시 울린다

순서는 같은 책, 구약 안, 신약이다. ‘연결 방식’은 어휘 반복, 주제 유사, 직접 인용으로 나누어 적었다. 신약 항목은 모두 후대의 읽기이며, 신약 본문이 말한 만큼만 적는다. 표의 ‘상태’는 본문에 쓰인 사실이면 관찰, 거기서 이끌어 낸 읽기이면 추론, 근거가 약한 추측이면 사변으로 적었다.⁴

이 장반향 구절연결 방식상태
2:71:20, 21, 24, 30어휘 반복. ‘산 존재(네페쉬 하야)’가 1장에서는 짐승에게, 2:7에서는 사람에게 쓰인다관찰
2:5, 153:23어휘 반복. 같은 동사 ‘갈다(아바드)’와 ‘땅(아다마)’이 쫓겨난 뒤의 일로 되돌아온다관찰
2:153:24; 4:9어휘 반복. ‘지키다(샤마르)’가 그룹들과 가인의 말에 다시 나온다관찰
2:93:6어휘 반복. ‘먹기에 좋고(토브 레마아칼)’와 ‘탐스러운(네흐마드)’이 같은 어휘로 되풀이된다관찰
2:18전 4:8–12주제 유사.
‘좋다(토브)’와 ‘하나(에하드)’의 대비.
둘이 하나보다 낫다는 취지의 말
추론
2:18시 33:20; 121:2; 신 33:29어휘 반복. ‘돕는 이(에제르)’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관찰
2:7고전 15:45직접 인용, 후대의 읽기. 바울이 2:7을 끌어와 첫 사람 아담을 말한다관찰
2:24마 19:4–5; 엡 5:31직접 인용, 후대의 읽기. 예수와 바울이 2:24을 인용한다관찰

전도서 4:8은 아들도 형제도 없이 홀로 수고하는 사람을 말하고, 4:9–12은 그 반대편에서 둘이 나은 까닭을 든다.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함께 누우면 따뜻하며,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도서가 창세기 2장을 인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두 본문은 ‘좋다(토브)’와 ‘하나(에하드)’라는 어휘와 주제를 공유한 사이로만 읽는다.

‘돕는 이(에제르)’는 시편 33:20과 121:2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다. 신명기 33:29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너를 돕는 방패’를 말하는 축복의 일부로 나온다. 이 쓰임은 4부에서 다시 다룬다.

해석이 갈리는 세 곳에서도 본문이 직접 말하는 선은 분명하다

첫째 지점은 1장과의 순서이다. 1장에서는 짐승이 먼저, 사람이 마지막에 나온다. 2장에서는 사람이 먼저이고 짐승(2:19)과 여자(2:22)가 뒤따른다.

읽기는 갈린다. 서로 다른 전승이 나란히 놓였다는 읽기가 있고, 한 이야기가 시선을 바꾸어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읽기가 있다. 2:19의 동사 ‘빚으셨다’를 ‘이미 빚어 두셨다’처럼 앞선 일로 옮겨 순서가 부딪히지 않게 하는 번역도 있다. 그러나 이 동사의 때를 어떻게 읽을지는 논의가 있어서, 이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문법만으로는 어느 쪽도 확정하기 어렵다. 이 글은 2:4이 새 표제로 새 단위를 연다는 구조를 따라, 두 단락이 다른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읽는다. 1장은 ‘무엇이 어떤 순서로 만들어졌는가’를, 2장은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가’를 따라가는 것으로 읽힌다. 본문이 두 단락의 관계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는다.

둘째 지점은 ‘돕는 이(에제르)’의 뜻이다. 돕는 이를 낮은 자리로 읽는 이해가 있고, 대등한 짝으로 읽는 이해가 있다. 어휘로 보면 ‘에제르’는 하나님을 도움의 주체로 그리는 곳에도 쓰인다. 그러므로 이 낱말 자체가 낮은 지위를 뜻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흠정역은 이 어구를 “합당한 조력자”로 옮기고, KJV는 “an help meet for him”으로 옮긴다.

이것은 어휘에 대한 관찰이다. ‘그와 마주하여 맞는(크네그도)’ 관계를 나타낸다는 읽기는 번역자들의 해석이다. 이 어휘 하나로 두 사람의 지위가 대등하다고 증명되지도 않는다.⁵ 2:18–25은 두 사람 사이의 높낮이를 직접 서술하지 않는다. 관계의 틀은 3:16에서 처음 말해지므로 다음 편에서 이어서 본다.

셋째 지점은 ‘그 사람(하아담, הָאָדָם)’이 누구인가이다. 2:7–22의 ‘그 사람(하아담)’은 성별이 표시되지 않았다. ‘남자(이쉬)’는 여자가 지어진 뒤 2:23에서 처음 나온다. 다만 흠정역은 2:7에서는 ‘사람’으로 옮기다가 2:15와 2:18에서는 같은 ‘하아담’을 ‘남자’로 옮긴다. 번역어가 바뀐 것이며, 히브리어 낱말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한쪽은 처음부터 남자였다고 읽고, 다른 쪽은 성별 구분 이전의 사람이 둘로 나뉜다고 읽는다. 유대교출판협회(JPS)의 개정 번역(2023)은 각주에서 이 낱말이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다만 옛 독자에게는 시조가 남자임이 당연했다고도 적는다.⁶ 이 글은 ‘남자(이쉬)’의 첫 등장이 2:23이라는 사실까지만 확정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 하나로 지어진 것을 외톨이로 두려는 뜻이 아니라고 풀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 12권 21장에서 하나님이 처음에 한 사람만 지으신 까닭을 다루었다.⁷ 그는 이것이 그 사람을 모든 사회에서 떨어진 외톨이로 두려는 뜻이 아니라고 풀었다. 한 사람에서 시작해야 사회의 하나 됨과 화합의 끈이 그에게 더 잘 권해지고, 사람들이 본성이 같을 뿐 아니라 가족의 정으로도 묶인다는 것이다.

그는 여자도 남자처럼 따로 빚지 않고 남자에게서 지으셨다고 적었고, 그 까닭을 온 인류가 한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려는 것이라고 읽었다. 이 장에서 그는 창세기 구절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창조의 사실만 풀었다. 이것은 후대 사람이 본문을 어떻게 읽었는지 소개하는 것이며, 이 글의 해석이나 5부 패턴 정리의 근거가 아니다.

‘없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사람의 첫 말로 닫힌다

이 단락의 구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아직 없음’(2:5)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사람이 혼자 있음에 대한 ‘좋지 않다’는 판정(2:18)을 거쳐, 사람의 첫 말(2:23)로 닫힌다.

책 패턴 지도에서 둘 이상의 본문으로 확인된 반복은 셋이다. ‘산 존재(네페쉬 하야)’는 1:20, 21, 24, 30에서 짐승에게, 2:7에서 사람에게, 2:19에서 다시 짐승에게 쓰인다. ‘땅(아다마)’을 가는 일(아바드)은 2:5과 2:15에서 시작되어 3:23로 되돌아온다. ‘좋다(토브)’는 1장에서 하나님의 판정으로 되풀이되었고(1:4, 10, 12, 18, 21, 25, 31), 2:18에서 처음 부정형이 된다.

다음 편으로 넘기는 실마리는 둘이다. 첫째, 이 단락에서 하나님은 줄곧 ‘주 하나님’(히브리어 ‘여호와 엘로힘’)으로 불린다.⁸ 그런데 3:1–5에서 뱀과 여자는 ‘엘로힘(אֱלֹהִים)’만 쓴다. 둘째, 2:25의 ‘벌거벗음(아룸밈, עֲרוּמִּים)’과 3:1의 ‘간교함(아룸, עָרוּם)’은 소리가 닮은 말놀이를 이룬다. 이 편에서는 판정하지 않고 다음 편에서 본문으로 확인한다.

사람의 ‘혼자’는 무엇이 비어 있는 상태였는가

하나님이 처음으로 ‘좋지 않다’고 하신 사람의 ‘혼자’는 무엇이 비어 있는 상태였기에, 그 빈자리가 채워진 자리에서 창세기에 기록된 사람의 첫 말이 나왔는가.

← 창세기 1:1–2:3  ·  창세기 전체 보기


성경 본문 인용: 한국어는 킹제임스 흠정역, 영어는 King James Version(KJV). 흠정역은 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었다.

1. 2:4의 표제 어구와 어순은 Sefaria에 실린 마소라 본문(Miqra according to the Masorah)으로 확인했다. 1편 각주 3 참조. 흠정역 인쇄본은 절 구분이 달라 “하늘들과 땅의 생성물들이 이러하니라”가 2:5 끝에 놓이며(2:4는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드시고”로 끝난다), 이는 인쇄본 2장에서 확인했다.

2. 수는 Sefaria의 마소라 본문 2:5–25를 직접 센 값이다. 명사 ‘사람(아담)’과 ‘땅(아다마)’의 모든 출현을 세었고, 관사와 접두사가 붙은 형태를 포함했다. ‘사람(아담)’은 열여섯 번으로, 2:5, 7(2), 8, 15, 16, 18, 19(2), 20(2), 21, 22(2), 23, 25이다. ‘땅(아다마)’은 다섯 번으로, 2:5, 6, 7, 9, 19이다.

3. 1장의 ‘산 존재(네페쉬 하야)’(1:20, 21, 24, 30)와 ‘만들다(아사)’(1:25), ‘창조하다(바라)’(1:27)는 Sefaria의 마소라 본문 창세기 1장으로 확인했다.

4. 전도서 4:8–12, 시편 33:20, 시편 121:1–2, 신명기 33:29, 창세기 3:6, 3:16, 3:23–24, 4:9는 Sefaria의 마소라 본문으로 대조했다.

5. Revised JPS(2023)는 2:18의 ‘그에게 맞는 돕는 이(에제르 크네그도)’를 ‘fitting counterpart’로 옮겼다. Sefaria에 실린 번역으로 확인했다.

6. Revised JPS(2023)의 2:7 각주는 ‘그 사람(하아담)’이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 용어이지만 옛 독자에게는 시조가 남자임이 당연했다고 설명한다. Sefaria에서 확인했다.

7. Augustine,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 12권 21장.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Vol. II에 실린 영역본을 St-Takla.org(https://st-takla.org/books/en/ecf/102/1020360.html)에서 열어 해당 장 전체의 문장을 대조했고, 이 장 안의 내용만 썼다. 번역자, 출간 연도, 쪽수는 이 사본에서 대조하지 못했다.

8. 2:4–22의 ‘주 하나님’(히브리어 ‘여호와 엘로힘’)은 열한 번이다(2:4, 5, 7, 8, 9, 15, 16, 18, 19, 21, 22). 이 수와 3:1–5의 용례는 Sefaria의 마소라 본문 창세기 2장과 3장으로 확인했다. 2:25과 3:1의 ‘벌거벗음(아룸밈)’과 ‘간교함(아룸)’ 말놀이는 Revised JPS 각주도 짚는다.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