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무료급식 줄, 중산층이 다시 서던 줄

1998년 겨울 새벽 IMF 외환위기로 서울역 광장 무료급식소 앞에 긴 줄을 선 정장 차림의 실직 중산층 남성들
1998년 겨울 서울역 광장. 한 끼의 밥보다 잃어버린 체면과 자존을 견뎌내야 했던 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무료급식 줄, 중산층이 다시 서던 줄

체면이 배고픔 앞에 무너지던 줄, 1998년 서울역

역사·철학 · 2026.09.22


1998년 겨울, 서울역 광장의 무료급식 줄에는 낯선 점이 하나 있었다. 당대 신문 사진과 증언이 반복해서 전하는 장면인데, 줄 선 사람들 가운데 정장에 넥타이 차림이 적지 않았다. 몇 달 전까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앞선 글 은행 창구 줄, 통장이 계급이 되던 순간에서 우리는 1980년대 통장 줄을,1 1988년 올림픽 입장권 줄에서 자부심을 사기 위해 선 줄을 살펴보았다.2 통장 줄은 계급을 확인하는 줄이었고, 입장권 줄은 자부심을 사는 줄이었다. 십 년 뒤 같은 세대가 전혀 다른 줄에 섰다. 이번에 기다린 것은 한 끼의 밥이었다. 그런데 그 밥 앞에서, 먼저 무너진 것이 있었다.

그들은 오래 서 있었다. 그런데 서 있는 동안 기다리는 이유가 계속 바뀌었다.

먼저 줄에 서기 전의 시간이 있었다. 실직한 가장이 이른 아침이면 출근 복장으로 집을 나서 하루를 공원과 산, 지하철 안, 극장에서 보냈다는 이야기는 그 시기의 대표적인 증언으로 남아 있다. 줄에 서기 전에 통과해야 했던 줄은, 스스로에게 “나는 이제 이 줄에 서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줄이었다. 이 줄이 가장 길었다.

1997년 11월 21일, 줄이 만들어지는 순서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3 그해 1월 한보철강 부도로 시작된 대기업 연쇄 부도가 외환 위기로 번진 끝이었다. 1996년 말 800원대 중반이던 원·달러 환율은 1997년 12월 23일 장중 1,995원까지 치솟았고 종가는 1,962원이었다.4 1년 만에 두 배를 넘는 폭등이었다.

이 위기는 한국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붕괴에서 시작된 불길은 아시아를 한 바퀴 돌았고, 한국이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사흘 뒤인 11월 24일에는 일본 4대 증권사 가운데 하나였던 야마이치증권이 자진 폐업을 발표했다.5 한국에서 두드러진 것은 줄이 늘어나는 속도였다.

1998년 2월 노사정 합의로 정리해고가 법제화되었다. 1998년 연평균 실업률은 7% 안팎, 실업자는 149만 명에 이르렀고, 1999년 2월에는 실업률 8.7%, 실업자 178만 5천 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6 그러나 줄은 통계에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늘어났다. 종교 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먼저 밥을 지었고, 서울역과 각 도시의 역 광장, 성당과 교회, 사찰 마당에 급식 줄이 생겼다. 국가의 안전망이 닿지 않는 자리를 민간의 선의가 먼저 메웠다.

고용보험은 1995년 7월에 도입되었지만 대상은 30인 이상 사업장이었다. 위기가 오자 1998년 1월에 10인 이상, 3월에 5인 이상, 10월에 1인 이상 사업장으로 문턱을 세 번 낮췄다.7 줄이 제도보다 먼저 생겼고, 제도는 줄을 뒤따라가며 문턱을 낮췄다.

1933년 미국의 수프, 1998년 한국의 밥

이 장면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1929년 10월 뉴욕 증시가 무너진 뒤 미국 도시마다 브레드라인(bread line)과 수프 키친(soup kitchen)이 생겼다. 1933년 미국 실업률은 약 25%에 달했다.8 그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도러시아 랭이 찍은 〈화이트 엔젤 브레드라인〉은 대공황의 상징이 되었다. 사진 속 남자들은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1940년 사회학자 미라 코마로프스키는 실직한 가장이 있는 미국 가정들을 조사해, 실업이 소득만이 아니라 가정 안의 권위와 자기 서사를 함께 무너뜨리는 과정을 기록했다.9 노동이 곧 정체성이던 사람이 노동을 잃고 줄에 선다. 이때 먼저 무너지는 것은 위장이 아니라 자기 서사다. 1998년의 서울역 광장과 1930년대의 미국 도시 사이에는 60여 년의 시간과 태평양이 있지만, 줄 선 사람의 얼굴은 같은 방향으로 숙여져 있었다.

두 나라가 갈라진 곳은 그 뒤다. 미국은 1935년 8월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줄을 제도로 바꾸기 시작했다.10 한국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한 것은 1999년 9월, 시행은 2000년 10월이다.11 미국은 위기 6년째에, 한국은 2년째에 안전망의 이름을 법전에 올렸다. 속도만 보면 한국이 빨랐다. 다만 그 속도는 줄이 이미 길어진 뒤의 속도였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12월 제25조에서 식량·주거·의료와 실업 시의 보장을 인간의 권리로 명시했다.12 밥을 얻기 위해 서는 줄이 자비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라는 합의는 반세기 전에 이미 문서로 있었다. 우리는 그 문서를 읽기 전에 줄부터 세웠다.

중산층이 무너진 자리에서 역사는 무엇을 했는가

중산층의 몰락은 세계사에서 조용히 끝난 적이 드물다. 1923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평생 모은 저축을 휴지로 만들었고, 그 세대는 질서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감각을 오래 간직했다.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는 예금 인출이 막히자 중산층이 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왔고 대통령이 물러났다. 추락한 이들은 ‘신빈곤층(nuevos pobres)’이라 불렸다.13 같은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는 5월 30여 년 집권한 수하르토가 물러났고, 러시아는 8월 국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14 중산층이 “내가 믿은 체제가 나를 버렸다”고 느끼는 순간 사회는 가장 불안정해진다. 20세기가 거듭 남긴 경고다.

한국은 다른 경로를 택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헌정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시장은 재편되었고, 시민은 금을 내놓았다. 그러나 위기의 비용 상당 부분은 광장이 아니라 개인의 내부로 청구되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1997년 13.1명에서 1998년 18.4명으로, 1년 만에 약 40% 뛰었다.15 줄에 서지 못한 사람들, 서기 전에 자기 안에서 무너진 사람들의 몫이 통계 속에 들어 있다.

이 줄들을 나란히 놓는 것은 과거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국가가 금을 모을 때, 줄은 지워진다

금 모으기 운동의 시초는 1997년 11월 20일 새마을부녀회의 애국가락지 모으기였고, 1998년 1월 5일 KBS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시세로 보상받는 방식으로 바뀌어 전국으로 번졌다. 약 351만 명이 참여해 227톤이 모였다.16 모인 금은 대부분 수출되어 20억 달러 안팎의 외화가 되었다. 진심이었고, 실제로 신용도를 지탱하는 데 힘이 되었다. 그 반지를 내놓은 손 하나하나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앞선 글에서 이미 들여다본 적이 있다. 「금반지를 꺼낸 손」17

다만 이 줄의 구조에는 눈여겨볼 점이 있다. 위기를 낳은 구조와 위기의 청구서를 받은 사람들은 일치하지 않았고, 청구서를 받은 쪽이 가장 먼저 줄을 서서 자기 몫을 냈다. 자발성이 아름다울수록 그 자발성이 메운 공백은 눈에 덜 띈다.

금을 들고 은행 창구 앞에 선 줄은 국가가 기억하는 줄이다. 카메라가 왔고, 뉴스가 되었고, 훗날 교과서에 실렸다. 급식 줄에는 카메라가 오지 않았거나, 왔더라도 얼굴을 찍지 않았다. 같은 위기 속에서 한 줄은 영웅적인 줄이 되었고, 다른 줄은 지워진 줄이 되었다. 이 비대칭은 우연이 아니라 패턴이다. 공동체는 위기를 서사로 만들 때 견딘 사람을 기억하고, 무너진 사람은 개인의 사정으로 돌린다. 애초에 이 위기가 한국을 어떻게 덮쳤는지는 앞선 글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한국의 IMF행」18

중산층이라는 이름의 줄

이 줄의 진짜 이름은 무료급식 줄이 아니라 중산층이 다시 서던 줄이다.

급식 줄에 선 사람들은 대기업 부장, 중소기업 공장장, 자영업 사장이었다. 몇 달 전까지 학원비를 내고, 아파트 대출을 갚고, 노후를 계획하던 사람들이다. 중산층은 소득 구간이 아니라 내일을 예측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평생직장이라는 암묵적 계약, 성실하면 지켜진다는 국가와의 약속이 한 계절 만에 파기되었다.

1980년대 통장 줄이 계급의 문턱이었고 1988년 입장권 줄이 자부심의 문턱이었다면, 1998년 급식 줄은 중산층의 문턱이 얼마나 얇은 유리였는지를 보여준 문턱이다. 그 뒤 20년 넘게 한국인의 삶을 지배한 불안, 즉 안정 자산에 대한 집착, 자녀 교육에 대한 과잉 투자, 정규직 선호는 이 줄의 기억 위에 세워졌다. 1998년의 줄은 끝나지 않았고, 모양을 바꾸어 우리 안에 서 있다.

줄이 생기기 전에 무엇을 지어야 하는가

한국이 나아갈 방향은 1998년의 줄이 가르쳐 준 세 문장으로 압축된다.

첫째, 안전망은 줄이 생긴 뒤가 아니라 생기기 전에 짓는다. 1998년의 제도는 위기의 한복판에서 문턱을 세 번 낮추며 급조되었다. 그 사이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은 소규모 사업장, 비정규직, 자영업자였다. 지금도 고용보험이 닿지 않는 일자리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다음 줄을 이미 예약해 둔 것이다.

둘째, 도움을 받는 순간의 존엄이 제도의 성능이다. 대공황의 사진과 1998년의 서울역이 공유한 것은 숙인 고개였다. 복잡한 신청 절차, 낙인, 증빙의 굴욕은 사람들을 줄에 서기도 전에 주저앉힌다. 좋은 제도는 급여의 액수만큼 서 있는 사람이 자기 얼굴을 지킬 수 있는가를 설계한다.

셋째, 위기를 서사로 만들 때 줄 선 사람을 빼지 않는다. 금 모으기는 기억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기억이 한쪽 줄만 비추는 한, 사회는 다음 위기에서 같은 사람들을 다시 지운다. 성숙한 사회는 견딘 사람과 무너진 사람을 같은 이야기 안에 놓는다.

우리가 아직 서 있는 줄

오늘 한국의 줄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2026년 8월 청년 고용률은 44.1%로 28개월째 하락했고, 자영업자 대출은 1,092조 원, 취약차주 연체율은 4.4%에서 12.1%로 뛰었다.19,20 이들의 줄에는 국그릇이 없고, 그래서 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장부 위에 지금 얹히고 있는 얇은 고리는 다른 글에서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3.7%의 뒷골목」21

오늘 우리가 불안이라는 보이지 않는 줄에 서 있는 한, 1998년 서울역의 줄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래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줄 앞에서 무너진 것은 통장도 자부심도 아니라 체면이었다. 배고픔은 체면보다 힘이 셌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줄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한 번 배웠다 — 가장 지키고 싶은 것부터 먼저 무너진다는 사실을. 바라보는 자는 줄의 끝이 아니라, 줄을 서게 만든 자리를 본다.

참고할 말씀: ‘나에게 가난도 부함도 주지 마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 잠언 30:8


각주
1. 바라보는 자의 기록 「은행 창구 줄, 통장이 계급이 되던 순간」
2. 바라보는 자의 기록 「1988년 올림픽 입장권 줄」
3. 대한민국 정부 IMF 구제금융 공식 요청, 1997년 11월 21일 (재정경제부·한국은행)
4.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1997년 12월 23일 원·달러 환율 (장중 1,995원, 종가 1,962원)
5. 야마이치증권 자진 폐업 발표, 1997년 11월 24일
6.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1999년 2월 실업률 8.7%·실업자 178만 5천 명은 1999년 3월 발표 기준이며 이후 개정치는 다를 수 있음
7. 고용보험 적용 확대: 1995년 7월 30인 이상, 1998년 1월 10인 이상, 3월 5인 이상, 10월 1인 이상 (고용노동부)
8. Federal Reserve·BLS 추정, 1933년 미국 실업률 약 25%. Dorothea Lange, 〈White Angel Breadline〉, 1933
9. Mirra Komarovsky, The Unemployed Man and His Family (1940)
10. Social Security Act, 1935년 8월 14일 (미국 사회보장청)
11.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1999년 9월, 시행 2000년 10월 (보건복지부)
12.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948년 12월 (유엔)
13.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1923년, 아르헨티나 예금 인출 제한 및 정권 붕괴 2001년 12월
14. 수하르토 사임 1998년 5월, 러시아 국가 채무 불이행 1998년 8월
15. 통계청 사망원인통계. 집계 기준에 따라 14.1명(1997)에서 19.9명(1998)으로도 보고되나 증가폭은 약 40%로 같음
16. 국가기록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여 약 351만 명, 약 227톤)
17. 바라보는 자의 기록 「금반지를 꺼낸 손」
18. 바라보는 자의 기록 「아시아 금융위기와 한국의 IMF행」
19. 국가데이터처 「2026년 8월 고용동향」, 2026년 9월 9일 발표 (15~29세 고용률 44.1%)
20. 한국은행 자료 (소상공인연합회 인용), 2025년 말 기준 자영업자 총대출잔액 1,092.9조 원, 취약차주 연체율 2021년 말 4.36%에서 2025년 말 12.14%
21. 바라보는 자의 기록 「3.7%의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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