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왕과 로마, 260년의 갈림길

석양 무렵 그리스 로마 양식의 거대한 고대 돌기둥 유적지와 아치형 건축물, 그리고 그 앞을 걷고 있는 사색하는 뒷모습의 수행자.
서기 260년, 법을 세운 백제와 법을 잃어가는 제국 로마의 갈림길을 상징하는 고대의 흔적.

고이왕과 로마, 260년의 갈림길

법을 세운 나라와 법을 잃은 제국

2026.08.17 · 역사·철학 · 한국사 시리즈

260년 봄, 두 개의 왕좌

같은 해, 같은 계절이었다.

한쪽에서는 한 나라가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갖추고 있었다. 관청의 이름이 정해지고, 관리의 등급이 매겨지고, 그 등급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의 색깔까지 법으로 정해졌다.

다른 한쪽에서는 지중해를 호령하던 제국의 황제가, 적국 왕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제국의 존엄을 송두리째 잃어가고 있었다.

서기 260년. 한반도 서남부의 백제와, 유라시아 서쪽 끝의 로마. 두 나라는 지구 반대편에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나는 법을 세워 나라의 골격을 완성해 가고 있었고, 하나는 법이 있어도 그것을 지킬 힘을 잃은 채 무너지어 가고 있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초고왕이 신라와 벌인 백 년 전쟁의 시작을 살펴보았다. 그 전쟁을 물려받은 나라 백제가, 이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 (초고왕 — 신라와의 백 년 전쟁 시작)


에데사의 포로, 그리고 한성의 법전

고이왕 27년(260년) 정월, 백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좌보·우보 체제를 폐지하고 6좌평 제도를 새로 두었다.

왕명을 전달하는 내신좌평, 창고와 재정을 맡는 내두좌평, 예법과 의례를 관장하는 내법좌평, 왕의 호위를 맡는 위사좌평, 형벌과 감옥을 다스리는 조정좌평, 지방 군사를 통솔하는 병관좌평.

여섯 개의 이름이 곧 국가 기능의 여섯 갈래였다.1

같은 해 2월에는 16관등제를 정비하고, 관등에 따라 관리가 입을 수 있는 옷의 색깔을 자색·비색·청색으로 나누어 규정했다.

재물을 받은 관리와 도둑질한 자에게는 훔친 것의 세 배를 물리고 종신토록 관직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형벌 규정도 함께 시행되었다.2

기록에는 ‘율령’이라는 표현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이 정비가 실제 고이왕 당대의 성과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견해가 갈린다.

후대 근초고왕 이후에 확립된 제도가 시조 격인 고이왕대로 소급하여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은 백제가 부족 연맹체에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넘어가는 결정적 분기점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읽히곤 한다.

바로 그 봄, 지구 반대편의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페르시아 원정 중 에데사 전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에게 사로잡혔다.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황제가 적국의 포로가 된 사건이었다.

그가 말에 오를 때 황제의 등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후대 기독교 사가들이 남긴 전승에 가깝다고 평가받지만, 그 진위와 별개로 이 사건이 로마인들에게 안겨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여러 사료에서 일관되게 확인된다.3

로마는 이미 235년부터 오십 년 가까이 스물여섯 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이른바 ‘군인황제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법과 원로원의 권위는 여전히 문서상으로 존재했지만, 그것을 지킬 실질적인 힘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260년, 갈리아 지역의 사령관 포스투무스는 로마 정부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인 ‘갈리아 제국’을 선포했다.

같은 해 동방에서는 팔미라의 지도자 오데나투스가 로마에 대한 형식적 충성은 유지한 채 사실상의 자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훗날 정식 ‘팔미라 제국’으로 이어지게 되는 균열의 첫 조짐이었던 셈이다.4 하나의 제국이 세 개의 그림자로 갈라지기 시작한 해였다.

한쪽은 법을 처음으로 세우는 중이었고, 한쪽은 법이 있어도 그것을 강제할 힘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같은 계절, 같은 세기, 정반대의 궤적이었다.


법가와 홉스, 무너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한비자는 법을 이렇게 정의했다고 전해진다.

法者,編著之圖籍,設之於官府,而布之於百姓者也。
(법자, 편저지도적, 설지어관부, 이포지어백성자야)
“법이란 문서로 정리하여 관청에 비치하고 백성에게 공포하는 것이다.”
— 『한비자』

한비자에게 법의 힘은 문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예외 없이 관철되는 데에서 나왔다. 왕도, 신하도, 그 법 앞에서는 같아야 한다는 것이 법가 사상의 핵심이었다.

서양에서는 토마스 홉스가 비슷하지만 다른 결의 통찰을 남겼다.

“칼이 없는 계약은 말에 불과하다”
(Covenants, without the sword, are but words) — 『리바이어던』

홉스에게 법은 그 자체로는 아무 힘이 없었다. 법을 강제할 힘, 곧 주권자의 권력이 뒷받침될 때에야 법은 비로소 질서가 되었다.

두 사상의 출발점과 지향점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비자가 말한 것은 왕권을 뒷받침하는 관료 조직의 강제력이었고, 홉스가 말한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끝내기 위한 주권자의 강제력이었다.

그러나 두 사상은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법은 선언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관철시킬 힘이 실제로 작동할 때에만 비로소 나라의 뼈대가 된다는 점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고이왕의 260년과 발레리아누스의 260년은, 이 원리가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두 개의 실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이 사람을 이기는 순간

백제가 세운 6좌평 체제는 왕 한 사람의 능력에 기대는 나라가 아니라, 왕이 바뀌어도 기능이 유지되는 나라를 만들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이 체제의 골격은 이후 근 사백 년,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반면 같은 시기 로마는 법전과 원로원, 관료 체계를 모두 갖추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지켜낼 힘이 개인들의 군사력 다툼 속에서 계속 무너졌다.

법은 있었지만, 법 위에 서려는 힘들이 그보다 강했던 탓이다.

이 두 갈래 길은 21세기 한반도에서도 낯설지 않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제도와 절차가 사람보다 강한 나라인가, 아니면 사람의 힘이 제도를 넘어서는 나라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칙 자체가 다시 쓰이는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는 인물이나 집단에 매여 있는 권력과, 절차와 법에 의존하는 제도 사이의 오래된 줄다리기로 읽힐 수 있다.

이 줄다리기의 결과는 어느 한쪽의 승리 선언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권이 몇 번 바뀐 뒤에도 같은 규칙이 그대로 작동하는지를 통해서만, 시간이 지난 뒤에 조용히 드러날 뿐이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법이 있는가”가 아니라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자를 누가 견제하는가”에 가깝다.

고이왕의 6좌평은 서로의 업무를 나눠 맡되 왕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몰리지 않도록 짜여 있었다.

법을 만드는 자, 법을 집행하는 자, 법을 어긴 자를 벌하는 자가 분리되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법은 사람이 아닌 구조로 남는다. 권한이 어느 한 곳에 견제 없이 고이는 순간, 그 법은 다시 사람의 것으로 돌아간다.

고이왕이 만든 것은 완벽한 법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완벽한 왕조차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작동하는 구조였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것이 발레리아누스의 로마와 갈라진 지점이다.


법 없이도 믿을 수 있는가

법이 나라를 만든다는 말은, 법만 있으면 나라가 저절로 유지된다는 뜻이 아니다. 260년의 로마는 그 반증이다.

법이 나라를 만든다는 것은, 그 법이 왕이 바뀌어도, 계절이 바뀌어도, 심지어 그것을 만든 사람이 사라져도 계속 작동할 때에만 성립하는 문장이다.

고이왕이 관리들에게 물린 형벌 — 뇌물을 받은 자, 도둑질한 자에게 훔친 것의 세 배를 물리는 규정 — 은 화려한 의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형식적인 제사보다 공평과 정의의 실천을 앞세운 선택으로 풀이될 수 있다.

고이왕은 그것을 직시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사람이 아닌 관청의 이름을 국사의 궤적에 남기려 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 참고할 말씀: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보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느니라’ — 잠언 21:3


1.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백제 고이왕의 체제 정비」

2.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27년조

3. 위키백과, 「발레리아누스」

4. 나무위키, 「갈리아 제국」·「팔미라 제국」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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