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왕, 백년 전쟁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과거 백제와 신라의 국경 대립과 역사적 갈등을 상징하는, 노을 지는 산맥을 따라 길게 뻗은 남한산성 전통 돌 성벽 풍경
능선을 따라 굳건히 서 있는 고대의 성벽. 한 번 굳어진 대립은 세대를 넘어 스스로의 관성으로 이어지곤 한다. (남한산성 전경)

초고왕, 백년 전쟁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망명자 한 명이 시작한 갈등이, 어떻게 반세기를 넘는 전쟁으로 자라났는가

역사·철학  ·  2026.08.14  ·  한국사 시리즈 3-백제-①


끝나지 않는 이웃과의 대립

국경을 맞댄 이웃과의 갈등은 대개 단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균열이 방치된 채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 돌이키기 어려운 대립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번 굳어진 갈등은 당사자들이 세대를 넘겨 세상을 떠난 뒤에도 스스로의 관성으로 이어지곤 한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갈등의 뿌리를 살피다 보면, 이 패턴이 낯설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시작은 사소했으나 봉합되지 못한 갈등이 결국 다음 세대의 짐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이 구조가 처음 기록된 것은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800년도 더 된 백제와 신라의 관계에서였다.

앞선 글에서 고구려 중천왕과 서천왕이 귀족 세력을 숙청하며 왕권을 다잡던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그 무대를 한강 남쪽의 백제로 옮겨본다.

166년, 망명자 한 명이 백년 전쟁의 도화선이 되다

사건의 발단은 초고왕이 즉위하기 전으로 올라간다. 155년, 신라의 아찬(阿飡) 벼슬을 지내던 길선(吉宣)이라는 인물이 반란을 꾀하다 발각되어 백제로 망명해 왔다.1 신라는 그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백제는 이를 거부했다.

한 명의 정치적 망명자를 둘러싼 외교적 실랑이였던 이 사건은, 양국 사이에 쉽게 해소되지 않을 불신의 씨앗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166년, 개루왕의 장남이 왕위에 올라 초고왕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 세대에 봉합하지 못한 이 앙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188년, 초고왕은 신라의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하며 본격적인 무력 충돌의 문을 열었다.2

이듬해인 189년 7월에는 구양(狗壤,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에서 신라군과 맞붙었으나 크게 패했다.

190년, 백제는 신라 서쪽 국경의 원산향(圓山鄕,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을 공격했다. 신라군이 반격에 나서 와산(蛙山,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까지 추격해 왔으나, 초고왕은 이를 크게 격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어 204년, 백제는 신라의 요차성(腰車城,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을 함락시키고 성주 설부(薛夫)를 전사시켰다. 214년 초고왕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나라는 화친과 결렬을 거듭했다.

이 국지전의 승패는 어느 쪽에도 결정적이지 않았다. 모산성에서는 백제가, 구양에서는 신라가, 와산에서는 다시 백제가 이겼다. 승자와 패자가 교차하는 반복 속에서도 정작 국경선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인 것은 오직 하나, 두 나라 사이의 적대감뿐이었다. 훗날 사가들이 이 시기를 ‘백제와 신라의 백년 전쟁’이라 부르는 이유일 수 있다.

같은 시각, 로마와 한(漢)은 무엇과 싸우고 있었나

초고왕이 즉위한 해인 166년, 로마 제국 역시 국경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도나우강 이북의 게르만 부족들과 마르코만니 전쟁을 시작했다.3

전염병(안토니누스 역병)이 제국 전역을 휩쓸던 바로 그 시점에, 황제는 갑옷을 입고 북방 전선으로 향해야 했다.

마르코만니 전쟁 역시 단 한 번의 결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로마가 이기고 게르만족이 밀려났다가 다시 국경이 뚫리기를 반복했고, 180년 아우렐리우스가 전쟁터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이어졌다.

이 국경 전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로도 로마와 게르만 세계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을 계속 남겼다. 국경을 지키기 위해 로마는 갈수록 더 많은 병력과 재정을 쏟아부어야 했다.

이렇게 쌓인 부담은 훗날 4~5세기 게르만족이 로마 영토 안까지 대거 밀려들어오는 이른바 ‘민족대이동’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서로마 제국의 붕괴를 이 하나의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잦은 내전과 황제 교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 국경을 지키는 데 드는 재정 부담의 누적, 반복된 전염병으로 인한 인구·생산력 감소 등이 함께 맞물린 결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166년에 시작된 이 국경 소모전이 그 여러 배경 가운데 하나로 자리한다는 점은, 오늘 이 글이 주목하는 지점이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의 후한(後漢) 역시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며 중앙의 통제력이 급격히 흔들렸고, 지방 호족들이 각자의 무력을 키우기 시작했다.4

이 원심력은 결국 220년 후한의 멸망과 위·촉·오 삼국 시대의 개막으로 귀결된다. 초고왕이 세상을 떠난 214년으로부터 불과 6년 뒤의 일이다.

로마의 국경, 후한의 조정, 백제와 신라의 변경—무대는 셋이지만 구조는 하나였다. 중심의 권위가 흔들릴 때 오래 묵은 주변부의 갈등이 가장 먼저 폭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세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닮은꼴의 궤적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단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유사한 조건 속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일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이것은 어떤 거창한 명언이라기보다, 이 기록이 매번 스스로에게 되묻는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우연으로 읽힐 수도 있는 세 무대의 겹침 앞에서, 우리는 그 원칙을 다시 새겨본다.

국경이 아니라 반복이 문제다

초고왕의 백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로마 사이에는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와, 서로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회는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구조의 문제에 부딪혔다.

국경을 맞댄 이웃과의 갈등은 한 번의 승패로 해소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번의 충돌이 다음 충돌의 명분이 되어 스스로를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길선이라는 망명자 한 사람의 처리 문제가 반세기 넘는 전쟁으로 번진 것은, 애초에 그 갈등의 본질이 길선 개인에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경을 마주한 두 세력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느끼는 구조 안에서는, 계기가 무엇이든 결국 충돌로 귀결되기 쉬운 것으로 보인다. 로마와 게르만족의 관계도, 후한 조정과 지방 호족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 패턴에서 가장 위험한 지점은 역설적이게도 승리했을 때 찾아온다. 190년 와산 전투에서 백제가 이겼을 때, 그 승리는 갈등을 끝내지 못했다. 오히려 14년 뒤 요차성 전투로 이어지는 다음 충돌의 발판이 되었을 뿐이다.

한쪽의 승리가 다른 쪽의 복수심을 재충전시키는 구조 안에서는, 전투에서 이기는 것과 갈등을 끝내는 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기 쉽다.

우리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

초고왕이 죽고도 백제와 신라의 대립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아들 구수왕, 그리고 훗날의 근초고왕에 이르기까지 두 나라의 악연은 계속 이어졌다.

한 군주가 시작한 전쟁을 후대의 왕들이 끝내지 못한 채 물려받는 구조는 그 자체로 질문을 던진다. 갈등을 시작하는 것과 갈등을 끝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 일인가, 라는 질문이다.

인간 사회가 진영으로 갈라져 반복적으로 대립에 빠지는 속성은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들여다보아도 이 질문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진영 간의 대립은 특정 사건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봉합되지 못한 앙금들이 세대를 넘어 누적되며 스스로를 재생산해 온 결과에 가까워 보인다. 매 선거, 매 국면의 ‘승리’가 갈등을 끝내기는커녕 다음 대립의 명분이 되어 돌아오는 모습은, 1,800년 전 모산성과 와산과 요차성을 오가던 백제와 신라의 국경선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지 모른다.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 위해 역사를 읽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반복되는 갈등의 진짜 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길선’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 질문의 끝에서, 오래된 한 구절을 다시 꺼내 읽어본다.


* 참고할 말씀: ‘노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 잠언 15:18


1. 초고왕 즉위 및 재위 기간(166~214년), 길선 망명 사건: 삼국사기 ·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2. 모산성·구양·원산향·와산·요차성 전투 기록: 위키백과 「초고왕」 · Encyves Wiki 「초고왕」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코만니 전쟁(166~180년), 안토니누스 역병: 서양고대사 개설 자료

4. 후한 황건적의 난(184년)과 삼국시대 개막(220년): 중국고대사 개설 자료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 새 글 알림 받기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