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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2:3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없다
말씀으로 짜인 한 주간의 구조
제1편 · 2026.10.25 · Watchman
창세기의 첫 이야기는 2장 3절에서 닫히고, 4절에서 새 이야기가 열린다
여섯 날은 같은 말로 하루씩 닫힌다.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니라.” 둘째 날부터는 순서 숫자만 바뀐다. 이 칼럼은 이 말을 마감 공식이라 부른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마감 공식이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날만 저녁과 아침으로 닫히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글은 그 빈자리에서 출발한다.
이 물음을 따라가려면 먼저 범위를 정해야 한다. 오늘 쓰는 장 구분은 13세기 초 스티븐 랭턴의 체계에 바탕을 두고, 절 번호는 16세기 인쇄업자 로베르 에스티엔이 붙였다.¹ 둘 다 원저자가 아니라 후대가 편의로 붙인 경계이다. 창조의 첫 이야기는 1장에서 끝나지 않고 2장 3절에서 닫힌다. 그래서 첫 편의 범위를 창세기 1:1–2:3로 잡았다.
이 글은 성경 칼럼의 첫 편이므로 책 이야기를 먼저 짧게 한다. 창세기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첫 단어를 따라 ‘베레쉬트(בְּרֵאשִׁית)’로 불린다. 칠십인역은 ‘기원’을 뜻하는 ‘게네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² 저자와 기록 연대는 전통적으로 모세와 이어져 왔다. 근현대 학계에는 여러 자료와 편집 단계를 가정하는 학설도 있다. 이 칼럼은 어느 쪽도 단정하지 않고 본문의 짜임을 읽는 데 집중한다.
이 단락에는 앞뒤와 구분되는 표지가 있다. 2:4은 ‘톨레돗’이 들어간 표제로 새 단위를 연다. 흠정역 인쇄본은 이를 “하늘들과 땅의 생성물들이 이러하니라”로 옮기며, 인쇄본에서는 이 문장이 5절 끝에 놓인다. ‘생성물들(톨레돗)’이 들어간 표제는 5:1에서도 나온다. 1:1–2:3 앞에는 그 표제가 붙어 있지 않다.³
단락의 처음과 끝은 같은 짝으로 묶인다. 히브리어로 1:1의 ‘하늘과 땅’은 2:1에서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온 군대’로 다시 불린다. 흠정역은 두 곳 모두 ‘하늘’과 ‘땅’을 살려 옮겨서 이 반복이 번역에서도 보인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더라.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2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 창세기 1:1–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온 군대가 완성되니라. 2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자신의 일을 끝마치시고 자신이 만드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며 만드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
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host of them. 2 And on the seventh day God end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3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sanctified it: because that in it he ha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and made.
— 창세기 2: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 구간 | 내용 | 구조상 역할 |
|---|---|---|
| 1:1–2 |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심, 땅의 상태 | 머리말 (히브리어 7+14단어) |
| 1:3–5 | 빛, 낮과 밤 | 첫째 날 · 말씀 1회 |
| 1:6–8 | 궁창, 물과 물 | 둘째 날 · 말씀 1회 |
| 1:9–13 | 마른 육지와 바다, 풀과 나무 | 셋째 날 · 말씀 2회 |
| 1:14–19 | 광체들 | 넷째 날 · 말씀 1회 |
| 1:20–23 | 물의 생물, 날짐승 | 다섯째 날 · 말씀 1회 |
| 1:24–31 | 땅의 짐승, 사람, 먹을 것 | 여섯째 날 · 말씀 4회 |
| 2:1–3 | 완성, 안식, 복, 거룩 | 일곱째 날 · 마감 공식 없음 |
여섯 날은 모두 마감 공식(“그 저녁과 아침이 …날이니라”)으로 닫힌다(1:5, 8, 13, 19, 23, 31). 2:1–3에는 이 공식이 없다.
본문은 일곱의 배수와 반복 어구로 자기 짜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마소라 본문으로 직접 센 수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셋이다.⁴ 첫째는 단어 수이다. 1:1은 일곱 단어이고 1:2은 열네 단어이다. 일곱째 날을 서술한 2:1–3은 서른다섯 단어(5+14+16)이다. 모두 일곱의 배수이다.
둘째는 두 낱말이 나오는 횟수이다. ‘엘로힘(하나님)’은 35회, ‘에레츠(땅)’는 21회 나온다. 이 수도 일곱의 배수이다.
셋째는 ‘좋았더라’로 옮겨진 ‘토브(טוב)’이다. 모두 일곱 번 나온다(1:4, 10, 12, 18, 21, 25, 31). 둘째 날에는 없고 셋째 날에 두 번 나온다. 이 글은 여기까지만 사실로 적고, 일곱이라는 수에 뜻을 붙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다른 수 관찰은 아래 표에 모았다.
| 항목 | 센 값 | 본문 위치 |
|---|---|---|
| 1:1–2:3 전체 단어 수 | 469 (7×67) | 1:1–2:3 |
| ‘이르시되(와요메르)’ | 10회 | 1:3, 6, 9, 11, 14, 20, 24, 26, 28, 29 |
| ‘그대로 되니라(와여히 켄)’ | 6회 | 1:7, 9, 11, 15, 24, 30 |
| ‘일(멜라카)’ | 3회 | 2:2–3 |
표의 ‘그대로 되니라’ 여섯 번은 일곱 번이라는 일부 해설의 소개와 다르다. 흠정역은 1:11에서 같은 어구를 ‘그대로 되어’로 옮긴다. ‘하늘’과 ‘궁창’(히브리어 ‘라키아’, 물과 물 사이에 펼쳐진 공간)을 합한 횟수도 스물한 번이라는 소개와 달리 이 글이 세어 보니 스무 번이었다.⁵ 이 글은 직접 확인한 수만 쓴다.
원어 관찰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핫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 1:1 전체가 일곱 단어이다.
יוֹם אֶחָד (욤 에하드) — 직역 “하나의 날”. 1:5. 흠정역은 “첫째 날”.
הַיּוֹם הַשְּׁבִיעִי (하욤 핫슈비이) — 직역 “그 일곱째 날”. 2:2–3.
תֹהוּ וָבֹהוּ (토후 와보후) — 흠정역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1:2.
날의 번호를 매기는 방식도 고르지 않다. 첫째 날은 ‘첫째’ 같은 순서 숫자가 아니라 ‘하나’라는 셈 숫자(אֶחָד)로 쓰인다(1:5). 둘째에서 다섯째 날은 순서 숫자만 쓴다.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에는 ‘그’에 해당하는 정관사가 붙는다(1:31; 2:2–3). 흠정역의 “첫째 날”도 이 차이를 옮기지 않는다.
여섯 날은 서로 짝을 이룬다. 첫째 날의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니라”(1:4)는 넷째 날에 “어둠에서 빛을 나누게 하시니라”(1:18)로 같은 어구가 되풀이된다. 둘째 날의 궁창(1:6–8)은 다섯째 날 날짐승이 나는 “하늘의 열린 궁창”(1:20)으로 다시 불린다. 셋째 날에 나온 풀과 나무(1:11–12)는 여섯째 날 사람과 짐승의 먹을 것으로 다시 주어진다(1:29–30). 또한 해와 달이라는 이름은 이 단락에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넷째 날의 광체는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는 기능으로 불린다(1:16, 18).
이 짝은 흔히 앞 세 날이 영역을 나누어 세우고 뒤 세 날이 그 영역을 채우는 구조로 읽힌다.⁶ 1:2의 ‘토후 와보후’가 앞 세 날의 ‘형체’와 뒤 세 날의 ‘채움’에 각각 대응한다는 읽기이다. 이 읽기를 받쳐 주는 정경 안의 본문으로 예레미야 4:23이 있다. 예레미야는 심판의 환상에서 땅을 보니 ‘토후 와보후’였고 하늘에는 빛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절들(4:25–26)에서는 사람과 새가 사라지고 비옥한 땅이 황무지가 된다.⁷ 다만 두 단어가 두 구간에 각각 정확히 대응한다는 세부는 본문이 직접 말하지 않으므로 완곡하게 읽는다.
일곱째 날은 여섯 날과 다른 방식으로 서술된다. 마감 공식이 없고 ‘완성되다·끝마치다’(2:1–2), ‘안식하다’(2:2–3), ‘복되게 하시다’(2:3), ‘거룩히 구별하시다’(2:3)가 이어진다. ‘복’을 뜻하는 동사 ‘바라크’는 이 단락에서 물의 생물과 날짐승(1:22), 사람(1:28), 일곱째 날(2:3)에만 쓰인다. 흠정역은 1:22과 1:28을 “복을 주시며”, 2:3을 “복되게 하시고”로 옮긴다. ‘거룩히 구별하시다’는 이 단락에서 일곱째 날에만 한 번 쓰인다.
이 서술은 일곱째 날을 앞의 여섯 날과 구별해 두는 것으로 읽힌다. 이후 본문이 이 읽기를 받쳐 준다. 안식일 계명이 바로 이 창조의 한 주간을 이유로 들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0:8–11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안식일에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잇는다. 창세기 2:3에서 일곱째 날에 쓰인 두 말이 여기서 다시 나온다.⁸
출애굽기 31:12–17에서는 안식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으로 제시된다. 31:17은 그 이유로 하나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것을 든다. 시내산의 십계명(20장)과 안식일의 표징(31장)이라는 서로 다른 두 맥락이 모두 이 창조 이야기를 근거로 삼는다. 그래서 일곱째 날의 복과 거룩은 이야기 안에서 끝나는 장식이 아니라, 이후 본문이 되돌아오는 자리로 읽힌다.
이 이야기의 어휘와 구도는 노아의 홍수, 예레미야의 환상, 안식일 계명, 신약으로 다시 울린다
순서는 같은 권, 구약 안, 신약이다. 신약 항목은 신약 본문이 구약을 읽은 방식이다. 이 글은 신약이 말한 만큼만 적고, 창세기 본문의 원래 뜻과 섞지 않는다.
표의 ‘상태’는 본문에 쓰인 사실이면 관찰, 거기서 이끌어 낸 읽기이면 추론, 근거가 약한 추측이면 사변으로 적었다.
| 창세기 | 반복 구절 | 내용 | 상태 |
|---|---|---|---|
| 1:1; 2:1 | 창 2:4 | ‘하늘과 땅’을 다시 부르며 ‘생성물들’ 표제로 새 단위를 연다. 어순이 ‘땅과 하늘’로 바뀐다 | 관찰 |
| 1:2 ‘영(루아흐)’이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임 | 창 8:1 | 홍수 끝에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지나가게 하시자 물이 줄어드는 장면이다 | 추론 |
| 1:22, 1:28 | 창 9:1 | 홍수 뒤 노아와 아들들에게 같은 세 동사 어구(‘다산하고 번성하여 채우라’ 계열)로 복을 다시 주신다 | 관찰 |
| 1:29–30 | 창 9:3 | 푸른 채소를 먹을 것으로 준 것처럼 이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준다고 하여 범위가 넓어진다 | 관찰 |
| 1:2 ‘토후 와보후’ | 렘 4:23; 사 34:11 | 예레미야의 심판 환상(4:23)에서 같은 쌍이 땅과 빛 없는 하늘과 함께 나온다. 이사야 34:11의 에돔 심판 선포에는 두 단어가 ‘토후의 줄’과 ‘보후의 추’로 갈라져 나온다 | 관찰 |
| 2:1–3 | 출 20:8–11; 31:17 | 안식일 계명이 창조의 엿새와 일곱째 날을 근거로 직접 든다 | 관찰 |
| 1:1–3 | 요 1:1–3 | 요한복음이 ‘태초에’로 시작해 만물을 말씀으로 말한다 | 추론 |
| 2:2 | 히 4:3–4 | 히브리서가 창세기 2:2을 인용해 하나님의 안식을 논증에 쓴다 | 관찰 |
| 2:1–3 마감 공식 없음 | 계 22:5 | ‘다시 밤이 없다’는 서술이 일곱째 날의 저녁 없음과 이어질 수 있다 | 사변 |
표의 마지막 줄은 근거가 약한 추측으로 둔다. 두 본문이 공유하는 어휘나 구문이 없고 주제만 닮았기 때문이다.
해석이 갈리는 세 지점은 본문이 직접 답하는 만큼만 답할 수 있다
첫째 지점은 1:1이 독립된 첫 문장인가, 때를 나타내는 절인가이다.
흠정역은 1:1을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라는 독립된 문장으로 옮기며, 영어 KJV도 같은 읽기를 따른다. 유대교출판협회(JPS)의 개정 번역(RJPS, 2023)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로 옮긴다. 번역 주에서는 다른 번역이 있음을 밝힌다.⁹
때절 읽기에서는 1:1이 시간의 배경이 된다. 이때 1:2은 그 시점에 땅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덧붙이는 설명이다. 이야기의 본줄기는 1: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 글은 독립 문장 읽기를 따르되, 때절 읽기를 열어 둔다. 독립 문장 읽기를 받쳐 주는 점은 셋이다. 첫째, 마소라 본문의 모음 표기는 ‘바라’를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하는 동사(완료형)로 읽게 한다. 둘째, 이 단위는 1:1과 2:1에서 ‘하늘과 땅’으로 처음과 끝이 닫힌다. 셋째, 1:1은 일곱 단어로 한 단위를 이룬다.
반대로 때절 읽기를 받쳐 주는 본문도 같은 책에 있다. 2:4(흠정역 인쇄본에서는 5절의 “…채소를 만드신 날에”)와 5:1은 창조를 때절로 서술한다. 두 구절 모두 ‘날’ 뒤에 ‘~할 때’ 꼴의 동사(연계형 부정사)가 온다(2:4 ‘아소트’, 5:1 ‘브로’). 5:1의 ‘브로’는 1:1의 ‘바라’와 같은 동사에서 나온 꼴이다. 때절 읽기는 1:1의 ‘바라’를 이 꼴로 읽는다. 문법만으로는 어느 쪽도 판정되지 않는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여섯 날의 구조 관찰은 바뀌지 않는다.
둘째 지점은 1:26의 ‘우리’가 누구인가이다.
26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 위에 기는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26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the cattle,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 창세기 1:2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26의 ‘나아세’(우리가 만들자)와 ‘브찰메누’(우리의 형상으로)는 1인칭 복수이다. 바로 다음 절 1:27의 ‘브찰모’(자기 형상으로)는 3인칭 단수 접미이고, 동사 ‘바라’(창조하시되)도 단수이다. 읽기는 갈린다. 하늘의 존재들과 함께 말씀하신다는 읽기, 위엄의 복수라는 읽기, 하나님이 스스로 숙고하신다는 읽기가 있다. 후대 교회는 삼위일체의 단서로 읽었다.
창세기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복수로 말하는 문장은 3:22과 11:7에도 있다. 그래서 1:26이 한 번만 나온 표현이 아님은 확인된다. 그러나 세 본문 모두 복수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 글은 지시 대상을 정하지 않는다. 삼위일체로 읽는 것은 교회 전통의 읽기로 따로 구분한다.
셋째 지점은 날의 길이와 일곱째 날이다.
본문은 날의 길이를 숫자나 단위로 서술하지 않는다. 서술하는 것은 순서와 횟수, 마감 공식, 그리고 일곱째 날에 공식이 없다는 사실이다. 흠정역 인쇄본은 창조 전체를 가리켜 2:5에서 “…만드신 날에”라고 쓴다. 해석은 세 갈래로 갈린다. 여섯 날을 보통의 하루로 읽는 입장, 긴 기간으로 읽는 입장, 한 주간의 틀을 문학적 질서로 읽는 입장이다.¹⁰
이 입장들은 본문의 직접 서술만으로는 판정되지 않는다. 출애굽기 20:9–11은 엿새 일하고 이레째 쉬는 한 주의 모양을 창조의 이레와 맞붙인다. 이 점은 세 입장이 모두 받아들인다. 다만 그 모양이 날의 길이까지 정하는지는 그 본문도 말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4:3–4은 창세기 2:2을 끌어와서, 하나님이 쉬신 안식을 독자가 들어가야 할 약속으로 풀어 준다. 이것은 창세기 자체의 뜻이 아니라 신약이 창세기를 읽은 방식이다. 그래서 이 글은 히브리서가 말한 만큼만 받아들이고, 창세기 본문의 뜻과 섞지 않는다. 한편 일곱째 날에는 다른 날마다 붙던 마감 공식(“그 저녁과 아침이 …날이니라”)이 없다. 여섯 날을 어떻게 읽든 이 점은 설명이 필요한 자리로 남는다.
칼뱅은 하나님의 쉼을 세상을 내버려 두신 것으로 읽지 않았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덧붙인다. 칼뱅은 창세기 2:2의 ‘안식하셨다’를 두고 어떤 쉼이었는지 먼저 물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붙들고 다스리시므로 늘 일하신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요한복음 5:17과 시편 104:29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이 그치신 일을 새로운 종류의 것을 지으시는 일로 풀었고, 이 말씀이 세상의 완성을 가리킨다고 읽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버리셨다고 이끌어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3에 대해서는 여섯 날을 쓴 것과 쉼을 둔 것이 모두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살피게 하려는 뜻이라고 풀었다.¹¹ 이것은 이 편의 해석 근거가 아니라, 후대 사람이 본문을 어떻게 읽었는지에 대한 소개이다.
이 단락의 구조는 짝을 이루는 여섯 날과 홀로 닫는 일곱째 날이다
이 단락의 구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말씀으로 시작하는 여섯 날이 앞 세 날과 뒤 세 날로 짝을 이루고, 일곱째 날만 저녁과 아침의 마감 없이 복과 거룩으로 닫힌다.
책 패턴 지도에서 이 단락은 출발점이다. 앞 장에서 이어진 것이 없으므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을 적는다. 둘 이상의 본문에서 확인된 반복은 셋이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채우라’ 계열의 세 동사 어구는 1:22과 1:28에서 시작되어 9:1에서 다시 주어진다. ‘토후 와보후’라는 쌍은 1:2에서 시작되어 예레미야 4:23에서 심판의 환상으로 되돌아온다. ‘하늘과 땅’의 짝은 1:1과 2:1에서 이 단락을 닫고, 2:4에서 어순을 바꿔 새 단위를 연다.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실마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이다. 이번 본문(1:1–2:3)에서는 하나님을 ‘엘로힘’으로만 부르는데, 2:4에서 처음으로 ‘주 하나님’(히브리어 ‘여호와 엘로힘’)이 나온다. 다른 하나는 1:26에서 하나님이 “우리”라며 자신을 복수로 말씀하신 대목이다. 같은 식의 표현이 3:22과 11:7에도 나오므로, 뒤의 장을 읽을 때 이 세 구절을 함께 살펴볼 숙제로 남겨 둔다.
마감 공식이 없는 일곱째 날은 독자를 어디에 세워 두는가
여섯 날을 닫던 공식이 일곱째 날에 없다는 사실을, 본문은 의도한 열림으로 쓰고 있는가, 아니면 서술이 이미 닫혔기에 더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인가. 이 물음을 안고 2장 4절로 넘어가면, 같은 하늘과 땅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시 시작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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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인용: 한국어는 킹제임스 흠정역, 영어는 King James Version(KJV). 흠정역은 인쇄본의 본문을 옮겨 적었다.
1. 장 구분은 13세기 초 스티븐 랭턴의 체계에 바탕을 둔다. 로베르 에스티엔은 1551년 그리스어 신약성경에서 번호 붙인 절 구분을 처음 냈고, 1555년 라틴어 불가타판에서 번호를 본문에 넣었다. 구약의 절 구분 자체는 더 오래된 유대 전통을 따랐고 에스티엔이 거기에 번호를 붙였다. 확인한 자료: Wikipedia, “Chapters and verses of the Bible” (en.wikipedia.org/wiki/Chapters_and_verses_of_the_Bible); Scriptorium Daily, “Who Divided the Bible into Chapters?” (scriptoriumdaily.com). 둘 다 일반 개설 자료이다.
2. ‘베레쉬트’와 ‘게네시스’의 이름 유래: Wikipedia, “Book of Genesis” (en.wikipedia.org/wiki/Book_of_Genesis); Hebrew for Christians, “Parashat Bereshit” (hebrew4christians.com). 둘 다 일반 개설 자료이다.
3. 2:4과 5:1 표제 어구의 시작 부분은 Sefaria에 실린 마소라 본문으로 확인했다. 1:1–2:3 앞에 이 표제가 없다는 점은 Waltke, Ross, Wenham의 해설을 요약한 자료(The Surprising God 블로그, 2026.4)와도 일치한다. 원전 쪽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흠정역 인쇄본은 절 구분이 달라 ‘생성물들이 이러하니라’가 2:5 끝에 놓이며, 이는 인쇄본 2장에서 확인했다.
4. 수는 Sefaria에 실린 마소라 본문(Miqra according to the Masorah)으로 직접 세었다. 마켑(단어를 하이픈처럼 잇는 부호)으로 이은 말은 둘로 세었고 접두사가 붙은 형태를 포함했다. 마켑으로 이은 말을 하나로 세는 관례에서는 수가 달라질 수 있다. 병행 보고: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1 (Waco: Word, 1987); William P. Brown, Structure, Role, and Ideology in the Hebrew and Greek Texts of Genesis 1:1–2:3, SBLDS 132 (Atlanta: Scholars Press, 1993); J. Richard Middleton, Responsible Interpretation of Genesis 1 (강연 개요). 쪽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5. ‘그대로 되니라’(와여히 켄) 일곱 번이라는 소개는 Middleton의 강연 개요에, ‘하늘/궁창’ 21회는 Wenham을 소개한 Leithart의 글(Theopolis Institute)에 있다. 이 글의 직접 계수와 다르다. 칠십인역은 같은 어구를 1:6 끝에 두어 마소라(1:7)와 위치가 다르다.
6. 앞 세 날과 뒤 세 날의 짝 구조: Wenham, Genesis 1–15 및 Moskala, JATS 13/1 (atsjats.org). 논문 제목과 쪽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7. 예레미야 4:23의 히브리어는 Sefaria에서 확인했다. 4:25–26의 내용은 영역 본문(ESV, KJV)과 칼뱅의 예레미야 주석(CCEL)에 실린 본문으로 확인했고, 히브리어 대조는 하지 못했다. 이사야 34:11의 히브리어도 Sefaria에서 확인했다. 두 단어가 ‘토후의 줄(קַו־תֹהוּ)’과 ‘보후의 추(אַבְנֵי־בֹהוּ)’로 갈라져 한 절 안에서 짝을 이룬다.
8. 출애굽기 20:8–11과 31:12–17은 Sefaria에 실린 마소라 본문으로 대조했다. 20:11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하며, 31:17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한다.
9. Sefaria에 실린 Revised JPS(2023)의 창세기 1:1 번역과 번역 주.
10. 날의 길이에 관한 입장 소개: Waltke, Ross, Wenham의 해설을 정리한 자료(The Surprising God 블로그, 2026.4). 원전 쪽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11. John Calvin, Commentary on Genesis, vol. 1, 창세기 2:2–3 주석(영역본). 2026.10.23에 CCEL에 실린 영역 본문(ccel.org/ccel/calvin/calcom01/calcom01.viii.i.html)을 열어 문장을 대조했고, 요약은 이 영역 본문에서 확인한 범위에 한정한다. 번역자·판본·연도·쪽수와 라틴어 원문은 대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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