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는 하갈의 고통을 들으신다

창세기 16장 하갈이 광야의 샘가에서 주의 천사를 만나는 장면과 가나안·브엘라해로이·수르·이집트를 표시한 개념 지도
광야의 샘가에서 하갈을 찾아오신 주의 천사. 하갈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를 보시는 하나님을 묘사한 창세기 16장 장면.

구약 › 모세오경

창세기 16:1–16 — 주께서는 하갈의 고통을 들으신다

사래의 소리, ‘괴롭히다’의 되풀이, 처음 나오는 ‘주의 천사’

제20편 · 2026.11.05 · Watchman


약속을 받은 집에 아이는 없고, 이집트 하녀 하갈이 등장한다

아브람은 15장에서 별을 세어 보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사래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고, 그녀에게는 하갈이라는 이집트 하녀가 있다(16:1절).1 16:3절은 아브람이 가나안에 거주한 지 십 년이 지났다고 밝힌다. 다만 15장의 밤 뒤로 얼마가 흘렀는지는 본문이 적지 않는다. 16장은 세 장면으로 나뉜다. 집 안의 일(16:1–6절), 광야의 샘가에서 이루어진 만남(16:7–14절), 이스마엘의 출생과 아브람의 이름 짓기(16:15–16절)이다. 하갈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직접 서술되지 않고, 16:15절은 곧바로 출생을 알린다. 아래 표는 그 흐름이다.

절장면말하는 쪽
16:1–3사래의 태가 닫힘, 하녀 하갈, 사래의 제안과 아브람의 따름사래
16:4–6하갈의 수태, 사래의 항의, 아브람의 응답, 학대와 도망사래와 아브람
16:7–9샘가에서 주의 천사가 하갈을 찾아냄, 돌아가 복종하라는 말주의 천사와 하갈
16:10–12씨의 번성, 이스마엘이라는 이름, 그가 살아갈 모습주의 천사
16:13–14하갈이 부른 이름, 브엘라해로이하갈
16:15–16이스마엘의 출생, 아브람의 이름 짓기, 아브람 팔십육 세서술자

아브람은 사래의 소리를 듣고, 주께서는 하갈의 고통을 들으신다

사래는 자기 태가 닫힌 일을 ‘주께서 나를 막으셨다’(아차라니 아도나이, עֲצָרַנִי יְהוָה)고 말하고, 아브람에게 하녀에게 들어가라고 청한다. 흠정역이 ‘아이들을 얻을 수도’로 옮긴 말에는 ‘세워지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이바네, אִבָּנֶה).2 흠정역은 16:2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이제 보소서, 주께서 나를 막으사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하녀에게로 들어가소서. 혹시 내가 그녀로 말미암아 아이들을 얻을 수도 있으리이다,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라.

2 And Sarai said unto Abram, Behold now, the LORD hath restrained me from bearing: I pray thee, go in unto my maid; it may be that I may obtain children by her. And Abram hearkened to the voice of Sarai.

— 창세기 16: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6장에서 ‘듣다’(샤마)는 아브람이 사래의 목소리를 듣는 16:2절과 주께서 하갈의 고통을 들으시는 16:11절에 나온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이쉬마엘, יִשְׁמָעֵאל)은 이 동사에서 나온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이다. 사래의 소리를 따른 아브람과 하갈의 고통을 들으시는 주가 한 장 안에 나란히 놓인다.

이어지는 16:3절에서 사래는 하갈을 ‘데려다가’(라카흐) 아브람에게 ‘주었다’(나탄). 흠정역은 이 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 하녀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주어 그의 아내가 되게 하니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십 년을 거한 뒤 일이더라.

3 And Sarai Abram’s wife took Hagar her maid the Egyptian, after Abram had dwelt ten years in the land of Canaan, and gave her to her husband Abram to be his wife.

— 창세기 16: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여성 주어가 ‘취하여’ 남편에게 ‘주는’ 이 연속 동사는 창세기에서 3:6절, 16:3절, 30:9절에 나온다.3 16:3절은 하갈이 아브람의 아내가 되었다고 서술하지만, 이후 인물들의 말에서는 여전히 ‘하녀’로 불린다. 사래는 ‘내 하녀’(16:5절), 아브람은 ‘당신의 하녀’(16:6절), 천사는 ‘사래의 하녀’(16:8절)라 부른다. ‘하녀’(쉬프하)는 16장에 여섯 번 나온다. 하갈이라는 이름은 16장에 일곱 번 나오지만, 인물의 말 가운데 하갈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16:8절의 주의 천사뿐이다.4

하갈이 수태하자 여주인이 하갈의 눈에 멸시를 받게 되었다고 서술한다(16:4절). 사래는 자신이 부당한 일(하마시, חֲמָסִי)을 당했다며 아브람에게 책임을 묻고, 이어 주께서 자신과 아브람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구한다(16:5절). 이는 사래의 주장이며, 서술자는 이를 판정하지 않는다. ‘하마스’는 창세기에서 6:11절과 6:13절, 16:5절, 49:5절에 쓰인다.5 아브람은 ‘당신의 하녀는 당신 손안에 있다’고 답하고, 사래가 하갈을 ‘괴롭히자’(타아네하, תְּעַנֶּהָ) 하갈은 사래의 얼굴을 피해 도망한다(16:6절).

여기서 ‘괴롭히다’(아나)는 15장과 이어진다. 15:13절에서 주께서는 아브람의 씨가 남의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 년 동안 괴롭힘을 받으리라 하셨다. 흠정역은 15:13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3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 땅 사람들을 섬기겠고 그 사람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13 And he said unto Abram, Know of a surety that thy seed shall be a stranger in a land that is not theirs, and shall serve them; and they shall afflict them four hundred years;

— 창세기 15: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동사는 창세기에서 15:13절, 16:6절, 16:9절, 31:50절, 34:2절 다섯 곳에 나오며, 그중 세 곳이 15–16장에 모여 있다. 16:9절에서 천사가 하갈에게 사래의 손 밑에서 ‘복종하라’고 할 때의 ‘복종하다’(히트아니)도 같은 어근이고, 16:11절의 ‘고통’(오니, עֳנְיֵךְ)은 이 어근의 명사이다.6 두 표현은 같은 어근에서 나왔지만 형태와 문맥이 다르므로 의미까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브람의 후손에게 예고된 괴롭힘의 어휘가, 바로 다음 장에서는 그의 집에 속한 이집트 하녀에게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이 어휘의 반복이 두 장면을 의도적으로 연결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

도망한 하갈을 찾아내는 이는 ‘주의 천사’(말아크 아도나이, מַלְאַךְ יְהוָה)이다. 이 호칭은 창세기에서 16:7절이 첫 용례이며, 16장에서만 16:7절, 16:9절, 16:10절, 16:11절 네 번 나온다.7 만난 곳은 광야의 샘(아인, עַיִן)이다. 이 낱말은 16:4–6절에서 ‘눈’으로 세 번 나오고 16:7절에서는 ‘샘’으로 두 번 나온다. 같은 낱말이 두 뜻으로 쓰인다는 사실만으로 말놀이가 의도되었다고 확정하기는 어렵다. 천사는 두 가지를 묻는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이다. 하갈은 어디에서 왔는지(사래의 얼굴을 피해서)만 답하고, 어디로 가는지는 답하지 않는다(16:8절). 천사는 돌아가라는 말에 이어(16:9절) 번성의 약속과 이름을 준다. 흠정역은 16:11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1 또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보라, 네가 아이를 가졌으므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주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느니라.

11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unto her, Behold, thou art with child, and shalt bear a son, and shalt call his name Ishmael; because the LORD hath heard thy affliction.

— 창세기 16: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6:10절에서는 천사가 일인칭으로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며 하갈에게 직접 후손의 번성을 약속한다. 이 ‘하르바 아르베’(הַרְבָּה אַרְבֶּה) 형태는 창세기에서 3:16절, 16:10절, 22:17절에 있다. 24:60절에도 여성에게 ‘네 씨’(자르에크)라고 말하는 표현이 나오지만, 그곳의 화자는 리브가의 가족이다.8 16:12절의 ‘모든 형제들 얼굴 앞에’(알 페네 콜 아하브, עַל־פְּנֵי כָל־אֶחָיו)라는 표현은 25:18절에도 있다.9

하갈은 말씀하신 분의 이름을 부른다. 흠정역은 16:13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3 그녀가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의 이름을 주 곧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이르기를, 나도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분을 뵈었는가? 하였기 때문이더라.

13 And she called the name of the LORD that spake unto her, Thou God seest me: for she said, Have I also here looked after him that seeth me?

— 창세기 16: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엘 로이’(אֵל רֳאִי)는 창세기에서 16:13절에만 있고, 이 샘의 이름 ‘브엘라해로이’(16:14절)는 24:62절과 25:11절에도 나온다.10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고 사래가 하갈을 학대한 이야기의 끝에서, 하갈은 자신을 보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16장은 아브람의 집에서 끝난다. 아브람은 하갈이 낳은 아들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16:15절). 본문은 하갈이 천사의 말을 아브람에게 전했다고 적지 않지만, 이름은 16:11절의 말씀과 같다. 흠정역은 16:16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은 팔십육 세더라.

16 And Abram was fourscore and six years old, when Hagar bare Ishmael to Abram.

— 창세기 16: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에덴과 출애굽기를 떠올리게 하는 어휘들

16:2절의 ‘소리를 듣다’(샤마 레콜)는 ‘누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를 묻는 3:17절과 겹친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아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음을 말씀하시는 대목이다. 창세기 본문에서 ‘레콜’(~의 소리에)로 시작하는 낱말을 찾아 ‘샤마’와 짝을 이룬 곳은 3:17절과 16:2절 둘이다. 21:12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실 때는 다른 전치사(베콜)가 쓰인다. 3:6절에서 여자가 열매를 ‘취하여’ 남편에게 ‘주었다’는 구조도 16:3절과 겹친다. 다만 두 본문의 어휘가 겹친다는 사실만으로 16장이 3장과 같은 죄라고 판정하기는 어렵다.11 30:3절과 30:9절에서는 라헬과 레아가 야곱에게 같은 일을 한다.

‘괴롭힘’의 어휘는 출애굽기에서도 나온다. 1:11–12절에는 같은 동사 ‘아나’가 쓰이고, 3:7절에서는 주께서 자기 백성의 고통(오니)을 보고 부르짖음을 들었다고 하신다. 16:11절의 ‘주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와 어휘가 같은 자리에서 닿는다.

신약에서 하갈의 이름은 갈라디아서 4:24–25절에만 나온다(KJV는 ‘아가르’).12 바울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자리는 4:21절의 물음, 곧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율법의 말을 듣지 않느냐고 묻는 대목이다. 4:22–23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하나는 하녀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으며, 하녀의 아들은 육체를 따라,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은 약속으로 태어났다고 쓴다. 4:24–25절은 이 일을 알레고리로 부르며 하갈을 시내산과 묶는다. 4:28절은 ‘우리’를 이삭처럼 약속의 자녀라 부르고, 4:29절은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했다고 하며, 4:30절은 하녀와 그 아들을 쫓아내라는 성경의 말을 든다. 결론은 4:31절, 우리가 하녀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라는 말이다. 창세기 16장은 고통받는 하갈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갈라디아서 4장은 두 여자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두 언약과 종 됨·자유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쓴다. 바울의 비유를 하갈 개인의 고통에 대한 평가로 곧바로 옮기기는 어렵다고 이해해 볼 수 있다.

사래의 제안을 어떻게 볼지, 주의 천사가 누구인지, 돌아가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첫째 쟁점은 사래의 제안이다. 이 제안을 후사를 얻으려는 당시 가정의 방편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고, 15장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본문은 사래의 제안을 직접 평가하는 문장을 두지 않는다. 다만 그 뒤에 이어지는 멸시와 학대, 도망은 이 선택의 결과를 보여 준다고 볼 여지가 있다.

둘째 쟁점은 ‘주의 천사’의 정체이다. ‘말아크’는 ‘보냄을 받은 이’, 곧 사자를 뜻하는 낱말이다. 이 호칭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하나님과 구별되는 사자로 보는 입장은 이 호칭 자체를 근거로 든다. 하나님 자신의 나타나심으로 보는 입장은 16:10절의 일인칭 약속과, 16:13절에서 ‘그녀에게 말씀하신 주’라고 서술하는 점을 근거로 든다. 창세기 16장은 두 서술을 모두 담고 있으며 그 정체를 한쪽으로 명시하지 않는다.

셋째 쟁점은 16:9절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 그녀의 손 밑에서 복종하라’이다. 학대에서 도망한 이에게 돌아가라고 하는 말을 하나님이 하갈을 사래의 집 질서 안에 두신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고, 16:10–12절의 약속과 함께 주어진 한시적 조치로 보는 입장도 있다. 본문은 돌아가라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며, 한시적 조치라는 설명도 직접 붙이지 않는다. 이 명령은 하갈에게 주어진 약속과 함께 이해해야 하고, 학대를 겪는 모든 사람이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반 명령으로 넓히기는 어렵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브람의 선택을 정욕보다 후사를 얻으려는 뜻에서 설명했다

후대의 읽기를 하나 소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 16권 25장에서 아브람이 하갈을 취한 일을 정욕을 채우려는 일이 아니라 후사를 얻으려는 뜻에서 아내의 청을 따른 일로 해석했다. 하갈이 아이를 가진 뒤 여주인을 멸시하자 사래가 ‘여자다운 질투’로 그 책임을 남편에게 돌렸다고 하고, 아브람이 ‘당신의 하녀는 당신 손안에 있으니 당신이 좋을 대로 하라’(16:6절)고 답한 것을, 아브람이 아내의 청을 따라 움직였음을 보이는 증거로 삼았다. 이 장은 아브람의 동기를 변호하는 데 무게를 두며, 하갈이 겪은 학대와 천사의 말은 다루지 않는다. 이 소개는 해당 편의 해석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니며, 앞서 살핀 해석이나 아래 정리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13

16장의 짜임은 듣는 쪽과 부르는 쪽, 그리고 괴롭힘의 어휘로 헤아려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본문에서 확인되는 사항을 ‘관찰’, 그 배열에서 이끌어 낸 해석을 ‘추론’,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가능성을 ‘사변’으로 구분한다.

어휘·구절·주제내용판단 구분
‘듣다’16장에서 16:2절(아브람이 사래의 소리를), 16:11절(주께서 고통을) 두 곳관찰
‘소리를 듣다’‘샤마’+‘레콜’은 창세기에서 3:17절과 16:2절관찰
‘취하다·주다’여성 주어가 남편에게 주는 구조는 3:6; 16:3; 30:9절관찰
호칭‘하녀’ 여섯 번, 하갈의 이름을 말로 부르는 이는 16:8절의 천사뿐관찰
‘괴롭히다’15:13; 16:6; 16:9절, 명사 ‘고통’은 16:11절관찰
‘하마스’창세기에서 6:11; 6:13; 16:5; 49:5절관찰
‘주의 천사’창세기의 첫 용례는 16:7절, 16장에 네 번관찰
‘눈·샘’같은 낱말 ‘아인’, 16:4–6절은 눈, 16:7절은 샘관찰
‘엘 로이’창세기에서 16:13절에만, 이름을 지어 부른 이는 하갈관찰
나이12:4절 칠십오 세, 16:16절 팔십육 세, 17:1절 구십구 세관찰
듣는 쪽의 배열아브람의 들음과 주의 들으심이 한 장 안에 놓여 응답의 방향이 대비됨추론
호칭의 대비이름으로 불리지 않던 하갈을 광야에서 이름으로 찾으시는 하나님의 태도추론
‘괴롭히다’의 위치15:13절의 예고와 같은 어근이 16장 집 안에서 먼저 쓰임추론
수르로 가는 길하갈이 고향 이집트로 향하고 있었을 가능성사변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16장은 누구의 소리에 응답하는가를 나란히 둔다. 아브람의 ‘들음’(16:2절)과 주의 ‘들으심’(16:11절)이 같은 동사로 한 장 안에 놓였고,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이 그 접점에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둘째, 사래와 아브람의 말 속에서 ‘하녀’로 불리던 하갈이 광야에서는 이름으로 불린다. 천사만이 ‘하갈아’라고 부른다. 이 배열은 사람들의 말 속에서 가려진 이를 주께서 이름으로 찾아내신다는 구조로 풀어 볼 수 있다. 그녀가 지어 부르는 이름(16:13절)도 이 흐름의 끝에 놓인다.

셋째, ‘괴롭히다’라는 어휘가 15장의 약속과 16장의 집 안을 잇는다. 15:13절에서 아브람의 씨가 겪을 일로 예고된 말이 16:6절에서는 아브람의 집에서 이집트 하녀에게 쓰인다.

사변으로 남기는 것은 하나이다. 16:7절은 샘이 ‘수르로 가는 길’에 있다고 적고, 25:18절은 수르를 ‘이집트 앞’이라고 부른다. 이를 근거로 하갈이 이집트로 향하던 중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16:8절에서 하갈은 어디로 가는지를 답하지 않는다.

팔십육 세에서 구십구 세까지, 본문이 기록하지 않은 시간

16:16절의 아브람은 팔십육 세이다. 17:1절의 흠정역은 ‘아브람이 구십구 세였을 때에’로 시작한다. 두 나이 사이에는 열세 해의 간격이 있다. 그러나 본문이 그 기간을 서술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과 ‘아브람의 아들’이라는 서술(16:15절)은 15:4절의 ‘네 배 속에서 나올 자’와 어떻게 이어지는가? 열세 해 뒤에 다시 나타나시는 주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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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흠정역은 인쇄본 창세기 15–17장 쪽(15:10–17:13 부분)에서 옮겼다. 저해상도 스캔이므로 발행 전 원본과 대조한다. 판독이 불확실한 지점은 작업 기록에 적었다. KJV는 thiagobodruk/bible의 en_kjv.json(https://github.com/thiagobodruk/bible)에서 해당 구절을 열어 대조했고, 철자와 문구를 그대로 유지했다. ↩

2. 계수는 OSHB(WLC 기반, https://github.com/openscriptures/morphhb)의 표제어 번호로 세었고 접두 전치사·접속사가 붙은 형태를 포함했다. ‘듣다’(샤마, 표제어 8085)가 16장에 쓰인 곳은 16:2절과 16:11절이다. ‘샤마 레콜’은 창세기 본문에서 ‘레콜’(לקול)로 시작하는 낱말을 검색한 결과 3:17절과 16:2절이고, 21:12절은 ‘베콜’이다. ‘막다’(아차르, 표제어 6113)는 창세기에서 16:2절과 20:18절이며 둘 다 태와 관련된다. ‘이바네’(אִבָּנֶה)는 ‘바나’(표제어 1129)의 수동(니팔) 1인칭 단수 형태로, 창세기에서 16:2절과 30:3절이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

3. 한 절 안에서 여성 주어의 ‘와티카흐’(취하다)와 ‘와티텐’(주다)이 이어지며 남편에게 주는 구조는 창세기에서 3:6절, 16:3절, 30:9절이다. 같은 두 동사가 한 절에 나오는 15:10절, 20:14절, 24:7절, 34:21절은 문맥이 달라 묶지 않았다. 30:4절은 ‘주다’만 있어 제외했다. ↩

4. ‘하갈’(표제어 1904)은 창세기에서 16:1; 16:3; 16:4; 16:8; 16:15(두 번); 16:16; 21:9; 21:14; 21:17(두 번); 25:12절이며 16장에는 일곱 번이다. 16장의 직접 발화 가운데 이름을 부르는 것은 16:8절의 천사뿐이다. 사래의 발화(16:2; 16:5)와 아브람의 발화(16:6)는 ‘하녀’(쉬프하, 표제어 8198)를 쓰며, 16장에서 ‘하녀’는 16:1; 16:2; 16:3; 16:5; 16:6; 16:8절이다. ↩

5. ‘하마스’(표제어 2555)는 창세기에서 6:11; 6:13; 16:5; 49:5절이다. 이 횟수는 어휘의 분포이며, 16:5절의 뜻이 6장과 같다는 판정이 아니다. ↩

6. ‘괴롭히다’(아나, 표제어 6031)는 창세기에서 15:13(웨인누); 16:6(타아네하); 16:9(웨히트아니); 31:50; 34:2절이다. ‘고통’(오니, 표제어 6040)은 창세기에서 16:11; 29:32; 31:42; 41:52절이다. 출애굽기 1:11–12절은 6031, 3:7절은 6040이다. 15:13절의 ‘괴롭히다’의 주어는 본문에 이름으로 나오지 않는다. ↩

7. ‘주의 천사’는 ‘말아크’(표제어 4397)와 ‘아도나이(YHWH)’가 나란히 놓인 형태를 찾아 창세기에서 16:7; 16:9; 16:10; 16:11; 22:11; 22:15절로 확인했다. 21:17절은 ‘하나님의 천사’이다. ↩

8. ‘하르바 아르베’(표제어 7235의 두 어형이 이어진 형태)는 창세기에서 3:16; 16:10; 22:17절이다. ‘자르에크’(זַרְעֵךְ, 여성 2인칭 어미)는 철자의 모음 표기를 확인해 창세기에서 16:10절과 24:60절로 구분했다. 남성형 ‘자르아카’는 다른 곳에 여러 번 나오며 여기서는 세지 않았다. 24:60절의 화자는 KJV 24:59–60절에서 ‘그들’(리브가의 가족)이 리브가를 축복하는 장면으로 확인했다. ↩

9. ‘알 페네 콜 아하브’(עַל־פְּנֵי כָל־אֶחָיו)는 창세기에서 16:12절과 25:18절이다. 16:12절의 ‘그가 거하리라’(이쉬콘)와 25:18절의 ‘엎드러졌다(죽었다)’(나팔)는 동사가 다르다. 25:18절 흠정역 인쇄본은 아직 제출되지 않았다. ↩

10. ‘로이’(OSHB 철자 ‘ראי’, ‘보다’(라아) 계열의 형태)는 창세기에서 16:13(두 번); 16:14; 24:62; 25:11절에 있다. ‘엘 로이’는 16:13절 하나이다. 이름을 붙이는 문장(‘와티크라 쉠’)에서 주의 이름을 부른 것은 창세기에서 16:13절만 확인했다. 4:26; 12:8; 13:4; 21:33; 26:25절은 ‘주의 이름을 부르다’이고 이름을 짓는 문장이 아니다. ↩

11. 3:6절과 3:17절, 21:12절의 흠정역 인쇄본은 아직 제출되지 않아 본문을 옮기지 않고 장·절과 요약만 적었다. KJV로는 3:17절이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이다. ↩

12. KJV 본문 검색으로 신약에서 ‘Agar’(하갈)가 나오는 곳이 갈라디아서 4:24–25절임을 확인했다. 갈라디아서 4:21–31절의 본문 요약은 KJV로 대조한 것이며 흠정역 인쇄본은 제출 전이다. 4:21절(‘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이’), 4:28절, 4:29절(‘육체를 따라 난 자’, ‘성령을 따라 난 자’), 4:30–31절은 절별 표현을 살려 요약했다. ↩

13.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16권 25장(Marcus Dods 영역). 확인한 곳: logoslibrary.org, CCEL NPNF 1/2. 페이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으나 전문 직접 대조와 쪽수 확인은 하지 못했다. 확인한 범위에서 이 장에는 하갈의 도망과 천사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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