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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5:1–21아브람은 잠들고 횃불이 지나간다
두 번의 물음, 창세기에서 처음 등장하는 ‘믿다’, 언약을 ‘자르는’ 밤
제19편 · 2026.11.04 · Watchman
‘이 일들 뒤에’ 임한 말씀 앞에서 아브람은 두 번 묻는다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한 아브람(14:22–24절)에게 주의 말씀이 임한다. 15:1절은 그때를 ‘이 일들 뒤에’라고 적고, 말씀이 ‘환상에서’ 임했다고 덧붙인다. 주께서는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스스로를 아브람의 ‘방패’이자 ‘지극히 큰 보상’이라 부르신다.1 아래 표는 15장의 흐름이다.
| 절 | 장면 | 말하는 쪽 |
|---|---|---|
| 15:1 | 환상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 방패와 보상 | 주 |
| 15:2–3 | 첫 물음: 아이 없음과 청지기 엘리에셀, 씨를 주지 않으셨다는 말 | 아브람 |
| 15:4–6 | 상속자의 약속, 별을 세어 보라는 말씀, 아브람의 믿음과 ‘의’ | 주 |
| 15:7–8 | 우르에서 이끌어 낸 주라는 자기소개, 땅에 관한 둘째 물음 | 주와 아브람 |
| 15:9–11 | 짐승과 새를 가져오라는 명령, 쪼개 놓음, 날짐승을 쫓아냄 | 아브람 |
| 15:12–16 | 깊은 잠과 큰 어둠, 사백 년과 네 번째 세대의 말씀 | 주 |
| 15:17–21 | 연기 나는 화로와 횃불이 조각들 사이로 지나감, 언약과 땅의 경계, 열 족속 | 주 |
두 물음은 ‘상속’으로 이어지고, 믿음은 약속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다
15장에서 아브람이 말하는 곳은 15:2–3절과 15:8절뿐이다. 두 발언에서 아브람은 모두 ‘주 하나님이여’(아도나이 예호위, אֲדֹנָי יֱהֹוִה)라고 부른다. 이 호칭이 구약에서 처음 나오는 곳이 15:2절이다.2 첫 발언은 ‘무엇을 내게 주려 하시나이까’(마 티텐 리, מַה תִּתֶּן לִי)로 시작해 씨를 주지 않으셨다고 말한다(15:3절). 둘째 발언은 ‘무엇으로 알리이까’(밤마 에다, בַּמָּה אֵדַע)로 땅을 상속하는 일을 묻는다(15:8절). 히브리어에서 ‘상속하리라’(이라쉐나, אִירָשֶׁנָּה)에는 ‘그것을’에 해당하는 어미가 붙어 앞서 말한 땅을 가리키며, 흠정역은 그 지시 대상을 ‘그 땅’으로 풀어 옮겼다. 두 물음을 잇는 낱말은 ‘상속하다’(야라쉬, יָרַשׁ)이다. 15장에 다섯 번 나오는 이 동사는 15:3절에서 아브람의 입으로 처음 나오고, 15:4절에서는 주께서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대답하시며, 15:7절과 15:8절에서는 땅을 두고 되풀이된다.2 흠정역은 15:3절과 15:5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3 또 아브람이 이르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므로,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이니이다, 하매
3 And Abram said, Behold, to me thou hast given no seed: and, lo, one born in my house is mine heir.
— 창세기 15: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5 그분께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네가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5 And he brought him forth abroad, and said, Look now toward heaven, and tell the stars, if thou be able to number them: and he said unto him, So shall thy seed be.
— 창세기 15:5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5:6절은 곧바로 이어진다. 흠정역은 이 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며
6 And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counted it to him for righteousness.
— 창세기 15: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믿다’(헤에민, הֶאֱמִן)는 창세기에서 처음 등장하며, 그 앞에는 씨가 없다는 아브람의 말(15:3절)과 별을 세어 보라는 말씀(15:5절)이 있다. 여기서 ‘첫 용례’는 성경의 배열에서 처음 나온다는 뜻이며, 아브람이 이때 처음 믿었다는 뜻은 아니다. ‘의’(체다카, צְדָקָה)도 창세기에서 15:6절이 첫 용례이고, ‘여기다’(하샤브, חָשַׁב)와 ‘의’가 한 절에 함께 나오는 곳은 구약에서 창세기 15:6절과 시편 106:31절 둘뿐이다.3 15:7절에서 주께서는 ‘나는 … 너를 갈대아 사람들의 우르에서 데리고 나온 주니라’고 말씀하신다. ‘호체티카’(הוֹצֵאתִיךָ)라는 형태는 구약에서 창세기 15:7절, 출애굽기 20:2절, 신명기 5:6절 세 곳에 나온다.4
이 자기소개 뒤에 아브람의 둘째 물음이 나오고, 주께서는 세 종류의 짐승(암송아지, 암염소, 숫양)과 두 종류의 새(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짐승은 모두 ‘삼 년 된’ 것이다. 아브람은 짐승들을 한중간에서 둘로 쪼개 서로 마주 보게 놓았다. 새들은 쪼개지 않았다(15:9–10절). 날짐승들이 사체들 위에 내려오자 아브람이 그것들을 쫓아낸다(15:11절).5
이어지는 장면에서 아브람의 행동은 더 기록되지 않는다. 15:12절은 ‘깊은 잠’(타르데마, תַּרְדֵּמָה)이 아브람을 덮쳤다고 적는다. 이 낱말은 창세기에서 2:21절과 15:12절 둘뿐이다.5 흠정역은 15:12절과 15:13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12 해가 질 때에 깊은 잠이 아브람을 덮치고, 보라, 큰 어둠의 공포가 그를 덮쳤는데
12 And when the sun was going down, a deep sleep fell upon Abram; and, lo, an horror of great darkness fell upon him.
— 창세기 15:1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3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 땅 사람들을 섬기겠고 그 사람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13 And he said unto Abram, Know of a surety that thy seed shall be a stranger in a land that is not theirs, and shall serve them; and they shall afflict them four hundred years;
— 창세기 15: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5:8절의 ‘알리이까’(에다, אֵדַע)와 15:13절의 ‘확실히 알라’(야도아 테다, יָדֹעַ תֵּדַע)는 같은 어근 ‘알다’(야다)이다. 15:14절은 섬길 그 민족을 ‘심판하리니’ 뒤에 ‘큰 재산’을 가지고 나오리라 하고, 15:16절은 ‘네 번째 세대’에 돌아오리니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다음 장면을 흠정역은 이렇게 옮긴다.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고 타오르는 횃불이 그 조각들 사이로 지나갔는데
17 And it came to pass, that, when the sun went down, and it was dark, behold a smoking furnace, and a burning lamp that passed between those pieces.
— 창세기 15: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8 바로 그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그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네 씨에게 주었노니
18 In the same day the LORD made a covenant with Abram, saying, Unto thy seed have I given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 창세기 15:1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번역문에서는 연기 나는 화로(타누르 아샨, תַנּוּר עָשָׁן)와 타오르는 횃불(라피드 에쉬, לַפִּיד אֵשׁ)이 조각들 사이로 지나가는 장면으로 제시된다. 히브리어 동사 ‘아바르’(עָבַר)는 단수형이다. ‘지나가다’는 15장에서 15:17절에 한 번 나오고, 아브람이 지나갔다는 말은 없다.6 15:17절의 ‘조각들’(게자림, גְּזָרִים)은 15:10절의 ‘조각’(베테르, בֶּתֶר)과 다른 낱말이다. 15:18절의 ‘맺으며’(카라트, כָּרַת)는 ‘자르다’를 뜻하는 동사로, ‘언약’(베리트, בְּרִית)과 함께 ‘언약을 자르다’라는 관용구를 이룬다. 이 관용구의 주어가 하나님인 곳은 창세기에서 15:18절이다.6 ‘주었노니’(나타티, נָתַתִּי)는 완료형이다. 완료형은 이 선언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해 볼 수 있으나, 후손들이 그날 땅을 실제로 차지했다는 뜻으로 곧바로 풀기는 어렵다. 15:19–21절은 열 족속의 이름을 잇는다. 켄과 크니즈와 카드모니, 힛과 프리즈와 르파임, 아모리와 가나안과 기르가쉬와 여부스이다. 여기서 비교한 목록에는 출애굽기 13:5절(다섯), 3:8절(여섯), 신명기 7:1절(일곱)처럼 각각 다섯·여섯·일곱 족속이 나오며, 켄·크니즈·카드모니를 한 목록에 두는 곳은 확인한 범위에서 15:19절뿐이다.7
후대의 성경은 이 밤의 의식과 약속을 다시 부른다
예레미야 34:18–19절은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조각들 사이로 지나간 사람들이 언약을 어겼다고 책망한다. 흠정역은 34:18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8
18 또 자기들이 송아지를 둘로 쪼갠 뒤 그것의 조각들 사이로 지나갈 때에 자기들이 내 앞에서 맺은 언약의 말들을 이행하지 아니하고 내 언약을 범한 자들
18 And I will give the men that have transgressed my covenant, which have not performed the words of the covenant which they had made before me, when they cut the calf in twain, and passed between the parts thereof,
— 예레미야 34:18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조각’(베테르)은 구약에서 창세기 15:10절과 예레미야 34:18–19절에만 나온다. 예레미야에서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이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통치자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그 땅의 온 백성이다(34:19절). 창세기 15:17절에서 지나가는 것은 화로와 횃불이다.
신약에서 15:6절을 가장 길게 풀어 가는 본문은 로마서 4장이다. 흠정역은 로마서 4:3절을 이렇게 옮긴다.9
3 성경기록이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느니라.
3 For what saith the scripture? Abraham believed God, and it was counted unto him for righteousness.
— 로마서 4: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바울은 이어 4:4–5절에서 일하는 자에게는 품삯이 ‘은혜’가 아니라 ‘빚’으로 여겨지지만, 일하지 않더라도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고 쓴다. 바울은 이 믿음을 보상을 얻어 내는 공로로 설명하기보다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풀어 간다고 볼 수 있다. 4:10절은 그것이 의로 간주된 때를 ‘할례받지 않은 때’라고 답한다. 4:18–25절은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15:5절)는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에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을 믿는 ‘우리’로 이어 간다.
갈라디아서 3:6절은 15:6절을 인용하고, 3:7절은 믿음에 속한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3:8절은 15:6절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의 약속, 곧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는 말을 불러온다. 3:16절은 약속이 ‘씨들’이 아니라 ‘네 씨’에게 하신 것이며 ‘이 씨는 그리스도’라고 풀고, 3:17절은 그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취소할 수 없다고 말한다.9
야고보서 2:21–22절은 이삭을 제단 위에 드린 일, 곧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돌아보며 믿음이 행위와 함께 일하였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다고 말한 뒤 2:23절에서 15:6절을 인용한다. 이것은 야고보서의 서술 순서이며 창세기 사건의 시간 순서와 다르다. 흠정역은 야고보서 2:23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전가되었다, 하고 말하는 성경기록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느니라.
23 And the scripture was fulfilled which saith, Abraham believed God, and it was imputed unto him for righteousness: and he was called the Friend of God.
— 야고보서 2:2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바울은 의롭다 하심의 근거를, 야고보는 행함 없이 믿음을 주장하는 태도를 다룬다고 볼 수 있으나, 두 본문의 긴장이 완전히 해소된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햇수도 다른 본문에서 다시 나온다. 출애굽기 12:40–41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이집트 체류 기간을 ‘사백삼십 년’이라고 두 번 적는다.8 사도행전 7:6–7절은 15:13–14절을 되받아 ‘사백 년’과 ‘심판’과 ‘섬기리라’를 말한다.9
15:6절의 주어, 15:17절에 지나간 이, ‘사백 년’의 셈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첫째 쟁점은 15:6절에서 ‘여기다’의 주어가 누구인가이다. 히브리어 ‘와야흐셰바 로’(וַיַּחְשְׁבֶהָ לּוֹ)에는 주어가 이름으로 나오지 않는다. 흠정역은 ‘그분께서’가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옮기고(KJV는 ‘he’), 로마서 4:3절과 야고보서 2:23절도 ‘여겨졌다·전가되었다’는 수동으로 인용한다. 다만 로마서는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근거를 이 구절에서 찾고, 야고보서는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된다는 논지에서 같은 구절을 불러 온다. 두 인용은 15:6절 자체의 문법보다 각 편지의 문맥이 어디를 겨냥하는지를 보여 준다.
둘째 쟁점은 15:17절의 화로와 횃불이 무엇을 뜻하는가이다. 본문은 화로와 횃불이 지나갔다고만 쓰고 아브람이 지나갔다고는 쓰지 않으며, 15:12절은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했다고 적는다. 화로와 횃불을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지로 보는 이해와, 하나님께서 언약의 확실성을 보증하신다고 보는 이해는 함께 제시될 수 있다. 화로와 횃불을 임재의 표지로 보면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보증하시는 의식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다만 본문은 이 둘을 하나님이라고 직접 부르지 않는다. 예레미야 34장과 의식의 모든 세부가 같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예레미야에서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15장에서는 화로와 횃불이 지나가며, 조각을 가리키는 낱말도 다르다.
셋째 쟁점은 햇수이다. 15:13절의 ‘사백 년’, 15:16절의 ‘네 번째 세대’, 출애굽기 12:40–41절과 갈라디아서 3:17절의 ‘사백삼십 년’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는 기산점과 본문 전승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백 년을 어림수로 보는 이해가 있고, 출애굽기 12:40절은 마소라 본문과 사마리아 오경·칠십인역 사이에 체류를 가리키는 표현의 차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8
중세 유대교 주석 전통에서도 ‘여기다’의 주어는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후대에 제시된 해석을 하나 덧붙인다. 중세 유대교 주석 전통에서는 15:6절의 ‘여기다’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보는 독법과, 아브람이 약속을 하나님의 의와 은혜의 표현으로 여겼다고 보는 독법이 함께 전해진다고 한다. 개별 주석가의 논지는 한 입장에 고정해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며, 이 글은 주석 원문을 직접 열어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인물별 분류를 싣지 않는다.10 이는 같은 히브리어 문장이 주어 하나만 달리 이해되어도 믿음과 의의 관계가 다르게 들린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본문 자체의 설명과는 구분되며, 앞서 살핀 해석이나 아래 정리를 입증하는 근거로 삼지 않는다.
15장의 짜임은 아브람의 물음, 하나님의 응답, 기록이 멈춘 아브람과 지나가는 불로 풀어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본문에서 직접 확인되는 사항을 ‘관찰’, 그 배열에서 이끌어 낸 해석을 ‘추론’, 본문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가능성을 ‘사변’으로 구분한다.
| 어휘·구절·주제 | 내용 | 판단 구분 |
|---|---|---|
| 아브람의 말 | 15:2–3절과 15:8절에만 나오며, 두 발언 모두 ‘주 하나님이여’로 부름 | 관찰 |
| ‘상속하다’ | 15장에 다섯 번(15:3; 15:4(2); 15:7; 15:8절), 창세기의 첫 용례는 15:3절 | 관찰 |
| ‘믿다’와 ‘의’ | 15:6절, 둘 다 창세기의 첫 용례 | 관찰 |
| ‘여기다’와 ‘의’ | 한 절에 함께 나오는 곳은 창세기 15:6절과 시편 106:31절 | 관찰 |
| ‘나는 너를 데리고 나온 주’ | ‘호체티카’ 형태는 창 15:7; 출 20:2; 신 5:6절 | 관찰 |
| 짐승과 새 | 세 종류의 짐승과 두 종류의 새, 짐승은 쪼개고 새는 쪼개지 않음 | 관찰 |
| ‘깊은 잠’ | 창세기에서 2:21절과 15:12절 | 관찰 |
| ‘알다’ | 15:8절 ‘알리이까’, 15:13절 ‘확실히 알라’ | 관찰 |
| ‘지나가다’ | 15:17절에 한 번, 단수형 동사, 아브람이 지나갔다는 말은 없음 | 관찰 |
| ‘조각’ | ‘베테르’는 창 15:10; 렘 34:18–19절, ‘게자림’은 창 15:17절 | 관찰 |
| 하나님이 ‘언약을 자르다’ | 이 관용구의 주어가 하나님인 곳은 창세기에서 15:18절 | 관찰 |
| 열 족속 | 15:19–21절, 비교한 목록은 다섯·여섯·일곱 | 관찰 |
| 본문이 설명하지 않는 사항 | 15:2절 ‘엘리에셀’의 지위, 15:11절 날짐승의 상징 | 관찰 |
| 물음과 응답의 배열 | 첫 물음(씨)에는 별과 ‘믿음’, 둘째 물음(땅)에는 의식과 잠과 언약이 이어짐 | 추론 |
| 아브람의 행동 | 15:9–11절의 행동에서 15:12절의 잠으로 옮겨 가고, 15:17절의 ‘지나가다’에는 나오지 않음 | 추론 |
| ‘알다’의 응답 | 15:8절의 물음에 15:13절의 ‘알라’가 같은 어근으로 이어짐 | 추론 |
| 화로와 횃불의 뜻 |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지일 가능성 | 사변 |
| 15:11절의 날짐승 | 특정 세력을 가리킬 가능성 | 사변 |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두 물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응답된다. 씨를 묻는 첫 물음(15:2–3절)에는 별을 보라는 말씀(15:5절)이 있고 곧바로 ‘믿다’(15:6절)가 나온다. 땅을 묻는 둘째 물음(15:8절)에는 짐승을 쪼개는 의식과 깊은 잠, 그리고 언약 선언(15:18절)이 잇따른다. 이를 두고 15장은 믿음의 장면과 언약의 장면을 나란히 세운다고 볼 여지가 있다.
둘째, 아브람의 행동은 의식의 앞부분에만 기록된다. 15:9–11절에서 그는 가져오고 쪼개고 놓고 쫓아내지만, 15:12절에서 깊은 잠에 빠진 뒤에는 그의 행동이 기록되지 않고, 15:17절에서 지나가는 것은 화로와 횃불이다. 이 배열은 언약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행동에 무게를 둔다고 헤아려 볼 수 있다. 다만 본문은 아브람이 지나가지 않은 이유를 풀이하지 않는다.
셋째, 15:8절의 ‘알리이까’(에다)에는 15:13절의 ‘확실히 알라’(야도아 테다)가 같은 어근으로 이어지고, 그 앞에 아브람의 깊은 잠이 놓인다. 땅을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땅의 상속보다 먼저 나그네 생활의 햇수와 심판이 주어졌으므로, 이 응답은 땅을 받기까지 거칠 시간을 알려 주는 응답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본문이 설명하지 않는 사항도 있다. 15:2절은 ‘다마스쿠스 출신의 이 엘리에셀’이라고만 쓰고 그의 지위를 더 밝히지 않으며, 15:11절은 날짐승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풀지 않는다. 사변으로 남기는 것은 둘이다. 하나는 화로와 횃불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지일 가능성이다. 15:18절은 ‘바로 그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셨다’고 쓸 뿐 둘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15:11절의 날짐승이 특정 세력을 가리킬 가능성이다. 이 연결을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믿음과 언약의 밤 뒤에 16:1절은 무엇을 이어 놓는가
약속을 받은 뒤에도 아브람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다. 이 밤은 기다림을 없애기보다, 그 기다림을 누구의 말씀에 기대어 견딜 것인지 보여 주는 장면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곧바로 16:1절은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그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였는데’로 시작한다. ‘네 배 속에서 나올 자’(15:4절)에 관한 약속은 16장의 첫 장면에서 어떻게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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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흠정역 인용문은 흠정역 인쇄본의 해당 쪽(창세기 14–16장, 예레미야 34장, 갈라디아서 3장, 로마서 3–5장, 야고보서 2장, 사도행전 7장, 출애굽기 12–13장, 에스라 9장)에서 옮겼다. KJV는 thiagobodruk/bible의 en_kjv.json에서 해당 구절을 열어 대조했고, 쉼표 앞 공백은 정리했다. 15:1절의 인쇄본 본문은 ‘이 일들 뒤에 주의 말씀이 환상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이다. ‘환상’(마하제, מַחֲזֶה, 표제어 4236)은 OSHB(WLC 기반, Open Scriptures Hebrew Bible)에서 창세기 15:1절, 민수기 24:4절, 24:16절, 에스겔 13:7절로 확인했다.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
2. 계수는 OSHB의 표제어 번호로 세었고 접두 전치사·접속사가 붙은 형태를 포함한다. ‘아도나이 예호위’는 인접한 두 낱말로 찾아 창세기 15:2; 15:8절과 신명기 3:24; 9:26절 등으로 확인했고, 구약에서 가장 이른 용례가 15:2절이다. 흠정역은 ‘주 하나님’으로 옮긴다. ‘상속하다’(표제어 3423)는 15:3; 15:4(두 번); 15:7; 15:8절이며 이후 창세기 21:10; 22:17절 등이다. ‘씨’(표제어 2233)는 15:3; 15:5; 15:13; 15:18절, ‘땅’(표제어 776)은 15:7; 15:13; 15:18절이다. 이 횟수는 어휘가 15장에 퍼진 분포를 보이는 계수이며, 그 자체가 해석의 근거는 아니다. ↩
3. ‘믿다’(아만, 표제어 539)는 창세기에서 15:6절이 첫 용례이며 이후 42:20; 45:26절 등이다. ‘의’(체다카, 표제어 6666)는 창세기에서 15:6; 18:19; 30:33절이다. ‘여기다’(하샤브, 표제어 2803)와 ‘의’가 같은 절에 나오는 곳은 OSHB 전체에서 창세기 15:6절과 시편 106:31절이다. 시편 106:31절은 본문을 옮기지 않고 장·절만 밝혔다. ↩
4. ‘호체티카’(הוצאתיך)는 접두 표지를 뺀 낱말 형태로 OSHB 전체를 찾아 창세기 15:7절, 출애굽기 20:2절, 신명기 5:6절로 확인했다. 어근이 같은 다른 활용형은 세지 않았다. ↩
5. ‘쪼개다’(바타르, 표제어 1334)는 15:10절에 두 번(‘와예바테르’, ‘바타르’), 명사 ‘비트로’(표제어 1335)는 한 번 나온다. ‘삼 년 된’(메슐라쉬, מְשֻׁלָּשׁ)은 15:9절이다. ‘타르데마’(표제어 8639)는 창세기 2:21; 15:12절, 사무엘상 26:12절, 욥기 4:13; 33:15절, 잠언 19:15절, 이사야 29:10절 일곱 곳이다. 15:8절의 ‘알다’(야다, 표제어 3045)와 15:13절의 ‘야도아 테다’는 15장에 세 번 나온다. ↩
6. ‘지나가다’(아바르, 표제어 5674)는 15장에서 15:17절 한 번이며 동사는 단수형(‘아샤르 아바르’)이다. 두 명사 ‘타누르 아샨’과 ‘라피드 에쉬’ 뒤에 놓인 단수 동사를 어떻게 설명할지는 이 글에서 판정하지 않는다. ‘게자림’(표제어 1506)은 창세기 15:17절과 시편 136:13절이다. ‘카라트’(표제어 3772)와 ‘베리트’(표제어 1285)가 한 절에 나오는 창세기 구절은 9:11; 15:18; 17:14; 21:27; 21:32; 26:28; 31:44절이다. 이 검색 결과와 ‘언약을 자르다’라는 관용구의 판단은 구별해야 한다. 9:11절과 17:14절의 ‘카라트’는 수동형으로 ‘끊어진다’는 뜻이어서 이 관용구의 사례로 묶지 않았다. 관용구로 쓰인 21:27; 21:32; 26:28; 31:44절의 주어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주어인 곳은 15:18절이다. ‘나타티’(נָתַתִּי, 15:18절)는 완료형이고 15:7절의 ‘라테트’(לָתֵת)는 부정사이다. ↩
7. 열 이름은 15:19절(켄·크니즈·카드모니), 15:20절(힛·프리즈·르파임), 15:21절(아모리·가나안·기르가쉬·여부스)이다. 족속 이름이 4개 이상 같은 절에 모인 구절을 OSHB에서 찾아 비교했다. 켄과 크니즈와 카드모니가 한 목록에 나오는 곳은 15:19절 하나였다. 이는 낱말 검색으로 확인한 범위이며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참고로 에스라 9:1절의 흠정역은 가나안·헷·브리스·여부스·암몬·모압·이집트·아모리를 든다. ↩
8. 예레미야 34:18–19절과 출애굽기 12:40–41절, 13:5절의 흠정역은 인쇄본에서 옮겼다. ‘베테르’(표제어 1335)는 OSHB에서 창세기 15:10절과 예레미야 34:18절, 34:19절이다. 출애굽기 12:40–41절의 ‘사백삼십 년’은 OSHB로 ‘샬로쉼 샤나 베아르바 메오트 샤나’를 확인했다. 출애굽기 12:40절에 관해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역이 마소라 본문과 다르게 체류를 표현한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본문 비평 정보이나, 이번에는 해당 본문을 직접 대조하지 못했다. ↩
9. 신약의 흠정역은 인쇄본(로마서 3–5장, 갈라디아서 3장, 야고보서 2장, 사도행전 7장)에서 옮겼다. 로마서 4:4–5절, 4:10절, 4:18–25절, 갈라디아서 3:6–9절, 3:16절, 야고보서 2:21–22절, 사도행전 7:6–7절은 인쇄본 본문을 요약했다. 갈라디아서 3:17절의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용 판본(흠정역·KJV)의 표현이며, 다른 본문 계열을 따르는 번역에서는 생략되기도 한다. KJV 대조는 각주 1의 저장소 본문이다. ↩
10. 이 항목은 15:6절의 ‘여기다’의 주어를 두고 중세 유대교 주석 전통이 갈린다는 점을 Phil Gons의 글이 소개한 Nahum Sarna의 JPS 주석 요약으로 확인한 것이다. 라시·이븐 에즈라·람반 등의 원문은 직접 열어 확인하지 못했다. 이 글의 독자 댓글은 근거에서 제외했고, 인물별 분류는 본문에 싣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