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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1–9피하려던 흩어짐이 두 번 기록되었다
‘자, 하자’로 마주 놓인 사람의 말과 주의 말씀
제13편 · 2026.11.01 · Watchman
여러 언어를 적은 목록이 끝나자 온 땅이 한 언어를 쓰는 장면이 열린다
10장은 민족들이 땅에서 ‘나뉘었더라’는 말로 닫혔다(10:32절). 이어지는 11:1절은 시선을 온 땅이 한 언어를 쓰던 때로 돌린다. 장 번호만 바뀌었을 뿐 서술은 끊기지 않는다. 이번 글은 이 장면을 따라가며 한 가지를 묻는다.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으려고 도시와 탑을 세우려 했다. 그런데 왜 이야기는 그들이 흩어지는 것으로 끝나는가. 흠정역은 11:1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1
1 온 땅이 한 언어를 쓰고 한 말을 썼더라.
1 And the whole earth was of one language, and of one speech.
— 창세기 11:1 (킹제임스 흠정역 · KJV)
범위는 11:1–9절이다. 11:1–2절은 무대, 11:3–4절은 사람들의 말, 11:5–7절은 주의 내려오심과 말씀, 11:8–9절은 결과와 이름이다. 11:10절에서 “셈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로 새 ‘세대’(톨도트) 단락이 시작되므로, 이 글에서는 11:1–9절을 살핀다. 흠정역 인쇄본은 이 단락에 ‘바벨탑에서의 반역’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이 소제목은 번역본의 편집이며 히브리어 본문에 있는 말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반역’이라는 규정을 전제하기에 앞서 본문의 어휘와 짜임을 살펴보려 한다.2
사람의 말은 4절에서 끝나고, 주의 이름은 5절에서 처음 나온다
먼저 말하기를 나타내는 동사와 발화를 여는 표현을 세어 본다. 11:1–9절의 히브리어 본문에서 ‘말하다’(아마르)에 해당하는 동사는 세 번 나온다. 사람들의 발화를 소개하는 11:3절과 11:4절에 각각 한 번, 주의 말씀을 소개하는 11:6절에 한 번이다. 발화를 여는 표현도 겹친다. 사람들은 두 번 모두 ‘자’(하바)로 말을 열고, 주의 말씀도 11:7절에서 ‘자’로 이어진다. 11:1–9절에서 ‘하바’는 세 번이며, 사람의 말에 둘, 주의 말씀에 하나가 있다.3 흠정역은 11:3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3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굳게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역청을 취한 뒤
3 And they said one to another, Go to, let us make brick, and burn them throughly. And they had brick for stone, and slime had they for morter.
— 창세기 11:3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우리가 벽돌을 빚자’의 ‘닐베나’는 ‘벽돌’(레베님)과 같은 어근에서 나온 동사이다. 이어지는 말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루려는 일을 밝힌다. 흠정역은 11:4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4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해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며 우리를 위해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매
4 And they said, Go to, let us build us a city and a tower, whose top may reach unto heaven; and let us make us a name, lest we be scattered abroad up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 창세기 11:4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절의 말에는 ‘우리를 위해’(라누)가 두 번 있다. 사람들이 밝히는 일은 도시와 탑을 세우는 일, 이름을 내는 일, 흩어짐을 피하는 일이다.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며’라는 대목에는 히브리어 본문에 ‘닿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따로 없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라는 어구만 있다.4
주께서는 11:5절에서 이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신다. 이어지는 말씀은 11:6–7절이다. 흠정역은 11:6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6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백성이 하나요, 또 그들이 다 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을 하기 시작하니 그들이 하려고 상상한 어떤 일도 이제 그들이 하지 못하게 막지 못하리라.
6 And the LORD said, Behold, the people is one, and they have all one language; and this they begin to do: and now nothing will be restrained from them, which they have imagined to do.
— 창세기 11:6 (킹제임스 흠정역 · KJV)
이 절은 ‘한 백성’과 ‘한 언어’를 판단의 이유로 내세운다. ‘하나’(아하드)는 11:1절에서 ‘한 언어’, ‘한 말’로 두 번, 11:6절에서 ‘한 백성’, ‘한 언어’로 두 번 나와 모두 네 번이다. 흠정역은 11:7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7 자, 우리가 내려가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7 Go to, let us go down, and there confound their language, that they may not understand one another’s speech.
— 창세기 11:7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1:7절은 사람의 말과 같은 틀이다. ‘자’로 시작하고 ‘우리가 ~하자’ 꼴의 동사가 이어진다. 이 권유형은 사람의 말에 넷(11:3절 ‘빚자’·‘굽자’, 11:4절 ‘세우자’·‘내자’), 주의 말씀에 둘(‘내려가자’, ‘혼잡하게 하자’)이다. 11:4절에는 1인칭 복수형이 하나 더 있는데, ‘흩어짐을 면하자’의 ‘나푸츠’는 ‘~하지 않도록’(펜)이라는 문맥에 놓여 있어 권유형과 같은 기능으로 묶기는 어렵다. 소리도 닮았다. 11:3절의 ‘닐베나’와 11:7절의 ‘나벨라’는 자음이 겹친다. 이 겹침이 의도된 것인지 본문은 말하지 않으므로 5부에서 따로 다룬다.
11:1–4절에는 ‘주’(여호와)도 ‘하나님’(엘로힘)도 나오지 않는다. ‘주’는 11:5절의 ‘내려오셨더라’에서 처음 나오며, 11:5, 6, 8, 9절에 모두 다섯 번이다.3 ‘내려오다’(야라드)는 11:5절에 한 번, 11:7절의 ‘내려가자’에 한 번이다.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에 이르는 탑을 세우려 했고, 주께서는 그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신 것으로 서술된다. 이 배열에서 대비를 볼 수는 있지만, 본문은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흩다’(파츠) 동사는 세 번 나오며, 사람의 입에서 한 번, 주의 행위로 두 번이다. 11:4절의 ‘흩어짐을 면하자’에서 한 번, 11:8절의 ‘흩으셨으므로’와 11:9절의 ‘흩으셨더라’에서 각각 한 번이다. 11:8절에서는 사람들이 피하려던 흩어짐이 주의 행위로 서술된다. 흠정역은 11:9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9 그러므로 그것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온 땅의 언어를 거기서 혼잡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주께서 그들을 그곳으로부터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더라.
9 Therefore is the name of it called Babel; because the LORD did there confound the language of all the earth: and from thence did the LORD scatter them abroad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 창세기 11:9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1:4절에서 사람들은 ‘이름을 내자’(셈)고 말했다. 11:9절에서 도시에는 이름이 붙는데, 그 이름은 ‘바벨’이고 본문은 이를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혼잡하게 하다’(발랄)는 11:7절의 ‘나벨라’와 같은 어근이다. 누가 그 이름을 붙였는지는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5
언어를 가리키는 낱말도 눈에 띈다. 10장의 후렴은 ‘언어’에 ‘라숀’(혀)을 쓰는데(10:5, 20, 31절), 11:1–9절에는 ‘라숀’이 없고 ‘사파’(입술)만 다섯 번 나온다. 흠정역과 KJV는 둘 다 ‘언어’(language)로 옮겼고, KJV 난외주는 11:1절의 ‘language’에 ‘Heb. lip’, ‘speech’에 ‘Heb. words’를 병기한다.6 지금까지 살핀 낱말을 한 표에 모으면 아래와 같다.
| 낱말 | 11:1–9절 횟수 | 나오는 절 |
|---|---|---|
| 하바(자) | 3 | 3, 4, 7 |
| 아마르(말하다) | 3 | 3, 4, 6 |
| 아하드(하나) | 4 | 1(두 번), 6(두 번) |
| 사파(입술·언어) | 5 | 1, 6, 7(두 번), 9 |
| 라숀(혀·언어) | 0 | — |
| 파츠(흩다) | 3 | 4, 8, 9 |
| 콜 하아레츠(온 땅) | 5 | 1, 4, 8, 9(두 번) |
| 야훼(주) | 5 | 5, 6, 8, 9(두 번) |
| 엘로힘(하나님) | 0 | — |
| 야라드(내려가다) | 2 | 5, 7 |
시날과 바벨은 10장에서 먼저 나왔고, ‘이름’과 ‘가족’은 12장에서 다시 나온다
본문은 앞뒤 장과 두 갈래로 이어진다. 먼저 앞 장이다. 11:2절의 ‘시날 땅에 있는 평야’는 10:10절에서 바벨이 자리한 곳으로 언급된 시날과 연결된다(흠정역 인쇄본). 10장은 바벨을 니므롯 왕국의 시작으로 적었고, 11장은 그 이름이 어떤 일 때문에 붙었는지를 말한다. 11:2절의 ‘동쪽에서 떠나’는 ‘동쪽으로’로도 옮길 수 있어서 KJV는 난외주에 ‘or, eastward’를 병기한다.7
다음은 뒤 장이다. 흠정역 인쇄본 12:2절에는 주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크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나온다.
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2 And I will make of thee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thee, and make thy name great; and thou shalt be a blessing:
— 창세기 12:2 (킹제임스 흠정역 · KJV)
11:4절의 ‘이름을 내자’와 12:2절의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는 같은 낱말 ‘셈’(שם)을 쓴다. 12:3절에는 ‘땅의 모든 가족들’이 나오는데, ‘가족’(미쉬파하)은 10:5, 20, 31절 후렴의 낱말과 같다.8 ‘복’(바라크)과 ‘저주’(아라르) 어근은 10장과 11:1–9절에 없다가 12:2–3절에서 다시 나온다. 앞 편에서는 9장과 달리 10장에 복과 저주의 어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살폈다. 이번에는 그 관찰을 11:1–9절과 12:2–3절까지 이어서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본문 바깥의 배경이다. 바빌론의 지구라트 에테메난키가 이 탑의 배경으로 자주 거론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해설 기사는 초기 발굴에서 진흙 벽돌과 구운 벽돌, 역청이 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소개하면서, 현재는 거의 구덩이만 남아 형태와 역사를 구체적으로 확증하기 어렵다는 아시리아·바빌로니아학자 앤드루 조지의 경고를 함께 전한다. 같은 기사는 두 건물이 같은 구조물인지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맺는다.9
이 이야기에서 무엇이 문제로 제시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본문은 사람들의 계획을 ‘죄’나 ‘악’이라는 말로 직접 규정하지 않는다. 11:1–9절에는 그런 뜻의 어근(‘하타’, ‘라아’, ‘하마스’)이 없다.10 이 점은 해석에서 고려할 만하지만, 어휘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본문의 평가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주께서 11:6절에서 ‘한 백성’, ‘한 언어’, ‘상상한 일’을 언급하는 점이 단서가 될 수 있고, 무엇을 문제로 보는지에 따라 해석의 방향이 갈린다.
첫째 방향은 높이와 이름에서 오만을 본다. 11:4절의 ‘꼭대기를 하늘에’와 ‘이름을 내자’가 근거이고, 주께서 ‘내려오셔서’ 보신다는 11:5절이 대비로 놓인다. 둘째 방향은 흩어짐에 무게를 둔다. 9장에서 노아의 아들들에게 땅에 번성하고 가득하라는 복이 주어졌고(9:1, 7절), 11:4절은 그와 반대로 흩어짐을 면하려 한다. 이 방향에서는 11:8절의 ‘흩으셨다’가 사람이 스스로 하지 않으려던 일을 주께서 이루시는 것이 된다.11 셋째 방향은 본문의 낱말에서 직접 나온다. 11:6절이 ‘한 백성’과 ‘한 언어’를 이유로 내세우므로, 오만이나 불순종이라는 해석과 함께 하나로 모인 힘의 집중에 주목하는 해석도 가능할 수 있다. 넷째 방향은 장소에 주목한다. 시날과 바벨이 바빌론 지역으로 이어지므로, 이 이야기를 바빌론의 신전 탑과 견주어 보는 관점이다. 다만 앞 절에서 보았듯 그 대응은 확정하기 어렵다.
이 방향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한 해설 안에서 둘 이상이 함께 제시되기도 한다. 본문의 어휘만으로는 어느 하나를 판정하기 어렵다. 10장의 ‘언어’와 11:1절의 ‘한 언어’가 어떤 순서인지에 대해서는 앞 편 4부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벨의 탑을 하늘에 닿으려는 높이가 아니라 하나님께 맞선 오만으로 풀었다
후대에 제시된 해석을 하나 덧붙인다.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신국론』 16권 4장에서 11장을 풀었다. 그는 바벨을 바빌론으로 이해하고, 그 기원을 10:10절의 니므롯과 연결해 설명했다. 사람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도 하나님께는 아무 해가 없다고 보았고, 이와 대비하여 마음을 주께로 들어 올리는 겸손을 하늘에 이르는 안전한 길로 제시했다. 그에게 이 탑은 오만의 표현이었다. 벌이 말에 내려진 까닭도 같은 맥락에서 풀었다. 혀는 지배의 도구이므로 교만이 거기서 벌을 받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알아들으려 하지 않던 사람은 정작 자신이 명령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12 이 소개는 후대의 수용 사례를 보인 것이며, 앞서 살핀 해석을 입증하는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
이 범위의 짜임은 맞물린 ‘자’, 되돌아온 ‘흩다’, 5절에서 열리는 주의 이름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본문에서 확인한 내용을 ‘관찰’, 그에 근거한 해석을 ‘추론’,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가능성을 ‘사변’으로 구분한다.
| 어휘·구절·주제 | 내용 | 판단 구분 |
|---|---|---|
| ‘하바’(자) | 11:3, 4, 7절에 세 번. 사람의 말 둘, 주의 말씀 하나 | 관찰 |
| 1인칭 복수 동사 형태 | 사람의 말에 다섯(권유형 넷과 ‘흩어지다’ 하나), 주의 말씀에 둘 | 관찰 |
| ‘사파’와 ‘라숀’ | 11:1–9절은 ‘사파’ 다섯 번, ‘라숀’ 없음. 10:5, 20, 31절은 ‘라숀’ | 관찰 |
| ‘주’(여호와) | 11:1–4절에 없고 11:5절 이후 다섯 번. ‘엘로힘’은 없음 | 관찰 |
| ‘흩다’(파츠) | 세 번. 11:4절 사람의 말에 한 번, 11:8–9절 주의 행위로 두 번 | 관찰 |
| 11:4절의 꼭대기 | ‘닿다’에 해당하는 동사 없이 ‘그 꼭대기가 하늘에’ | 관찰 |
| ‘이름’과 도시 이름 | 11:4절 ‘이름을 내자’, 11:9절 도시 이름은 ‘바벨’이며 이유는 주의 ‘혼잡’ | 관찰 |
| 죄·악 어근 | 11:1–9절에 없음 | 관찰 |
| 복·저주 어근 | 10장과 11:1–9절에 없고 12:2–3절에 다시 나옴 | 관찰 |
| 사람의 말과 주의 말씀 | 같은 틀(‘자’와 1인칭 복수 동사)로 마주 놓인 구조 | 추론 |
| ‘면하자’와 ‘흩으셨다’ | 사람들이 피하려던 흩어짐이 주의 행위로 서술되는 구조 | 추론 |
| 도시의 이름 | 사람들이 내려던 이름과 달리 사건을 가리키는 이름이 서술에 남음 | 추론 |
| ‘닐베나’와 ‘나벨라’ | 소리와 자음이 겹치는 것이 의도된 말놀이일 가능성 | 사변 |
| 11:4절과 12:2절의 ‘이름’ | 12:2절이 11:4절에 대한 응답으로 놓였을 가능성 | 사변 |
관찰에서 이끌어 낸 추론은 셋이다. 첫째, ‘자’와 1인칭 복수 동사가 양쪽 발화에 반복되므로, 주의 행동이 사람의 계획에 대응하는 구조로 볼 여지가 있다. 둘째, 11:4절의 ‘흩어짐을 면하자’와 11:8–9절의 ‘흩으셨다’가 같은 동사를 쓰므로, 사람들이 피하려던 흩어짐이 주의 행위로 서술되는 구조로 헤아려 볼 수 있다. 셋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 했지만 서술에 남은 도시의 이름은 언어가 혼잡해진 사건과 연결된다. 이 차이는 이름을 얻으려던 계획이 뒤집히는 장면으로 풀어 볼 수 있다. 이 셋은 어휘의 분포와 배열에 근거한 추론이며 본문이 그 뜻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변으로 남기는 것은 둘이다. 하나는 ‘닐베나’와 ‘나벨라’의 소리 겹침이 의도된 말놀이일 가능성이다. 자음이 겹친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본문이 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른 하나는 12:2절의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가 11:4절의 ‘이름을 내자’와 마주 놓였을 가능성이다. 같은 낱말이라는 사실이 곧 서술의 의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한편 10장에서 ‘나뉨’ 동사가 세 곳이었고 11:1–9절에서 ‘흩다’ 동사가 세 곳이라는 점은 흥미롭지만, 횟수가 같다는 사실이 의미를 보증하지는 않으므로 패턴 지도에 관찰로만 기록해 둔다.
이름을 내려던 이들이 흩어진 자리에서, 이름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11:9절은 주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는 말로 닫힌다. 흠정역 인쇄본은 곧이어 11:10절에서 ‘셈의 세대들’을 시작한다. 흩어진 민족들의 이야기 뒤에 서술의 초점은 셈의 계보를 따라 아브람에게로 좁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름을 내자’고 말하던 이들의 도시에는 ‘혼잡’이라는 이름이 남았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뒤이어 이름을 크게 하리라는 약속을 받는 아브람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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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흠정역은 편집자가 제출한 인쇄본(창세기 11:1–12:5절 스캔)에서 옮겼다. KJV는 웹 대조 페이지(https://lueur.org/bible/comparer/genese11/DRB,KJV,MAR,VULC,WLC?p=5)의 11:1–9절로 확인했다. 히브리어 본문은 같은 페이지의 WLC(모음 포함)이다. 저해상도 스캔에서 옮긴 문장이므로 발행 전 원본 대조가 필요하다. ↩
2. ‘바벨탑에서의 반역’은 인쇄본 소제목이다. 11:10절 WLC ‘אלה תולדת שם’(이들은 셈의 세대들)은 위 대조 페이지로 확인했고, 인쇄본 11:10절은 ‘셈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이다. ↩
3. 계수 기준은 WLC 11:1–9절 자음 본문이다. 모음과 악센트 부호를 제거하고 마켑·공백으로 나눠 토큰 121개를 만든 뒤, 해당 어근의 형태를 접두사가 붙은 그대로 스크립트로 세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아마르 3(11:3, 4, 6), 하바 3(3, 4, 7), 사파형 5(1, 6, 7, 7, 9), 라숀 0, 아하드형 4, 파츠형 3(נפוץ, ויפץ, הפיצם), 콜 하아레츠 5(1, 4, 8, 9, 9), 야훼 5(5, 6, 8, 9, 9), 엘로힘 0, 야라드 2(5, 7), 1인칭 복수 동사 형태 7(3: נלבנה, ונשרפה; 4: נבנה, ונעשה, נפוץ; 7: נרדה, ונבלה)이다. 이 가운데 ‘נפוץ’는 ‘פן’(~하지 않도록) 뒤에 있어 권유형(11:3절 둘, 11:4절 둘, 11:7절 둘)과 구별한다. 낱말 ‘셈’(שם) 형태는 일곱 번이다(‘거기’ 11:2, 7, 9, ‘거기서’ 11:8, 9, ‘이름’ 11:4, 9). BHS와는 대조하지 못했다. ↩
4. WLC 11:4절은 ‘ורא־שו בשמים’ 꼴이며 ‘그 꼭대기가 하늘에’로 옮길 수 있다. 이 구절에 별도의 동사가 없다는 것은 필자의 형태 판정이다. ↩
5. WLC 11:9절 ‘קרא שמה בבל’의 동사는 3인칭 남성 단수이며 앞 구절에 주어가 따로 나오지 않는다. 흠정역은 ‘하였으니’, KJV는 ‘is…called’로 옮겼다. ↩
6. 10:5, 20, 31절의 ‘라숀’은 앞 편(제12편) 각주 6의 WLC 대조에 따랐다. KJV 난외주 ‘language: Heb. lip’, ‘speech: Heb. words’는 https://www.bibliaonline.com.br/kjv+wlc/gn/11 에서 확인했다. ↩
7. KJV 난외주 ‘from…: or, eastward’는 위 bibliaonline 페이지에서 확인했다. 10:10절의 ‘시날 땅에 있는 바벨’과 11:2절의 ‘시날 땅에 있는 평야’는 흠정역 인쇄본 대조이다. ↩
8. 12:2–3절의 흠정역은 제출된 인쇄본에서 옮겼다. KJV와 WLC(12:2 ‘וַאֲגַדְּלָה שְׁמֶךָ’, 12:3 ‘כֹּל מִשְׁפְּחֹת הָאֲדָמָה’, ‘וַאֲבָרֲכָה’, ‘אָאֹר’)는 https://www.lueur.org/bible/comparer/genese12.1-3/KJV,WLC?p=5 로 확인했다. 12:3절은 ‘땅’에 ‘האדמה’(아다마)를 쓰며 10장의 ‘ארץ’(에레츠)와 다른 낱말이다. 10장과 11:1–9절의 복·저주 부재는 앞 편 각주 7과 이번 계수에 따랐고, 11:10–32절은 대조하지 못했다. ↩
9. Erin Blakemore,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사(2026.6.9), https://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tower-of-babel-genesis-bible-archaeology . 기사 전체를 열람했다. 앤드루 조지(SOAS 명예교수)의 발언과 구조물 동일성에 대한 맺음은 기사의 서술에 따랐으며 조지의 원 저작은 열람하지 못했다. 재료에 관한 기사의 원 표현은 ‘kiln-baked bitumen bricks’이며, 역청이 결합재인지 벽돌의 재료인지는 원자료 대조가 필요하다. ↩
10. 11:1–9절 자음 본문에서 ‘하타’(חטא), ‘하마스’(חמס), ‘라아’(רע) 어근을 찾았으나 없었다. 11:3, 7절의 ‘רעהו’(그의 이웃)은 다른 낱말이다. 모음 본문과 BHS는 대조하지 못했다. ↩
11. 9:1, 7절은 인쇄본이 제출되지 않아 인용하지 않고 요약만 했다. 첫째·둘째 방향은 여러 해설에서 함께 제시되는 흔한 요약이며 저자별 대조는 하지 못했다. 한 예로 https://learn.ligonier.org/devotionals/tower-babel 의 발췌를 열람했으나 저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
12. Augustine, The City of God 16.4, Marcus Dods 영역, https://logoslibrary.org/augustine/city/1604.html . 해당 장 전체를 열람해 대조했고 라틴어 원문은 열람하지 못했다. 한국어 풀이는 필자의 요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