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경꾼의 자리는 어디인가
김홍도 〈씨름〉 앞에서
문화 산책 · 미술 연재 · 2026. 11. 01.
누구에게나 처음 만난 그림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미술관이 아니라 교과서 귀퉁이에서,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로 외웠던 그림. 김홍도의 〈씨름〉도 많은 이에게 그런 그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원형 구도, 해학, 서민의 삶. 세 낱말로 외우고 나면 그림보다 정답이 먼저 떠오른다. 익숙한 설명이 그림을 다시 보는 일을 가로막기도 한다.
그래서 서른 번의 그림 산책을 시작하는 자리에 일부러 눈에 익은 그림 한 점을 놓는다. 이 연재는 하나의 질문을 들고 걷는다. 그림과 사물은 누구의 삶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남기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려면 작품의 주제를 논하기에 앞서 화면 속 인물의 배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가운데 있고, 누가 가장자리에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림 앞에 다시 서기
〈씨름〉은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스물다섯 점 가운데 한 장이다. 종이에 먹과 엷은 색으로 그린 작품으로,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인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소개된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화첩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1
올해 5월 4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열린 주제전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에서도 〈씨름〉과 〈무동〉 등 열한 점이 공개되었다.2
김홍도(1745~1806 이후)는 풍속화가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산수화와 신선도, 기록화 등 여러 분야에서 기량을 펼친 화가였다. 전시 개막 설명에서 유홍준 관장도 풍속화는 그가 30~40대에 이룬 성취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3 우리가 〈씨름〉 한 장으로 김홍도를 기억하는 것은 한 사람을 가장 작은 창으로 들여다보는 일에 가깝다.
한 가지는 밝혀 두는 편이 정직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화첩을 김홍도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일부 연구에서는 화첩의 작가와 제작 시기를 달리 보기도 한다. 이 글은 박물관의 표기를 따르되 이러한 이견도 함께 적어 둔다.
우리가 ‘김홍도의 눈’이라 부르는 것이 어디까지 한 사람의 눈인지는 열려 있는 질문이다. 이 연재는 이런 단서를 지우지 않고 끝까지 달고 가려 한다.
원은 사람을 어떻게 앉히는가
그림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화면 한가운데서 두 씨름꾼이 몸을 맞대고 서로를 붙들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을 둘러싸고 구경꾼들이 둥글게 앉아 있다.
주목할 것은 이 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이다. 그림에는 땅의 경계선도, 나무도, 씨름판을 표시한 금도 눈에 띄지 않는다. 둘레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의 어깨와 무릎, 그리고 그 사이의 간격이다. 화면에서는 모여든 사람들이 씨름판의 경계를 이루는 듯하다.
이 그림에서 연재의 첫 주제인 ‘시선과 재현’을 살펴볼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화면에서는 중심의 승부뿐 아니라 둘레에 앉은 사람들의 몸짓도 시선을 붙든다. 관람자의 눈은 씨름꾼에게 모였다가 구경꾼들에게로 다시 옮겨 간다. 인물마다 고개를 돌린 방향과 몸을 기울인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승부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몸들
승부가 한창인 듯한 장면에서도 구경꾼들의 몸은 제각각이다. 앞으로 몸을 내밀고 숨을 죽인 이가 있고, 한 걸음 물러나 느긋하게 앉은 이가 있다.
차림이 다른 사람들이 한 판의 힘겨루기를 둘러싸고 모여 있다. 다만 복식만으로 각자의 신분과 처지를 구체적으로 가려내기는 어렵다. 한 판의 승부를 함께 바라보는 동안, 이들은 화면 안에서 가까이 놓여 있다.
이 장면에서 오래 눈길을 끄는 인물은 엿장수다. 구경꾼들이 판의 한가운데에 몰입한 순간에도 그의 얼굴은 씨름꾼들에게서 조금 비껴 있는 듯하다. 이는 필자의 관찰이므로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그는 구경꾼이면서 구경꾼만은 아닌 사람이다. 그에게 이 모임은 구경의 자리이면서 장사의 기회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장면은 같은 모임에 각기 다른 사정으로 머무는 사람들을 함께 보여 주는 듯하다.
여기서 이 연재의 질문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모양을 얻는다. 그림은 누구의 삶을 보이게 하는가. 씨름꾼의 근육만큼이나,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선이 이 그림의 숨은 주인공이라고 읽을 수 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이 화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그림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각자의 몸짓과 표정으로 제자리를 얻는 듯하다.
설명이 적은 화면에 남은 것들
이 그림에는 배경 설명이 거의 없다. 씨름꾼과 구경꾼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단서도 없고, 이 판이 어느 고을의 어떤 날인지도 알 수 없다. 이 그림을 보면 재현에는 대상을 옮기는 일뿐 아니라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생략할지 정하는 일도 포함된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 묘사가 드문 만큼 사람들의 자세와 서로 떨어진 간격이 더 눈에 들어온다. 특정 장소를 설명하는 단서가 적어, 오늘의 독자도 자신이 경험한 구경의 순간을 겹쳐 볼 수 있다.
그림이 2백여 년을 건너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다만 이것도 하나의 읽기일 뿐, 화가가 그러한 효과를 노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원은 닫혀 있지 않다
이제 우리의 자리를 물을 차례다. 구경꾼들이 둘러앉은 원을 따라가 보면, 어딘가 한 칸이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가 서 있는 쪽이다.
그 빈자리를 관람자의 자리로 읽어 볼 수는 있다. 다만 관람자가 들어와야 구도가 완성되도록 그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두 자리 사이를 오갈 수 있다. 원 안에 앉아 함께 숨을 죽이는 자리가 있고, 원 밖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는 자리가 있다. 이 화면에서는 승부에 몰입하는 시선과 사람들을 살피는 시선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씨름〉은 씨름을 그린 그림이면서 동시에 구경하는 일 자체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으로 읽힌다.
오늘 우리는 화면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일상을 구경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니 이 오래된 질문은 낡지 않았다. 나는 판 안의 사람들과 무엇을 함께 보고 있으며, 무엇을 지나치고 있는가. 그림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서 볼 자리를 보여 줄 뿐이다.
화면 너머의 다툼을 바라볼 때도 우리는 판정을 기다리는 구경꾼이 되곤 한다. 법정과 국정감사장으로 공방이 옮겨 간 이 가을,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는지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부터 돌아볼 때 조금 더 분명해질지 모른다.
이 연재의 그림은 어떻게 오는가
이 연재에는 그림이 자주 등장할 것이어서, 그 그림이 어떤 경로로 이곳에 오는지 처음에 밝혀 둔다.
작품의 저작재산권이 만료되었더라도, 제공된 이미지의 이용 조건은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상 개인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은 원칙적으로 저작자 생존 기간과 사망 후 70년간 보호된다. 다만 2013년 7월 1일 이전에 보호기간이 이미 끝난 저작물에 이 연장 규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4 김홍도처럼 20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화가의 작품은 어느 쪽 기준으로 보아도 보호기간이 끝났다. 그러나 소장 기관이 촬영해 제공하는 이미지에는 기관의 이용 조건이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연재는 네 가지 원칙을 지킨다.
첫째, 국립중앙박물관처럼 공공기관이 소장한 작품은 기관이 직접 개방한 이미지를 쓴다.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과 e뮤지엄에서는 소장품 이미지를 내려받을 수 있고, 공공누리 표시로 이용 조건을 밝힌다. 공공누리는 유형에 따라 출처 표시만 하면 되는 경우(1유형)도 있고, 상업적 이용이나 변형을 금지하는 경우(2~4유형)도 있어서 유형을 확인하는 일이 먼저다.5
둘째, 해외 작품은 위키미디어 커먼즈처럼 이용 조건이 작품 단위로 명시된 곳에서 가져오되, 작가의 사망 연도와 이미지 이용 조건을 함께 확인한다.
셋째, 모든 이미지에는 작가, 작품명, 제작 연대, 소장처, 출처를 한 줄로 달아 둔다. 이 한 줄은 법적 의무이기 이전에 그림에 대한 예의이고, 독자가 원본을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다.
넷째, 확인이 끝나지 않은 이미지는 쓰지 않는다. 그림이 없는 자리는 말로 채우면 된다. 연재의 목적은 그림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눈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같은 시대의 또 다른 눈을 만난다. 같은 풍속을 그리면서도 시선이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화가다.
* 참고할 말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마태복음 7:3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페이지, 김홍도 〈씨름〉, 《단원 풍속도첩》(소장품번호 본관 6504-22, 보물).
2.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서화실 주제전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2026. 5. 4. 개막) 관련 보도.
3. 전시 설명회(2026. 5. 4.) 관련 보도.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발언은 보도 내용에 따른 것이다.
4. 저작권법 및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 보호기간 안내. 70년 보호기간은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5.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및 공공누리(KOGL) 이용 조건 안내.
이미지: 김홍도, 〈씨름〉, 《단원 풍속도첩》,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엷은 색, 세로 26.9cm × 가로 22.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관 6504-22, 보물).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museum.go.kr),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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