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년 전, 유럽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외항선원 시리즈 완결편 — 대항해시대로 이어지는 다리
바다 · 외항선원 시리즈 (12/12) · 2026.08.09
다시, 바다 앞에 선 질문
지난 편에서 우리는 자율운항선박 시대가 다가오며 선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질문 앞에 섰다. 국가는 바다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배 위에 사람을 세우지 않는 나라는 이미 다른 선택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질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500년 전, 유럽의 몇몇 왕국도 같은 질문 앞에 섰다.
다만 그들은 정반대의 답을 골랐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자율운항선박 시대, 선원이 사라질 수 있다는 물음을 던졌다 — 바다를 버린 나라의 미래
1488년, 희망봉을 돌아선 자들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 유럽인이 단 한 번도 다다르지 못했던 바다로 들어섰다. 이 항해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보다 반세기 앞서, 항해왕자로 불린 엔히크는 사그레스를 거점으로 천문학자, 지도 제작자, 항해사들을 결집시키며 조선술과 항해 지식을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묶어냈다.
그 결과는 한 세대 안에 나타났다. 1492년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후원으로 대서양을 건넜고, 1498년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 항로를 열었다. 유럽의 몇몇 왕국에게 선원은 소모품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 자산이었다.
같은 시기, 조선은 다른 길 위에 있었다. 여진과 왜구를 통제하고 조운선 중심의 연안 항해를 우선하는 국가 기조, 그리고 농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민간의 대형 선박 건조와 원양 항해의 가능성은 조용히 봉쇄되어 갔다. 세종 대에 축적된 조선술의 성과는 이후 국가적 항해 전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 격차는 1543년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 다네가시마에 표착하며 조총이 전래되었고, 일본은 이 화기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빠르게 흡수했다. 반세기조차 지나지 않은 1592년, 그렇게 축적된 군사력은 임진왜란이라는 형태로 조선을 향했다. 외부 세계의 흐름을 먼저 받아들인 쪽과, 그 흐름 밖에 머물렀던 쪽의 차이가 전장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그 이후에도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1653년,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제주도 해안에 좌초하며 헨드릭 하멜 일행이 조선 땅을 밟았다. 이들은 당대 유럽의 항해술·조선술·화기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이들이 가진 지식을 체계적으로 흡수하기보다, 사대와 유교적 세계관 안에서 억류해야 할 이방인으로만 다뤘다. 하멜은 훗날 조선을 탈출해 유럽에 표류기를 출간했고, 그 책은 서구 세계가 조선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 통로가 되었다 — 정작 조선 자신은 그 만남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채였다.
두 문명은 같은 시대, 같은 바다를 두고 정반대의 답을 골랐다. 한쪽은 표류해 온 이방인에게서도 기술과 지식을 흡수해 다음 세기를 준비했고, 다른 한쪽은 두 번의 기회 — 임진왜란이라는 경고와 하멜이라는 증거 — 앞에서도 세계의 흐름을 알아보지 못했다.
무엇을 여는 자와 무엇을 닫는 자
上善若水 (상선약수)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마침내 가장 넓은 곳에 이른다. 바다를 연 문명은 이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반대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시대의 흐름 — 포르투나(Fortuna) — 가 바뀔 때 자신의 비르투(Virtù, 결단과 역량)를 그에 맞게 바꾸는 자는 흥하고, 옛 방식에 집착하는 자는 결국 시대에 잠식당한다고 보았다. 두 사유는 지리도,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 흐름을 막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지연된 대가일 뿐이라는 것.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같은 바다, 다른 선택
15세기의 해금과 21세기의 선원 소멸은 표면적으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나는 정책이고, 하나는 인구구조와 산업의 문제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패턴으로 보면 두 사건은 같은 질문 위에 있다. 바다를 국가의 미래로 여기는가, 아니면 관리해야 할 위험으로만 여기는가.
이 시리즈의 앞선 11편은 그 질문에 대한 한국의 현재 답을 하나씩 기록해왔다. 영웅으로 불렸다가 잊힌 선원들, 유럽보다 가혹한 승선 조건, 폐쇄된 위계질서를 벗어나는 MZ세대, 외국인 선원으로 채워지는 선실, 그리고 자율운항선박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기술이 선원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바다를 선택했다는 뜻은 아니다. 자율운항이라는 기술은 이 질문에 대한 회피일 수도, 혹은 담대한 응답일 수도 있다. 그 귀결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500년 전 유럽이 선원을 국가의 자산으로 삼았을 때, 그 선택은 다음 세기의 패권을 결정했다.
우리는 아직 바다를 선택하지 않았다
바다는 누군가 선택해야만 열리는 공간이다. 저절로 열리는 바다는 없다. 500년 전 몇몇 유럽 왕국은 그 선택을 했고, 그 대가로 다음 세기의 지도를 바꾸었다. 조선은 다른 선택을 했고, 그 대가는 훨씬 나중에, 훨씬 조용히 찾아왔다.
이 물음에 대한 완전한 답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의 다음 페이지는, 바다가 처음으로 국경 밖 세계와 이어지던 그 시대 — 대항해시대의 기록에서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제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바다 위에서 수고하는 이들에게 —
이 열두 편의 기록을 바친다.
* 참고할 말씀: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바닷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 열왕기상 9:26-27
▶ 외항선원 시리즈 전체 보기 (전 12편)
1. 나라가 바다를 필요로 했을 때
2. 달러를 실어 나른 사람들
3. 제국은 선원을 영웅으로 불렀다, 그리고 잊었다
4. 3년이면 충분했다
5. 더 오래 타면서 더 적게 쉰다
6. 폐쇄된 공간의 위계질서
7. 바다 위에서 단절된다는 것
8. 국가 비상사태, 배가 없다
9. 외국인 선원이 한국 배를 채울 때
10. 정부는 알고 있다, 하지만
11. 바다를 버린 나라의 미래
12. 500년 전, 유럽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현재 편)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 새 글 알림 받기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