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원이 한국 배를 채울 때

현대적인 상선 조종실에서 협업하고 있는 다국적 사관들과 망원경을 보는 승무원
현대적인 선박 브릿지 시스템을 활용하여 안전 항해를 논의 중인 다국적 승무원들.

외국인 선원이 한국 배를 채울 때

언어 장벽과 위기 대응의 공백

외항선원 시리즈 9편 · 바다 · 2026.08.02


선원 두 명 중 한 명은, 이제 외국인이다

2026년 7월, 해양수산부가 「2026 한국선원통계연보」를 발간했다. 숫자는 담담했지만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2025년 말 기준 국내 취업선원 6만 543명 가운데 외국인 선원이 3만 3,171명으로, 처음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54.8%였다.1 한국인 선원은 2만 7,372명으로 1년 새 1,359명이 줄었다.1

2021년만 해도 한국인 선원이 54.3%로 다수였다. 4년 만에 그 비율이 완전히 뒤집혔다.1

앞선 편에서 우리는 해기사 부족과 국가필수선박제도의 서류상 공백을 살펴보았다. ‘국가 비상사태, 배가 없다’에서 다룬 문제는 결국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 지금 이 통계로 드러나고 있다. 부족한 자리를 외국인 선원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힐 수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배 위는 사무실이 아니다. 폭풍이 오고, 화재가 나고,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 명령은 0.1초 단위로 정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그 순간에 선교(船橋)에서 오간 말을 절반의 선원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 배는 이미 다른 종류의 위험을 싣고 항해하고 있는 셈이다.

2012년 1월, 다리 위에서 명령이 길을 잃다

이 문제가 가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2012년 1월 13일 밤, 이탈리아 토스카나 해안의 질리오 섬 인근에서 대형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암초에 좌초했다. 32명이 사망했다.2 재판부가 위촉한 전문가들이 270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사고 당일 밤을 초 단위로 재구성했는데, 그 보고서에는 선장 개인의 판단 착오 외에 또 다른 원인이 함께 적혀 있었다.2

선교 승무원들이 언어 장벽 때문에 선장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방향 지시를 혼동했다는 것이다.2 배를 좌초 직전까지 조종한 인도네시아 국적 조타수는 접근 기동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3 이후 퇴선 명령이 내려졌을 때도 일부 승무원은 언어 장벽 탓에 지시를 즉각 이행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본 안전 교육이나 비상 훈련조차 받지 않은 인력도 포함되어 있었다.3

당시 배에는 4,234명이 타고 있었고, 승무원만 약 1,000명이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었다.4 이탈리아·독일·프랑스 당국이 저마다 자국민 안위를 확인하려 나섰던 것도 이 배가 단일 언어권으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4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코스타 콩코르디아 사고의 1차 원인은 선장의 무리한 항로 이탈이었다. 언어 문제가 그날 밤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친 순간, 이미 벌어진 실수를 수습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마저 언어 장벽이 갉아먹었다는 점은 여러 조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된 대목이다.2 3

이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다

이 지점에서 동서양의 오래된 통찰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공자는 정치를 맡으면 무엇부터 하겠냐는 자로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
(명부정,즉언불순;언불순,즉사불성。)
“이름(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 論語, 「子路」5

공자가 말한 ‘이름’은 본래 정치적 명분과 직함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논리 구조는 선교 위의 명령 체계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여지가 있다. 명령이 정확한 언어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 명령은 순조롭게 실행되지 않고, 결국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의 본질을 두고 비슷한 통찰을 남겼다.

Alles ist im Kriege sehr einfach, aber das Einfachste ist schwierig.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것조차 어렵다”
— Clausewitz, 『Vom Kriege』6

그가 말한 ‘마찰(friction)’은 평시라면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소통의 오차가, 침수와 화재라는 극한의 혼란 속에서는 ‘명령의 지연’이나 ‘착오 조타’ 같은 치명적 결과로 증폭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짚어낸다.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는 평시에는 사소한 불편일 뿐이다. 그러나 그 사소함이, 위기의 순간에는 생사를 가르는 마찰로 이어질 여지가 크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숫자는 준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외국인 선원의 증가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 해운업계 전체가 다국적 승무원 구성으로 운영된 지 오래고, 필리핀·인도네시아·미얀마 출신 선원들의 숙련도와 성실성은 업계에서 이미 널리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제도의 유무가 아니라, 그 제도가 위기의 순간에 실제로 작동하는가 하는 점으로 볼 수 있다.

SOLAS(해상인명안전협약) 제5장 14규칙은 국제항해 선박에 선교 공용어를 지정하도록 이미 의무화하고 있다. 관련자 전원이 공통으로 쓰는 언어가 있다면 이를 지정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영어를 채택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국제해사기구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표준해사통신용어(SMCP)’까지 별도로 마련해두었다.7 제도는 이미 20년 넘게 존재해 온 것이다.

그러나 서류상의 지정과 실제 비상 상황에서의 작동은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극한의 공포와 혼란 속에서는 훈련받은 표준 용어보다 모국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표준용어가 패닉 상태 앞에서 무력화될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층위가 있다. 한국 배의 전형적인 구조는 ‘한국인 고급 해기사(선장·기관장) + 외국인 하급 해기사·부원’이다. 긴급 상황에서 사관의 지시는 곧바로 전체에 전달되지 않는다. 필리핀·인도네시아 출신 갑판장을 거쳐 각국 출신 부원들에게 재전달되는 중간 소통 단계를 거쳐야 하는 구조다. 이 병목 구간에서 걸리는 몇 초가, 침수나 화재 상황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일 수 있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데는 경제적 이유가 있다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평시에는 언어가 다소 통하지 않더라도 숙련된 몸짓과 정형화된 절차만으로 운항을 이어갈 수 있고, 그만큼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는 판단이 선사의 결정을 뒷받침해온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그렇게 아낀 비용은 훨씬 큰 대가로 되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시의 효율과 비상시의 안전은, 같은 저울 위에서 늘 같은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숫자가 뒤집히는 속도와, 그 숫자를 감당할 체계가 갖춰지는 속도. 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 때, 그 간극을 메우는 이야기는 대체로 위기가 닥친 뒤에야 쓰인다.

다음 폭풍이 왔을 때, 우리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것인가

이 시리즈는 앞선 편들에서 선원 개인이 짊어진 고독과 격차, 그리고 국가가 떠안을 안보 공백을 차례로 짚어왔다. 이번 편이 다루는 것은 그 두 층위가 만나는 지점이다. 개인의 언어가 국가의 대응력과 곧바로 연결되는 자리다.

선교에서 오간 말을 절반이 알아듣지 못하는 배는, 평온한 항해에서는 아무 문제도 드러내지 않는다. 문제는 오직 위기의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순간은, 준비된 자를 골라서 찾아오지 않는다.

성서의 바벨탑 이야기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인간이 쌓아 올린 거대한 구조물이, 작은 균열만으로도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오래된 경고를 전한다. 지금 이 나라의 선교(船橋)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경고를 다시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까이서 보면 이것은 인력 수급 통계이거나 승무원 국적 구성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보면, 이는 한 나라의 배들이 다음 위기의 순간에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훨씬 오래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참고할 말씀: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 창세기 11:7


1. 해양수산부, 「2026 한국선원통계연보」 (2026.07 발간) — 2025년 말 기준 취업선원 6만 543명, 외국인 선원 3만 3,171명(54.8%)으로 최초로 절반 초과, 한국인 선원 2만 7,372명으로 전년 대비 1,359명 감소

2. Skift, “Investigation blames Costa Concordia disaster on captain’s antics and crew’s ineptitude” (2012.09) — 재판부 위촉 전문가 270쪽 분석 보고서, 선교 승무원의 언어 장벽으로 인한 지시 이해 실패 지적

3. Crew Center, “Eight Crew Members Under Investigation for Concordia Disaster” — 인도네시아 국적 조타수의 접근 기동 실수, 일부 승무원의 안전·비상훈련 인증 미비

4. NBC News, “Nations seek answers over Italy cruise accident” — 탑승 인원 4,234명, 승무원 약 1,000명의 다국적 구성 및 언어 장벽으로 인한 대응 복잡성

5. 論語, 「子路」

6. Clausewitz, 『Vom Kriege』

7. SOLAS(해상인명안전협약) 제5장 14규칙; IMO Standard Marine Communication Phrases (SMCP)

8. 창세기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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