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비상사태, 배가 없다
외항선원 소멸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
외항선원 시리즈 8편 · 바다 · 2026.07.30
선단이 사라지면, 국가는 무엇을 잃는가
2026년 초여름, 한국해운협회가 주최한 세미나 자리에서 낯선 조합의 단어가 등장했다. “경제안보선대”와 “전략해기사”1. 해운업계 관계자들과 학계, 해양수산부 담당 공무원까지 한자리에 모여, 지금의 국가필수선박제도로는 유사시 대응이 어렵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1.
수치는 이 우려를 뒷받침한다. 2034년 국내에 필요한 해기사 규모는 약 1만 5천 명으로 추산되나, 현재 활동 중인 해기사는 약 1만 1천 명에 그치고 있다2. 10년 안에 4천 명 가까이를 새로 길러내야 하는 셈이다2. 병역을 대체하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매년 1천 명 규모로 배정되지만 실제로 편입되는 인원은 800명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양수산부 관계자가 밝힌 바 있다3.
제도는 이미 20년 넘게 존재해 왔다. 2004년부터 운영된 국가필수선박제도는 현재 88척 규모다4. 그러나 지난해 협회와 정부 관계자들이 이 선박들에 실제로 승선해 유사시 동원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4. 지정은 되어 있으나 동원의 법적 근거가 미비하고, 세부 절차를 담은 매뉴얼조차 부재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4.
같은 시기 미국은 정반대 방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자국 해기사가 운항하는 ‘전략안보선대’ 250척을 확보하고, 해기사 약 5천 명을 양성하겠다는 SHIPS for America Act를 추진 중이다5. 이 법안의 배경에는 미국 상선대의 오랜 축소가 자리한다. 유사시 동원 가능한 선박을 지원하는 해상안보프로그램(MSP) 참여 선박은 2000년 283척에서 2025년 188척으로 크게 줄어들었다6.
앞선 편들에서 이 시리즈는 주로 개인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풀어왔다. 병역 대체복무의 구조적 역설, 유럽 선원과의 처우 격차, 선내 위계 문화, 그리고 지난 편 ‘바다 위에서 단절된다는 것’에서 다룬 고독과 가족 해체까지. 이번 편은 그 개인들이 사라진 자리에, 국가라는 더 큰 단위가 어떤 공백을 떠안게 되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1982년 4월, 여객선이 군함이 된 순간
한 나라가 상선대를 얼마나 가볍게 여길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를 얼마나 빨리 치르게 되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있다.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했다7. 영국 정부는 즉시 함대 파견을 결정했으나, 문제는 예상보다 일찍 드러났다. 1981년 국방백서 발표 이후 영국 해군과 왕립보조함대는 원정작전에 필요한 자산을 지속적으로 축소해 오던 중이었다8. 8천 마일 떨어진 남대서양까지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를 배가 정작 해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4월 4일 추밀원령을 발동해 민간 상선을 징발할 권한을 확보했다9. 이렇게 소집된 이른바 ‘STUFT(Ships Taken Up From Trade)’는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33개 민간 선사에 걸쳐 최종 54척까지 불어났다9. 유조선은 연료와 식수를, 컨테이너선과 로로선은 탄약과 항공기를 실었다. 초호화 여객선 퀸 엘리자베스 2호와 캔버라호는 병력 수송함으로 개조되어 병력을 남대서양까지 실어 날랐다10. 초기 단계에서만 약 1만 명의 병력과 3만 9천 톤의 물자가 이 민간 선박들을 통해 이동했다9.
전환 작업에 주어진 시간은 매우 짧았다. 가장 오래 걸린 개조 작업도 16일을 넘기지 않았다11. 남대서양의 계절적 기상 조건 때문에 함대는 몇 주 안에 출항해야 했고, 개조 역시 서둘러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11. 훗날 미 해군 전문지는 이 사례를 두고, 상업 선박을 군사용으로 전환하는 체계적인 계획 없이 위기를 맞았을 때 벌어지는 전형적인 경고로 기록했다11.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승리는 잘 준비된 시스템의 결과라기보다, 줄어들던 상선대 가운데 남아 있던 자산을 33개 선사에 걸쳐 임기응변으로 긁어모은 결과였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기예는 빌려 쓸 수 없다
이 위태로운 상황의 본질을 동서양의 고전은 서로 다른 언어로 겨누고 있다.
서양에서는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을 앞두고 페리클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τὸ δὲ ναυτικὸν τέχνης ἐστίν, ὥσπερ καὶ ἄλλο τι (토 데 나우티콘 테크네스 에스틴, 호스페르 카이 알로 티) “항해술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예다” — Thucydides, 『Historiae』 1.142.912
페리클레스는 이 기예가 여가 시간에 잠깐씩 익힐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12. 위기가 닥친 뒤에 갑자기 훈련하여 갖출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포클랜드의 STUFT 선원들이 겪은 급조된 16일간의 개조 작업은 2,400년 전의 이 경고가 그대로 재현된 장면으로 볼 여지가 있다.
동양에서는 한비자가 다른 각도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是以聖人不期脩古,不法常可,論世之事,因為之備。 (시이성인불기수고,불법상가,논세지사,인위지비。) “그러므로 성인은 옛것을 그대로 따르기를 기약하지 않고, 늘 옳다 여겨온 법을 고수하지 않는다. 시대의 형세를 살펴 그에 맞게 대비할 뿐이다” — 韓非子, 『五蠹』13
이어지는 대목에서 한비자는 그루터기 옆에 앉아 토끼가 다시 와서 부딪히기만을 기다리는 송나라 농부의 이야기를 전한다13. 한 번의 우연한 성공을 영구한 법칙으로 착각하는 태도에 대한 풍자다. 2004년에 설계된 제도가 20년의 세월과 산업 구조의 변화를 그대로 통과해 지금도 유효하리라고 가정하는 것 역시, 그루터기를 지키는 농부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도는 서 있으나, 배는 없다
투키디데스와 한비자를 나란히 놓으면 지금 한국이 마주한 문제의 두 층위가 함께 드러난다.
첫째는 사람의 문제다. 페리클레스가 말한 ‘기예’는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해기사는 면허 취득만으로 완성되는 직업이 아니라, 오랜 승선 경험을 통해서만 축적되는 기술 집단이다. 그런데 인력 공급 자체가 10년 내 4천 명의 격차를 향해 가고 있다2. 위기가 발생한 뒤 급히 인력을 키우려 한들, 페리클레스의 경고처럼 이 기예는 단기간에 빌려 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둘째는 제도의 문제다. 국가필수선박제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88척이라는 숫자와 20년의 운영 이력도 성립해 있다4. 그러나 실제로 동원해본 결과가 “쉽지 않다”로 돌아왔다는 사실4은, 이 제도가 한비자가 경고한 그루터기에 가까워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만든다. 법전 위의 지정과 실제 위기 상황에서의 작동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클랜드의 영국은 그래도 ‘남아 있던’ 상선대를 모을 여력이 있었다. 축소되고는 있었으나 33개 선사에 걸쳐 54척을 징발할 만큼의 민간 선단이 존재했던 것이다. 반면 지금 한국이 마주한 질문은 더욱 근본적이다. 국가필수선박이 지정되어 있어도 동원할 해기사 자체가 부족하다면 그 선박은 누가 운항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제도의 서류상 완비는 답이 되기 어렵다.
미국이 SHIPS for America Act를 통해 250척과 5천 명이라는 구체적 숫자를 내건 것5은, 상선대 축소가 국가 경쟁력의 문제를 넘어 유사시 작전 수행 능력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해운협회가 ‘전략상선대’와 ‘전략해기사’라는 새 개념을 제시한 배경1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다만 이 논의가 아직 사회적 공감대나 예산, 법제화 단계로 매끄럽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1도 함께 존재한다.
다음 트럼펫은 준비되어 있는가
이 시리즈의 첫 편은 1960~70년대, 선원이 국가의 영웅이었던 시절을 다뤘다. 나라가 바다를 필요로 했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나라는 여전히 바다를 필요로 하지만 그 바다를 지킬 인력은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
이 조용한 축소는 이미 다른 영역에서도 진행 중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수입하는 LNG의 국적선사 운송 비율은 2020년 52.8%에서 2037년이면 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14.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이 수치를 근거로 “외국 선박 이용으로 인한 국가안보 비상”이라는 지적이 직접 제기되기도 했다14. 그 배경에는 해외 공급자가 운송을 맡는 계약 구조가 단기적으로 비용을 일부 줄여주는 데다, 국내 선사와 장기계약을 맺을 때 발생하는 부채가 공기업 경영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조적 유인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14 15.
국내 최대 LNG 수송선사가 해외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황 역시 이러한 우려를 더한다. 해당 선사가 해외로 넘어가면 위기 시 정부의 운항 명령에 해외 주주가 응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업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16. 정부는 핵심 에너지 운송의 국적선 이용률을 70%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국정과제를 내걸고 있으나16, 현실의 추세는 이와 상반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2016년 한진해운 해체 사태가 남긴 흔적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당장의 재무적 논리와 단기 비용 절감을 이유로 채권단이 자금 지원을 끊자, 세계 7위 국적 선사는 반년 만에 무너졌다17. 수출입 화주가 이 파산으로 입은 피해는 인보이스 기준 약 15조원으로 추정되며, 아시아-미주 항로 운임은 직후 40% 급등했다17. 에너지와 물류라는 국가 기간산업을 단기 재무 효율성과 맞바꾸는 선택이 국가 안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이 나라는 이미 한 차례 겪은 바 있는 셈이다.
성경은 위기를 미리 알리는 자의 책임을 이렇게 말한다. 파수꾼이 칼이 다가옴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않아 백성이 준비하지 못한 채 화를 당하면 그 책임은 파수꾼에게 있다고. 이는 종교적 경고를 넘어, 위험이 보이는 순간과 실제로 그 위험이 닥치는 순간 사이의 간극을 누가 메워야 하는가에 대한 오래된 통찰로 읽을 수 있다.
지금 나오는 통계와 세미나, 법안 논의, 그리고 국정감사장의 경고는 어쩌면 이 나팔 소리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소리가 아직 사회 전체의 공감대로 번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기사 부족은 임금 문제로, 국가필수선박제도의 실효성 부족은 예산 문제로, LNG 적취율 하락은 공기업 경영평가 문제로 각각 분리되어 다뤄지는 동안, 이 셋이 사실은 하나의 안보적 문제라는 인식은 쉽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클랜드의 영국은 운이 좋았다. 줄어들던 상선대에서도 33개 선사·54척을 긁어모을 여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위기가 찾아올 때 이 나라의 선단에는 긁어모을 여력이 남아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여력을 지금 채워두어야 한다는 질문에 우리는 아직 제대로 답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참고할 말씀: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을 깨우치지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당함이거니와 그 피 값은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 에스겔 33:6
- 한국해운신문, “공급망 위기에 해운·선원 안보적 가치 재조명” — 해운협회 세미나, 전략상선대·전략해기사 제도 도입 필요성 및 공감대 부족 지적
- 시사오늘, “박정석 해운협회장, ‘해운업은 국가 필수산업…안보선대 확보 필요해'” (2025.04.28) — 2034년 필요 해기사 약 1만5천 명, 현재 활동 해기사 약 1만1천 명
- 한국해운신문(위 기사) — 승선근무예비역 연간 배정 1,000명 중 800명 미만 편입
- 한국해운신문, “‘전략상선대, 해운산업 지원 대책 아니다'” (2026.03.18) — 국가필수선박제도 2004년 도입, 88척 규모, 유사시 동원 실태조사 및 법적 근거 부족
- 시사오늘(위 기사) — 미국 SHIPS for America Act, 전략안보선대 250척·해기사 약 5천 명 양성 목표
- 한종길(성결대), “미국의 해양안보와 신해운정책” (2025.05.21) — MSP 참여 선박 2000년 283척 → 2025년 188척
- Wikipedia, “British logistics in the Falklands War” —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침공
- USNI Proceedings, “Lessons for a Wartime Navy: STUFT Vessels in the Falklands War” (2024) — 1981년 국방백서 이후 영국 해군·왕립보조함대의 원정전력 축소
- JMVH(Journal of Military and Veterans’ Health) / USNI Proceedings(1983.06) / Grokipedia — 1982년 4월 4일 추밀원령 발동, STUFT 최종 33개 선사·54척, 초기 약 1만 명 병력·3만9천 톤 물자 수송
- Wikipedia, “STUFT” — 퀸 엘리자베스 2호·캔버라호의 병력수송함 개조
- USNI Proceedings(위 자료, 2024) — 최장 개조 기간 16일, 남대서양 기상 조건상 신속 출항 필요성
- Thucydides, 『Historiae』(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142.9
- 韓非子, 『五蠹』
- 해사신문, “가스공사, LNG 운송 국적선사 외면…이원택 ‘외국선박 이용으로 국가안보 비상'” (2025.10.16) — 국적선사 LNG 적취율 2020년 52.8%→2037년 0% 전망, DES·FOB 계약구조 및 공기업 경영평가상 불이익
- 부산일보, “‘국가 핵심에너지’ LNG, 10년 후엔 100% 외국선박이 운송…’국가안보 비상'” (2025.10.15) — DES 계약 선호 이유 보충
- 관련 보도(2025.12.17) — 국내 최대 LNG 수송선사 해외 매각 논의, 위기 시 운항명령 거부 가능성 우려, 정부 국정과제상 국적선 이용률 70% 이상 유지 목표
- 인천투데이, “[경세제민] 3000억원에 한진해운 날리고 한국이 치른 대가” (2025.09.15) / 로지브릿지 — 한국무역협회 통계 기준 수출입화주 피해 약 15조원(140억 달러, 약 40만 TEU), 파산 직후 아시아-미주 항로 운임 40% 급등
© Watchman, 바라보는 자의 기록 (bara.watchmaninsight.com). 무단 전재 및 2차 창작 시 사전 동의 필요.
📢 새 글 알림 받기
💬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