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에 들어온 국가 – 저출산 시대의 결혼

1967년 공산주의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저출생 극복 강제 출산 정책 770호 법령과 아카이브 사진
1967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차우셰스쿠 정권의 강제 출산 정책(770호 법령) 시행 당시의 기록 사진.

침실에 들어온 국가 — 저출산 시대의 결혼

정책이 사랑의 조건이 될 때

2026.08.29 · 역사·한국현대사 · 한국현대-결혼 시리즈 ⑨

국가가 임신 첫날부터 장부를 기재하기 시작했다

2026년, 한국 정부는 임신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부터 세제 혜택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출산 이후에만 주어지던 비과세 혜택을 임신 단계까지 앞당기는 개편이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은 2030년까지 매년 한 살씩 올라가 결국 만 13세 미만까지 확대된다.

수치만 보면 반가운 소식이다. 실제로 2026년 들어 출생아 수는 19개월 연속 증가했고, 월별 합계출산율은 1명에 가까운 수준까지 올라왔다. 다만 이 반등을 온전히 정책의 성과로 읽기는 어렵다. 팬데믹 시기 미뤄졌던 혼인이 뒤늦게 이동한 결과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2023년 혼인 건수는 전년보다 늘었고, 이 흐름이 몇 년의 시차를 두고 출생아 수 반등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정책과 인구 이동, 두 원인은 아직 분리해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흐름의 이면에서 조용히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국가가 한 사람의 가장 사적인 몸의 영역까지 정책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혼이 낙인에서 선택이 되었던 2010년대를 지나, 이제 한국 사회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결혼과 출산이 개인의 사적 결정이라는 전제 자체가, 국가의 정책 언어 앞에서 조용히 재구성되고 있는 국면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재혼이 다시 짜는 혈연의 모양을 살펴보았다.

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까지, 40년의 방향 전환

한국의 인구 정책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한 번 완주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시작된 가족계획사업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로 대표된다. 1970년대에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하면 훈련을 면제해주는 인센티브까지 등장했다(자료: 보건복지부 인구정책 백서 요약)1.

이 정책은 성공을 넘어 과잉 성공으로 이어졌다. 합계출산율은 1983년 인구대체수준인 2.1명 아래로 내려갔고, 정부는 1996년에야 산아제한 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그리고 정확히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며 국가의 언어는 “그만 낳으라”에서 “제발 낳아 달라”로 180도 뒤집혔다.

2018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명대에 진입했다. 2024년 3월과 1분기, 신생아 수는 2만 명 선마저 위태로웠다. 그리고 지금, 2026년의 반등이 진행 중이다. 반세기 만에 국가는 개인의 사적 영역에 두 번째로 다시 손을 얹었다 — 이번에는 채찍이 아니라 당근을 들고서.

1966년 부쿠레슈티, 국가가 몸을 접수했을 때

같은 문제에 극단적인 답을 낸 나라가 있다. 루마니아다. 1957년 낙태를 합법화한 루마니아는 1962년 합계출산율 2.1명대가 무너졌고, 1966년에는 출생률이 인구 천 명당 19.1명에서 14.3명으로 급락했다. 1965년 집권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인구를 2천만 명에서 3천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66년 10월 1일 낙태와 피임을 전면 금지하는 770호 법령을 발효시켰다(자료: State Council of Romania, Decree No. 770)2.

예외는 45세 이상 여성이거나 이미 자녀 넷을 둔 경우뿐이었다. 성교육은 “조국에 많은 아이를 낳아 바치는 영웅적 어머니”의 미덕을 가르치는 것으로 재편되었다. 정책은 즉각적으로 통했다 — 1969년까지 이전 평균보다 백만 명 많은 아기가 태어났다. 그러나 그 대가는 고아원에 넘쳐난 “법령 세대”였고, 불법 낙태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여성이었으며, 결국 1989년 정권 붕괴의 씨앗 중 하나로 남았다.

한국과 루마니아는 방법에서 정반대다. 하나는 금지로, 하나는 지원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두 정책이 공유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국가가 ‘인구’라는 거시적 숫자를 위해 가장 사적인 결정의 영역, 즉 한 사람의 몸과 침실에 정당하게 개입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역사는 질문을 던진다 — 개입의 방향이 다르다고, 개입의 본질까지 다른 것으로 읽힐 수 있는가.

당근과 채찍, 그러나 같은 손

770호 법령과 2026년 한국의 출산장려 정책을 나란히 놓고 보면, 국가가 인구 문제 앞에서 반복하는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위기가 선포되는 순간, 정책은 개인의 결정을 국가적 과제의 하위 항목으로 재배치한다. 미셸 푸코가 국가와 인구, 생명 사이의 관계를 가리켜 사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통치가 개인의 몸을 관리 대상으로 전환하는 순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제와 유인은 다르다. 벌금과 감옥이 있는 사회와 세액공제가 있는 사회는 자유의 크기가 다르다. 세제 혜택이나 수당은 본질적으로 ‘몸에 대한 통제’라기보다 자녀 양육의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려는 시도로 해석하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사적 결정을 보조하려는 지원이, 역설적으로 그 결정을 국가적 과제의 언어로 재색칠하기 때문이다. 형법 대신 환급금을, 처벌 대신 수당을 매개로, 국가는 침실의 문을 두드린다.

이 반복을 하나의 원리로 단순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간 사회가 같은 조건, 즉 인구 감소라는 위기 앞에서 국가와 개인의 경계를 다시 묻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는 체제를 가리지 않고 반복해서 확인시켜 준다.

우리는 무엇을 낳으라고 요구받고 있는가

루마니아의 “법령 세대”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발령된 존재였다. 그들의 부모는 사랑이 아니라 형법을 두려워해 아이를 낳았다. 한국의 2026년은 그와 다르다 — 세액공제와 아동수당은 사랑의 자리를 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가 내미는 지원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이 질문은 조용히 남는다. 우리는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잘 설계된 유인 구조에 ‘반응’하고 있는가.

최근 정부가 임신 초기 지원과 아동수당 확대를 잇달아 발표하는 배경에는, 지난 반세기 한국이 걸어온 인구 정책의 두 얼굴 — 낳지 말라던 국가와 낳아 달라는 국가 — 가 여전히 겹쳐 있다. 정책의 선의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선의가 향하는 곳이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적 영역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몸을 겨냥한 정책은 이미 한 세기 전 답이 나와 있다 — 강제로도, 인센티브로도, 몸은 오래 관리되지 않는다. 관리할 수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땅이다. 청년이 아이를 품어도 흔들리지 않을 땅, 그러니까 국가가 정말 공들여야 할 대상은 자궁이 아니라 자궁을 둘러싼 세계 쪽일 것이다.

제도는 시대마다 다시 쓰인다.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답하지 못하는 질문 하나가 남는다. 아이가 국가의 미래를 떠받칠 노동 인구로 먼저 계산되는 사회와, 그 계산 이전에 한 존재로 대우받는 사회 —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우리는 얼마나 좁힐 수 있을까.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그 거리를 좁히는 방법이 아니라, 그 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먼저 기록해두려 한다.


* 참고할 말씀: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 시편 127:3


1. 보건복지부, 「인구정책 백서」 요약 자료

2. State Council of Romania, Decree No. 770 (1966. 10. 1. 제정, 1989. 12. 26.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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