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가정, 다시 짜여진 혈연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한국 초등학교 교실 풍경. 책상 위의 명찰과 함께 혼자 창밖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 남학생의 모습을 그린 지브리 감성 일러스트.
서류 위에서 먼저 ‘가족’으로 셈해진 아이. 교실 안과 밖, 그 경계에 선 소년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재혼가정, 다시 짜여진 혈연

성이 달라도, 가족이 된 사람들

2026.08.27. · 역사·한국현대사 · 한국현대-결혼 시리즈 ⑧


성이 다른 아이가 앉은 교실

2026년, 정부는 다자녀 가구의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낮췄다. 청약 특별공급도, KTX 할인도, 도시가스 요금 감면도 이제 두 아이만 있으면 대상이 된다. 언론은 이를 저출산 대책의 연장으로만 보도했다.

그러나 이 조정에는 잘 보이지 않는 문장 하나가 함께 들어 있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자녀 산정에는 양자녀와 배우자의 자녀도 포함된다는 조항이다. 국가가 “누구를 자녀로 셀 것인가”를 다시 정의한 순간, 재혼가정의 아이들도 비로소 그 계산 안으로 들어왔다.

한 아이가 교실에 앉아 있다. 성이 아빠와 다르다. 새엄마가 데려온 형제와도 성이 다르다.
그러나 그 교실 밖, 국가의 서류 위에서 그 아이는 이제 온전한 “가족”의 일원으로 셈해진다.
혈연이 아니라 서류가 먼저 가족을 승인하는 시대가, 이렇게 조용히 도착해 있었다.


계부의 성 앞에 선 아이 — 2008년 이후의 재구성

앞선 글에서 우리는 낙인에서 선택으로 바뀐 이혼의 풍경을 살펴보았다(이전 편 읽기). 이혼이 개인이 삶을 재건하기 위한 선택이 되었다면, 그 선택 이후 남겨진 아이들과 새로운 결합은 어떤 모양을 갖추게 되는가. 이 장면의 뿌리는 2010년대 훨씬 이전, 2008년 1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0년 가까이 유지되던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민법 제781조 제6항이 새로 시행됐다. “자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할 때,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¹. 같은 해 함께 정비된 또 하나의 제도가 친양자 입양(민법 제908조의2)이다². 성본변경이 친생부모와의 법률적 관계를 남겨둔 채 성만 바꾸는 절차라면, 친양자 입양은 친부와의 법률적 관계를 정리하고 계부를 친생자와 동일한 지위에 놓는 제도다. 성을 바꾸는 것과 관계를 새로 창설하는 것, 국가는 이 두 층위를 나란히 마련해 두었다.

이 제도가 실제로 겨냥한 대상은 명확했다. 재혼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함께 사는 계부와 성이 달라 학교와 일상에서 겪는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혼한 여성이 자녀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또는 재혼한 남편의 성으로 바꾸려는 청구가 이 제도의 실무 대부분을 채웠다. 서울가정법원에는 이 조항이 시행된 뒤 수년간 수천 건의 청구가 접수되었다³.

같은 시기 통계는 더 뚜렷한 흐름을 보여준다. 1982년부터 2012년까지 30년간 여성의 재혼은 227.6퍼센트, 남성의 재혼은 93.5퍼센트 증가했다. 특히 “남자는 초혼, 여자는 재혼”인 부부의 비중이 1982년 15.1퍼센트에서 2012년 26.9퍼센트로 늘었다⁴. 여성의 평균 재혼연령도 같은 기간 33.7세에서 42.3세로 8.6세 늦춰졌다.

그러나 법과 통계 너머에는 더 조용한 갈등이 있다. 계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는 새 배우자와의 유대보다 훨씬 먼저 형성된 친부모-자녀 관계를 뒤늦게 따라잡아야 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 구조는 친부모를 어디까지 더 사랑해도 되는지를 두고 아이 스스로 갈등하게 만드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충성심 갈등’이라 부른다⁶.

다자녀 재혼가정에서는 이 갈등이 형제자매 관계로도 번진다. 전혼(前婚)에서 데려온 자녀와 재혼 이후 새로 태어난 공동자녀의 경험은 서로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혼자녀는 이복형제를 ‘자신의 것을 빼앗아가는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고, 공동자녀는 가족 갈등을 중재하는 위치에 서면서도 그 형제를 향해 복잡한 감정을 함께 품었다⁷. 재혼가정에서 성장한 성인 자녀들을 심층 면접한 또 다른 연구는, 이들이 공통으로 겪은 중심 경험을 ‘비존재감으로 인해 겉돎’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⁸.

이 갈등은 대개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장면에서 먼저 드러난다. 학부모 상담 신청서 보호자란에 이름을 적을 때, 아이 성과 자신의 성이 다르다는 걸 담임 앞에서 설명해야 하는 순간. 명절 세뱃돈 봉투의 두께가 형제마다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아이가 먼저 눈치채는 순간. 차례상 앞에서, 저 지방(紙榜)이 누구의 조상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순간. 이런 장면은 법정에도,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재혼가정의 아이가 실제로 ‘가족이 됐다’고 느끼는 지점은, 성이 바뀐 서류가 아니라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숫자만 보면 담담하다. 그러나 이 숫자와 이 조용한 갈등 뒤에는 성이 다른 두 아이가 한 식탁에 앉고, 이복형제를 경쟁자로도 완전한 형제로도 규정하지 못한 채 자라야 했던 구체적인 가정들이 있다.
법이 성(姓)을 바꿔줄 수는 있었지만, 그 아이가 새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자녀 문제는 이미 만들어진 가족을 흔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결합 자체를 막아서기도 한다. 60세 이상의 이혼과 재혼이 함께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이른바 ‘황혼재혼’ 시대, 상속 전문 변호사들이 최근 가장 자주 마주하는 장면은 결혼식장이 아니라 상담실이다⁹. 부모가 새 배우자를 만나 재혼을 준비할 때, 이미 성인이 된 자녀들이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유류분이다. “아버지가 새엄마를 사랑했지만, 우리도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항변은 상속 분쟁의 서두에 되풀이해 등장하는 문장이다. 적지 않은 부모가 이 갈등을 피해 혼인신고 없는 동거를 택하거나, 아예 재혼 자체를 접는다.

이 장면은 앞서 살펴본 재혼가정의 갈등과 정확히 뒤집힌 모양을 하고 있다. 아이가 자라며 새 가족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했던 자리에서, 이번에는 다 자란 자녀가 부모의 새 가족을 밀어내는 쪽에 선다.
가족을 다시 짜는 일은 그 시작과 끝 모두에서, 혈연이 감정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자리라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보여준다.


죽음이 가족을 흩어놓던 자리 — 근대 유럽의 재혼

한국의 이 풍경은 낯설어 보이지만, 세계사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오래전에 겪었다. 다만 원인이 달랐다. 근대 초 유럽에서 가족을 흩어놓은 것은 이혼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16세기부터 19세기 사이 프랑스에서는 전체 혼인의 약 30퍼센트가 사별한 홀아비나 과부가 다시 맺은 결합이었다. 18세기 기록에 따르면 남편을 잃은 여성 중 3분의 1이, 아내를 잃은 남성 중 절반이 다시 혼인길에 올랐다⁵. 이러한 결합은 오늘날처럼 감정적 동반자를 찾는 개인적 선택이라기보다, 농경과 가내수공업 중심 사회에서 가구(household)라는 생산 단위를 유지하기 위한 구조적 필요에 가까웠다. 농지를 경작하고 공방을 운영하려면 성인 남녀 한 쌍이 함께 필요했고, 배우자의 죽음은 곧 그 생산 단위의 붕괴를 의미했다.

프랑스 랭스(Rheims) 지역 14개 교구의 출생·혼인·사망 기록을 디지털화한 연구는, 재혼 가정에서 자란 의붓자식이 16세 이전에 그 가정을 떠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⁵. 이는 단순한 정에서 비롯됐다기보다, 그 아이 역시 가구의 노동력이자 상속의 연결고리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새로 결합한 부모는 대개 전 배우자의 자녀를 자신의 집에서 그대로 키우며, 가산과 농지·공방의 승계 구조를 이어갔다.

교구 기록부는 감정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세례명과 혼인일, 사망일, 그리고 가끔은 재산 목록만을 건조하게 나열할 뿐이다. 그러나 그 건조한 나열 속에서도 하나의 패턴은 선명하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은, 시대와 대륙을 가리지 않고 다시 결합함으로써 생존과 생산의 단위를 다시 세워 나갔다는 점이다.

철학은 모든 사건을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그 이유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근대 유럽의 교구민에게 재혼이 가구라는 경제 단위를 지키는 일이었다면, 2010년대 한국의 재혼가정에게 그것은 이혼 이후 흔들린 삶의 단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형태는 달라도, 혼자서는 그 시대의 생존 조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구조 자체는 반복되고 있었다.


혈연이 아니라, 다시 짜여진 단위

두 시대, 두 대륙의 재혼 가정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패턴이 드러난다. 가족은 본래 혈연으로 완결된 고정된 단위라기보다, 그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생존 조건에 맞춰 매번 다시 짜여진 단위였다는 것이다.

근대 유럽에서는 짧은 평균 수명과 가구 단위 생산 체제가 그 재구성을 강제했다. 2010년대 한국에서는 이혼과 초혼 지연, 경제적 독립이 같은 역할을 했다. 원인은 죽음에서 선택으로 바뀌었지만, 결합의 형식은 오히려 더 다층화됐다. 성본변경으로 성만 잇거나, 친양자 입양으로 관계 자체를 새로 창설하거나 — 국가는 그 다층화된 결합의 형태마다 서로 다른 법적 도구를 마련해 왔다.

성본변경과 친양자 입양이라는 두 제도가 2008년 같은 해에 함께 정비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국가는 혈연이 아니라 실제로 함께 생활하는 단위를 가족으로 승인하는 쪽으로 이미 방향을 튼 지 오래다. 2026년의 다자녀 기준 완화는 그 방향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일 뿐, 새로운 전환이 아니다.

다시 물어야 할 것 — 셈해지는 가족과 살아지는 가족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국가가 서류 위에서 가족을 재정의하는 속도는, 그 서류 안의 아이들이 실제로 새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속도보다 언제나 빠르다. 국가의 서류 속에 들어간 아이의 성(姓)은 법원의 허가로 바뀔 수 있어도, 일요일 아침 식탁에서 아이가 느끼는 낯섦까지 국가의 계산기가 담아낼 수는 없다.

한국 사회가 지금 마주한 것은 저출산이라는 숫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이 이미 현실보다 뒤처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자녀 기준을 낮추고, 양자녀와 배우자의 자녀까지 셈에 넣는 지금의 정책 방향은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질문을 되돌려준다. 우리는 가족을 혈연으로 정의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위기를 통과한 시간으로 정의할 것인가.

영국 작가 로자문드 필처의 소설 「조개줍는 아이들」(The Shell Seekers, 1987)은 이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유작을 물려받은 주인공 페넬로프에게 그 그림은 유년의 기억이자 삶의 은신처였지만, 정작 혈육인 세 자녀에게는 처분해야 할 자산의 가격표로 다가왔다. 반면 그녀가 말년에 마음을 나눈 것은 혈연이 아닌, 우연히 곁에 머물게 된 한 청년이었다. 혈연이 가족의 깊이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소설은 하나의 그림과 하나의 유산을 통해 담담히 그려낸다. 그림 값은 끝내 매겨졌지만, 페넬로프가 평생 그 그림 앞에서 느꼈던 마음의 무게까지 값이 매겨지지는 않았다.

핏줄이라는 외줄이 끊어진 자리에서, 법과 삶과 시간이 다시 꼬아 만든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 대답하지 못한 이 질문 앞에서, 바라보는 자의 기록은 오늘도 사건이 아니라 패턴을 읽는다.

* 참고할 말씀: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 전도서 4:12


¹ 민법 제781조 제6항, 자의 성과 본의 변경(2008.1.1. 시행) — 국가법령정보센터
² 민법 제908조의2, 친양자 입양(2008.1.1. 시행) — 국가법령정보센터
³ 재혼가정 성본변경 청구 통계 — 파이낸셜뉴스, 2010.6.22.
⁴ 재혼 증가율 및 재혼연령 통계(1982~2012) —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KDI 경제정보센터 재인용
⁵ 근대 유럽 재혼율 및 교구 기록 연구(Rheims, France) — The History of the Family, 2010
⁶ 재혼가정 내 충성심 갈등 및 갈등 구조 — 재혼가정연구소
⁷ 청소년기 부모재혼을 경험한 성인 자녀들의 의붓형제 관계 형성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이복형제와의 가족관계 경험에 대한 내러티브 탐구 —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⁸ 재혼 가정 성인 자녀들의 적응 과정 —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015, 27(3)
⁹ 황혼재혼 시대의 상속·유류분 분쟁 사례 — 한국경제, 2026.8.21.
¹⁰ 2026년 다자녀 가구 기준 완화 및 자녀 산정 기준(양자녀·배우자의 자녀 포함) — 정부 다자녀가구 지원제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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